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극복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물고기 생태에 푹 빠져 있던 9년전 일이다.

 

한 선배가 찾아와 물고기를 알려면 미생물부터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개발한 광합성미생물(PSB) 배양법까지 알려줬다. 법대 출신으로 사시준비를 하던 분이 어떻게 그 분야의 박사가 됐냐고 물었더니 답이 재미있었다.


고향인 음성서 머리를 식히고 있을 때였단다. 논둑길을 걷다가 우연히 새끼 미꾸리를 발견하고는 옛 생각에 한참을 쳐다보고 있는데 무언가를 자꾸 잡아먹더란 것이다.

 

하도 신기해 물속을 살펴봤지만 육안으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는 것. 해서 그날부터 공부는 뒤로 한 채 관찰에 몰두한 결과 새끼 미꾸리는 윤충을 잡아먹고 그 윤충은 보다 작은 광합성미생물(이하 PSB) 등을 잡아먹는 사실을 밝혀냈단다. 그 선배는 그후 미생물업계의 대부가 됐음은 물론이다.


선배가 다녀간 뒤로 PSB와의 씨름이 시작됐다. 수 톤의 쌀겨와 석회를 배합해 균체를 증식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조건이 맞으면 증식이 잘 되다가도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한순간에 약화돼 다른 미생물이 번성하는 등 변화무쌍했다.

 

배양한 미생물을 활용해 물벼룩을 생산할 때도 변화무쌍함은 여전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PSB로 물벼룩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조건이 잘 맞춰져 물보다 물벼룩이 많을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하룻밤 새 상황이 돌변했다. 그 많던 물벼룩은 온데 간데 없고 물빛마저 변해 있었다. 전날 저녁 PSB 먹이를 많이 준 게 조건을 변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들 덕에 많은 걸 깨달았다. 그 중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들은 상호경쟁을 통해 삶을 영위하되 거기에는 반드시 '조건 혹은 환경'이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제 아무리 작은 미생물일 지라도 각기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벌이며 조건에 따라 어떤 건 번성하고 어떤 건 쇠퇴하는 것이다.

 

경쟁은 미생물과 생물, 생물과 생물간에도 벌어진다. 또한 경쟁과정에서는 병원체처럼 상대방에게 침입해 감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작은 미생물일수록 몸을 쉽게 변형시켜 생존능력을 키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조건이 악화됐을 경우 작은 미생물일수록 재빠르게 몸을 변형시켜 내성을 키운다는 얘기다.

 

실례로 물고기에 병이 왔을 때 기생충 보다는 바이러스가 약제투여에 더 강하다. 그만큼 치료가 어렵다. 기생충은 약제투여라는 조건악화에 대응해 몸을 변형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작은 반면 바이러스는 쉽게 변형시켜 내성을 만들 수 있는 재주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몸집 차이다.   


목하 신종플루로 인해 온나라가 불안하다. 바이러스 대란이다. 갈수록 기승부리는 현 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내성을 가진 변종바이러스의 출현이다.

 

행여나 그래선 안 되겠지만 개발된 항바이러스제가 한순간에 효용성을 잃기 때문이다. 이는 최악의 상황이다.

 

내성은 어설픈 치료가 주원인이다. 자가진단 자가처방이 위험한 까닭이다. 5일 먹으라는 치료제를 대충 먹을 때 문제 된다.


중요한 게 또 있다. 앞의 경쟁 논리처럼 그들이 쇠퇴 않고 계속 확산되는 것은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환경)'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방역활동은 이 점에 초점을 둬야 효과적이다. 국가 전염병 위기단계가 심각단계면 말 그대로 붉은(Red) 단계요 최고 단계다. 모든 조처에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


극히 작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바이러스. 신출귀몰한 변신력을 가진 그들을 이겨내려면 보다 슬기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생태학자들이 경고해 온 소위 '미래의 충격'이 우리 앞에 바싹 다가와 있다.

 

그 동안 학자들의 입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변화가 이미 우리 나라에서 진행돼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지난 1세기 동안의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2~3도 가량 올라간 것을 들어 얼마 안가 지구 생태계가 크게 교란될 것이라는 경고를 오래 전부터 해 왔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학자들이 주장한 '얼마 안가'라는 기간이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먼 미래'로만 느껴졌고, 그래서 생태계의 교란 역시 현 세대에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어왔다.

