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 랜드마크 '금강'은 이제 슬프다

 

 

금강은 특별하다. 전북서 발원해 1천리를 굽이치고도 다시 전북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큰 강 치고 발원지와 종착지가 한 도(道)에 있는 건 금강 뿐이다. 그러면서 물줄기는 전라 경상 충청을 아우른다. 그래서 삼기(三岐)의 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강을 금강답게 특징 지웠던 것은 금빛 백사장을 끼고 수놓 듯 흐르던 푸른 물결이었다. 오죽했으면 비단강(錦江)이라 했겠는가.
푸른 물빛과 함께 곳곳에 펼쳐졌던 황금빛 모래사장은 가히 금강의 대명사였다. 대전 인근의 신탄진과 청원 부용의 금호리 일대는 해수욕장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이미 강수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은 지류 곳곳에도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미호천이다. 지금도 청주시민의 추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팔결다리 백사장과 까치내 백사장은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서 손꼽히던 명소였다.

 


금강은 또 여러 생명체를 껴안은 생명의 강이었다. 서식 환경이 다양하니 그곳에 깃든 동식물도 다양할 수밖에. 물고기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에 오로지 금강수계에만 사는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Ⅰ급)를 비롯해 어름치(〃 238·259호), 감돌고기(멸종위기Ⅰ급), 흰수마자(〃), 퉁사리(〃), 꾸구리(〃Ⅱ급), 돌상어(〃), 둑중개(〃), 금강모치, 종어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소중한 물고기들이 지천했다.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i-미호종개의 학명)'의 주인공 전북대 김익수교수가 '미호천엔 색다른 물고기가 살 것'이란 학술적 상상을 가짐으로써 결국 미호종개를 발견해 냈던 모티브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봐왔던 미호천 모래사장이었다. 금강은 또 '물고기 할아버지' 고 최기철박사의 학문적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금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류이긴 하지만 금강 언저리서 태어나 그 물에 멱 감으며 자랐고, 언론사에 몸 담은 뒤론 줄곧 '주요 출입처'로서 늘 관심을 가져왔다. 금강 토박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요 당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금강은 슬프다.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렜던 본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적어도 비단강 시절의 금강은 이젠 없다. 속살이 훤히 비치던 푸른 물결도, 금가루가 금세 묻어 나올 것만 같던 모래사장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생명의 숨소리도 야위어 있다. 부여의 진상품이던 종어는 오래 전에 절종됐고 어름치는 수십년째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인공복원됐다. 뿐만 아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랫바닥을 훑기만 해도 한 줌씩 잡혀나왔던 재첩은 물론 갈퀴질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튀어나왔던 모래무지,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떼지어다닌다 하여 멍석이라 불렀던 잉어떼들…. 모두가 옛날 얘기다.

 


강은 자체가 생명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수십,수백 억 년을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에 따라 모습을 갖춰온 복합생명체다. 그러나 그같은 복합생명체도 '인위'에는 약하다. 강의 최대 천적은 인간이다.
어느날 졸지에 물흐름이 바뀌고 곳곳이 단절된 채 상하류가 뒤죽박죽 된 것도 사람에 의해서요, 한반도 형성기부터 뿌리 내려온 물고기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져간 것도 사람에 의해서다.

 


금강은 이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뜩이나 벼랑끝 신세이던 금강이 목하 4대강 사업의 손안에서 '조각(彫刻)'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숱한 세월을 이어온 자연의 라이프사이클에 감히 마구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금강의 라이프사이클, 그 와중에 우리들 추억속 랜드마크까지 갈가리 '조각'나고 있다.

가재 알과 땡감, 그리고 복어알 파문

 

 

계곡마다 가재가 지천하던 시절엔 가재 잡는 일이 식은 죽 먹기였다. 낮에는 계곡물에 들어가 가만히 돌만 들추면 여기저기서 가재가 기어 나왔고 밤중엔 횃불과 그릇만 들고 들어가 보이는 대로 주워 담으면 그만이었다.
재미로 가재 낚시를 하는 때도 있었는데 방법이 아주 쉬워 낚시랄 것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생긴 나뭇가지에 대충 실을 묶고 그 실 끄트머리에는 개구리 뒷다리를 묶어 물 속에 넣어두기만 하면 가재가 심심찮게 물었으니 그저 그릇에 연방 털어넣으면 됐다.
이런 방법도 있었다. ○○이삭을 잘라 돌에 으깬 다음 상류 쪽으로 가 풀어넣기만 하면 하류 쪽 가재들이 하나 둘씩 기어나왔다. ○○이삭에 특별한 독성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가재가 맥을 못 추고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요즘 같으면 꿈도 못 꿀 얘기지만 친구 둘만 모여도 무슨 일이든 저질러 먹을거리를 구했던 1960~70년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던 우리네 고향 모습이다.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목구멍에 휴지가 달라붙은 것처럼 깔깔해 지는 땡감 얘기. 지금이야 감의 떫은 맛을 없애는 방법이 수없이 개발돼 홍시가 되기 전이라도 얼마든지 맛있게 감맛을 보게 됐지만, 예전엔 집집마다 땡감 먹고 안 체해 본 어린이가 없을 정도로 덜 익은 감을 예사로 먹었다. 잘 먹어야 체하지 않거나 옷에 땜감칠 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는데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먹어댔는지 그 또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우리네 과거다.

