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자긍심 제고 계기돼야(충청타임즈 2010,6,15일자 보도 기사내용)

 

'속리산을 한글의 메카로' 추진 움직임

 

한반도의 실담어는 세계언어의 모태
한글학자 강상원박사(세종한림원학회장)가 주장하는 실담어는 현재 한반도와 만주일대서 사용하고 있는 전통 토속사투리(크샤트리아)로서 본래 왕족언어이며 범어(산스크리트어)와 유럽언어의 모태일 뿐만 아니라 불교어도 여기서 파생됐다고 보고 있다. 또한 한자도 실담어를 음역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담어의 음운과 주요 원리는 7음(아,설,순,치,후,반설,반치)과 평상거입의 4성, 실담 50자문에 근거해 배열된 36자모(子母), '(주) ㅣ(곤) ㅡ(일) 3재의 가획원리 등이다. 이중 주 곤 일 삼재의 가획원리를 ·(천) ㅣ(인) ㅡ(지) 3재로 대체해 자음과 모음을 만들고 거기에 자음합용병서 원리를 더해 초성과 종성을 표기함으로써 훈민정음이 탄생했다는 논리다.
실담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면 훈민정음 창제초기의 한문고전, 즉 동국정운,훈몽자회,신증규합 등과 능엄경언해,용비어천가,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같은 언해에 사용된 언어를 생각하면 된다. 다시말해 그 당시 사용된 언어가 바로 실담어다.
범어와 유럽언어가 실담어와 상관관계에 있음을 입증하는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말의 아리랑은 범어로는 ari(사랑하는 님)와 langh(서둘러 떠나다)을 합친 말이며 머슴은 범어로 ma(관리하다)와 sime(힘)이 합친 말로 표현된다. 또 우리말 고리는 영어의 coil(돌돌 감다)과, 고맙다는 comate(친구, 동료)와, 구부리다는 curve(곡선, 구부리다)와 관계된 것을 볼 수 있다. 강박사는 실담어와 범어,한반도 전통 토속사투리간의 상관관계를 알려면 옥스포드 사전(Sanscrit English Dictionary)의 20만 단어를 통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미대사와 훈민정음, 실담어의 관계
강박사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훈민정음은 실담어의 원리에 기반해 창제됐다고 주장한다. 즉, 훈민정음엔 실담어의 체계와 원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의미다. 이는 또 실담어를 모르면 훈민정음을 창안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충북 영동 태생으로서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이었다는 주장도 이에 근거하고 있다.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를 주도했음을 입증하는 단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 법주사 복천암에는 신미대사가 직접 실담어로 쓴 진언문과 부적이 전해지고 있다.<사진 참고>

 

 신미대사의 실담어 친필과 부적(복천암 소장)

 

 이는 신미대사가 당시 실담어를 실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능통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인 단서다. 강박사에 따르면 당시 집현전 학사들 가운데 실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신미대사 한 사람 뿐이었다고 한다.
또 영산김씨세보 권1에는 본명이 수성(守省)인 신미대사는 세종조에 집현원(집현전) 학사를 역임했으며 속리산 복천암에 주석할 때 세조가 친히 찾아와 혜각존자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전토(땅)까지 주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사진 참조>

 

 '집현원 학사' 기록이 전하는 영산김씨세보(복천암수암실기 수록)

 

 강박사와 함께 신미대사의 훈민정음 창제 주역설을 주장하고 있는 복천암 월성스님은 이에 대해 "억불숭유 시대에 유학자가 아닌 불가 승녀로서 집현전 학사를 지낸 유일한 인물이라는 점과 실담어에 능통한 유일한 학자였다는 점, 세자 신분으로서 부왕인 세종의 명을 받아 신미대사와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던 세조가 즉위후 한 달여나 걸리는 먼길을 친히 찾아와 극진한 예우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는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를 주도했음을 여실히 입증하는 단서"라고 강조했다.