 

그러나 그 미래의 충격은 일반인들의 체감기간보다 훨씬 더 이르고 강하게 찾아와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생태계에도 그와 같은 징후가 잇따라 속출하고 있다.

 

더워지는 육지, 올라가는 해수온도로 인해 이른바 기후의 아열대화가 가속돼 급기야 한반도 생태계를 뿌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내 관련 기관 연구원들과 학자들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계속돼 온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지난 10년 사이 한반도 근해의 연평균 수온이 섭씨 0.68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수치는 1916년 이후 80년 동안의 연평균 수온 상승률(0.07도)보다 무려 10배 가량 큰 것이다.

 

이 같은 수온 급상승은 그 동안 온대기후를 보여온 우리 나라 근해의 기후를 수온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아열대 기후로 점차 바꾸어 놓아 멸치, 오징어, 고등어와 같은 난류성 어종들의 어획량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 반면 한류성 어류인 대구와 명태는 10년 전 어획량의 10분의 1수준으로 급감시키고 있다.

 

기후의 아열대화는 육지에서도 동시에 이뤄져 많은 생태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실례로 곤충학자이자 현직교사로 재직중인 서울 경희여고 김성수씨의 연구보고서(지구온난화와 곤충분포 변화)에 따르면 우리 나라 토착곤충인 상제나비, 붉은점모시나비, 산부전나비, 은점표범나비,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등 15종의 나비들이 그 동안 높아진 기온에 적응치 못해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반면 일본 남서부와 중국 남부, 동남아, 호주 등 열대 및 아열대 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연노랑흰나비 등 11종의 외래 나비들이 한반도로 이동해와 곳곳에서 채집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보고서는 또 나비의 뒤를 이어 열대 및 아열대 지방의 병해충들도 조만간 우리 나라로 대거 몰려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 평균기온의 급상승은 이 땅에 오래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각종 토종 생물들의 씨를 말리는 대신 외국 생물들의 국내 유입을 부채질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기도 한다.

 

즉, 기온변화로 인해 비록 한류성 어류는 감소했지만 난류성 어류는 오히려 늘어났고 또 나비와 같은 새로운 곤충의 유입으로 생물종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자연재산이 그만큼 많아졌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앞으로 기온 상승의 정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또 그로 인해 입게될 인간의 피해는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우려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자고 나면 기온은 자꾸만 올라가고, 그로 인해 우리와 삶을 같이 해온 토종들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그런 반면 지금까지 보도 듣도 못한 외래 생물들은 점차 늘어나 우리 주변의 생태계를 '낯선 생태계'로 만들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말 그대로 얼마 안가 한국특산종이란 생물은 찾아볼래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자연도감이나 표본을 통해서만 그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상막한 세상이 다가오고야 말 것이란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바다가 아주 심상치 않다.

 

바다에서 이상 조짐이 보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특히 올 들어 보이고 있는 징후는 정말로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가장 큰 이상 징후는 ‘바다 수온의 급상승’이다.

 

포항지방해양수산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경북 동해안 해역의 최근 두 달간 수온이 섭씨 9.9~14도 안팎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최근 5년간 같은 기간의 평균 수온에 비해 1.5~2.6도 높은 수치이고, 지난해에 비해서는 무려 3도 이상(최고 3.2도) 오른 것이다.

 

수온이 급상승하면 우선 해양생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런 징후는 현재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초 경주 감포항 앞바다서 플랑크톤이 대량 번식해 오징어가 집단 폐사한 데 이어 인근 해역의 미역, 다시마가 정상 성장을 못하고 갑자기 녹아 없어지는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영덕지역의 자연산 돌미역 생산량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30% 이상 줄어들었다. 돌미역이 잘 자라려면 10도 안팎의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수온이 갑자기 오르니 제아무리 자연산인들 잘 자랄 리 만무다.

 

바다 수온이 갑자기 오르면서 인체에 치명적인 마비성 패류독소마저 예년에 비해 20일 가량 이르게 극성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포항 구룡포 앞바다서 채취한 진주담치, 즉 홍합에서 마비성 패류독소가 허용기준치(80㎍/100g) 보다 훨씬 많은 1백31㎍이나 검출됐다.