 


전혀 뜬금 없는 두 얘기. 더구나 먹을거리로 따져 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재와 땡감. 하지만 여기에 소름 끼치는 비밀이 들어 있다. 다름 아닌 이 두 가지를 잘못 섞어 먹으면 큰일난다는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냥 가재가 아니고 가재의 알(날것)과 땡감을 함께 먹으면 몸에 큰 부작용이 생기거나 심하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전의 사약 재료였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사약 재료 가운데 해란(蟹卵)이라고 소개된 것이 바로 가재 알인데 엉뚱하게도 게의 알로 풀이돼 있다. 이는 가재의 한자명이 석해(石蟹)인 것에 비추어 해(蟹)를 글자대로 '게'로 풀이한 데 따른 오류라 생각된다.
사약 재료는 이밖에도 비상·수은·생금(生金)·생청(생꿀)·초오·부자·천남성·화경버섯·짐독 등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한 가지만 쓰이지 않고 여럿을 조합하거나 해란과 땡감처럼 서로 상극인 재료들을 혼합해 사약을 만들었다.

 


우리 주변엔 독성을 가진 자연물이 의외로 많다. 사약 재료로 쓰인 것들도 대부분 자연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짐독 또한 중국에 사는 올빼미류인 짐새 깃털을 술에 담가 만든 것이다.
해서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작업장 인부 6명이 약초술을 나눠 먹고 몽땅 병원에 실려갔던 일도 초오 때문이다. 약초에 대한 어설픈 상식이 불러온 엉뚱한 사고였다. 물론 독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다. 사약 재료인 부자와 천남성은 물론 초오 역시 한방에 쓰이는 약초다. 하지만 약성과 용법, 용량을 제대로 알 때 약초이지 그렇지 않으면 독초일 뿐이다.

 


최근 발생한 복어알 파문도 독을 약으로 잘못 이용하려다 신세 망친 사례다. 먹으면 치명적인 맹독성 복어알을 암과 아토피 치료제로 만들 생각을 한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것을 환자에게 특효약이라고 속여 판매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다.
오죽 다급하면 복어알 제품을 고가에 구입해 먹었겠냐마는, 타인의 생명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돈만 벌면 그만이다는 물질만능·황금만능주의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금강 상류에 놓여진 '남의 숟가락'

 

금강상류는 우리나라 생태보전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강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졌던 어름치가 발견돼 1972년 '금강의 어름치'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238호로 등재된 곳이다.
금강에서의 어름치 발견은 한강 특산에서 한강 및 금강 특산으로 서식범위가 넓게 밝혀진 것 외에도 과거 이들 강이 서로 연결됐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란 점에서 지질사학적으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강의 어름치는 발견된 지 10년도 채 안 된 1978년 전북 무주 내도리와 충남 금산 방우리에서 마지막 확인된 것을 끝으로 8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뒤 학자들이 나서 금강의 어름치를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다. 필자도 90년대초부터 수년간 전문가들과 함께 금강의 어름치를 찾아 나섰으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당시 학자들은 어름치가 사라진 원인을 첫째 남획, 둘째 농약에 의한 수질오염 및 서식지 파괴를 든 바 있다. 필자가 만난 현지 주민들도 한결같이 남획을 가장 주된 요인으로 꼽았었다. 몸집이 제법 크고 맛까지 좋아 사람들이 보는 족족 잡아먹었다 한다. 그런 데다 강물에 농약성분이 흘러들고 각종 공사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 물고기가 됐단다.

 


