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지구상의 공기를 맑게 해주는 허파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연생태계의 균형유지에도 더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숲 속의 나무들은 태양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함으로써 공기를 정화한다.

 

또한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진 양분은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에 흘러들어 에너지 순환의 첫 출발점을 이룬다. 여기서 에너지 순환의 첫 출발점을 이룬다는 것은 먹이사슬 내의 생산자인 나무가 그 다음 단계인 1차 소비자에게 중요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숲 속의 나무들에겐 항상 먹이사슬 내의 1차 소비자인 곤충 애벌레와 성충들이 모여들고 또 이를 잡아먹으려는 2차 소비자들과 2차 소비자를 포식하려는 3차 소비자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줄지어 모여든다.

 

숲과 나무는 또 온갖 생물들의 서식처이자 삶의 터전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생태계 내 분해자 역할을 하는 미생물에서부터 포유류 등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생물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섭식장소와 휴식장소를 제공하고 나아가 종족번식을 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역할 가운데 자연생태계의 균형유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1차 소비자에게 먹이를 제공해주는 '생산자로서의 역할'이다.

 

숲 속의 나무는 그 뿌리부터 줄기와 잎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위가 주요 1차 소비자인 곤충들의 먹이가 되고 있다.

 

곤충에 따라서는 나무의 뿌리만을 갉아먹고 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줄기와 껍질을 파고들어 그것을 먹고사는 것과 이파리를 갉아먹고 사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으나 곤충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역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맛이 있는 나무의 진, 즉 수액이다.

 

수액은 나무가 광합성으로 만들어낸 영양분으로 당분과 초산 따위로 이뤄져 있어 나무 줄기의 상처를 통해 밖으로 흘러나올 경우 자연적으로 발효돼 곤충이 좋아하는 시큼한 냄새를 풍긴다.

 

시큼한 냄새에 유혹된 곤충들은 앞을 다투어 수액이 흘러나오는 나무로 몰려들게 되고 몰려든 곤충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액을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죽음을 불사한 싸움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서로간의 경쟁을 피하고 효율적으로 수액을 먹기 위해 생겨난 것이 곤충간의 '시간적 질서'다.

 

다시 말해 곤충들은 아무 때나 수액이 나는 나무로 몰려드는 게 아니고 저 마다의 시간대를 지켜 먹이를 구한다.

 

예를 들어 햇빛이 뜨거운 한낮에는 말벌, 풍이, 점박이풍뎅이, 흰점박이꽃무지, 진딧물, 쌍살벌, 등에류가 모여들고 해가 질 무렵에는 오색나비, 멋쟁이나비, 네발나비, 청띠신선나비 등 주로 나비류가 날아들며 어두컴컴한 밤에는 태극나방, 사랑밤나방, 주홍각박시나방, 배저녁나방,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바퀴, 하늘소 무리가 찾아든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몸집이 작은 개미,파리류는 밤낮없이 나무진에 모여든다.

 

이렇듯 자연생태계는 오묘한 질서와 법칙 아래 균형이 유지되고 발전해 나간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 없이 그저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의 세계에서는 항상 시끌벅적하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 숲이며 또 그러면서도 일정한 규칙과 리듬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 곧 숲 속의 생태계다.

 

하지만 이러한 숲 속 생태계도 아무런 간섭이 없는 자연상태에서만 그같은 법칙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요 어느 한순간이라도 인위적인 간섭이 끼어 들게 되면 먹이사슬의 균형은 물론 자연생태계의 법칙마저도 순수성을 잃고 삐그덕 거리게 마련이다.

 

어느 숲 속에 사람이 들어가 수액이 흘러나오는 나무를 베었다 치자.

 

그 사람이 한 일은 단순히 나무 한 그루를 베었을 뿐이지만 자연생태계는 그로 인해 엄청난 영향을 받게 된다.

 

우선 수액이 나오는 나무가 베어짐으로써 수액을 먹이로 하는 수많은 곤충들이 먹을 것을 잃고 방황하다 결국 날아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곤충들을 잡아먹고 살던 곤줄박이 등 2차 소비자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되며, 나무 자체를 갉아먹고 사는 또 다른 곤충류와 생물들도 커다란 피해를 입게 된다.

 

숲 속의 나무는 생태계 내 소비자들의 먹이로서 뿐만 아니라 숲 속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로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면 그 베어진 공간을 통해 갑자기 많은 양의 햇빛이 들어옴으로써 숲 속의 저층 생태계도 커다란 영향을 받게 돼 음지식물이 말라죽고 대신 양지식물이 싹을 틔우는 등 변화가 오게 된다.

