29일부터 방역 마스크(KF94) 전 군민에게 무료 배분
주민등록상 세대별로 방역 마스크 3매씩 지원하기로 

충북 보은군청사.(사진제공=보은군청)


충북 보은군이 추석 연휴에 대비해 군민건강 보호 차원의 선제적 대응책 일환으로 전 군민에게 마스크를 지원한다.
 
29일 보은군은 추석 연휴기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이날부터 방역 마스크(KF94)를 전 군민에게 무료로 배부한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이번 방역 마스크 배부는 추석 명절 귀성객들의 이동으로 인한 코로나19의 지역 유입과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보은군의 특별방역 선제적 대응으로, 주민등록상 세대별로 방역 마스크를 3매씩 지원한다.

정상혁 군수는 “추석 연휴가 코로나19 재확산의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어느 때보다 철저한 개인 방역과 사회 방역이 요구된다”며 “외출과 다중 이용시설 방문, 각종 모임을 자제하고 마스크 착용 등 개인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에 적극 동참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시아뉴스통신=김성식 기자]


koomlin@hanmail.net

보은군 보은읍 누청리 산58-1번지 공동묘지 일원에 조성하기로
추모·휴식 공존하는 자연장지로 재탄생…정이품송 유전자원 보전

충북 보은군이 정이품송 수목장을 조성할 때 사용할 정이품송 후계목을 관리하고 있는 장면.(사진제공=보은군청)


충북 보은군은 조성 된지 60여년 이상 되는 보은읍 누청리 산 58-1번지 공동묘지 일원을 정이품송 후계목으로 수목장을 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 공설 자연장지로 재조성한다고 밝혔다.
 
현재 보은군민 가운데 93%가 임야가 없어 묘지를 쓸 땅이 없는 실정으로 공설 자연장지 조성을 위한 토지 보상비 7억 원이 포함된 추경안이 지난달 31일 군 의회에서 의결된 바 있다.
 
따라서 지난 5월 2회 추경에 군립추모공원 기본실시설계비 8억3000만원을 확보하고 이번에 토지 보상비가 반영되어 2022년 하반기 개장을 목표로 총 106억 원을 투입해 58,397㎡ 규모로 조성되는 공설 자연장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앞으로 군은 사업부지 내 분묘 연고자 조사를 위해 유연분묘 연고자 신고를 받는 한편 본격적인 토지 보상 등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군은 자연장지 내 수목장 조성에 군이 육성하고 있는‘정이품송 후계목’을 활용, 테마가 있는 정이품송 수목장을 조성해 유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할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된 ‘정이품송’의 유전자원을 보존한다는 방침이다.
 
군 관계자는 “효율적인 토지이용을 위해 공동묘지를 친환경 공설 자연장지로 개발하고 있다”며 “토지주와 분묘 연고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아시아뉴스통신=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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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확진자 발생에 따라 감염 확산 막기 위한 특단 조치
27일까지 공무원들이 직접 담당마을에 출장해 배부 중

26일 충북 보은군청 직원이 담당 마을을 방문해 세대별로 마스 3장씩을 배부하고 있다.(사진제공=보은군청)


충북 보은군이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지역감염 차단을 위해 전 군민에게 마스크(KF94)를 무상 지급한다고 26일 밝혔다.
 
보은군에 따르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이로 인한 도내 확진자 증가로 코로나19의 지역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개인방역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개인방역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이달 25일부터 27일까지 3일에 걸쳐 전 군민을 대상으로 세대별로 마스크 3매(1포)를 배부한다.
 
정상혁 군수는 간부회의를 통해 “농어촌지역 어르신 등 취약계층을 비롯해 전체 군민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고 2단계로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수칙을 준수하도록 대군민 홍보에 철저를 기할 것”을 당부했다.
 
이에 본청 실과소와 읍·면 직원들이 이달 25일부터 3일간 담당마을에 출장해 보은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마스크를 배부하는 한편 코로나19 예방수칙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번 마스크 배부는 그간 청정지역을 유지하던 보은군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코로나19의 지역 내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마련했다.
 
정 군수는 “이번 마스크 무상배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코로나19가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행정기관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으니 군민 여러분께서는 마스크 착용, 생활 속 거리 두기 등을 철저히 지켜주시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아시아뉴스통신=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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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높이 20m, 2층 구조의 전망대 개장 후 발길 이어져
관광객뿐만 아니라 전국 사진작가와 동호회원에게 ‘큰 인기’

충북 보은군 속리산 길목의 말티재 전망대.(사진제공=보은군)


충북 보은군 속리산 길목 말티재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말티재는 열두 굽이가 사행하는 뱀처럼 구불구불 숲과 어우러진 가파른 고갯길이다. 이곳은 고려 태조 왕건과 조선 세조 임금과도 인연이 깊다. 

옛사람들은 말티재를 박석(넓고 얇게 뜬 돌)재라 부르기도 했는데 동국여지승람에 태조 왕건이 이 고갯길을 넘기 위해 3∼4리의 박석을 깔았다고 기록돼 있고 세조 임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법주사에 행차 했을 때 길을 고치고 박석을 깔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지명은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 오를 때 경사가 급해 가마로 넘기 어렵자 말로 갈아타고 고개를 넘어 갈목리 마을에서 다시 가마로 바꿔 탔다고 해서 말티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온다.  