그러던 중 금강상류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어 방류사업으로 30여 년만에 어름치가 다시 노니는 꿈같은 일이 재현된 것이다. 인공 치어방류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어쨌든 금강상류서 어름치 특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년 전부터 상류 곳곳에서 산란탑이 관찰되고 있고 어미 개체도 다수 확인되는 등 정착단계에 와 있다. 일부에선 금강상류가 멸종위기어종 복원사업의 메카란 평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진 관련 기관 단체들의 '10년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앙내수면연구소가 1999년 처음으로 어름치 치어를 예비방류한 것을 비롯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환경부,국립수산과학원,문화재청,순천향대 등 여러 기관 단체가 협력해 어름치 복원사업을 벌여온 결과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제(?)가 생겼다. 국토해양부의 4대강(금강) 살리기 사업이 상류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가뜩이나 시선이 곱지 않았던 터에 지난 20일엔 무주 남대천서 있은 어름치 치어방류 행사에 돌연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가 주최측으로 끼어들어 여러 '말'을 듣고 있다. 환경단체로부터는 "하천바닥을 파헤치면서 한편으론 어름치 치어를 방류한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 하는 격이요 4대강 사업의 반대여론을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행보"란 비난을 받고 있고, 방류행사 참여자들로부터는 "그동안 여러 기관 단체가 합심해 이뤄놓은 업적과 순수한 목적을 하루아침에 훼손시켰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금강살리기 사업구간에는 최근 어름치 산란탑이 관찰된 금산 천내습지도 포함돼 있어 속과 겉이 다른 이중행태란 쓴말도 나오고 있다.

 


금강의 어름치 복원과정에서 봐왔듯이 물고기 1종을 복원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인내와 노력, 예산, 민·관·학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어느 단체의 지적처럼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끼어든 격'이라면 그야말로 문제다.
자연생태계는 어항처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4대강 사업취지에 걸핏하면 환경복원, 생태복원 운운하지만 자연상태의 환경과 생태계를 작위적으로 파괴하고 나서 또 작위적으로 복원하는 일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으로 환경을 위하고 생태계를 위한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부터 재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사자성어가 무색해진 생태변화

 

연홍지탄(燕鴻之歎)이란 말이 있다.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입장에 있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한다는 뜻이다. 연안대비(燕雁代飛) 역시 비슷한 말이다.
제비와 기러기는 철새다. 하지만 입장이 다르다. 제비는 여름철새이고 기러기는 겨울철새다. 제비는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를 찾지만 기러기는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온다.
해서 도래시기도 다르다. 제비가 날아올 시기이면 기러기는 이미 떠나고 기러기가 날아올 시기이면 제비가 떠나고 없다. 그러니 서로 만날 기회가 없다. 적어도 삼짇날과 중양절이 중시되던 시절만 해도 그랬다. 해서 생겨난 말이 연홍지탄이요 연안대비란 사자성어다.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 가운데 서로 만나지 못하는 새들이 어디 제비와 기러기뿐이었겠는가. 청둥오리와 두루미,고니 같은 겨울철새들과 꾀꼬리,뻐꾸기,파랑새,백로,왜가리 같은 여름철새들도 마주치지 않았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겨울철 삼한사온이 두드러지던 시절의 우리나라 조류 생태계의 모습은 그랬다. 그게 한반도의 자연섭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졌다. 연홍지탄이니 연안대비니 하는 사자성어가 더이상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태계가 변했다. 해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긴 하지만,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는 갈수록 빨라지는 반면 남쪽으로 날아가는 시기는 점차 늦어지고 있다. 삼짇날 이전에 제비가 출현하는가 하면 10월 하순, 심지어 11월초까지 이동하지 않는 제비도 눈에 띈다. 기러기 역시 10월초만 되면 날아왔다가 이듬해 5~6월이 돼도 날아가지 않는 '조기 도래, 지각 귀향'하는 개체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만큼 두 종간 서로 마주치는 개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연홍지탄, 연안대비란 말은 이제 맞는 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만남'이 다른 새들에게도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철새였던 백로류와 왜가리는 해를 넘길수록 한반도에서 월동하는 개체들이 많아지고 있고 청둥오리 역시 겨울철새인 본래의 입장(?)을 잊은 채 여름을 나는 게 예삿일이 됐다. 백로류 가운데 중대백로는 월동개체가 10년 사이에 232%, 왜가리는 80% 늘어났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기러기떼 모여든 겨울 들판에 여름철새인 백로,왜가리가 기웃거리고 물총새,호반새,황로가 노니는 강변에 겨울철새인 청둥오리가 날아들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먹이를 찾고 있다. 예전 사람들이 보면 도저히 믿기지 않을 어색한 만남이 이젠 다반사가 돼 버렸다.

 


게다가 이젠 이런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본래 우리나라를 찾던 새가 아닌, 전혀 뜬금없는 새들의 출현이 최근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엔 제주도 조천읍에서 검은슴새란 뜻밖의 새가 발견됐고 그보다 전인 6월엔 마라도 부근에서 역시 우리나라 새가 아닌 쇠부리슴새가 500마리나 관찰됐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같은 뜬금없는 새가 2000년 이후 69종이나 새로 발견됐다고 한다. 학계 입장에서는 연구할 대상이 많아져 좋을 지는 모르나, 생태계 전반으로 보면 매우 심각한 이상 징후다.