 

사람이 저 혼자 살아갈 수 없듯이 자연 속의 생물들도 서로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와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숲 속의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나무라 할지라도 그것의 존재이유는 있는 것이요 숲 속 생태계의 균형유지에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숲 속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곤충 한 마리라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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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 서유구(徐有榘)는 우리가 가히 자랑할 만한 위인이다.

 

그는 1834~45년 사이에 펴낸 <임원경제십육지> 중 <전어지>에 이미 한국산 물고기의 특성을 상세히 소개했을 만큼 놀라운 자연 관찰력과 식견을 지녔던 선구적인 학자다.

 

그의 높은 식견은 전어지의 '돗고기'를 소개한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돗고기를 "머리는 작고 배가 부르며 꼬리는 뾰족하고 꼬리지느러미는 끝이 둘로 갈라진다. 주둥이는 가늘고 뾰족하며 등은 검고 눈은 작다. 생긴 모양이 돼지새끼와 비슷하다 해서 돈어(豚魚), 즉 돗고기란 이름이 붙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돗고기는 오늘날 '돌고기'로 불리는 작은 어류인데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은 현대학자들 마저 고개를 내두를 정도로 사실적이다.

 

물고기박사로 통했던 고 최기철박사도 저서를 통해 그 시대에 그런 위대한 조상이 있었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평가는 단지 우리 나라 사람들에 의한 것일 뿐 오늘날의 국제학계로부터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물고기를 국제학계에 첫 소개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헤르첸슈타인이라는 외국인 학자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헤르첸슈타인은 1872년 한국의 풍중이란 곳에서 이 어류를 채집하여 'Pungtungia herzi Herzenstein'이란 학명으로 국제학술잡지에 신종 발표한 장본인이다.

 

서유구 보다 30여 년이나 늦은 시기임에도 그가 한국산 물고기를 외국에 첫 소개한 인물로 길이 남게된 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것은 곧 신종 발표 시에는 국제적으로 규정된 학명을 붙여 학술잡지에 발표해야만 공식인정되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선진과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당쟁에만 몰두해 아까운 시간과 국력을 낭비했던 당시의 빗나간 정치풍토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일이 됐지만 당시 학명을 제정하는 간단한 방법만 받아 들였더라도 지금쯤 우리 어류학계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요, 나아가 자연과학 분야의 발달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국내 학문발달이 그 동안 왜 그리 더디게 이뤄져 왔으며 그로 인해 과학 후진국이란 멍에를 그토록 오랜 동안 벗어나지 못했던가를 자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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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연생태계는 얼마나 건강한가.

 

또한 우리 자연생태계의 정조(貞操)는 아직까지 순결한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던져줄 만한 조사결과가 10여년  전인 지난 1995년 발표된 적 있다.

 

당시 국립환경연구원은 '귀화생물에 의한 생태계 영향 조사결과(1차)' 발표를 통해 현재 국내에 분포하고 있는 귀화식물의 종류는 무려 36과 2백11종 4변종 3품종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동시에 실시된 '귀화어종 실태조사'에서도 전국 69개 조사대상 지역 중 97%에 이르는 67개 지역에서 한 종 이상의 귀화어종이 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기실 충격적인 것이었다.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불려져온 우리 나라 국토가 외국에서 들어온 귀화생물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채 이미 정조를 잃었음을 확연히 입증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자연생태계의 균형은 오랜 기간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그 파괴 역시 자연상태 아래에서는 상당한 기간이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런 인식과는 거리가 멀어 외래생물에 의한 생태계 잠식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가는 곳마다 국적을 모르는 식물들이 여기 저기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고 하천과 호소 마다에는 각종 외래어류들이 판을 치며 토착어류들을 못살게 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요 난장판이다.

 

그렇다면 과연 문제의 귀화생물들이 국내에서 판을 치게 된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원인 중의 하나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과거에 비해 나라와 나라간, 사람과 사람간의 교류가 훨씬 더 잦아지면서 외래생물의 이동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데 있다.

 

교통수단의 발달은 또 국내에 유입된 비토착 생물의 지역간 이동도 더욱 활발히 이뤄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국내에 유입된 비토착 생물들의 본래적 특성상 우리 나라 토착생물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강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블루길과 같은 귀화어류가 국내 수계서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국내 토착어류들 보다 생장력과 번식력, 포식력이 월등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국민들의 관심 소홀과 인식 부족에 있다.

 

그까짓 외래생물쯤이야 국내에 확산되면 어떻고 또 피해가 있으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그릇된 인식이 바로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자연이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또 그것을 바르게 지키기 위해선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하는 가를 우리 스스로 직시할 일이요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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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 오는 말에 '참새가 쇠등에 앉아 내 살 한 첨 줄 테니 네 살 열 첨 다오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속내평은 참새고기 맛이 쇠고기 맛보다 월등히 낫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빗대고 있다.

