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여의주를 얻는 한 해가 되길

 

용은 상상의 동물이다.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니 본 사람도 없다. 본 사람이 없기에 그 모습은 상상하기 나름이다. 해서 어떤 이는 세상에서 가장 그리기 쉬운 동물이 용이란다. 그럴 법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뚜렷하게 각인돼 온 동물이 용이다. 실체가 없는데도 실체가 있는 그 어느 동물보다 더 정형화한 동물이 용이다.


용의 출발은 대체로 뱀이다. 동서양이 같다. '고대 외계인설'이 심심찮게 나도는, 그 결과 일부 추종자들은 용의 실체가 불을 뿜으며 나타나는 외계인(비행체)일 것이라고 믿는 서양에서조차 용의 근원은 뱀으로 통한다. 드래곤(Dragon) 자체가 큰 뱀을 뜻하는 그리스어 드라콘(Drakon)에서 유래했음이 그를 입증한다.
서양 용의 모습은 이렇다. 대부분이 몸집 큰 뱀 혹은 도마뱀 형상에 박쥐 같은 날개를 가졌으며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 가시돋은 꼬리가 있고 입에선 불이나 연기를 내뿜는다. 이러한 서양 용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유명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전해온다. 이에 비해 동양 용은 보다 구체적이다. 마치 실물을 보면서 묘사한 듯한 글로써 전해진다. 중국 위나라 때 장읍이 지은 자전 '광아(壙雅)'의 익조(翼條)에는 "용은 비늘을 가진 동물의 우두머리로서 몸은 아홉 동물, 즉 낙타의 머리, 사슴의 뿔, 토끼의 눈, 소의 귀, 뱀의 목덜미, 조개 같은 배, 잉어의 비늘, 호랑이의 발, 매의 발톱 형상을 하고 있다"고 묘사돼 있다. 더욱 상세한 것은 비늘 수가 81개이며 소리는 구리 쟁반을 울리는 듯하다는 것이다. 또한 입 주위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엔 여의주가 있으며 목 아래엔 거꾸로 박힌 비늘(역린:逆鱗)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설명엔 서양 용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는 불이나 연기가 없다. 날개도 없다. 그렇다고 날지 못하는 건 아니다. 자유자재로 난다. 이 점이 서양 용과 다른 점이다. 성격도 서양 용은 잔인하고 포악한 반면 동양 용은 선하다. 목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한 친화적이다.


굳이 아홉 동물을 닮고 비늘 수도 아홉이 아홉 번 겹친 81개란 것은 최고를 의미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뱀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용이 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모든 뱀이 이무기가 되고 모든 이무기가 용이 되는 건 아니다. 덕을 쌓아야 한다. 그렇듯 용은 선망의 대상이자 상서로움의 상징이었다. 신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신이요 인간 세계에선 왕을 상징해 왔다.


오늘날의 용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취, 성공, 완성, 좋은 일 등의 의미로 쓰인다. 덕담으로 흔히 "용꿈 꾸세요"라고 하듯이 용꿈은 좋은 일, 바라는 일의 성취를 뜻한다. 용은 또 훌륭한 사람, 힘 있는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개천에서 용 나고 미꾸라지가 용 된다는 속담이 그 예다. "그 사람 용 됐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용은 또한 선거판에도 자주 등장한다. 잠룡(潛龍)에 빗대어 물밑 경쟁을 벌이는 후보자의 뜻으로 곧잘 쓰인다. 반면 허세의 의미로도 쓰인다. "미꾸라짓국(비짓국) 먹고 용트림한다"는 속담이 그 것이다.


임진년 용띠 해가 밝았다. 일부에선 흑룡의 해니 뭐니 말들이 많지만 중요한 건 용이 상상의 동물인 만큼 각자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점이다. 밝게 보면 밝고 어둡게 보면 어두운 것이다. 올핸 특히 여러 잠룡들이 꿈틀거릴,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란 점에서 국민선택의 향방이 중요한 해다. 용 뽑으려다 엉뚱한 이무기 뽑는 일은 없어야 겠다.
나라와 국민 모두가 용이 구름 타고 여의주를 얻는 웅비의 한 해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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