 


학자들 대부분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기후 변화로 보고 있다. 기후가 변하니 새들의 생태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뜬금없는 새들의 출현에 대해서는 먼바다를 날다 길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기후 변화에 따라 서식지를 우리나라로 확대한 것인지 좀더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어쨋거나 작금의 생태변화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사자성어마저 무색케 하는 지경에 와 있다. 연홍지탄의 뜻이 '제비와 기러기가 만나 탄식할 만큼의 세태변화'로 이해될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올해 날씨, 심각한 이상징후다

 

올해 날씨가 예사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기고만장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듯 실로 위세가 대단하다.
언젠가도 얘기했듯 올핸 음력상 입춘이 없다. 지난해 음력에 입춘을 빌려줬기 때문이다. 해서 지난해엔 입춘이 두 개인 쌍춘년(혹은 양두춘)이었던 반면 올핸 무춘년이다.
속설에 쌍춘년은 길하고 무춘년엔 불길하다는 얘기가 전한다. 일부에선 올해 날씨를 그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상황이 아니다.
새해벽두부터 유례없는 추위와 폭설이 몰아치더니만 봄이 돼서는 잦은 비와 한파, 이상난동이 뒤죽박죽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4월 하순엔 눈까지 내리면서 103년만의 4월 한파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다. 정작 비가 많은 장마철엔 되레 마른 장마가 이어졌고 그런 가운데 중부지방은 '속 타는 주말 비'가 6주 연속(7월 마지막주 건너뛰고는 7주 연속) 계속됐다. 장마철에 비가 너무 많이 와도 탈이지만 너무 안 와도 탈이다. 충북의 대표적인 하천인 달천엔 올 들어 단 한 번도 '큰물'이 흐르지 않았다.
더위는 또 어떤가. 목하 불볕 더위가 한반도를 달달 볶아대고 있다. 7월 한 달만 해도 26일이나 평년기온을 웃돈 데 이어 8월 들어서도 줄창 폭염이다. 말 그대로 전례없는 된더위다. 한번 올라간 수은주는 낮이나 밤이나 내려올 줄 모르고 있다. 가마솥 더위니 찜통 더위니 하는 표현만으로는 실제 체감온도의 반도 못 표현할 정도다.
더워 죽겠다는 말처럼 정말로 더위로 인해 죽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다. '날씨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이 죽을 지경인데 소,돼지,닭 등 가축들은 말하면 뭣하겠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든다. 바깥 기온이 연일 30도를 훨씬 넘으니 축사 안은 불가마다. 몸이 단 축산업자들은 밤낮없이 초비상이다. 대형 송풍기를 있는 대로 틀고 지하수를 수시로 뿌려대지만 역부족이다.
얼마나 초비상 상황인지 말도 못 붙일 정도다. 엊그제엔 모 지역의 축사 두 곳을 찾아가 말을 걸었다가 호된 면박만 당했다. 불난 집에 기름 끼얹느냐고 왕짜증을 냈다. 인터뷰 도중에 가축이 죽으면 책임 질거냐는 말까지 들었다. 오죽하면 그럴까 하고 발길을 돌렸다.

 

날씨 탓에 복장 터지는 사람들이 또 있다. 농민들이다. 지난 겨울과 봄에 입은 냉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속 좋을 리 만무다. 폭서에 웬 냉해 얘기냐고 할지 모르나 현지 상황은 심각하다.
옥수수 농가의 경우 이식기에 찾아든 한파로 묘가 얼어죽어 2~3차례 더 파종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정작 수확기를 맞아 옥수수를 따 보니 수확량마저 예년에 비해 훨씬 적게 나타나는 등 2차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옥수수자루가 껍질을 벗겨보면 알맹이가 형편없이 차 있거나 아예 옥수수자루 끝이 3~5 갈래로 갈라진 기형을 하고 있으니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과수원도 예외가 아니다. 비싼 인건비 들여 열매솎기 작업에 봉지씌우기 작업까지 마친 과수들이 수확철을 눈앞에 두고 돌연 나무 전체가 고사하거나 낙과, 기형과가 생겨나면서 과수농가들의 속을 시커멓게 타들어가게 하고 있다.

 

연초부터 꼬이기 시작한 날씨, 단지 그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심각해진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피해를 말 그대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작금의 기후는 마치 산(山) 날씨 같아졌다. 극과 극을 내달린다. 한 해에 수십 년 만의 추위와 수십 년 만의 더위가 함께 찾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건 그런 기후 불확실성의 시대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가이다. 그게 이 시대의 최대 화두다.

잡고 보니 보호종이었다?

