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나무 가지에서 철부지를 깨닫다

 

 

보름전 과수농사를 짓는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가 있어 난생처음으로 울안의 자두나무에 가지치기를 했다.

심은 지 10년 넘도록 손 한번 대지 않은 탓에 제멋대로 자란 나뭇가지가 늘 마음에 걸렸던 터다. 하기야 그동안 손을 대려해도 어디서부터 어느 가지를 잘라내야 할지 도통 몰랐기에 그냥 내버려뒀던 것인데, 그러다간 나무 자체를 버리기 십상이란 친구말에 큰맘 먹고 전지가위를 든 것이다.
어른 장딴지처럼 굵어진 자두나무 2그루를 친구가 일러준 대로 가지치기 하고 나니 엉뚱한 욕심이 생겼다. 옆에 있는 고로쇠나무까지 손을 댄 것이다. 그 고로쇠나무도 자두묘목을 사올 때 함께 사다 심은 것이니 제법 덩치는 컸으나 역시 사람손이 가지 않아 도무지 인가서 자란 나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야생티가 풍겼다.
해서 내딴에는 가지치기를 해주는 게 도리이다 싶어 대뜸 가위를 들이댔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가지 몇개 잘랐을 뿐인데 입에서 "괜~히 잘랐어, 괜~히 잘랐어"란 시쳇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밑둥치쪽 가지를 3개쯤 잘랐을 때 별안간 잘린 부위서 줄줄 소리가 날 만큼 많은 물이 쏟아졌다. 수액이었다. 깜짝 놀랐다. 요즘이 목하 고로쇠수액 채취기란 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이 쏟아져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구나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가지를 자른 것이 아니기에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가지치기를 해야 득 될게 없는 시기에 아픈 상처만 안긴 꼴이니 후회막급이었다.
혹자는 별걸 다 가지고 호들갑 떤다 하겠지만 그건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동물 몸에서 동맥이 잘라졌을 때 순간적으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과장이 아니다. 일년중 물오름이 가장 왕성할 때 하필 가지를 잘랐으니 그럴 수밖에. 무지의 소치요 경솔함이 가져온 실수였다.
놀란 건 그 뿐만이 아니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잘린 가지서 여전히 수액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도 날씨와 시간에 따라, 어떤 때는 더 많은 양이 흘러내린다. 그러니 마음이 더욱 안 좋다.
봄은 그런 모습으로 와 있었다.

나뭇가지를 자르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봄이 얼마만큼 왔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나뭇가지를 잘못 자른 실수 때문에 뜬금없이 '봄의 실체'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보이지 않는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이 진정한 봄의 실체란 걸 깨달았겠는가.
그동안 봄의 모습은 들판의 봄나물이나 냇가의 버들강아지 같은 각종 봄꽃과 새싹 등 '눈에 보이는 전령'만이 전부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봄의 모습, 봄의 실체가 아니었다.
조용한 가운데의 움직임 즉 정중동의 모습이 봄의 본모습이요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곧 봄의 실체였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움직임은 달리 말하면 '흐름'이다.  나무줄기속의 수액이든 아지랑이속의 온기(溫氣)이든 그것이 흐름으로써 비로소 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 아닌가.
우린 흔히 사리분별이 어설픈 사람을 철부지라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철'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계절의 변화를 일컫는 말, 예를 들어 봄철 여름철 할 때의 철로서 이해하고 있다. 맞는 얘기다. 계절이 오고감을 제때제때 알아차리는 것이 사리분별의 한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크다.

때도 모르고 고로쇠나무 가지를 잘랐으니 분명 철없음이요 그간 계절의 실체도 모른 채 보이는 것만 느끼며 살아왔으니 그 또한 철부지가 아니었던가. 사람은 평생토록 철들며 산다는 말이 절대 그른 말이 아니다.(2010년 3월 23일)

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어릴때 '금단의 장난'을 한 적 있다. 제비를 올가미로 잡았다 풀어준 것이다.