 

주먹보다 더 작은 참새가 자신보다 수천 배나 더 큰 소의 등을 타고 감히 조롱하며 건방(?)을 떨 수 있다는 자체가 그 만큼 자신의 고기 맛에 자신감이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실 어릴 적 참새고기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고소하고 담백하며 쫀득하고 찰진 맛이 혀뿌리 깊숙이 각인(刻印)돼 있음을 잘 알 것이다.

 

'새덮시기'로 어렵사리 잡은 참새를 적당히 털 뽑아 아궁이 밑 불에 파묻어 놓고 행여 고기가 탈까봐 지켜 앉아 있다가 고기가 익으면 얼른 꺼내 굵은 소금 찍어 한첨 한첨 오물거리며 먹던 기억은 이제 먼 추억 속에서나 들춰볼 수 있는 '부끄러운 과거'가 됐지만 말이다.

 

참새는 고기 맛 외에도 특유의 약효가 있어 한방약재로 이용된 적이 있다.

 

참새고기는 작육(雀肉)이라 하여 강장제로 쓰였고 알은 작란(雀卵)이라 하여 여성의 대하증 또는 위음증(萎陰症) 치료에 이용됐다.

 

특히 겨울 참새는 더욱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납일(臘日)에 잡히는 새, 즉 '납조(臘鳥)'를 제일로 쳤는데 여기서의 납일은 섣달 또는 겨울을 뜻한다.

 

참새를 옛날엔 작(雀) 또는 빈작(賓雀), 와작(瓦雀)이라 불렀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마작(麻雀)이라 불렀다.

 

 중국사람들이 참새를 마작이라고 부른 것은 참새들이 떼지어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마작놀이 할 때의 마작 패를 뒤섞는 소리와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가을 들녘의 참새 하면 으레 허수아비를 연상하듯이 예부터 참새는 곡식 낟알을 쪼아먹는 해조(害鳥)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정작 참새가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해조냐 아니면 오히려 도움을 주는 익조냐 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분분해 왔다.

 

실례로 옛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좋아하는 버찌를 참새가 먹어치우자 화가 나 참새를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그러나 참새가 사라지면서 해충이 들끓어 벚나무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하자 그 때서야 `참새의 존재'를 깨닫고 뒤늦게 참새보호에 나섰다는 얘기가 전한다.

 

또 중국에서는 사해(四害) 추방운동이라 하여 참새, 쥐, 파리, 모기를 전멸시키는 운동을 지난 60년대에 펼친 바 있는데 이 운동에서도 참새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논밭의 해충이 더욱 극성을 부리자 결국 참새잡이 만은 포기했다고 한다.

 

어쨋든 간에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 깊게 자리해 온 참새가 최근 들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다시금 그들의 존재를 생각케 한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지난 10년 동안 참새의 서식 마리수가 1백ha당 4백60 마리에서 2백50 마리로 약 54%까지 줄어들었으며 그 감소추세도 1994년 이후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참새가 줄어드는 가장 큰 요인은 농약살포 등에 따른 환경오염과 먹이고갈, 도시확장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등이라고 하니 결국 사람 가까이에 사는 습성으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이 좋아 인가 근처에 둥지를 틀었더니 덕보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고 되레 배를 곯거나 병에 걸려 이젠 운신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참새팔자 옛말인 것이다.

 

하도 배가 고파 시궁창을 전전긍긍하며 밥풀떼기 몇 알 주워먹은 것이 화근이 돼 날갯짓도 못하고 소리 없이 죽어가던 어느 도시 참새의 '떨던 몸짓'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속에 긴 여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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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주 작은 새가 있었다.

 

몸집이 어찌나 작던지 꼬리까지 합쳐봐야 고작 13cm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생김새는 무척 귀여워 얼굴과 가슴에 난 털은 갓 태어난 강아지 털처럼 복슬복슬하고 눈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동그랗고 초롱초롱해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부리는 십자매처럼 짧고 뭉툭하나 오히려 풀씨와 같은 딱딱한 먹이를 먹거나 둥지 틀기에 아주 제격이고 머리와 등은 진한 적갈색에 가슴과 배는 옅은 황갈색을 띠어 귀티까지 났다.

 

사람들은 이 같은 특징을 들어 이 새에게 '붉은머리오목눈이'란 근사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은 잊혀지고 전혀 엉뚱하게 '뱁새'라는 이명(異名)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다.

 

한 마디로 불운의 씨앗은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작고 가늘게 옆으로 째진 눈을 '뱁새눈', 작고 샐룩한 눈을 '뱁새눈이'라고 하여 마음껏 폄하는가 하면 남이 한다고 덩달아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다가 되레 화를 입으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이 새는 그러한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열중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몸집은 비록 작지만 둥지를 틀 때면 다른 새보다 열 배 백 배 더 바삐 움직이며 둥지 재료를 물어 나르고 날라 온 재료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튼튼한 보금자릴 만든다.