 

 

지난 7월 24일 오후 3시 청원 미원 관내의 달천. 굵은 빗방울이 지나간 뒤 비가 뜸해지자 3명의 피서객이 열심히 투망질을 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흔히 볼 수 있던 광경이지만 요즘엔 간 큰 사람들이나 하는 불법행위다. 그래서인지 일행중 한 사람이 연방 도로쪽을 바라보며 망을 보고 있었다.
해서 멀찌감치 차를 세워놓고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달가워 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우선 웃는 얼굴로 인사부터 건넨 후 이런저런 말을 걸며 "잡은 물고기좀 구경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남이 잡은 물고기를 왜 보자고 하느냐"며 귀찮아 하는 눈치였다.
"요즘엔 무슨 물고기가 잡히나 궁금해서 그런다"며 다시 부탁하니 그때서야 마지못해 고기바구니를 내밀었다. 세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탓이다. 천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던 시절과는 인심이 전혀 딴판이다.

 


어쨋거나 두 차례 머리를 조아려 양해를 구한 다음 보게 된 '남이 잡은 물고기'. 하지만 그 물고기를 뒤적이는 순간 눈을 의심케 하는 물고기가 손에 들어왔다. 3마리의 돌상어였다. 지난 1991년 손영목박사(전 서원대교수)가 채집해 마지막으로 서식을 확인한 이래 그동안 채집사례가 없어 달천에서 사라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왔던 물고기가 돌연 피서객의 손에 잡혀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틀림없는 돌상어였다. 불그스름한 몸바탕에 입이 아래쪽을 향하고 짧은 입수염이 4쌍 있으며, 머리 아랫면과 배밑 부분이 납작해 자갈이 깔린 여울에 살기 적합하도록 생겼다.
더욱 놀란 것은 그곳에서만 돌상어가 잡혀 있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하류인 괴산 청천 관내에서도 비록 1마리이지만 피서객의 투망질에 희생된 채 매운탕거리에 섞여있었다.

 


돌상어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동물 Ⅱ급인 한국특산어다. 예전엔 물이 맑은 하천 중상류에 비교적 많은 개체가 살고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는 서식지 파괴와 수질오염 등으로 극히 보기 드물어진 희귀종이다.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에는 이를 잡거나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규정돼 있다.
학술적으로는 아직 생태와 생활사가 잘 알려지지 않은 '미답의 물고기'이기도 하다. 지구상 유일한 분포지인 우리나라에서도 한강, 금강 수계에만 서식하는 데다 금강에서는 최근 '거의 사라진 물고기'로 취급되는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그런 물고기가 달천에서 20년 만에 발견됐으니 박수를 치며 반가워 해야 할 판에 되레 안타까운 마음부터 앞섰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적은 개체나마 달천 상류서 소중한 대(代) 내림을 해오고 있던 이 땅의 살붙이가 여전히 남획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달천변에는 현재 보호종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표지판이 곳곳에 서있다. '우리가 보호한 토종물고기, 후손들의 큰 자랑이 됩니다'란 문구와 함께 지켜야 할 물고기의 사진과 이름 등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소용없는 친절이다. 그것을 관심있게 보는 이도 없거니와 봐봤자 사진과 이름만으론 어떤 것이 보호종인지 이해하는 이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잡은 뒤에, 이미 죽어 매운탕거리로 변한 뒤에 그것이 보호종이라고 해봐야 때는 늦으리이다. 감시와 단속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우리 주변에 혹은 내가 머무는 곳에 어떤 보호종이 있는지 보다 각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총으로 쏘고 보니 보호종이었다는 '포수의 말'을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문화선진국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동자개, 꿈의 어종에서 대박 어종으로 다가서다

 

예부터 맛 좋기로 이름난 민물고기 동자개(일명 빠가사리). 최근 들어서는 자연산 개체수가 부쩍 줄어들어 공급이 달리는 바람에 음식점마다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해진 고급 어종이다.
이 물고기는 양식업자들이 가장 기르고 싶어하는 경제성 어종이기도 하다. 자연산 물량이 워낙 달리는 데다 양식 물량마저 턱없이 부족해 너도나도 양식을 시도하려고 하는 '꿈의 어종'이다. 치어는 치어대로, 성어는 성어대로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모자라다 보니 한 두 번만 성공해도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대박 어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물고기가 지금껏 꿈의 어종으로만 머물러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양식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줄잡아 수천 명의 국내 양식업자들이 동자개 양식을 시도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를 얻은 사람은 극소수다. 치어를 구입해 성어로 키우는 양식업자들은 매년 치어 확보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치어를 생산하는 업자들은 자어기(알에서 갓깨어난 새끼 시절)에 흔히 발생하는 고질적인 병 때문에 실패하기 일쑤다.
더욱이 동자개는 번식 습성까지 독특해 양식산 성어로는 부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반드시 자연산을 친어(親魚)로 써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해서 알 받는 시기가 되면 양식업자마다 자연산 친어를 구하러 눈에 불을 켜고 동으로 서로 바삐 움직이는 게 일상화 돼 있다.