해질 무렵 펼쳐지는 저녁노을은 절경 중 절경이라는 예찬을 듣는다. 일반 관광객뿐만 아니라 전국 사진작가와 동호회원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다.  

 
보은군은 이곳에 말티재 열두 굽이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게 7억원을 들여 지난 2월 높이 20m, 폭 16m, 2층 구조의 전망대를 완공해 개장했다. 

요즘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전망대를 찾아 주차장이 부족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려면 속리산 관문 2층 통로를 거쳐야 한다. 관문 2층에는 카페가 있는데 여기서 바라다 보이는 속리산 자락 풍광 또한 일품이다. 

전망대에서 감탄을 쏟아내고 카페에 들려 보은 명품 대추차 등을 마시며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

말티재 주변에는 속리산 관문을 비롯해 산림휴양·치유의 명소인 숲체험휴양마을, 꼬부랑길, 솔향공원, 스카이바이크, 개장을 앞두고 있는 8개 코스 1683m 규모의 집라인 등 체험거리,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또한 866m의 40인승 모노레일과 고향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주막, 황토 초가 너와집, 동구밖 쉼터 등 ‘우국이세촌’ 조성 등 속리산 휴양관광지 조성을 위한 사업들이 한창이다. 

군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에도 가족단위 관광의 적소라는 입소문과 보은이 코로나19 청정지역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에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속리산 말티재를 찾고 있다”며 “코로나19 예방에도 각별히 유의해 가며 관광객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뉴스통신=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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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관광특구, 문체부의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
관광환경 개선 등 2년 간 사업비 6억2000만원 확보 

[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9년 04월 15일 09시 48분

<지난 8년여 동안 충북 보은군이 추진해온 '수학여행 1번지 보은'의 명성 재현 프로젝트가 속리산관광특구 활성화 사업 추진으로 탄력을 받게 됐다. 사진은 보은 속리산 말티재 항공사진.(사진제공=보은군청)>

충북 보은군이 지난 8년여 동안 추진해온 ‘수학여행 1번지 보은’의 옛 영광 재현 프로젝트가 ‘날개’를 달게 됐다.

보은군의 속리산관광특구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한 2019년 관광특구 활성화 공모사업에 지난 11일 최종 선정돼 군이 그동안 펼쳐온  ‘수학여행 1번지 보은’ 영광 재현이란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됐다.

이번 공모사업으로 군은 국비 3억1000만원과 지방비를 포함한 6억2000만원을 확보하게 됐다.

군은 이 사업비로  ‘힐링음악길 조성’, ‘숲속화장실 개축’, 속리산관광특구 외국인을 위한 ‘관광안내판 설치’, ‘다국어 관광안내 홍보물 제작’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공모사업비로 추진되는 사업들은 지난해 7월 법주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라 관광환경을 개선하고 속리산관광특구 내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지역 내 관광자원을 홍보해 국내외 관광객 유치와 관광특구 활성화하기 위한 것들이다.

인구 3만400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보은군은 스포츠, 관광, 농업을 연계해 보은군의 미래 100년 먹거리 개발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8년여 동안 진행해 오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이 대한민국 10대 명산 속리산을 활용한 관광산업 육성으로 지난 8년여 동안 수학여행 1번지 보은건설이라는 큰 그림 아래 치밀하게 수립한 계획들이 하나하나 실현되면서 요즘 속리산 숙박업소와 음식점 등이 예년에 없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200억원을 들여 지난 2017년 11월 개장한 ‘숲 체험 휴양마을’과 지난해 11월 정이품송 인근에 한글과 신미대사라는 테마를 엮어 준공한 ‘훈민정음마당’, 울창한 자연림에서 트레킹을 할 수 있는 ‘속리산꼬부랑길’ 등 관광객이 체험하고 체류할 수 있는 인프라가 속속 갖춰지고 있다.

안진수 군 문화관광과장은 “이번 속리산관광특구 활성화 공모사업 선정을 계기로 지난해 법주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제11회 아시안컵 우드볼 선수권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와 연계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중생태계 및 내수면 어족자원 보전 위해 해마다 실시
24~25일 쏘가리 2만, 동자개 2만8000미 등 풀어 넣어

[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9년 06월 25일 09시 21분

<25일 충북 보은군이 대청호의 수중생태계 보전과 어업인의 어업 소득 증대를 위해 보은군 회남면 관내 대청호에 수산종자를 방류하고 있다.(사진제공=보은군청)>

충북 보은군이 대청호 수중생태계 보전과 내수면 어족자원 보전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보은군은 24일과 25일 대청호의 수중생태계 보전과 어업인의 어업 소득 증대를 위해 보은군 회남면 관내 대청호에 수산종자 20만미를 방류했다고 밝혔다.

군은 이번 사업을 위해 사업비 7400만원을 들여 쏘가리 2만미와 붕어 15만미, 동자개 2만8000미, 뱀장어 5500미 등 모두 20만3500미를 풀어넣었다.

