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학자 서유구(徐有榘)는 우리가 가히 자랑할 만한 위인이다.
그는 1834~45년 사이에 펴낸 <임원경제십육지> 중 <전어지>에 이미 한국산 물고기의 특성을 상세히 소개했을 만큼 놀라운 자연 관찰력과 식견을 지녔던 선구적인 학자다.
그의 높은 식견은 전어지의 '돗고기'를 소개한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돗고기를 "머리는 작고 배가 부르며 꼬리는 뾰족하고 꼬리지느러미는 끝이 둘로 갈라진다. 주둥이는 가늘고 뾰족하며 등은 검고 눈은 작다. 생긴 모양이 돼지새끼와 비슷하다 해서 돈어(豚魚), 즉 돗고기란 이름이 붙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돗고기는 오늘날 '돌고기'로 불리는 작은 어류인데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현대학자들 마저 고개를 내두를 정도로 사실적이다.
물고기박사로 통했던 고 최기철박사도 저서를 통해 그 시대에 그런 위대한 조상이 있었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단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 의한 것일 뿐 오늘날의 국제학계로부터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물고기를 국제학계에 첫 소개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헤르첸슈타인이라는 외국인 학자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헤르첸슈타인은 1872년 한국의 풍중이란 곳에서 이 어류를 채집하여 'Pungtungia herzi Herzenstein'이란 학명으로 국제학술잡지에 신종 발표한 장본인이다.
서유구 보다 30여 년이나 늦은 시기임에도 그가 한국산 물고기를 외국에 첫 소개한 인물로 길이 남게된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곧 신종 발표 시에는 국제적으로 규정된 학명을 붙여 학술잡지에 발표해야만 공식인정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선진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당쟁에만 몰두해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했던 당시의 빗나간 정치풍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일이 됐지만 당시 학명을 제정하는 간단한 방법만 받아 들였더라도 지금쯤 우리 어류학계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요,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국내 학문발달이 그 동안 왜 그리 더디게 이뤄져 왔으며 그로 인해 과학 후진국이란 멍에를 그토록 오랜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가를 자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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