그러나 그런다고 자연산 친어를 쉽게 구하는 게 아니다. 또 애써 구해봤자 채란율과 수정률, 부화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자연산 성어를 잡아 파는 어부들이 잡을 때 혹은 보관할 때 허술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아 물고기 상태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화철에 한탕하려는 상술까지 끼어들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데다 양식산을 마치 자연산인 것처럼 탈바꿈시켜 파는 파렴치한까지 있으니 정신 차리지 않으면 돈만 쓰고 정작 채란은 실패하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 돈만 버리는 게 아니다. 1분 1초가 금쪽같은 시기에 시간 낭비는 물론 밤새워 산란촉진제를 주사하고 온도를 맞춰주는 노력까지 모두 허사가 되고 만다.
한 양식업자는 얼마 전 어느 중간상으로부터 상태가 좋은 자연산 친어가 많다고 연락이 왔기에 허겁지겁 달려가 전량 구입해다 산란촉진제 주사 놓고 시간 맞춰 알을 짜는 등 온갖 정성을 기울였는데 단 1개도 부화가 안돼 수백만원만 날렸다고 분개하고 있다. 돈도 돈이지만 식사도 걸러가며 밤새워 헛수고 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단다. 구입하기 전 물건을 잘 살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자연산을 그물로 잡은 것처럼 온몸에 그물자국을 내고 지느러미까지 잘라내 깜빡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넋두리다.
그러나 그를 포함해 지금까지 억울하게 당한 많은 업자들이 쉬쉬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기업자들이 소위 떴다방처럼 움직이고 있어 문제삼아 봤자 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이제 그런 쓰라린 애환이 '어제의 일'처럼 될 날이 머지 않았다. 충북도내수면연구소가 최근 양식산 동자개 성어를 이용해 치어를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면 4년생 이상의 성어로 자연산 못지 않은 높은 수정률과 부화율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꿈의 어종이 실제 대박의 어종이 될 날이 앞당겨진 셈이다.
아무쪼록 이 기술이 널리 보급돼 자연산 동자개의 남획을 막고 나아가 어민들도 안정적으로 치어를 생산해 소득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아울러 친어를 잘못 구입해 가슴에 한이 맺히는 억울한 양식업자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꽃과 마른 장마

 

 

감나무는 참으로 묘하다.

감을 열매 맺지만 그 씨는 이상하게도 감나무가 아닌 돌감나무나 고욤나무를 잉태한다. 다시 말해 감씨에서는 감나무가 나지 않는다. 돌감나무나 고욤나무가 난다.
제 아무리 크고 튼실한 씨를 골라 심어도 결과는 같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세상사 이치가 감나무에서만큼은 예외다.

열리는 결과물 즉 감과 돌감, 고욤만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감나무의 본바탕이 돌감나무 혹은 고욤나무이니 그 씨에서 돌감나무나 고욤나무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씨는 그 자체로 묘목을 만들면 열매가 퇴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다. 해서 예부터 좋은 감나무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접붙이기를 해왔다. 근연종인 돌감나무 또는 고욤나무를 대목으로 하여 원하는 감나무의 새순이나 눈을 접붙여 크고 맛있는 감이 열리도록 한 것이다.
맛있는 수박을 얻기 위해 박이나 호박묘에 수박순을 접붙이는 이치와 같다. 다만 수박씨에선 박이나 호박묘가 나지 않고 수박묘가 나는 것만 다르다. 감나무는 그만큼 독특하다.


감나무는 또 꽃을 2년에 걸쳐 피우는 특성이 있다. 매년 6월말경 꽃을 피우지만 그 꽃눈은 이미 전년도 7~8월경에 분화돼 4개의 꽃받침이 될 부분을 만들어놨다가 그대로 월동한 후 꽃잎과 암수술 등을 갖춰 꽃을 피운다.
감꽃은 그 해 여름철 일기를 점쳐주는 꽃으로도 알려져 있다. 즉 감꽃이 피었다가 시든 뒤 곧바로 떨어지지 않고 오래도록 붙어있는 해는 장마철이라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른 장마의 징후란 뜻이다.
자연현상을 보고 일기를 점치는 것을 관천망기(觀天望氣)라 하는데 감꽃을 통해 본 올해의 관천망기가 어쩜 그렇게도 꼭 들어맞는지 감탄할 지경이다.

며칠전 일이다.

꽃이 지고 난 뒤에 앙증맞게 커가는 감을 촬영하기 위해 어느 감나무 밭을 찾았는데 많은 감들이 말라붙은 꽃을 그대로 둘러쓰고 있었다.
순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옛 어른들의 관천망기요 요즘 날씨, 특히 충북지역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마른장마 현상이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장마철이 아직은 많이 남았으니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일기로 봐서는 감꽃이 점쳐준 그대로다. 장마철에 감질나는 비만 오니 기상청 일기예보보다 되레 정확하단 생각마저 든다.