이들 어종은 국립수산과학원 질병검사를 통해 양호한 종자로 판명된 개체만 방류했으며 자연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어종으로 어업인 소득증대에 도움을 줄 것으로 군은 기대하고 있다.

군은 방류 후 인근 지역 어업인을 대상으로 종자 방류사업의 효과와 어족자원 조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방류 대상 수역에서 최소 한 달간 어린 물고기 포획 등 불법어업 근절에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보은군 관계자는 “날로 감소하는 수산자원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지역별 특성에 적합한 우량종자를 지속적으로 방류해 어업인 소득향상과 수산자원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군은 내수면 생태계 변화에 따른 어족자원 고갈에 대비해 어업인의 소득증대를 위한 어족자원 조성사업으로 쏘가리와 붕어 등 다양한 치어를 해마다 방류해 오고 있다.


93년만에 한남금북정맥 연결…'속리산 관문'
13일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 열려

[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7년 10월 13일 09시 53분

<13일 충북 보은군이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을 가진 가운데 정상혁 보은군수(왼쪽 아홉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보은군청)>

일제 강점기인 1924년 끊긴 충북 보은 속리산 말티재의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생태축 복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이어졌다.

보은군은 13일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을 가졌다.

도로건설 명목으로 끊긴 지 93년 만의 일이다.

보은군은 이번 생태축 복원을 계기로 ‘수학여행 1번지’로의 재도약을 꿈꾸는 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은 1924년 일제 강점기 당시 끊긴 한남금북정맥(보은 속리산 ~ 안성 칠현산) 중 말티재 마루금을 잇는 사업으로 속리산 자연생태계의 건강성과 연속성을 유지?회복하고 백두대간 속리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추진됐다.

여기에 더해 보은군은 군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속리산과 법주사의 관문을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상징적인 명소로 복원했다.

지난 2015년 착공해 국비 39억원, 도비 5억원, 군비 18억원 등 모두 62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이 사업은 생태축 복원사업으로는 전국 처음으로 3층 복층터널로 마루금을 이어 생태축을 복원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해발 430m에 위치한 관문의 1층은 폭 12m 길이 79m 높이 6m로 차량이 통행하도록 만든 공간이며 2층은 폭 12m 길이 79m 높이 6m로 250명 규모의 생태문화 교육장과 역사?문화, 사진 등의 상설 전시관으로 조성됐다.

3층은 폭 45m 길이 51m 높이 8m로 단절되기 전의 지형으로 복원해 동물이 드나들고 식물이 서식하는 자연공간으로 만들었다.
 
<충북 보은군의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조감도.(사진제공=보은군청)>

또한 속리산 방향 1층 터널 위에 ‘자비성’이란 글자를, 2층에는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이란 현판을 달고 왼쪽 벽에 법주사 ‘팔상전’과 오른쪽 벽에 ‘쌍사자석등’을 배치했다.

보은 방향 1층 터널 위에는 ‘보은성’이란 글자를, 2층 좌측 벽에는 매미 날개형 ‘보은대교’와 우측 벽에 신라 초기 축조된 중부지방 최대 성곽인 ‘삼년산성’을 배치했다.

 2층 아치형 공간에는 동서통로·휴게실·교육관·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양편 출입구 위에 유리창에는 7가지 무지개 색깔을 입혀 보은군의 희망을 상징했다.

 3층에는 문장대 및 천왕봉 모형과 동물들의 이동을 위한 생태통로를 설치했다.

군은 지난 2015년 6월 생태축 복원사업 대상지를 신청한 뒤 정상혁 보은군수를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이 충북도, 산림청, 기획재정부를 수시 방문해 복원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한 끝에 같은 해 10월 산림청으로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이날 준공에 이르게 됐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은 꼬부랑길, 숲체험 휴양마을, 솔향공원, 짚라인, 모노레일을 연결하는 중심지가 될 것”이라며 “속리산 관문의 보은을 상징하는 명소가 돼 속리산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3일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열린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 장면.(사진제공=보은군청)>

 


<긴급 추적>

1500여년전 삼년산성에 세계최초의 전략적 땅굴이 있었다
-민간탐사팀, 구체적 정황 및 자료와 함께 주장
 막대한 사업비·지자체 냉담 등으로 발굴 중단

 

삼국통일의 교두보였던 충북 보은 삼년산성(사적 235호)에 1500여 년전 만들어진 군사전략적 땅굴이 있었다는 주장이 구체적인 정황 및 자료들과 함께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만일 이같은 주장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우리나라 역사는 물론 전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세계 최초의 군사용 땅굴로 기록되는 '엄청난 사건'이다.


"어렸을 적 직접 땅굴에 들어가봤다"는 한 출향인사의 증언을 토대로 자체조사에 나섰던 지역인사들은 땅굴의 구체적인 징후를 찾아내고도 4년째 비밀에 부치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땅굴이 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과 함께 전모를 털어놨다.