 

또한 번식기가 돼 알 낳아 새끼 깔 때에는 한 시라도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작은 새라고 깔보고 덤벼드는 천적이 있으면 죽을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강한 모성애까지 보인다.

 

하지만 번식기가 지나 새끼(한 배에 보통 3~5마리를 낳음)가 어느 정도 자라면 본래의 온순한 성질로 되돌아와 사람이 다가가도 본체만체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참으로 부지런한 새요 보면 볼 수록 정감이 가는 새다.

 

비록 비아냥조의 뱁새라는 껄끄러운 별명이 붙어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타의적인 것이고 타고난 모성애와 부지런함은 말 그대로 '자연계의 귀감'이요 '생태계의 모범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생도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오염과 먹이고갈로 점차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산란기 때 어미가 물어다 준 농약 묻은 먹이를 먹고 시름시름 죽어 가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몸집이 작고 눈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무슨 큰 업보인 양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해 온 것만도 억울해 장이 뒤틀릴 판인데 이젠 사람들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생명까지 위협당하고 있으니 운명 치곤 대단히 재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이제 그들은 '잘난 우리들', '잘난 인간들'을 향해 항변하고 있다.

 

대자연의 중요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알량한 경제적 부만을 좇아 죽을 둥 살 둥 개발과 파괴를 일삼다가 결국―당신들이 우리더러 뭐가 뭐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고 했듯이―양쪽 가랑이가 홀라당 찢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고.

 

그들은 또 '어리석은 우리들'을 향해 욕하고 있다.

 

저희들이 양산해낸 환경호르몬인가 뭔가로 인해 갈수록 사람구실도 못하고 움푹 들어가 샐룩해진 눈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뱁새눈이요, 왕쪼다다"라고 말이다.

 

쪼다 중의 쪼다 왕쪼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의 질타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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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출현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수렵(사냥)이다.

 

그 만큼 수렵은 고대인들에게 있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생존수단이었다.

 

고대인 스스로 들짐승을 잡아먹지 못하면 굶어죽거나 거꾸로 그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 짐승을 잡는 방법, 즉 수렵방법이요 사냥도구였다.

 

따라서 수렵은 야생열매를 따먹는 채집활동과 함께 가장 오래된 인류의 생존수단이었다.

 

그러나 인류문명이 발달하면서 수렵의 가치는 절대적인 생존수단에서 점차 놀이 또는 무인들의 심신단련을 위한 방법으로 변모해갔고 또 한편으로는 약렵(藥獵:녹용 등을 얻기 위한 사냥)과 같은 돈벌이 수단으로 자리잡아 갔다.

 

역사적 기록으로는 기원전에 이미 그리스에서 왕족이나 무인계급들이 토끼나 멧돼지 사냥을 하였다고 전하며 중국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1200년경에 각각 매사냥을 했다고 전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 시대에 왕이 관원들과 함께 수렵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무예를 익히고 심신을 단련하는 수단으로 산천을 돌아다니며 수렵을 즐겼다고 전한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왕이 수렵하는 것이 연례행사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매를 기르고 훈련하는 응방과 응사까지 두어 사냥에 나섰다.

 

수렵은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전통적으로 총기수렵과 그물수렵, 함정수렵 등으로 나뉘는데 그 종류별로 각기 지켜야할 엽도(獵道)가 있어 이를 준수해가며 짐승을 잡아왔다.

 

예를 들어 총기수렵인 경우 새끼를 데리고 있는 짐승은 절대로 쏘지 않아야 하며 땅에 있는 날짐승은 하늘로 날린 다음 쏘는 것이 하나의 법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엽도도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져 오늘날에 와서는 서치라이트에 불법 개조된 인마 살상용 총기까지 동원한 싹쓸이식 남획이 일년 내내 판을 치고 있고 겨울철만 되면 온갖 산야에 독극물과 올무, 덫이 즐비하게 놓여져 들짐승을 옴쭉달싹도 못하게 하고 있다.

 

매년 봄이 되면 들짐승들은 새끼를 낳는다.

 

그러나 많은 짐승들이 지난 겨울을 나면서 인간에 의해 짝을 잃었거나 상처를 입은 까닭에 새끼를 낳지 못하고 방황하기 일쑤다.

 

인간의 보신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 '겨울의 상처'만 깊게 남아 들짐승들로 하여금 슬픈 계절을 맞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망가진 충북의 산야, 누구 책임인가

(아시아뉴스통신 2016년 4월9일자 보도기사. 원문보기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999310)

 

 

봄은 왔으나 조용하다. 예전 같으면 1년을 기다려 온 봄꽃들이 망울을 터트렸다고 반가운 소식이 제법 날아들었을 시기인데 올핸 꿩 구워먹은 듯 조용하다.