큰 비가 올 것이라던 지난 주말도 그랬고 월드컵 16강전이 펼쳐지던 2주전 주말도 겁만 잔뜩 줬을 뿐 말 그대로 마른비의 연속이다. 게다가 6월 둘째주 이후 계속 주말에만 비소식이 있고 정작 비는 찔끔거리기만 한다.

충북지역의 대표적인 하천인 달래강은 5월 이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예년 같으면 이미 한 두 번쯤은 큰물이 내려갔을 테지만 올핸 단 한 번도 물다운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물은 물대로 탁한 빛을 띠고 있고 곳곳에 이끼와 수초가 무성히 자라 다른 강을 보는 듯하다.
본격적인 피서철이 왔어도 뚝 끊어진 피서객들의 발길에 주변 상인들은 한숨만 짓고 있다. 한 철 벌어 일년 먹고 사는 그들로서는 손해가 막심하다.
생태계도 말이 아니다. 비같은 비가 내려야 물고기들이 산란할 텐데 뱃속에 알만 잔뜩 실은 채 갈팡질팡하는 물고기들이 태반이다. 물고기들의 이동도 뜸하니 어부들은 그물치기를 포기했다. 2007년부터 내리 3년째 가을가뭄으로 버섯철을 망친 달래강변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걱정은 벌써 가을을 향하고 있다.

비는 너무 많이 와도 탈이요 너무 적게 와도 탈이다.

장마철이 끝나기 전에 어서 적당한 비가 오면 좋으련만, 언제쯤 그런 약비가 올지 적이 걱정이다

길조의 고장, 축복 받은 땅 '충북'

 

충북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생물의 몸체가 흰색을 띠는 이른바 알비노가 타지역에 비해 눈에 띄게 자주 나타나고 있다.

1988년 이후 필자가 직접 목격한 것만도 열 손가락을 꼽고 남을 정도다. 자연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최대 백만분의 1이라는 극히 드문 현상이 충북에서만큼은 걸핏하면 나타나고 있다.
어떨 땐 너무 잦게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그러니 매번 알비노가 나타날 때마다 "예삿일이 아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타지역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야 그저 그런가 보다 하겠으나 유독 충북에서만 자주 생겨나니 묘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우선 영동의 흰까치 얘기다.

영동서 흰까치가 첫 출현한 시기는 1989년 6월이다. 당시 영동 학산서 2마리의 흰까치가 출현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래 2005년도와 2008년에도 황간서 잇따라 1마리씩의 흰까치가 나타나 '영동은 흰까치의 고장'이란 말까지 생겼다.
뿐만 아니다. 1994년과 95년도엔 충북의 한 땅꾼이 소백산과 속리산서 잇따라 흰뱀(백사)을 잡아 전국 땅꾼들의 부러움을 산 바 있으며 2007년 5월엔 진천 광혜원과 괴산 청안서 흰까치 1마리와 흰사슴 1마리가 각각 출현해 화제가 됐다.
또 보은 내북에서는 2008년 7월 4마리의 흰참새가 한꺼번에 발견돼 학계에서도 깜짝 놀란 보기 드문 사례로 기록된데 이어 지난 25일에도 또 한 마리의 흰참새가 나타나 '흰참새 고장'으로 소문난 상태다.
어디 그 뿐이랴. 지난해 9월엔 괴산호 부근서 국내 최초로 흰딱새 1마리가 발견돼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심지어 식물에서도 알비노가 나타나고 있다.

2007년 6월엔 괴산 청천의 한 농장서 방울토마토가, 2009년 8월엔 보은 마로에서 자귀나무가 알비노로 잎과 줄기가 온통 하얗게 변해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알비노는 유전자 이상에 의한 돌연변이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사람과 동물에 나타나면 백색증으로 부르기도 한다.

일부에선 알비노 동물에 대해 상복(喪服)을 입고 나타났느니 재수가 없느니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알비노를 일종의 증세로 보기 때문이다.
알비노의 원인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일부에선 색소세포의 총체적 결손이나 태생학적 발달과정에서 정해진 색소세포의 이동장애 혹은 색소생산에 필수적인 호르몬 자극의 부족, 색소세포 내부의 이상 등을 들고 있는 반면 일부에선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증후로 보기도 한다.
필자는 알비노를 취재할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생존하는지 궁금해 지속적으로 추적한 바 있다. 그러나 결론은 의외였다. 1년 이상 산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햇빛, 특히 자외선을 가리는 맬라닌 색소가 부족해 야생에 불리하고 보호색도 없어 천적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식물은 엽록소가 없어 단독 개체로는 얼마 못 산다.