숨막힐 정도의 엄청난 일을 그동안 쉬쉬해 온 이들의 속사정과 자체조사내용, 그밖의 구체적인 정황 등을 심층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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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년산성과 오정산

 

도면----보은지역 민간탐사팀은 자체 조사를 통해 삼년산성 부근의 지하에 공동으로 추정되는 징후를 확인해 냈다. 탐사팀은 특히 이러한 징후가 산성 남쪽으로 연결된 오정산 자락의 8~9부 능선을 따라 일률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면에 점선으로 이어진 부분)을 밝혀냈다./자연닷컴

 

<1>땅굴의 개연성 및 민간조사 결과

 

때는 4년전인 2004년 2월 27일.

 

충북 보은군청 이호천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과 김중구(보은읍 누청리 이장)·구명서씨(보은군 탄부면 평각리 이장) 등으로 구성된 임시탐사팀은 땅굴발굴 전문가인 임형열씨를 초빙, 비밀리에 조사를 벌였다.


수맥전문가이기도 한 임씨는 탐사기를 동원, 이틀에 걸쳐 삼년산성 일대를 탐사한 결과 폭 2.5~3m 간격으로 일정하게 동문터에서 약 400m 떨어진 지점까지 지하가 비어있는 징후를 찾아냈다.


이러한 징후가 끝나는 지점은 보은읍 대야리 117, 118번지의 밭으로, 탐사팀은 이 지역이 삼년산성 입구일 가능성이 가장 큰 곳으로 추정했다.(도면의 입구추정지 '가'지점)


탐사팀은 이어 탐사기를 통해 같은 징후를 보이는 지점을 추적한 결과 도면에 나타난 것처럼 동문에서 산성내 동남부를 지나 남쪽 방면 오정산 방면으로 탄부면 평각리 420번지 인근까지 총 길이 약 2.5km나 이어졌다.


지하공동의 징후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평각리 420번지는 삼년산성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오정산 능선과 어암~평각간 도로가 만나는 지점의 산자락으로, 이곳 역시 땅굴 입구일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판단됐다.(도면의 입구 추정지 '나'지점)


탐사팀은 특히 지하에 공동이 있는 징후가 오정산 자락의 8~9부 능선을 따라 일률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도면에 점선으로 이어진 부분)을 확인하는 한편 그 노선상에서 약 500m 간격으로 일정하게 떨어진 4개 지점(도면의 빗금 친 A,B,C,D 지점)에서 땅이 가라앉은 '함몰부위'를 찾아냈다.

 

이 함몰부위는 20~30m 넓이로 나타나 있는데 취재팀의 확인결과 마치 지하 터널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사진 참조>

 

 

오정산 능선에 있는 함몰부(도면의 B지점)
탐사팀은 지하공동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4개 지점의 땅이 움푹 가라앉은 함몰부위를 찾아냈다. 이 함몰부위는 지하에 공동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선과 일치하고 있다./자연닷컴
 


탐사에 직접 참여했던 이호천담당은 "탐사기를 통해 지하에 공동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산정상 바로 아래 8~9부 능선에 거의 직선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함몰된 지점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 노선상에 나타나고 있는 점 등은 이곳에 땅굴이 있을 가능성을 가장 강력히 뒷받침해 주는 증거"라며 "당시 탐사기를 작동한 임형열씨는 함몰 부분을 발견하곤 '이곳을 파면 분명히 땅굴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며 몹시 흥분해 했다"고 말했다.

 

임씨는 '북한 땅굴'을 발견할 때 조사자로 참여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탐사팀은 이러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직접 땅굴을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 관내 관정업자를 불러 어암~평각간 도로 인근(도면의 E지점)을 굴착한 결과 지하 18m 지점의 두터운 암반층에서 갑자기 흙과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굴착작업을 벌인 곳은 탐사기를 통해 동공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선이 지나는 곳이다.


탐사팀은 이곳이 산 중턱임에도 불구하고 지하 20m도 채 안 되는 곳에서 암반층이 나타나다 갑자기 흙과 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은 과거 동굴같은 것이 있다가 훗날 흙으로 메워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탐사팀은 이같은 구체적인 여러 징후를 포착, 자체 결과보고서까지 작성해 놓고도 지자체와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에 적극적인 건의 내지 자체 발굴작업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 중 결정적인 이유는 굴착작업 당시 확실한 동공을 찾으려 시도했으나 첫 번째 작업을 벌이던 중 인부 한 사람이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 고액의 치료비를 물어주는 등 불상사와 함께 사업추진비 조달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탐사팀 자체가 지역 인사들로 구성된 임시 민간조직이라서 지자체서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관련 학자들까지도 역사적 기록이 없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기 일쑤인 등 사업추진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산성내 지역은 물론 산성 밖 500m 지점까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있어 정확한 탐사 및 발굴작업에 많은 제약을 받은 것도 큰 이유이다.


이호천담당과 김중구이장은 "기초조사 결과 개연성이 특히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동굴을 직접 찾아내려 했으나 막대한 사업추진비 등 어려움이 많아  그러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며 "하지만 지금도 삼년산성에 지하 땅굴이 있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삼년산성은?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사적 235호로 지정돼 있으며 둘레는 약 1.7km에 이른다.

