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나무 가지에서 철부지를 깨닫다
보름전 과수농사를 짓는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 난생처음으로 울안의 자두나무에 가지치기를 했다.
심은 지 10년 넘도록 손 한번 대지 않은 탓에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가 늘 마음에 걸렸던 터다. 하기야 그동안 손을 대려해도 어디서부터 어느 가지를 잘라내야 할지 도통 몰랐기에 그냥 내버려뒀던 것인데, 그러다간 나무 자체를 버리기 십상이란 친구말에 큰맘 먹고 전지가위를 든 것이다.
어른 장딴지처럼 굵어진 자두나무 2그루를 친구가 일러준 대로 가지치기 하고 나니 엉뚱한 욕심이 생겼다. 옆에 있는 고로쇠나무까지 손을 댄 것이다. 그 고로쇠나무도 자두묘목을 사올 때 함께 사다 심은 것이니 제법 덩치는 컸으나 역시 사람손이 가지 않아 도무지 인가서 자란 나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야생티가 풍겼다.
해서 내딴에는 가지치기를 해주는 게 도리이다 싶어 대뜸 가위를 들이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가지 몇개 잘랐을 뿐인데 입에서 "괜~히 잘랐어, 괜~히 잘랐어"란 시쳇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밑둥치쪽 가지를 3개쯤 잘랐을 때 별안간 잘린 부위서 줄줄 소리가 날 만큼 많은 물이 쏟아졌다. 수액이었다. 깜짝 놀랐다. 요즘이 목하 고로쇠수액 채취기란 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이 쏟아져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가지를 자른 것이 아니기에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가지치기를 해야 득 될게 없는 시기에 아픈 상처만 안긴 꼴이니 후회막급이었다.
혹자는 별걸 다 가지고 호들갑 떤다 하겠지만 그건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동물 몸에서 동맥이 잘라졌을 때 순간적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과장이 아니다. 일년중 물오름이 가장 왕성할 때 하필 가지를 잘랐으니 그럴 수밖에. 무지의 소치요 경솔함이 가져온 실수였다.
놀란 건 그 뿐만이 아니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잘린 가지서 여전히 수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어떤 때는 더 많은 양이 흘러내린다. 그러니 마음이 더욱 안 좋다.
봄은 그런 모습으로 와 있었다.
나뭇가지를 자르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봄이 얼마만큼 왔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뭇가지를 잘못 자른 실수 때문에 뜬금없이 '봄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보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이 진정한 봄의 실체란 걸 깨달았겠는가.
그동안 봄의 모습은 들판의 봄나물이나 냇가의 버들강아지 같은 각종 봄꽃과 새싹 등 '눈에 보이는 전령'만이 전부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봄의 모습, 봄의 실체가 아니었다.
조용한 가운데의 움직임 즉 정중동의 모습이 봄의 본모습이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곧 봄의 실체였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달리 말하면 '흐름'이다. 나무줄기속의 수액이든 아지랑이속의 온기(溫氣)이든 그것이 흐름으로써 비로소 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린 흔히 사리분별이 어설픈 사람을 철부지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철'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일컫는 말, 예를 들어 봄철 여름철 할 때의 철로서 이해하고 있다. 맞는 얘기다. 계절이 오고감을 제때제때 알아차리는 것이 사리분별의 한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
때도 모르고 고로쇠나무 가지를 잘랐으니 분명 철없음이요 그간 계절의 실체도 모른 채 보이는 것만 느끼며 살아왔으니 그 또한 철부지가 아니었던가. 사람은 평생토록 철들며 산다는 말이 절대 그른 말이 아니다.(2010년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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