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아주 작은 새가 있었다.
몸집이 어찌나 작던지 꼬리까지 합쳐봐야 고작 13cm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생김새는 무척 귀여워 얼굴과 가슴에 난 털은 갓 태어난 강아지 털처럼 복슬복슬하고 눈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동그랗고 초롱초롱해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부리는 십자매처럼 짧고 뭉툭하나 오히려 풀씨와 같은 딱딱한 먹이를 먹거나 둥지 틀기에 아주 제격이고 머리와 등은 진한 적갈색에 가슴과 배는 옅은 황갈색을 띠어 귀티까지 났다.
사람들은 이 같은 특징을 들어 이 새에게 '붉은머리오목눈이'란 근사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은 잊혀지고 전혀 엉뚱하게 '뱁새'라는 이명(異名)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다.
한 마디로 불운의 씨앗은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작고 가늘게 옆으로 째진 눈을 '뱁새눈', 작고 샐룩한 눈을 '뱁새눈이'라고 하여 마음껏 폄하는가 하면 남이 한다고 덩달아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다가 되레 화를 입으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이 새는 그러한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열중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몸집은 비록 작지만 둥지를 틀 때면 다른 새보다 열 배 백 배 더 바삐 움직이며 둥지 재료를 물어 나르고 날라 온 재료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튼튼한 보금자릴 만든다.
또한 번식기가 돼 알 낳아 새끼 깔 때에는 한 시라도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작은 새라고 깔보고 덤벼드는 천적이 있으면 죽을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강한 모성애까지 보인다.
하지만 번식기가 지나 새끼(한 배에 보통 3~5마리를 낳음)가 어느 정도 자라면 본래의 온순한 성질로 되돌아와 사람이 다가가도 본체만체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참으로 부지런한 새요 보면 볼 수록 정감이 가는 새다.
비록 비아냥조의 뱁새라는 껄끄러운 별명이 붙어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타의적인 것이고 타고난 모성애와 부지런함은 말 그대로 '자연계의 귀감'이요 '생태계의 모범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생도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오염과 먹이고갈로 점차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산란기 때 어미가 물어다 준 농약 묻은 먹이를 먹고 시름시름 죽어 가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몸집이 작고 눈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무슨 큰 업보인 양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해 온 것만도 억울해 장이 뒤틀릴 판인데 이젠 사람들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생명까지 위협당하고 있으니 운명 치곤 대단히 재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이제 그들은 '잘난 우리들', '잘난 인간들'을 향해 항변하고 있다.
대자연의 중요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알량한 경제적 부만을 좇아 죽을 둥 살 둥 개발과 파괴를 일삼다가 결국―당신들이 우리더러 뭐가 뭐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고 했듯이―양쪽 가랑이가 홀라당 찢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고.
그들은 또 '어리석은 우리들'을 향해 욕하고 있다.
저희들이 양산해낸 환경호르몬인가 뭔가로 인해 갈수록 사람구실도 못하고 움푹 들어가 샐룩해진 눈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뱁새눈이요, 왕쪼다다"라고 말이다.
쪼다 중의 쪼다 왕쪼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의 질타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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