 

오정산 능선을 따라 문터(門址) 4개소, 둥그런 형태의 옹성(甕城) 7개소, 우물터 5개소와 교란된 수구지(水口址) 등이 있다. 470년(자비왕 13년)에 첫 축조된 후 486년(소지왕 8년) 개축돼 오늘에 이른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이 삼년군, 삼년산군으로 불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으로 불린 듯하나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으로 부른다고 기록돼 있다.

 

보은 지역은 대전.청주.상주.영동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로서 삼국시대에는 신라,백제,고구려 모두에게 중요한 전략적 지점이었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신라군은 이곳 삼년산성을 교두보로하여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는데, 일부에서는 성 둘레가 고작 1.7km밖에 안 되는 작은 성이 당시 난공불락의 철옹성 역할을 한 것은 '땅굴'과 같은 기상천외한 전략적 시설이 한 몫 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2> 땅굴 개연성 뒷받침하는 자료들
 
   
 
   

서남곡성에서 바라본 삼년산성
성곽 둘레가 1.7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성인 삼년산성이 숱한 전투마다 백전백승을 거둠으로써 신라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은 평균 13m에 이르는 높은 성곽과 험한 지형적 요건 외에도 긴급 이동통로로 이용됐을 땅굴 등 어떤 비밀시설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어릴 적 직접 들어가 봤다"

출향인사 이재성씨 생전 체험담 증언
굴속 광장 활·칼 등 병장기 널려 있어
주민들, 전설·정황 들어 "분명 있다"

◈ "실제 있다"는 증언(체험담)

   
유일한 땅굴 체험자인 고 이재성씨로부터 직접 증언을 들은 박경수씨(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
 

보은 삼년산성에 1500여년전의 '군사용 땅굴'이 있을 것이라는 개연성의 출발은 한 출향 인사의 증언이 단초가 됐다. 어렸을 적 실제 땅굴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는 '엄청난 말'을 함으로써 보은지역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남긴 사람은 탄부면 사직리(이하 사직리)가 고향인 이재성씨(증언 당시 68세·2년전 작고)로 이씨는 작고 전 고향사람을 만나면 심심찮게 삼년산성 땅굴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한다.

이씨의 얘기는 삼년산성 주변의 여러 전설과 정황, 주민들의 추측 등과 뒤섞여 결국 '현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소문으로 발전돼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씨는 작고 전 속리산에 사는 박경수씨(75·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사진)에게 자신의 체험담을 생생히 증언했는데 이 증언은 보은지역 인사들로 하여금 임시탐사팀을 만들어 자체 조사를 하게 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됐다. 다음은 이씨가 생전에 증언한 땅굴 체험담이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직전 사직리에 사는 초등학생 6명이 마을 인근의 굴속에 한번 들어가 보자고 약속하고 여러날 동안 준비했다. 어른들 몰래 횃불까지 만들어 놓고 토요일 오후(3시쯤으로 기억)가 돼서야 굴에 들어가게 됐는데 굴속이 워낙 길고 캄캄해 모두가 잔뜩 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이 두갈래로 갈라져 오른쪽 큰 길로 따라 들어가니 돌연 넓은 광장이 보였고 바닥엔 화살촉과 창으로 보이는 녹슨 쇳조각이 있어 그걸 주워 장난까지 했다. 더 들어간 굴 내부는 좁았다 넓었다를 반복하다 또 다른 광장이 나왔고 거기엔 화살촉, 칼, 활, 창 등 병장기가 널려 있었다.

한참을 놀다 나와 보니 밖은 한밤중이었고 온 동네가 횃불 천지였다. 한 마을에서 어린이 6명이 한꺼번에 없어졌으니 동네가 온통 뒤집혔던 것이다. 모두가 잔뜩 겁 먹었으나 할 수 없이 어른들에게 붙잡혀 실컷 혼났으며 심지어 지게 작대기로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굴이라면 신물이 났고 어른들은 동굴을 흔적도 없이 메웠다. 당시 맞은 것이 너무나 끔찍해 50년이 지났어도 오금이 저리고 정확한 위치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박경수씨는 이 증언을 듣고 당시 이재성씨와 함께 사직리 부근을 답사했으나 수해 등으로 지형이 변해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씨와 함께 동굴에 들어갔던 당시 친구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작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문터와 남문터 밖의 모습 

현재 남아있는 성문터를 보면 서문을 제외한 동·남·북문 모두가 과거 어떻게 드나들었나 의심이 갈 정도로 문턱이 높고 밖에서 보면 허공에 떠있다. 왼쪽 사진은 동문터(무너진 부분)와 바깥 성벽, 오른 쪽은 남쪽 성문터에서 바라본 바깥 성곽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도저히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 현지 정황·전설, 각계 추정

이씨의 증언 외에도 삼년산성에 땅굴이 있을 개연성은 곳곳서 확인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삼년산성에서 남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평각리 뒷산(삼년산성과 이어진 오정산)에 굴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예부터 이 바위 아래 동굴에 오소리 같은 동물을 잡으려 불을 지피면 연기가 삼년산성 쪽에서 피어 올랐다는 증언을 들 수 있다.