 

도심의 벚꽃과 개나리는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정작 이 산야의 주인공인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진달래, 산벚나무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그들이 그렇게 흐드러지게 핀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꽃소식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니 카메라 둘러메고 꽃마중 가자고 하는 기별을 기다리는 자체가 욕심인가도 싶다.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던가. 봄은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 아니 봄은 왔는데 봄 같은 봄을 느낄 수가 없다.

 

지난 3월 중순부터 지난 주말까지 내리 4주째 괴산과 보은지역 등으로 봄꽃 답사를 나갔지만 반가운 꽃모습은커녕 매번 실망과 허탈감만 잔뜩 안고 돌아왔으니 춘래불사춘도 지독한 춘래불사춘이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노루귀와 깽깽이풀 등 봄철을 대표하는 야생화들이 자생지에서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름깨나 알려지고 희소가치가 좀 있다는 야생화는 어김없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는 속도 또한 더욱 빨라졌다.

 

올해 이런 일도 일어났다. 기자가 ‘비밀의 정원’처럼 소중히 아끼던 자생지들이 졸지에 파괴돼 야생화 자생지로서의 가치를 잃고 말았다. 마치 도둑맞은 듯 야생화의 보고(寶庫)에서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지난 2008년 취재 당시 알게 된 이후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을 누가 알세라 비밀 아지트처럼 여기면서 봄이 되면 찾아가 그들의 안녕을 확인해 오던 정든 자생지들이었기에 그 상실감과 실망감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듯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 그들 자생지를 가보고 또 가보고 올해 들어 네 번째 찾아갔지만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지난 주말 그들 자생지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되돌릴 땐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충북 산야가 만신창이 됐다. 전국에서 어디 충북만 이런 상황이겠냐 마는 이 지역 산야는 이미 드러날 것 다 드러낸 알몸 상태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나친 과장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4주 동안 기자의 두 눈으로 확인한 바가 그렇다. 그것도 혼자서 답사를 해 얻은 결론이 아니다. 생태사진 전문가와 함께 했다. 그 역시 현장을 둘러보고는 나오는 게 한숨뿐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자생지에서 주인공인 봄철 야생화가 사라지면 그들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생지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자생지는 그곳에 뿌리내리고 사는 식물과 또 그 식물에 기대어 사는 다른 생명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이루는 그릇이다. 규모가 크건 작건 한 자생지내 생명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게 자연이고 법칙이다.

 

식물의 자생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자생지가 속한 지역의 생태학적 특징을 대변해 주는 바로미터다. 식물의 자생지가 건강하면 그 지역 산림 생태계도 건강하기 마련이다.

 

그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생지에서 해마다 반가운 얼굴로 각기 존재감을 드러내던 소중한 친구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심각한 일이다.

 

이번 네 번의 답사를 통해 확인한 비운의 주인공들의 자생지 상황은 이랬다.

 

먼저 깽깽이풀 자생지는 한 마디로 전멸 수준이었다.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됐다 지난 2012년 해제된 전력이 말해주듯 아직도 ‘귀한 몸’ 대접을 받는 이 야생화는 자생지 4곳 모두 완전히 망가졌다. 두 명이 네 번을 찾아가 이 잡듯 뒤졌는데도 단 한 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노루귀 자생지는 4곳 중 단 한 곳에서만 극히 적은 개체가 확인됐다. 역시 두 명이 네 번 답사해서 10개체도 안 되는 노루귀를 찾았으니 자생지로서의 의미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다른 야생화들 역시 상황은 같았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있어야 할 자리에 그들 야생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두 세 가지로 함축된다. 우선 ‘사람의 손’이다. 무엇이든 귀하고 아름다운 야생화가 있다면 너도나도 달려가 싹쓸이 해오는 전문 채집꾼들이 문제다.

 

여기에 더해 일부 야생화 마니아들의 지나친 욕심이 야생화 절멸을 앞당기고 있다. 한 두 개체쯤이야 캐가도 괜찮겠지 하는 위험한 생각이 화를 자초하고 있다.

 

산림당국의 안이한 행정도 큰 문제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큰 문젯거리로 확인된 게 바로 ‘개념 없는 산림행정’이다.

 

괴산군 관내의 한 깽깽이풀과 노루귀 자생지는 목불인견이었다. 충북도 산림관련 사업소가 이들 깽깽이풀과 노루귀 자생지에 사방댐 공사 등을 하면서 완전 폐허로 만들어왔다. 사방댐 공사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아니라 공사를 하더라도 사전 조사를 실시하고 그에 따른 대안을 마련한 후에 하라는 얘기다.