 

포항해양수산청은 즉시 이 일대에서의 패류채취는 물론 패류의 유통과 취식 행위를 금하도록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패류독소는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아 인체에 흡수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강한 독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패류독소가 검출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애써 잡은 자연산 홍합과 생굴 가격이 말 그대로 ‘똥값’으로 떨어지는 등 어민들의 2차적인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수온 급상은 또 적조발생 시기를 앞당겨 포항 형산강 하구의 경우 올 들어 벌써 두 번이나 나타남으로써 어민들을 크게 우려케 하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 만 해도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지구 온난화 현상.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내려 전 세계 해수면이 상승하고 한반도의 기온이 아열대로 변할 것이라는 학자들의 경고가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 콧방귀를 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발등의 불은 이미 우리의 일이 돼 버렸다.

 

제주 수역은 물론 남해 서해 동해 등 모든 수역에서 열대성 어류가 점차 많아지고 있고 앞으로 백년 안에 우리나라 소나무가 모조리 사라질 수 있다는 소식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는 요즘,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아직도 내가 사는 세대에야 뭐 그리 큰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동해로 가보라.

 

가서 그곳 어민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라.

 

이대로 가다간 수년 안에 어민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는 현지 사람들의 말이 과연 허사가 아님을 느낄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 먼 미래의 일이 아닌 내 일, 오늘의 일이 돼버렸다.

 

'빨라야 산다'

 

육상선수가 머리맡에 붙여놓은 좌우명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소매치기배들이 매일아침 직장(?)에 나가면서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행동수칙도 아니다.

 

이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모든 생물들에게 떨어진 지상 최대의 과제요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나무이건 풀이건 동물이건 간에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빠르게 움직이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이러한 절체절명의 운명 속으로 몰아 넣었을까.

 

그것은 바로 지구온난화다.

 

지구온난화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지구가 더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 원인이야 많지만 빙하시대가 끝난 지난 1만년 동안 지구온도는 5도 가량 높아졌고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돼 불과 1백년 사이에 그같은 기온상승이 일어난다.

 

그 결과 해수면이 높아져 많은 지역이 바다에 잠기고 한 때 농사를 지어먹던 땅들이 사막으로 변해버려 사람들을 떠나게 했다.

 

그러나 사람 이외의 생물, 특히 이동성이 적은 동물이나 식물들은 이러한 기온변화에 쉽게 적응 또는 이동하지 못하고 도태돼야 하는 절박한 운명에 처하게 됐다.

 

더욱이 과거에는 기후변화가 더디게 이루어져 전체 생태계가 적응 또는 이동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져 보다 빠른 적응과 이동을 요구하고 있다.

 

식물들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들보다 이동성이 적은 까닭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 접해 있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물들은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위도상으로는 북쪽으로 약 64km 이동해야 하고 고도상으로는 약 55m 이동해야 전과 같은 서식조건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기온이 1도 올라갔을 때 북쪽으로 약 64km 이동하거나 고도상으로 약 55m를 이동하지 않으면 호된 시련을 겪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우리 나라에서 남방계 식물로 알려졌던 보춘화(춘란)와 사철란 등이 자꾸만 북쪽으로 분포지를 옮겨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수 작물의 주 재배지가 바뀌고 있는 것도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식물보다 더 '딱한 처지'에 있는 생물이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들이다.

 

민물고기들은 비록 식물보다 자체이동성은 크지만 이 강에서 저 강으로 옮겨갈 수 있는 도강(渡江)능력은 없다.

 

더구나 식물들은 자체 이동력이 없는 대신 씨앗이나 홀씨를 날려 서식지를 옮겨 갈 수 있지만 물고기들에겐 그러한 능력도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민물고기들의 개체수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수온변화에 민감한 종들은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것들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의 냉수성 어종인 산천어와 금강모치가 갈수록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자연생태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비단 남획과 남벌, 환경파괴와 같은 인간의 직접적인 간섭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행위, 즉 이산화탄소와 프레온가스, 메탄가스, 아연화질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행위도 이젠 그에 못지않는 커다란 요인이 되고 있다.