이 바위를 직접 답사한 민간탐사팀의 김중구씨(보은읍 누청리 이장)는 "동네 어른들의 말에 따라 굴바위의 입구 쪽을 돌과 막대기로 쳐봤더니 '쿵∼쿵∼' 하고 울림소리가 들렸다"며 "이는 바위 안쪽이 비어있기 때문이며 만일 이곳에 큰 동굴이 있다면 산성과 연결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평각리 뒷산 굴바위 등 각종 정황을 들어 '땅굴 개연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 민간탐사팀의 김중구씨(누청리 이장).
 

그 다음은 산성 주변의 지형과 현재 남아있는 4개의 문터와 관련된 현지 주민 및 향토사학계의 해석이다.

기록과 전설 등에 따르면 당시 삼년산성에는 3,000명에서 사단병력(1만2,000~2만명)이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다량의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최소한 우마차를 이용해 성안으로 운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 남은 성문터와 성곽주변 상황으로만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했을까라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왜냐면 각 성문의 문턱이 워낙 높게 설계돼 있어 도저히 우마차가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성곽주변 역시 수십길 낭떠러지 혹은 급경사로 돼 있어 맨몸으로도 접근하기 어렵다.<사진 참조>

일각에서는 현재의 서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서문 역시 과거에는 문턱이 꽤나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문밖 또한 급경사에다 인근에 강이 흘러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근의 배뜰(이평)이란 지명은 옛날 배가 다니던 들이란 뜻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서문이 지금처럼 주요 출입구 역할을 했을까라는 것도 의문이다. 당시 삼년산성은 서문 방향(지금의 보은읍내 방향)을 향해 백제군과 대치하고 있던 최전방이다. 하루가 멀다않고 수시로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적이 훤히 바라다보는 서문을 굳이 주요 출입구로 사용했을리는 만무하다. 성문은 남문과 동문,북문도 있었으며 수도 경주(후방) 쪽으로는 남문과 동문이 있었으나 남문 밖은 낭떠러지, 동문 밖은 급경사로 돼 있다. 따라서 우마차를 이용해 성안으로 군량미 등을 실어나르고 군사를 신속히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땅굴과 같은 비상통로가 분명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삼년산성은 둘레가 1.7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성임에도 불구, 매번 전투때마다 백전백승을 거둠으로써 신라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한 것도 지형적 요건 이외의 어떤 비밀시설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 남쪽에 있는 옥천 청산의 '핏들' 전설과 관련해서도 삼년산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삼년산성은 인근 접경지역의 방어까지 담당했는데 위급시에는 옥천 청산까지 군사를 파견해 백제군과 싸웠다. 하지만 신라군은 그곳서는 연전연패해 핏물이 들을 가득 채울 정도여서 핏들이란 지명까지 낳았던 반면 유독 삼년산성에서만 연전연승했는데 이는 '땅굴'과 같은 비밀시설을 통해 기습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란 것이다. 따라서 땅굴의 역할은 평소엔 군수물자 수송통로이고 비상시엔 군사들의 긴급 이동통로였다고 보고 있다.

끝으로 동굴 입구가 동문쪽 혹은 남문쪽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과거에는 성 남쪽의 탄부면 평각리 세골이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삼남대로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주막(세골주막)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다녔다고 한다. 특히 이 길은 신라쪽 후방(경상도 방면)에서 전방인 삼년산성쪽을 잇는 길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이 길과 맞닿은 평각리 부근이 가장 유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다음은 산성 주변의 지형과 현재 남아있는 4개의 문터와 관련된 현지 주민 및 향토사학계의 해석이다. 기록과 전설 등에 따르면 당시 삼년산성에는 3,000명에서 사단병력(1만2000∼2만명)이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다량의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최소한 우마차를 이용해 성안으로 운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 남은 성문터와 성곽주변 상황으로만 보면 과연 그것이 가능했을까라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왜냐면 각 성문의 문턱이 워낙 높게 설계돼 있어 도저히 우마차가 드나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성곽주변 역시 수십길 낭떠러지 혹은 급경사로 돼 있어 맨몸으로도 접근하기 어렵다.<사진 참조>

일각에서는 현재의 서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서문 역시 과거에는 문턱이 꽤나 높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문밖 또한 급경사에다 인근에 강이 흘러 접근이 쉽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근의 배뜰(이평)이란 지명은 옛날 배가 다니던 들이란 뜻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서문이 지금처럼 주요 출입구 역할을 했을까라는 것도 의문이다. 당시 삼년산성은 서문 방향(지금의 보은읍내 방향)을 향해 백제군과 대치하고 있던 최전방이다. 하루가 멀다않고 수시로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적이 훤히 바라다보는 서문을 굳이 주요 출입구로 사용했을리는 만무하다. 성문은 남문과 동문,북문도 있었으며 수도 경주(후방) 쪽으로는 남문과 동문이 있었으나 남문 밖은 낭떠러지, 동문 밖은 급경사로 돼 있다. 따라서 우마차를 이용해 성안으로 군량미 등을 실어나르고 군사를 신속히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땅굴과 같은 비상통로가 분명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삼년산성은 둘레가 1.7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성임에도 불구, 매번 전투때마다 백전백승을 거둠으로써 신라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한 것도 지형적 요건 이외의 어떤 비밀시설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을 낳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 남쪽에 있는 옥천 청산의 '핏들' 전설과 관련해서도 삼년산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즉, 삼년산성은 인근 접경지역의 방어까지 담당했는데 위급시에는 옥천 청산까지 군사를 파견해 백제군과 싸웠다. 하지만 신라군은 그곳서는 연전연패해 핏물이 들을 가득 채울 정도여서 핏들이란 지명까지 낳았던 반면 유독 삼년산성에서만 연전연승했는데 이는 '땅굴'과 같은 비밀시설을 통해 기습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란 것이다. 따라서 땅굴의 역할은 평소엔 군수물자 수송통로이고 비상시엔 군사들의 긴급 이동통로였다고 보고 있다.