 

또 산림당국의 허가로 이뤄지고 있는 산림의 간벌과 벌목도 문제 중의 문제다. 야생화 자생지와 산림 생태계를 급속도로 파괴하는 원인이 되고 있디 때문이다. 허가 당시 숲의 하부 식생에 대한 사전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간벌 대상, 벌목 대상의 나무를 중심으로 행정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 바로 야생화의 전멸 내지는 하부 식생대의 파괴 현상이다.

 

청주시 관내의 낭성면 일대 ‘앉은부채’ 자생지가 벌목에 의한 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다. 또 이번 답사에서도 괴산군 청천면 일대 깽깽이풀 자생지가 벌목에 의해 완전 초토화 됐음을 확인했다.

 

산림 생태계, 숲의 하부 식생을 보호해야 할 산림당국이 오히려 그들을 전멸시키고 파괴하는 당사자가 된 이 현실. 누구 잘못이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고개부터 갸우뚱 해진다.

 

아울러 야생화 마니아라고 하면서 또 야생화 전문농장이라고 하면서 보기만 하면 싹쓸이 해 가는 양심 불량의 사람들을 그 어느 누구에게 단속해 달라고 해야 할지 헷갈릴 뿐이다. 혹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겨놓은 건 아닌지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봄이 와도 봄 정취가 사라진 우리 산야,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단옷날의 외침 하늘이시여!”(2015.6.20일자 아시아뉴스통신 보도)

 

온 나라가 지쳐가고 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20일로 꼭 한 달째 이어지면서 온 국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외식·유통·숙박·관광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경기가 침체되고 각 분야 종사자들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지역경제까지 휘청거리고 있다.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지역이든 아니든 사람으로 붐볐던 거리는 죄다 썰렁하고 식당가, 극장가, 병원가 할 것 없이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당장 가게세며 직원 월급부터 해결해야 하는 소상공인들의 속 타는 하소연이 뙤약볕보다 더 뜨겁다.

 

여기에 더해 봄부터 이어진 최악의 가뭄으로 들녘과 산야도 타들어 가고 있다. 댐과 저수지, 하천 수위가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면서 농심도, 땅도 쩍쩍 갈라져만 간다. 거북등처럼 드러난 농경지에선 절망의 한숨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공사장에 있어야 할 중장비가 한 가닥 물줄기를 찾느라 하천바닥을 연일 파들어 가고 있고 레미콘을 싣고 공사장을 오가야 할 레미콘 차량이 물 한 방울 없어 모가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논바닥에 생명수를 쏟아내느라 바쁘다.

 

또 화재 발생에 대비하고 있어야 할 소방차가 가뭄 해갈부터 도와야겠다며 메마른 농경지에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화재도 화재지만 농부들 가슴에 붙은 가뭄 불부터 끄고 봐야겠다는 다급한 배려에서다.

 

검붉게 타 버린 콩, 고구마 등 작물과 이제 막 심었건만 노랗게 변해버린 모, 그나마 댈 물이 없어 아직까지 모내기를 못한 논바닥을 그저 바라봐야만 하는 농부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 주기 위해 중장비, 레미콘차, 소방차가 하천과 농경지를 오가는 진풍경을 낳고 있다.

 

이번 가뭄은 비단 농부들뿐만 아니라 하천 변에서 식당업, 펜션업, 캠핑장업 등을 하는 이들에게도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가뜩이나 메르스 여파로 예약 손님이 뚝 끊긴 판에 하천수까지 바닥을 보여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름 성수기가 코앞이건만 하천수위는 점점 빠르게 내려가고 메르스 상황은 갈수록 악화일로이니 눈앞이 깜깜하다. 희망이 절벽이라며 볼멘소리들이 높다.

 

우선 당장의 해갈이 시급한데 큰비 소식은 감감하다. 비 소식은 있지만 신통치 않다.

 

워낙 가뭄의 골이 깊은 데다 예상 강수량은 찔끔 수준이니 되레 가뭄만 더 탄다며 걱정만 키우는 상황이다. 다음 주부터 장맛비 소식이 있으나 가 봐야 한다며 별 기대를 않는 눈치들이다.

 

마른장마를 점치는 소리도 간간히 들려와 불안감을 키운다. 완전 해갈이 되려면 100mm 이상 큰비가 지역에 따라 한 번 내지 두 번은 와야 한다는데 마른장마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보다 못한 지역민들이 곳곳에 모여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이시여!’를 외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농협, 각 군청, 농민단체, 지역의회 등이 나서서 정성을 다 하는 모습이 측은할 정도다.