 

속리산은 훈민정음의 메카다
신미대사가 훈민정음 창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속리산 지역을 훈민정음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보은 수정초교 조철호 교장은 "강박사와 월성스님의 노력으로 신미대사의 높은 공적이 밝혀지고 그 가운데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상 속리산 지역을 훈민정음의 메카, 훈민정음의 본향으로 만들 가치와 필요성이 있다"며 "관내 기관 단체장들과 합심해 추진위를 구성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조교장은 또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국단위의 학생 글짓기 대회와 사투리 대회를 여는 등 각종 이벤트를 마련해 지역의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속리산 주민 박경수씨(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는 "지역내 도로표지판과 상가 간판, 음식점 메뉴판 등을 훈민정음체로 바꾸고 도안도 새로 하는 등의 특화사업을 추진한다면 국립공원과 관광지로서의 옛명성을 되찾을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속리산지역을 한글의 메카로 조성할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복천암 월성스님과 수정초교 조철호교장.

세계 언어는 한반도 토속사투리에서 파생됐다(충청타임즈 2010,6,15일자 보도기사)

 

 

한글학자 강상원박사 주장 지대한 관심
"한글창제 중심에 '충북' 있었다" 주장도

 

한반도의 토속사투리인 실담어가 전세계 언어의 뿌리이며, 한글도 실담어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충북 영동 태생의 신미대사가 만들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한글 창제의 주역인 신미대사는 당시 법주사 복천암에 머물고 있던 학승으로서 세종의 아들인 세조가 즉위후 속리산을 찾아 그를 만날 만큼 한글 창제의 중심에 충북출신 인물과 속리산 복천암이 있었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다.

 

<강상원박사> 

 

<복천암 월성스님>


 

한글학자이자 사학자로서 한글과 범어의 상관관계를 30여년 동안 추적해 온 강상원박사(세종한림원학회장)는 최근 속리산 복천암 신미대사 부도에 봉정한 저서들을 통해 "오늘날까지 우리 한반도와 만주일대서 사용하고 있는 전통 토속사투리, 즉 크샤트리아(Ksiatria)는 왕족언어로서 실담어(悉曇語)이며, 이 실담어에서 인도범어와 유럽어가 파생됐다"고 주장했다. 강박사는 "한민족은 역사적, 언어학상으로 천산,곤륜,백산에 있던 중천축국 타림분지 강역에 살면서 실담어에 뿌리를 두고 살아온 민족"이라며 "따라서 실담어의 주인공인 한민족은 동서문명의 창조자로서 중국대륙의 중원을 지배하면서 문화를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했다.


강박사는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주역설과 관련해 "훈민정음은 실담어의 7음인 아설순치후 반설 반치, 평상거입의 4성, ·(天) ㅣ(人) ㅡ(地) 3재의 가획원리에 의해 창제된 문자"라며 "따라서 세종 당시 실담어와 실담어 불경에 유일하게 통달했던 신미대사만이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신미대사가 한글 창제의 주역이었음을 주장하는 또 한 사람인 복천암 월성스님은 "신미대사는 충북 영동의 영산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태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부친의 영향으로 10세 미만에 사서삼경을 섭렵한후 출가 입산해 불교경전을 공부하다가 범어경전의 원서를 직접 보기 위해 실담어를 공부한 학승이었다"며 "특히 조선조의 정치논리가 유교이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자가 아닌 불가 스님을 집현전 학사로 전격 기용한 점(관련기사의 영산김씨세보 참조), 세종이 한글창제후 가장 먼저 석가모니의 공덕을 한글을 이용해 노래로 지어보라고 한 점(월인천강지곡 등) 등으로 볼때 신미대사가 한글창제의 주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월성스님은 또 "복천암 수암실기에 기록돼 있듯이 당시 복천암에 주로 머물고 있던 신미대사가 세종의 부름을 받고 한글창제를 주도한 다음 다시 복천암에 내려온 것이 훗날 세조가 속리산을 찾는 계기가 됐다"며 "따라서 속리산 복천암, 나아가 충북 출신의 인물이 한글창제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보은 수정초교 조철호교장은 "한글창제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재평가가 이뤄져 신미대사의 업적과 우리말의 우수성이 획기적으로 밝혀진 만큼 신미대사의 고귀한 숨결이 살아있는 속리산을 훈민정음의 메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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