끝으로 동굴 입구가 동문쪽 혹은 남문쪽과 연결돼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언이다. 과거에는 성 남쪽의 탄부면 평각리 세골이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삼남대로로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주막(세골주막)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많이 다녔다고 한다. 특히 이 길은 신라쪽 후방(경상도 방면)에서 전방인 삼년산성쪽을 잇는 길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이 길과 맞닿은 평각리 부근이 가장 유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3> 당국의 발굴조사 필요

 
   
 

 

   

 삼년산성의 동남쪽 방향

민간탐사팀과 지역 주민들은 과거 삼남대로가 지나던 삼년산성의 동남쪽 방향 특히 탄부면 평각리 세골에서 삼년산성 동문터 앞쪽에 이르는 지역에 '땅굴 입구'가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땅굴 실체 밝혀야" 여론 비등
소문 아닌 '높은 개연성' … 발굴 시급
실존할땐 세계가 놀랄만한 중대 사안


1500여년전 삼년산성에 세계최초의 군사용 땅굴이 있었다는 충청타임즈 보도내용과 관련해 그 실체를 하루빨리 밝혀내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지역민들은 특히 삼년산성 땅굴이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것과는 달리 출향 인사의 동굴 체험담과 민간탐사팀의 조사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황들이 속속 밝혀지는 등 개연성이 높아진 만큼 관계 당국이 실체파악에 적극 나서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더욱이 지역민들은 삼년산성 땅굴이 '실존'으로 밝혀질 경우 국내 역사는 물론 세계 역사를 뒤집어놓을 만큼 중대한 사안임을 들어 보은군과 충북도, 문화재청, 학계를 망라한 발굴조사팀을 구성, 하루빨리 실체를 찾아냄으로써 잊혀졌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삼년산성의 정체성을 되찾아 세계적인 문화유적, 나아가 세계적인 명소로 발돋움 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민간탐사팀을 구성해 조사에 나섰던 김중구씨(보은읍 누청리 이장)는 "어릴적 땅굴에 직접 들어가 봤다는 출향인사의 증언과 인근 주민들의 견해 및 전설, 산성주변의 지형적 상황, 땅굴 전문가의 조사내용 등을 종합해 볼 때 땅굴이 실존할 개연성은 매우 높다"며 "실존 유적으로 밝혀질 경우 세계 전쟁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학술적으로 중요한 사안임을 감안해 국가적 차원의 조사 및 발굴작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국가차원의 발굴조사가 어려울 경우 보은군과 충북도가 나서 지역의 오랜 수수께끼인 땅굴의 진위 여부만이라도 가려줌으로써 주민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김중구씨                김정학씨                 우원명씨               이호천씨

 

보은군 탄부면 사직리 주민 김정학씨(61)는 "보은과 충북, 나아가 한국을 전 세계인들의 관심 속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일부 학자들의 부정적인 말만 듣고 그대로 방치한 채 오랜 세월을 나몰라라 해오고 있는 게 너무나 안타깝다"며 "군과 도, 문화당국은 잊혀진 문화유적을 되찾는다는 자세로 실체여부를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원명 속리산관광협의회장(61·사진)은 "만일 땅굴이 찾아질 경우 엄청난 부가가치로 인해 보은지역의 발전은 물론 보은관광과 충북관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내 여론을 감안, 지역 출신 정치인들과 지자체가 적극 나서 발굴조사가 시급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탐사팀의 두뇌역할을 해 온 보은군청 이호천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담당·사진)은 "그동안 자체 조사를 하면서 지역민들로부터 받아온 오해와 따가운 눈총, 비난 등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학계의 냉담한 반응과 사업추진비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확실한 개연성을 찾아놓고도 더 이상 일을 진전시키지 못한 채 4년여 동안을 가슴속에 묻어온 게 못내 아쉬웠다"며 "이젠 솔직히 땅굴의 실존 여부를 떠나 지역민들의 궁긍즘을 해소해 주는 차원에서라도 정식 발굴조사가 하루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우원명 속리산관광협의회장(61)은 "만일 땅굴이 찾아질 경우 엄청난 부가가치로 인해 보은지역의 발전은 물론 보은관광과 충북관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지역내 여론을 감안, 지역 출신 정치인들과 지자체가 적극 나서 발굴조사가 시급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탐사팀의 두뇌역할을 해 온 보은군청 이호천 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담당)은 "그동안 자체 조사를 하면서 지역민들로부터 받아온 오해와 따가운 눈총, 비난 등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학계의 냉담한 반응과 사업추진비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확실한 개연성을 찾아놓고도 더 이상 일을 진전시키지 못한 채 4년여 동안을 가슴속에 묻어온 게 못내 아쉬웠다"며 "이젠 솔직히 땅굴의 실존 여부를 떠나 지역민들의 궁긍즘을 해소해 주는 차원에서라도 정식 발굴조사가 하루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놨다.<끝>