함부로 대하면 죄받는다는, 그래서 성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던 제비를 산 채로 잡았다 풀어주는 별난 짓을 벌였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체 제비 몸뚱이가 얼마나 가볍기에 가느다란 거미줄에 걸렸을 때 거미줄이 끊어지지도 않고 쉽게 빠져 나오지도 못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에 엉뚱한 짓을 벌였던 것이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두려워서다. 해서 아랫집 친구를 꼬드겼다. 한데 그 친구 왈 "그 까짓것 뭘 겁내냐"며 선뜻 응했다. 더구나 자기네집 제비를 자기가 직접 올가미 쳐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거사(?)는 그렇게 이뤄졌다.
제비는 정말 가벼웠다. 솜뭉치 같았다. 몸에 살점은 없고 털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제비를 만져본 다음 곧바로 풀어줬다. 다행히도 그 제비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친구네집 둥지에 머물면서 새끼를 까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엉뚱했던 당시 그 경험 덕에 제비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이유를 알긴 했지만 가슴속에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한반도에 제비가 언제 찾아오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려는 노력이 수년전 진행된 바 있다. 아마추어탐조동호인연합이 그 주체로 이 모임에서는 지난 2006~7년께 전국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른 봄철 제비를 목격한 장소와 시기를 온라인을 통해 제보 받았다. 이른바 제비 도래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비 도래전선이란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를 각 지역에서 기록해 날짜별로 선으로 연결한 것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탐조동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제비 전선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제비는 이동기의 기온 여하에 따라 매년 도래날짜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일러지는 경향이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실례로 지난 2007년의 경우 3월 이전인 2월 26일에 전남 해남 영암호 간척지에서 1마리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3월 3일엔 전남 홍도에서 3마리, 3월 5일엔 경기 고양 서오릉부근에서 2마리, 3월 6일엔 충남 서산에서 1마리가 목격됐다.
이같은 도래현황은 예년에 비해 열흘에서 보름가량 이른 것으로 특히 홍도의 경우 2006년엔 3월 15일께 첫 도래보고가 있었던 것에 비해 무려 17일 가량 이르게 도래했다. 당시 동호인연합 관계자는 "2007년 겨울 유례없는 이상기온 현상으로 생물들의 생태시계가 혼돈을 일으켜 제비들도 이동시기가 일러진 것 같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의 조사자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점차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또다른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잦아진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귀향길이 황천길로 바뀌는 불운한 제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월동지를 떠날 땐 푹했던 날씨가 도중에 혹은 한반도 도착 즈음에 돌변하면서 제비가 탈진하거나 얼어죽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계절은 어느덧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다.

성급한 제비들은 이미 한반도 남쪽 어느 곳에 고단한 날개를 접었을 법도 한데 아직 발견소식이 없다. 봄은 왔으나 제비가 보이지 않고 있다. 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해야 할까.
봄과 겨울이 마냥 널뛰기하는 동안 이역만리 날아온 제비의 꿈이 산산이 깨지고 있다. 날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날씨를 누가 불러왔는가. 흩어진 제비의 꿈에 혹 우리 미래의 꿈은 없는지. 조용한 봄에 조용히 되새겨 볼 일이다.(2010년 3월 16일)

김연아의 눈빛, 영원히 잊지못할 아름다운 눈빛이리라

 

첫인상은 중요하다. 누구를 반하게 하기도 하고 괜한 반감을 사기도 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느껴지는 첫인상이지만 그 여파는 의외로 오래 간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훗날 엉뚱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지" 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첫눈에 벗어난 사람은 "그럼 그렇지"란 삐딱한 수식어와 함께 용납이 잘 되지 않는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첫인상이 전부가 아님에도 '전부를 가리는 콩깍지'가 되곤 한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첫눈에 비친 눈빛이다.

물론 전반적인 풍모를 통해 첫인상이 가늠되지만 그 포인트는 역시 눈빛이다. 눈빛이 곱상한 사람은 곱상하게 각인되고 눈빛이 흐리멍덩한 사람은 흐리멍덩한 사람으로, 눈빛이 예리한 사람은 예리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본디 식물의 근본인 '첫잎의 상태' 에 따라 그 식물의 일생이 좌우된다는 관용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첫잎의 상태가 다름아닌 첫인상이요 그 식물에 대한 콩깍지다.