 

엎드려 두 손 모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다음 주 북상 소식이 있는 장마 전선을 더욱 끌어 올려 중부 이북지역의 가뭄 해갈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울러 비가 오면 높은 습도 때문에 메르스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연구 결과처럼 이번 장맛비가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펀치까지 잠재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인 단옷날에 기우제를 지내는 심정으로 하늘이시여!”를 외쳐본다. 비록 마음 속의 외침이지만 가뭄도 메르스도 모두 씻겨갈 비를 기대하며.

검찰, 충북도민과 보은군민에게 이래도 되는 건가(아시아뉴스통신 2014.8.2일자 보도기사)
-충북도민체전 개막일에 단행한 정상혁 보은군수 입건 방침에 붙여

 

 

25일 개막한 제53회 충북도민체육대회에 얼음물이 쏟아졌다.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아이스 버킷’ 열풍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차디찬 얼음물’이 충북인의 머리 위로 보란 듯이 퍼붜졌다.

 

160만 충북도민이 서로 만나 ‘충북인’임을 확인하면서 호흡을 함께 하는 화합의 장에 난데없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비록 3일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충북도내 11개 시·군이 한 자리에 모여 어깨를 맞부딪쳐 가면서 흉허물을 터놓고 한바탕 잔치를 벌이려고 하는 바로 그 날에 맞춰 차디찬 ‘양동이 물’이 끼얹어졌다.

 

‘준비된 물’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인이 안 됐지만, 분명한 것은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이 날’ 소식이 전해졌다는 점이다.

 

보은에서는 이날 오후 제53회 충북도민체전의 개막을 알리는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4500여명에 이르는 각 지역 대표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내로라하는 인기가수도 오고 지역 내 각종 문화단체들이 한 마당에 모여 흥겨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해서 응당 보은지역은 축제분위기여야 했다. 적어도 제53회 충북도민체전의 시작을 알린 이날만큼은 그랬어야 했다.

 

지난 2008년 이후 6년 만에 도민들은 보은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6년 만이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 6년 만에 이뤄진 이날 충북도민체전 개막식이 한 마디로 우스운 꼴이 됐다. 손님을 받는 입장인 정상혁 보은군수와 보은 군민들이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당황스럽고 떨떠름한 소식이 긴급히 전해진 것이다.

청주지검은 이날 공직선거법 등의 위반 혐의로 정 군수를 입건해 조사토록 경찰에 지휘했다.

 

이에 따라 정 군수는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돼 조사를 받게 됐다. 지난달 28일 충북경찰청 수사2계가 정 군수 관련 수사기록과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청주지검에 제출한 이래 거의 한 달 가까이 된 시점에서 이뤄진 일이다.

 

경찰은 검찰의 결정에 따라 정 군수를 조만간 다시 불러 조사를 벌일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충북도민과 보은군민들의 시각이다. 사법 당국의 내부 절차와 속내와는 별개로 ‘바깥’에서 오가는 말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 많은 말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왜 하필이면 이날(25일) 검찰이 입건 지휘를 내렸냐”는 지적이다.

 

경찰이 넘긴 자료를 한 달 가까이 검토해 “너무 오래 시간을 끄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 온 검찰이 왜 하필이면 충북 도민들의 화합 한마당 잔치가 펼쳐진 바로 그날, 그 것도 주관 지방자치단체장인 정상혁 군수에게 법적으로 심각한 내용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지역민들은 그 배경과 함께 ‘그 이상의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선 보은인, 나아가 충북인에 대한 홀대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 지역민은 “사법당국이 보은과 충북을 얼마나 깔보고 하찮게 봤으면 그 많은 날 가운데 충북도민체전 개막식에 중차대한 결정을 내려 찬물을 끼얹었겠냐”며 “이는 보은군과 충북을 너무나 하찮게 여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 바탕에는 충북도민체전의 중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충북도민체전이 무엇인가. 건전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충북의 위상을 높이려는, 말 그대로 충북인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순수한 한마당 잔치의 자리다.

 

그런데 그 개막의 첫 장을 여는 개막식에 검찰은 호스트 격인 정 군수에 대한 입건 지휘를 단행했다.

 

경찰은 이후 혐의 입증을 위한 추가 소환조사를 실시한 뒤 정 군수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군수에 대한 법적 처분 여부를 거론하려는 게 아니다. 

 

정 군수는 지난 6.4지방선거를 통해 뽑힌 충북 보은군의 군수라는 공인 입장과 그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보은지역의 정서, 다시 말해 지역적 자존심이 어느 한 순간 짓밟히고 말았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지역민은 그동안 정 군수에 대한 사법 당국의 수사과정을 예의 주시해 왔다.

 

때론 경찰관서를 찾아가 하소연 한 지역 단체도 있었다. 지역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우니 감안해 달라는 하소연이었다.