 

 

검찰, 충북도민과 보은군민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아시아뉴스통신 2014.8.2일자 보도기사)
-충북도민체전 개막일에 단행한 정상혁 보은군수 입건 방침에 붙여

 

 

25일 개막한 제53회 충북도민체육대회에 얼음물이 쏟아졌다.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아이스 버킷’ 열풍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차디찬 얼음물’이 충북인의 머리 위로 보란 듯이 퍼붜졌다.

 

160만 충북도민이 서로 만나 ‘충북인’임을 확인하면서 호흡을 함께 하는 화합의 장에 난데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비록 3일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충북도내 11개 시·군이 한 자리에 모여 어깨를 맞부딪쳐 가면서 흉허물을 터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려고 하는 바로 그 날에 맞춰 차디찬 ‘양동이 물’이 끼얹어졌다.

 

‘준비된 물’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됐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이 날’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보은에서는 이날 오후 제53회 충북도민체전의 개막을 알리는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4500여명에 이르는 각 지역 대표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내로라하는 인기가수도 오고 지역 내 각종 문화단체들이 한 마당에 모여 흥겨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서 응당 보은지역은 축제분위기여야 했다. 적어도 제53회 충북도민체전의 시작을 알린 이날만큼은 그랬어야 했다.

 

지난 2008년 이후 6년 만에 도민들은 보은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6년 만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 6년 만에 이뤄진 이날 충북도민체전 개막식이 한 마디로 우스운 꼴이 됐다. 손님을 받는 입장인 정상혁 보은군수와 보은 군민들이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당황스럽고 떨떠름한 소식이 긴급히 전해진 것이다.

청주지검은 이날 공직선거법 등의 위반 혐의로 정 군수를 입건해 조사토록 경찰에 지휘했다.

 

이에 따라 정 군수는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돼 조사를 받게 됐다. 지난달 28일 충북경찰청 수사2계가 정 군수 관련 수사기록과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청주지검에 제출한 이래 거의 한 달 가까이 된 시점에서 이뤄진 일이다.

 

경찰은 검찰의 결정에 따라 정 군수를 조만간 다시 불러 조사를 벌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충북도민과 보은군민들의 시각이다. 사법 당국의 내부 절차와 속내와는 별개로 ‘바깥’에서 오가는 말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 많은 말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왜 하필이면 이날(25일) 검찰이 입건 지휘를 내렸냐”는 지적이다.

 

경찰이 넘긴 자료를 한 달 가까이 검토해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온 검찰이 왜 하필이면 충북 도민들의 화합 한마당 잔치가 펼쳐진 바로 그날, 그 것도 주관 지방자치단체장인 정상혁 군수에게 법적으로 심각한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지역민들은 그 배경과 함께 ‘그 이상의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선 보은인, 나아가 충북인에 대한 홀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 지역민은 “사법당국이 보은과 충북을 얼마나 깔보고 하찮게 봤으면 그 많은 날 가운데 충북도민체전 개막식에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 찬물을 끼얹었겠냐”며 “이는 보은군과 충북을 너무나 하찮게 여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 바탕에는 충북도민체전의 중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충북도민체전이 무엇인가. 건전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충북의 위상을 높이려는, 말 그대로 충북인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순수한 한마당 잔치의 자리다.

 

그런데 그 개막의 첫 장을 여는 개막식에 검찰은 호스트 격인 정 군수에 대한 입건 지휘를 단행했다.

 

경찰은 이후 혐의 입증을 위한 추가 소환조사를 실시한 뒤 정 군수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군수에 대한 법적 처분 여부를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정 군수는 지난 6.4지방선거를 통해 뽑힌 충북 보은군의 군수라는 공인 입장과 그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보은지역의 정서, 다시 말해 지역적 자존심이 어느 한 순간 짓밟히고 말았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지역민은 그동안 정 군수에 대한 사법 당국의 수사과정을 예의 주시해 왔다.

 

때론 경찰관서를 찾아가 하소연 한 지역 단체도 있었다. 지역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우니 감안해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그 ‘충정’도 이제 별 볼 일 없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이날 이뤄진 검찰의 입건 지휘로 보면 ‘헛걸음’ 한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 군수 건과 관련해 지역민의 뜬금없는 얘기가 정녕 사실이 아니길 기대할 뿐이다.

 

“정 군수가 검찰에 미운 털이 박힌 건지, 아니면 소문대로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손’이 실존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푸념 같은 말, 바로 그 말이 자꾸만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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