떡잎이 시원찮고 싹수가 노랗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으레 부정적으로 본다. 식물 입장에선 억울한 콩깍지다.
동물의 눈과 눈빛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왔다 해서 완전한 탄생이 아니다. 눈을 떠야 비로소 완전한 병아리다.

강아지도 같다. 눈을 떴느냐 안 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다르다. 눈도 안 뜬 강아지와 눈 뜬 강아지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눈을 뜨고 난 뒤에도 그들이 지닌 눈빛은 앞으로의 가능성과 미래의 모습을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고를 때 눈빛부터 본다.
사람이나 동식물에 있어 눈빛이 중요한 건 그 안에 생명력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눈빛을 말하는데 식물을 포함시킨 것은 눈(目) 못지않은 눈(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도 빛이 있고 생명력이 존재한다. 또한 식물들은 그 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동물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생태사진을 찍다보면 눈빛이 곧 생명력임을 실감한다. 눈빛이 살아있는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은 천지차이다.
얼마전 일이다. 타지역서 환경운동하는 지인이 "나는 왜 생태사진을 찍으면 마치 죽은 사진 같다"며 이상하단다. 해서 그가 보여준 사진들을 살펴보니 그의 말처럼 생명감이 없었다. 동물사진의 경우 몸뚱이만 있지 눈빛이 없었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서다. 그러니 자연 사체사진 같을 수밖에.


최근 눈자위를 희게 만드는 눈미백 수술이 유행하면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이 잇따르는 등 안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눈미백 수술은 혈관이 분포한 눈의 결막을 걷어내 눈자위가 희게 보이도록 하는 시술이다. 피부미백이나 치아미백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자기 눈에 자기가 원해 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안전성 검증이 안된 시술을 마치 마이더스 시술인 양 광고하거나 믿는 건 문제다.
눈은 지극히 예민한 부위다.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렵다.

아름다운 눈과 건강한 눈을 동시에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다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려다 건강을 잃는다면 아예 안하니만 못할 것이다.

자연스러움 속에 생명력이 있듯 눈빛도 자연스러운 게 아름답지 않을까.

밴쿠버 하늘 아래서 보여준 김연아의 눈빛,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봤지 않은가. 에너지, 전세계인을 감동시킨 무한의 힘이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 있지 않았던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신감 있는,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비친 그의 눈빛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눈빛이리라.

갈수록 잦아지는 '돌발기후' 예삿일 아니다

 

 

산밑 다랑논이 시끄럽다.

왁작대는 소리가 흡사 먹이 찾는 기러기떼의 합창 같기도 하고 볕 좋은 날 양지쪽 울타리서 들려오는 참새들의 지저귐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가 보니 산개구리 울음소리다.

며칠전 내린 작달비에 서둘러 입이 터진 봄의 전령이다. 절기상 사흘 뒤가 경칩이니 그리 이른 건 아니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디 이렇게 성급히 봄이 올 줄 누가 알았는가. 먼 산 능선에 하얗게 깔린 눈더미를 바라볼 때마다 저것들이 언제 다 녹을까 괜한 걱정이 앞섰던, 말 그대로 징글징글했던 지난 겨울 아니었던가. 
어느 날 졸지에 찾아와 수은주를 무려 20도 가까이 끌어올렸던 돌발 이상고온과 그 여세를 타고 장맛비처럼 화끈하게 내린 봄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대자연의 수레바퀴가 한 순간에 눈구덩이를 벗어난 듯 동장군 앞에 멈춰섰던 생태시계의 초침이 단 며칠만에 눈에 띄게 빨라졌다.
무쇠 주둥이처럼 굳게 닫혔던 산개구리 입에서 불현듯이 새생명의 울음보가 터진 것도 요 며칠 사이이며, 후발대로 남아있던 철새들이 마지막 미련을 버리고 서둘러 고향 향해 날갯짓을 하게 된 것도 세찬 봄비가 가져온 생명현상이다.