 

인간이기주의는 갈수록 극에 달하고 있고 그로 인해 지구온도는 점차 빠른 속도로 치솟고 있는 어지러운 세상. 그 혼란의 세상에서 생물들은 갈팡질팡해 가며 '살아남기 위한 바쁜 몸놀림'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한없이 내달려야 하는 사막의 작은 동물들처럼...

 

아니, 붙잡히면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잽싸게 내 튀는 어느 TV광고 속의 사내처럼...

 

산란철에 물고기를 잡아보면 대부분은 잡는 순간 알 또는 정자를 몸밖으로 내 쏟는다.

 

온 집안을 쏘다니며 주부들의 가슴을 걸핏하면 콩알가슴으로 만들어 놓는 바퀴 벌레도 알을 실었을 때 잡으면 죽기 직전 영락없이 알을 깔린다.

 

사람도 병에 걸려 쇠약해지면 이성을 더 밝힌다는 얘기가 있고 목을 매 자살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도 숨을 거두는 순간 무의식적이지만 방정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도축장의 소나 돼지들도 그같은 본능적인 방정행위를 하긴 마찬가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쓸모 없는 소나무 솔방울만 잔뜩 맺는다'는 말처럼 식물인 소나무 역시 영양상태가 나빠지거나 수세(樹勢)가 약해지면 서둘러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

 

이렇듯 미물이건 사람이건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 종족보존행위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종족보존행위 자체가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본연의 임무요, 하늘이 부여한 지고지순의 대임(大任)임을 입증해 준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관심을 끄는 실험결과가 나와 있다.

 

그것은 무두웅(無頭雄), 즉 '머리잘린 수컷'이란 소름끼치는 단어를 낳은 사마귀의 짝짓기에 관한 실험이다.

 

이 실험결과는 과거 2백여 년 동안 전세계 생물학계를 지배해 온 이론으로서 '사마귀 수컷은 짝짓기할 때 대부분 암컷에 의해 머리가 잘려지며 오히려 머리가 잘린 후 더욱 강렬하게 짝짓기 행위를 하고 마침내는 새끼들의 영양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암컷에게 잡혀 먹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최근 미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반증실험을 통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부딪혀 있다.

 

다시 말해 최근의 실험은 과거 학자들이 사마귀의 짝짓기 장면을 관찰할 때 실험실 조명을 너무 밝게 해 암컷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했거나 암컷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지 않아 수컷을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론이야 어떻든 실제에 있어서는 머리가 잘려진 채 암컷 등에서 떨고 있는 무두웅의 사마귀가 가을철이면 더러 눈에 띈다.

 

이 때 신기한 것은 암컷 등을 타고 있는 수컷 사마귀는 비록 머리는 잘려져 암컷의 먹이가 됐지만 짝짓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짝짓기 기관을 암컷의 그것에 맞댄 채 계속해서 작짓기 행위를 하며, 암컷 역시 짝짓기를 마칠 때까지는 수컷을 잡아먹지 않고 있다가 그것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비로소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같은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동변상련(?)과 함께 이 시대 남자들의 '고개숙인 뒷모습'을 떠올린 바 있다.

 

연쇄부도다 구조조정이다 하여 가는 곳마다 고개 숙인 남자요 어깨 쳐진 남자뿐인 요즘, 무두웅의 사마귀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곧 나라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해 죽어라 일해 왔건만 대접은 커녕 하루아침에 내쫓김을 당해야 하는 이 시대 남자들의 신세가 '씨 주고 몸까지 바쳐야 하는 수컷 사마귀의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는 고개 숙인 남자들의 뒷모습은 차라리 머리가 없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마냥 풀이 죽은 채 '머리 쳐 박은 자라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또 심한 자멸감과 자괴지심에 집을 뛰쳐나와 노숙생활을 하며 통한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원 칼날은 조금도 무뎌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갈수록 날카로워지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장들이 무두웅 신세가 될 지 걱정이다.

 

환경호르몬인가 뭔가 하는 죽음의 재들은 자꾸만 정자 수를 줄여 '남자 구실'을 빼앗아 가고 사회 경제 분위기는 삶의 의욕과 일터를 빼앗아 왕따 아닌 왕따로 만드는 극도의 위기 시대.

 

무슨 업보를 짊어졌길래 이 불운의 시대에 하필 태어나 이 시대의 잘못이란 잘못은 몽땅 다 뒤집어쓰고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는지.