 

하지만 그 ‘충정’도 이제 별 볼 일 없게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이날 이뤄진 검찰의 입건 지휘로 보면 ‘헛걸음’ 한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 군수 건과 관련해 지역민의 뜬금없는 얘기가 정녕 사실이 아니길 기대할 뿐이다.

 

“정 군수가 검찰에 미운 털이 박힌 건지, 아니면 소문대로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손’이 실존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푸념 같은 말, 바로 그 말이 자꾸만 맴돌고 있다.

여전히 황소바람 가득한 우리 농촌

올겨울 들어 자주 듣는 반가운 말이 있다. 삼한사온이다. 어린 시절부터 겨울이면 으레 들어왔던,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시나브로 사람들의 입에서 멀어져 아예 잊힌 말이 돼가던 이 말, 대체 얼마만인가. 세월의 무상함 속에 까맣게 잊고 지내던 할아버지 생전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처럼 반갑다못해 귀가 번쩍 트인다.


삼한사온. 이 말은 본래 사흘은 춥고 나흘은 포근했던 전형적인 우리나라 겨울 날씨의 대명사였다. 본뜻대로라면 7일을 주기로 날씨가 변한다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었기에 어떨 땐 사한오온 또 어떨 땐 삼한육온이 찾아오기도 했다. 중요한 건 추운 날이 있으면 곧 포근한 날이 올 것이란 믿음, 그 믿음을 준 게 바로 삼한사온이요 그 믿음을 가지고 여유롭게 생활해온 게 우리 민족이란 사실이다. 겨울 날씨가 아무리 추워봤자 겨울 날씨고 제아무리 포근해봤자 그 또한 겨울 날씨란 느긋함, 그게 우리 민족의 겨울 정서였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삼한사온이 실종되면서 모든 것이 흐트러졌다. 한 번 추위가 닥치면 그 끝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무가내 이어지고 또 그러다가 돌연 푹한 날씨가 찾아오면 그 역시 끝을 종잡을 수 없게 됐다. 이상한파, 이상난동이 삼한사온을 대신하면서 걸핏하면 찾아오는 게 '이상한 겨울'이다. 80~90세 어른들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겨울 날씨가 이젠 다반사가 됐다. 한 해 겨울에 극한값을 경신하는 기상요소가 부지기수다. 눈폭탄은 예사요 겨울 폭우, 겨울 장마가 어느덧 친근한 말이 됐다.


사람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듯이 날씨 또한 앞을 예측할 수 있어야 모든 게 순조로운 법이다. 한데 우리나라 날씨가 어떻게 변했는가. 허구한 날 여우가 시집가는 듯 변덕이 죽 끓듯한 날씨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고 있다. 봄이 되면 따뜻해지고 여름이 오면 무더워지며 그런 다음엔 장마와 태풍이 오가고 겨울엔 추위와 따사로움이 번갈아 찾아와야 정상인데, 그 모든 게 이빨 잘못 물린 톱니바퀴처럼 돼 버렸다. 오죽하면 평년 기온을 되찾겠다는 기상예보가 엄청난 낭보처럼 들리는 시대가 됐을까.
이렇게 된 원인 중 대표적인 게 지구 온난화와 엘니뇨 현상이다. 겨울이면 당연히 시베리아 고기압이 주기적으로 강약을 반복하면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줘야 하는데 지구촌 기류의 대혼란으로 연방 삐그덕거리니 한반도 날씨인들 정상이겠는가.


겨울 날씨 변화로 인해 잊혀가는 말이나 속담이 늘고 있다. 세상살이가 변해 자연과 접할 기회가 적어진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우리 특유의 겨울 정서가 사라졌기 때문이리라. 늦잠 자는 아이를 깨우기 위해 어른들이 해오던 거짓말 "얘야! 뒷산에 까치가 하얗게 얼어죽었다"는 말도, 저수지 얼음이 갈라지면서 내는 괴이한 소리를 "귀신이 너 잡으러 오는 소리"라고 으름장 놓던 말도 옛날 얘기가 됐다. '개구리가 얕게 월동하면 겨울이 따뜻하다'거나 '무 뿌리가 길면 그해 겨울이 춥다'거나 '개암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해는 눈이 금방 녹는다'거나 하는 등의 속담도 잊힌 지 오래다.


모처럼만에 듣는 삼한사온. 그래서인지 요즘 날씨를 보면 최근 몇 년간의 날씨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며칠은 춥고 며칠은 포근하고…. 하나 정작 되돌아와야 할 우리네 겨울 정서는 아직도 고드름이다. 특히 겨울 농한기를 맞아 조금은 맘 편히 쉬어야 할 우리 농민들, 그들 가슴 속엔 여전히 황소바람이 그득하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 걱정하랴, 소값 폭락에 사료비 난방비 걱정하랴, 온갖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쪼록 날씨 만큼이나 우리네 정서도 하루빨리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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