더욱 푸르러진 산골 농가의 보리밭엔 지난 가을 이후 뜸했던 고라니들의 발걸음이 또다시 잦아졌고 초저녁 도로변엔 선잠 깬 오소리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의 몸짓도 달라졌다.

성마른 낚시꾼들은 개구쟁이들의 썰매 타는 소리가 채 잊히지도 않은 물가를 찾아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고 겨우내 야외 나들이가 그리웠던 도시인들은 산과 들 찾아 달라진 공기 내음 맡으려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번의 갑작스러운 기온변화를 포함해 최근 빈발하고 있는 이상기후를 심히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루 아침에 전혀 딴 세상에 온 것처럼 기온이 돌변하고 눈이든 비든 한번 내렸다 하면 끝장을 보려는 듯 마구 쏟아붓는 날씨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심각성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바로 농부들이다.

그들은 지금 봄기운을 반기기 보다는 걱정부터 앞서고 있다.

유난히도 극성스러웠던 지난 겨울 날씨 탓에 가뜩이나 마음 편치 않았는데 최근의 이상고온까지 겹쳐 큰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과수의 경우 영하 20~30도까지 내려간 지독한 추위로 인해 나뭇가지와 꽃눈이 적잖이 얼어죽어 피해를 입은 데다 가까스로 동해를 피한 나뭇가지와 꽃눈마저도 해빙기에 돌연 찾아온 이상고온으로 악영향을 입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요즘 한창 모종을 키우고 있는 고추 등 원예작물에도 좋을 리 만무다. 기온이 오르면 온실 난방비가 덜 들어가 농가가 반길 것 같지만 올 같은 상황은 전혀 그렇질 않다. 갑자기, 그것도 한겨울 날씨에서 졸지에 4월 초·중순 날씨로 돌변해 여러 날 지속됐으니 부작용이 우려된단다. 농사마다 때가 있듯이 원예작물 또한 모종이 시기에 맞춰 자라줘야 하는데 갑자기 오른 기온 때문에 쓸데 없이 웃자라 때아닌 생장억제제를 주는 등 관리에 무진 애를 먹고 있다. 또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고 안개일수도 부쩍 늘어 이래저래 농부들의 맘고생 몸고생이 여간 아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축사가 넘어가야 자연재해인가.

돌변하는 날씨 탓에 농사짓기가 겁 난다는, 응어리진 농부들의 가슴도 재해라면 재해다.
날씨와 인간생활은 갈수록 밀접해진 반면 '돌발기후'는 수시로 나타나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예측 불허의 시대에 정녕 맘 편히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올 한 해는 그저 날씨 때문에 더 이상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오죽하면 낚시를 법으로 규제하겠는가

 

낚시계가 시끄럽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낚시관련 법률을 통합해 국회에 제출한 낚시관리 및 육성법(안)을 두고 낚시인들의 찬반여론이 낚시바늘만큼이나 날카롭다. 낚시인구가 500만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건전한 낚시풍토 조성을 위해 내놓은 법안이 초봄 낚시철을 앞두고 뜬금없는 바람소릴 불러오고 있다.

왜 그럴까. 공청회 토론회까지 거쳤다는 법안이 왜 뜨거운 감자가 됐을까.

내용부터 살펴보자.