 


어쨋거나 동양권에선 예부터 알비노를 신비 자체로 받아들였다. 흰사슴,흰까치가 나타나면 나라가 잘 될 징조라며 반겼다.
충북에서 알비노가 잦게 나타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만도 아니다. 알비노가 환경오염과 관련있다는 증거도 없다. 충북이 타지역에 비해 환경이 두드러지게 열악한 상태도 아니다. 서두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 것은 출현횟수가 잦기에 한 말이다.
해서 말인데 기왕이면 좋게 생각했으면 싶다. 축복받은 땅이기에 흰까치,흰참새 등이 자주 나타난다고.
다만 그 축복받은 땅을 얼마나 잘 가꾸고 지켜내느냐는 충북인의 몫이다. 충북인 스스로 그 복을 차서야 되겠는가.

부부젤라 불어대면 "뱀 나온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서 나는 '큰소리'를 경계했다.

말다툼하는 소리는 물론 흥얼거리듯 무심코 부는 휘파람까지 싫어했다. 휘파람을 얼마나 못마땅해 했으면 "이놈아, 뱀 나온다"며 손사래를 쳤다. 게다가 오밤중에 휘파람을 불면 "집안 망한다"며 꾸지람 했다.

집안에서 호드기를 불어도 언짢아했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나 밀짚 대를 꺾어 주둥이쪽을 얇게 만든 다음 피리처럼 불던 것이 호드기인데 이것을 밖에서 불면 별 상관 않다가도 집안에서 불면 영락없이 나무랐다. 그때도 잊지않고 던지던 말이 "뱀 나온다"였다.

집안에 손님이 왔을 땐 더 했다. 손님이 와 있는데 휘파람 불고 호드기 불었다간 날벼락이 떨어졌다.
코흘리개 시절엔 어른들의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실제로 뱀 나오고 집안 망하면 어쩌나 해서 겁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뱀 나오고 집안 망한 적은 없었다. 조금 더 크고 난 다음에야 알았지만 "어서 말 듣고 행동을 자제하라"는 어른들의 엄포였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그런 뻔한 거짓말로 엄포를 줬을까. 다시금 생각 하건대 일종의 자연 경외요 업이나 터주에 대한 공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집마다 구렁이 같은 업 내지 터주가 있다고 믿어온 어른들이기에 행여 휘파람이나 호드기 소리가 그들을 노(怒)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금기시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건 옛 어른들의 교육방식이기도 했다. 집안에서 점잖아야 집밖에서도 점잖을 수 있다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손님이 왔을 땐 손님에 대한 배려심을 심어주기 위해 돌출행동을 자제토록 신경썼던 것이다.

 

남아공에서 들려오는 부부젤라 소리가 연일 시끄럽다.

아니 시끄럽다 못해 왕짜증 날 정도다. 솥단지 만한 장수말벌집을 들쑤셔놔도, 수천 마리의 코끼리떼를 건드려놔도 아마 그렇게까지 요란하진 않을 게다. 머릿속에 온통 장수말벌이 들끓고 양쪽 귀로 코끼리떼가 뛰어드는 것처럼 정신이 없다. 하룻밤이 지나도 얼얼한 게 여운도 꽤 오래 간다. 기차소리, 사격장 소리보다 더한 120데시벨 정도라니 가히 소음공해다.
제 아무리 응원도구라고 해도 불 때 안 불 때가 있고 질서와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건 완전 도떼기시장은 저리 가라다. 시도 때도 없고 부는 사람 마음대로니 소리만 크면 장땡인가 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웬만한 사람은 다 하나씩 들고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오래 부나 돈내기하는 듯 설쳐댄다.
코끼리 울음소리라고는 하나 그냥 코끼리 울음소리가 아니다. 삼복더위에 불맞은 코끼리소리다. 줄루어로 '시끄러운 소리를 만든다'는 뜻에서 유래했건 '소나기'에서 유래했건 명칭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니 그야말로 전세계인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놓고 있다.

그러니 말도 많다.

남아공 경기든 다른 나라 경기든 또 주야간 불문하고 줄기차게 불어대니 불쾌감을 넘어서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도 수없이 많다. 며칠전엔 부부젤라 사용을 반대하는 안티싸이트도 생겼다. 월드컵을 중계하는 각국 아나운서와 해설자까지 나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FIFA는 부부젤라를 아프리카 전통으로 인정해 사용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작 불만이 극에 달한 건 축구팬들이다.
제 나라 경기장서 제 나팔 제가 분다는데 뭘 그리 탓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대회가 뭔가. 화합의 마당 아닌가. 개막식때 보여준 바오밥나무는 폼이었나. 가정으로 따지면 손님을 불러놓고 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격이다.

'무대뽀'에는 '무대뽀'가 약이다.

불든 짖든 까불든 우리 앞길을 가는 게 상책이다. 내일 새벽 나이지리아전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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