 

오호 애재라.

 

남자들이여, 그대들의 이름은 정녕 '시대의 희생양'일 뿐이란 말인가.

 

(이 글은 1990년대 말 IMF 시기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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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이 갖는 원 뜻은 일의 순서가 뒤바뀌어 애쓴 보람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결과를 얻는 일거양득의 뜻으로도 쓰인다.

 

속담이란 본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뭇 사람들에게 일침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교훈을 주는 일종의 격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담도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현대감각에 잘 어울리지 않거나 속담 속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기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경우가 더러 있다.

 

앞서 말한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속담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

 

왜냐면 요즘 사람 치고 제 정신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온갖 오물과 악취로 가득 찬 도랑에 들어가 일부러 흙을 거둬낼 사람도 없거니와 그 놈의 도랑 속을 아무리 헤집어 봐야 그 속에 가재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행여 자기 집 앞 도랑이 막혀 큰 불편을 겪게 됐을 지라도 전화통 붙잡고 애매한 시청직원을 불러대거나 대행업자를 불러 포크레인으로 홀딱 파 뒤집는 것이 다반사요, '작은 개울'을 뜻하는 도랑이 그저 '오염원을 흘려보내는 하수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 오늘날의 세태다.

 

어디 그뿐이랴.

 

옛날 같으면 집 앞 도랑에서 흙장난하느라 하루해가 짧다 할 어린애들 마저 도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이제는 이 속담을 '하수구 치고 다이아 반지 줍는다' 또는 '골재 채취하고 하상 바로 잡는다' 쯤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고가 아닐는지.

 

도랑과 하천마다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제 모습을 잃은 지 이미 오래요 그 속에 살던 물고기 역시 온 데 간 데 없고 시냇물이란 단어 자체가 먼 옛날 고어(古語)처럼 느껴지는 게 요즘이다.

 

이런 요즘 불현듯 그 예전 마을 앞 냇가로 빨래하러 가는 누이를 좇아가 구멍 뚫린 고무신짝으로 송사리 잡던 일이 몸서리치게 그리워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헛된 궁상은 아닐 성  싶다.

 

지금보다 더 먼 훗날 이 땅의 손자들이 도랑 치고 가재 잡는다는 뜻이 뭐냐고 묻는다면 과연 그 시대의 할아버지들은 무슨 답으로 그들의 호기심을 풀어줄 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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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충과 들풀에 시달려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농약이 한 때 구세주나 다름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기를 쓰고 잡아내고 뽑아내도 뒤돌아보면 불가사리처럼 또 다시 생겨나는 게 해충과 들풀이었으니 그 어떤 농민인들 이들을 손쉽게 없애주는 농약이 구세주 같지 않았겠는가.

 

물약이든 가루약이든 이리저리 흩뿌리기만 하면 해충과 들풀이 죄 다 없어지는 것을 본 농민들은 어쩌면 농약을 뿌리면 뿌리는 대로 효과를 보는 신통방통한 요술방망이 같은 존재로까지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농민들의 가슴 속엔 어느덧 농약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농약 만능주의'가 생겨나 걸핏하면 분무기를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섰고 장을 보고 오는 농민들의 손 마다에는 두 세 종류의 농약봉지가 쥐여져 있었다.

 

심지어는 기생해충인 이와 벼룩을 잡는 데도 농약이 동원돼 그 독하디 독한 DDT를 온몸에 바르고도 모자라 주머니에 넣어 바지가랑이 속에 달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1960~70년대 모습이요 '농약혁명'이 오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농약만능주의의 폐해는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해 곳곳에서 농약중독에 따른 인축(人畜) 피해가 잇따르고 논밭에서는 메뚜기와 개구리가 자취를 감춰갔다.

 

또한 강에서는 기형어가 잡히고 철새의 몸에서는 농약성분인 중금속이 검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이 먹는 우유와 모유, 인체에서 고농도의 농약성분이 검출되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빚어졌다.