국회 통과시 이르면 내후년 상반기부터 시행될 이 법안에 따르면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어종처럼 낚시로 잡을 수 없는 수산동물의 종류·마릿수·체장·체중 등과 함께 수산동물을 잡을 수 없는 낚시도구ㆍ방법ㆍ시기 등에 대한 기준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 시ㆍ도지사는 일정지역을 낚시통제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낚시도구나 미끼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금하도록 했다. 또한 납추처럼 유해물질이 허용기준 이상으로 함유된 낚시도구의 사용 판매를 금지토록 하고 낚시터업의 허가 등록 유효기간을 5년 이내서 10년 이내로 변경해 기간 만료시에는 연장이 가능토록 했다. 또 미끼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종류별로 특정물질의 함량기준을 정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찬성측은 그동안 여러 법률에 흩어져 있던 낚시관련 조항들을 묶어 단일 법률화 한 것은 다소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라며 쌍수를 들고 있다. 특히 보호어종의 포획 금지규정을 강화하고 전기충격기나 독극물 따위를 이용한 불법 어로행위를 엄벌할 수 있는 세부기준을 마련토록 한 점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울러 납추 등 유해 낚시도구와 기준에 부적합한 미끼의 사용 판매를 규제함은 물론 그들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규정함으로써 낚시행위가 생태계에 끼치는 부정적 요인을 해소시키려 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에 비해 반대측은 상당 부분이 현실에 맞지 않거나 낚시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들어 법의 국회통과를 저지하려 하고 있다. 특히 납추사용 금지조항과 관련해 "환경을 해하는 납추를 일부러 사용한 게 아니라 대체물질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대체물질 상용화를 우선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미끼 규제조항도 우선 수질오염을 부채질해 온 수입제품부터 규제한 뒤 시행하고 아울러 친환경 미끼 및 낚시도구 개발을 이유로 국민혈세를 특정기업에 지원토록 한 것은 특혜소지가 있는 만큼 재고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낚시터업의 허가 유효기간 연장 조항도 저수지 등 공공시설을 사유재산처럼 특정인에 장기간 독점케 함으로써 특혜시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법이 통과될 경우 과거 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낚시면허제의 근거법으로 작용해 재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양측 의견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찬반을 떠나 취미 레저활동인 낚시를 단일 법률까지 만들어 규제하려는 근본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라는 점이다. 혹여 낚시인 스스로 환경을 조성한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일한 환경의식이 결국 취미 레저활동을 법으로 규제하는 지경을 불러오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귀 기울이란 얘기다. 그래도 납득 가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가까운 낚시터를 찾아가 주위를 살펴 보라. 과연 몇 명이나 자신을 포함한 '낚시인들의 흔적'에 떳떳할 수 있을지….

공자가 말한 조이불망(釣而不網)의 망(網) 자가 단지 '그물질'만을 뜻하지 않음도 되새겨 볼 일이다.

낚시는 도(道)란 말이 있다. 낚시를 하되 욕심을 버리고 '빈 바구니' 걱정을 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도이다.

법 제정을 계기로 새로운 낚시문화를 기대한다.

서민층까지 파고 든 '말밥  중독', 어째 이런 일이…

 

 

말에겐 질주 본능이 있다. 최대시속 60~70km로 달린다. 사람은 죽도록 달려봤자 시속 38km도 못 뛴다. 100m를 9.58초에 달리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도 시속 37.58km다. 속도로만 보면 말이 사람 보다 2배 가량 빠르다.
그러나 힘과 지구력을 따지면 사람은 비교대상이 아니다. 말은 짐을 싣거나 수레를 달고서도 먼거리를 달릴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질 못하다. 사람이 애초에 말을 동경하고 길들이게 된 근본 동기다.


말은 겁이 많다. 덩치만 클 뿐 뒷발질 외엔 특별한 공격력이 없어서다. 위기가 닥치면 지레 겁부터 먹고 무작정 도망친다. 전력을 다해 줄행랑 치는 것이 최대 방어수단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잘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갖추게 됐고 그런 기질이 대표적인 유전인자가 됐다.
말의 질주 본능은 그들이 길들여진 후에도 줄곧 강요 받았는데 그것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바로 경마다. 초기의 전차경마가 됐든 훗날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기마경주가 됐든, 무조건 빨리 달려 상대를 이기게끔 훈련됐다. 경주마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은 급기야 자연교배의 순리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혈통을 만들어 가는 선택사육 풍조까지 낳았다. 오늘날 경마를 흔히 혈통스포츠(Blood Sports)라 부르는 것도 그만큼 혈통이 중요시 된 때문이다.

오죽하면 부모혈통과 조상내력이 담긴 인증서류가 있어야만 경주마로 등록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 씨받이용 종마 가격으로, 현재 외국산 씨수말 한 마리 값이 무려 30억원대란다. 게다가 그들 종마의 씨만 받는 교배료마저 1천만원이 넘는다. 놀랄 노자다.

