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소리
개구쟁이 시절 여름이면 즐겨했던 장난이 있다. 매미잡기다. 잡아도 그냥 잡는 게 아니라 소꼬리 털로 옭아잡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우선 소꼬리에서 가장 긴 털을 뽑아 그것을 기다란 막대 끝에 묶어 올가미를 만든다. 올가미는 10원짜리 동전 3~4개 정도 들어갈 크기면 족하다. 그런 다음 매미를 찾아 올가미를 매미 머리맡에 살그머니 갖다대면 자동으로 뒤집어 쓴다. 매미가 자기 죽을 줄 모르고 올가미를 뒤집어 쓰는 이유는, 다람쥐가 낚싯줄 올가미를 스스로 뒤집어 쓰는 것처럼, 특유의 묘한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거미줄 같은 게 거치적거리면 그걸 떼어내려고 머리빗질하듯 앞발을 자꾸만 쓸어올리는 본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쨋거나 올가미를 뒤집어 쓴 매미는 줄에 매단 풍선처럼 막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속절없이 잘도 잡혔다. 그 때 매미가 할 수 있었던 건 단 두 가지 뿐이었다. 나에게 봉변이라도 주듯 냅다 오줌을 갈기는 것과 짧고 날카로운 소릴 내는 일이었다. 그나마 수컷인 경우에만 소릴 질렀고 암컷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날개만 푸덕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수컷 매미가 매번 같은 톤, 같은 소리만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질 않다. 천적을 만나거나 경쟁 상대를 만나면 더 큰 톤으로 악 쓰듯 소릴 낸다. 실제로 북미에 사는 어느 종은 평소 105.9 데시벨의 소리를 내다가 천적인 새가 나타나면 즉시 108.9 데시벨의 소리를 낸다는 보고가 있다. 매미가 기를 쓰고 울어대는 이유는 새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서란 보고도 있다.
매미는 주변 소음이 많을수록 더 큰 소릴 낸다. 도심 매미가 시골 매미보다 더 시끄러운 건 그 때문이다. 소음속에서 암컷을 부르려니 더 큰 소리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또 천적에게 잡혔을 때엔 올가미에 걸렸을 때처럼 보다 높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살려고 발버둥치며 발음근을 있는 힘껏 오므리기 때문이다. 발음근은 진동판에 붙은 근육이다.
매미 소리는 날씨와 기온에 따라서도 다르다. 궂은 날 보다 화창한 날, 선선한 날 보다 가마솥 더윗날 소리가 더 높고 크다.
또 한 가지. 매미가 평상시 내는 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구애음이다. 암컷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뽐내는 소리다. 조류(새)로 치자면 Call이 아니라 번식기에 내는 Song에 해당된다. 울음은 천적 혹은 사람에게 잡혔을 때나 내는 소리다. 새에게 잡힌 매미의 절규와 올가미에 걸린 매미의 외마디가 우는 소리다. 그런데도 우린 무턱대고 울음으로 표현한다. 매번 울면서 구애하는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린 지난 2003년 9월 엄청난 '매미 소리'로 치를 떤 적 있다. 태풍 매미다. 피해, 경로, 위력에 있어서 1959년 9월의 태풍 사라와 여러모로 닮은 초강력 태풍이었다. 공교로운 건 발생 번호 또한 둘 다 14호였다는 점이다. 또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죄로 두 이름 모두 태풍명단에서 영구제명됐다.
며칠전 괴산 달천변의 어느 식당에 들렀다 뜰앞 커다란 나무를 베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 탓이랬다. 손님이 얼마나 짜증냈으면 그랬겠냐마는 좀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옛 선인들은 일부러 기생개구리를 기르고 정원에 나무 심어 매미를 불러들였다는데….
태풍과 매미의 발생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는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단다. 짜증을 내고 나무를 벨 게 아니라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는 데 관심 가지면 어떨까 싶다.
매미 소리는 본래 거친 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만든 건 우리들이요 그걸 감수해야하는 것도 우리들이다. 매~앰,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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