 

그 결과 우리 나라에서도 1980년 말 농약관리법이 제정된 데 이어 이듬해 3월엔 환경청 고시로 농작물 중 농약잔류 허용기준이 설정됐으며 이와 함께 농작물별로 각 농약의 사용회수, 수확 전 살포 가능일수 등이 설정된 농약 안전사용기준이 공포됐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농약 본래의 특성상 약효기간에 따른 잔류문제로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특히 DDT,BHC 등 유기염소계 농약은 생산이 중지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분해되지 않은 채 독성을 발휘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고분해성 농약이 상품화되고 있으나 농민들이 수확 바로 전까지 이를 살포함으로써 여전히 잔류성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반 시장에서 유통 중인 시금치, 상추 등에서 법정 허용치를 최고 9백 배까지 초과하는 농약성분이 검출돼 이를 출하한 농민들이 무더기로 입건된 적이 있다.

 

적발된 농민들 중 일부는 출하 하루 전에도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 것으로 드러나 '빗나간 농심(農心)'을 그대로 엿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시대일지언정 자신들의 부모 형제가 먹을 수 있는 채소에 농약을 잔뜩 발라 출하시키는 '검은 마음'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아연실색이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농약은 잘못 쓰면 극약이요 아무리 잘 써도 보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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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입맛은 대부분 다르다.

 

설령 한 집에 사는 가족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이는 짠 음식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고기를 먹더라도 어떤 사람은 완전히 익힌 것을 좋아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반숙을 좋아하고 어떤 이는 굽거나 삶은 것보다 생으로 회쳐 먹길 더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사회는 집단이 크든 작든 간에 그 집단을 대표하는 '공통적인 입맛'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각 구성원의 입맛이 서로 다른 가정인 경우에도 그 가정과 타 가정이 비교될 만한 그 어떤 특징적인 입맛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우리는 흔히 “누구네 집 장맛은 어떻고 누구네 집 고추장맛은 어떻네" 해 가며 그 집 큰며느리의 '손맛'을 평가하곤 한다.

 

이것이 소위 음식에 얽힌 그 집안의 내력이요 음식문화인 것이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역에는 각기 독특한 입맛을 지닌 여러 가정들이 있지만 그 독특한 입맛들이 모여 지역을 대표하는 '보다 큰 입맛'  즉, 그 지역의 음식문화를 형성한다.

 

지역의 입맛은 특히 당해 지역의 특산물과 여러 지리.인문적인 특색에 바탕을 두고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향토음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전주의 비빔밥과 평양.함흥의 냉면, 제주의 갈칫국, 낙동강.섬진강 주변의 재첩국, 설악산.지리산.속리산 등지의 산채 등이 이를 입증한다.

 

지역의 향토음식은 나아가 국가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으로 발전한다.

 

이의 한 예가 우리 나라의 김치요 불고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오늘날 가장 독특하게 나타나고 있는 '국가적인 입맛'은 단연 보신(補腎)주의와 정력 제일주의에 뿌리를 둔 '유별난 음식'에 있다.

 

이 유별난 음식은 특히 그 나라의 민족성까지 들먹이게 할 정도로 경우에 따라선 매우 섬뜩하거나 비인간적 혹은 동물학대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는 원숭이골 음식은 적어도 그 문화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하나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하고 몸서리치게 하는 잔혹한 행위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도 외국인들의 시각엔 그들 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유별난 입맛을 가진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개를 친자식처럼 여기는 유럽인들에게는 개고기를 먹는 미개한(?) 나라가 우리 나라요 살아있는 곰의 가슴에 빨대를 꽂고 쓸개즙을 쭉쭉 빨아먹는 이상한 국민이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그러나 몸보신과 정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유별난 집착은 외국인들의 그같은 비난과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날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 결과 뱀과 개구리, 오소리, 너구리 등이 동면에 들어가는 겨울철만 되면 그들을 잡느라 너도나도 눈알이 시뻘개져 급기야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온 산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등 심각한 환경 생태 파괴 문제까지 빚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겨울이 지나 봄이 와도 이들 동물들이 기지개를 켜지 않는 '영원한 동면'이 해를 거듭할수록 확산돼 가고 있다.

 

동물들의 영원한 동면.

 

우리들의 유별난 입맛이 불러온 그 '죽음의 그림자'가 이 땅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잠재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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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으로 인해 인류의 생식기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화학물질이 체내에 들어가 여성호르몬과 흡사한 작용을 할 경우 약(弱)정자증을 유발하는 등 수컷을 무기력화 시킨다는 이른바 '환경호르몬 이론'이 확산하면서 전 인류를 생존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1992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스콧 케벡박사는 연구논문을 통해 성인남자 1만4천여 명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정액 1㎖당 정자수가 1940년도에는 평균 1억1천3백만 개였으나 반세기가 지난 1990년도에는 6천6백만 개로 격감했으며 정액의 양도 그 사이에 3.4㎖에서 2.7㎖로 줄어드는 등 인간의 정자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1995년 프랑스 오제박사는 1973년 8천9백만 개로 나타났던 성인 남자들의 정자수가 1992년에는 6천만 개로 줄어드는 등 매년 2.1%의 비율로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 후 일본의 데이쿄대 오시오 시게루교수는 최근 신체 건강한 남학생 30여 명의 정액을 얻어 정밀 분석한 결과 정자 수와 정자의 운동률(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정자의 비율)이 모두 정상인 학생은 단 2명뿐이었다는 보다 심각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상적인 성인 남자의 정자 수는 정액 1㎖당 1억 개 정도이며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는 정자수가 2만 개 이하, 정자의 운동률이 50% 이하면 불임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오시오교수가 조사한 피검 학생들의 평균 정자 수는 1㎖당 4천만 개 정도인 반면 운동률은 50%를 크게 밑돌아 운동률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심각한 불임위기에 놓여있음이 확인됐다.

 

인류는 수십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뿌리를 내려 종족보존과 함께 찬란한 문화를 일궈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업화 공업화가 낳은 각종 공해물질로 인해 인류의 생활환경은 크게 악화돼 거의 모든 인류가 심각한 공해병을 앓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달은 또 한편으론 사람의 평균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계기를 만든 반면 다른 한편으론 환경호르몬의 양산으로 '생식기능의 저하'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만일 프랑스 오제박사가 밝힌 대로 매년 2.1%의 비율로 인간의 정자수가 준다면 앞으로 길게 잡아봐야 60년 안에 우리 인류는 '임신 불가'라는 씻지 못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꼭 그렇게 되기야 하겠냐마는,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낼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갈수록 지구환경이 악화하면서 남성들로 하여금 제 구실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 측은한 생객마저 든다.

 

남성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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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유행했던 우스갯소리 중에 동물들의 행태적 특성을 빗대어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거북이가 길을 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보니 자신보다 걸음이 느린 달팽이가 땀을 흘리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측은한 생각에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마침 방향이 같아 등에 태우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또 다시 한참을 가다보니 이번엔 굼벵이가 힘겨운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비비적거리며 굼뜬 걸음을 하는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 달팽이 뒤쪽에 타라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거북이 등에 타고 있던 달팽이가 굼벵이에게 하는 말이 "야 꼭 붙들어. X나게 빨라"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거북이는 내심 어깨가 우쭐해져 더욱 빠른 속도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달팽이와 굼벵이는 난생처음 빠른 속도로 길을 가는 것이어서 마음속으론 겁이 났지만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냐며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얼마쯤 갔을까.

 

일행은 어느 교차로를 지나다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다.

 

거북이는 물론 앞에 타고 있던 달팽이 마저 혼절하고 뒤에 탔던 굼벵이만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다.

 

교통경찰인 토끼가 달려와 맥없이 앉아있는 굼벵이에게 사고경위를 물으니 굼벵이 왈,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곧 '만용은 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자연계의 질서요 진리다.

 

선천적으로 자신보다 느린 달팽이의 장난 기 어린 칭찬에 거북이가 조금만 덜 우쭐해 했어도 교통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X나게 빨라"라는 말 한 마디에 거북이는 자신이 거북이란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만용을 부려 결국 화를 당하게 됐다.

우리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엄연히 지켜야할 질서가 있음에도 그것을 무시하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된다.

 

자신도 초보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 차의 초보운전이란 표식만 보면 금방 우쭐해져 크렉숀을 울리고 난폭 운전을 일삼아 초보자를 십년 감수케 하는 운전자들 또한 우리 주변에 수없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굼벵이의 마지막 말은 이렇게 이어질 것이다.

 

"X나게 우쭐거리다 사고 나면 안 아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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