얼마 전 한 지인과 만난 자리서 우연히 경마얘기가 나왔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물음에 그가 대뜸 "말밥 주러 다닌다"고 답해 말꼬리를 물게 됐다. "아니 웬 겨울에 말밥을 주러 다니냐"고 의아해 했더니 그 왈, "말밥이 그냥 말밥이 아니라 돈으로 주는 말밥 즉 경마를 하러 다닌다"는 것이다.
평소에 화투장도 안 잡는 그였기에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말밥이란 말이 재미있기도 해 "재미는 봤냐"고 되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색이 금세 변하며 한마디로 신세 망쳤단다. 이번 겨울에만 수천만원을 날렸다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질 않았다. 경마장엘 가보면 공사장 날품팔이에서부터 농사 짓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말밥'에 목줄 대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란다. 그러면서 "나도 큰일이지만 그들도 큰일이다"며 혀를 찼다. 그는 청주 외곽서 벼농사 짓는 농사꾼이다.


이렇듯 최근 경마가 서민층에까지 파고 들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각 지역에 경마장이 늘어난 데다 화상경마장과 사설경마장까지 운영되면서 사행성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건전한 스포츠로써가 아니라 한탕주의가 판치는 도박장으로 변질돼 피해자가 크게 늘고 있다.
문제는 경마를 단순한 레저로 보지 않고 인생의 목적인 양 심취했다가 결국 중독성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그들 대부분이 경마를 마치 자신과의 싸움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인터넷 글을 통해 "경마가 무슨 도(道)인가. 경마와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왜들 힘들게 경마를 하는가"라고 물은 뒤 "욕심을 버리고 그저 재미삼아 즐길 것"을 조언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얼마 안 있으면 농사철인데 눈만 감으면 말 달리는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일이 손에 잡힐 지 모르겠다"는 그 지인의 때늦은 걱정이 아직도 가슴을 후벼 판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 슬픈 일이다.

자연과 인간을 잇는 '상생의 가락지'를 기대하며…

 

매사냥꾼을 수할치라 불렀다. 수할치들은 매사냥 가기 전 자신들의 이름과 사는 곳이 적힌 표식을 매의 꽁지깃에 달았는데 그것이 이른바 시치미다.

그 시치미는 매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사냥 보낸 매가 되돌아오지 않았을 때 누구 누구의 매란 증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간혹가다가 그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는 자기 매라 벅벅 우기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땐 으레 승강이가 벌어졌다. 어릴 때부터 길러서 낯이 익은 주인 수할치는 "분명 내 매"라 주장하고 시치미를 뗀 사람은 "자기 매"라 주장하니 안 시끄러울 리 없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말이 '시치미를 떼다'다.


시치미는 중세 유럽에서도 사용됐다. 프랑스 왕 헨리4세는 매사냥중 매를 잃어버렸는데 하루 뒤 2000여km나 떨어진 말타란 곳에서 찾았다.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으면, 시속 90km의 놀라운 속도로 그 먼거리까지 달아난 매를 다시 손 안에 넣게끔 해준 것이 바로 시치미다. 

시치미는 조류연구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오늘날 흔히 이용되는 가락지(링)의 원조가 된 것이다. 새 다리에 부착하는 가락지는 새의 이동경로 뿐만 아니라 생존율,수명,분포,번식지,월동지,기생충 전파와 같은 다양한 정보를 파악하는데 매우 긴요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전설같은 일화가 있다. 때는 1965년, 일본 도쿄의 국제조류보호연맹 아시아지역본부에 북한으로부터 한 건의 문의가 들어왔다. 당시 북한의 저명한 조류학자 원홍구박사가 평양 만수대 부근서 한 마리의 북방쇠찌르레기를 채집했는데 다리에 일본측 일련번호가 새겨진 가락지가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농림성(農林省) JAPAN C7655'라는 표식으로 보면 분명 일본의 누군가가 달아 날려보낸 것이 틀림없으나 북방쇠찌르레기는 일본에 살지도 않고 이동할 때 일본 땅을 거치지도 않으니 "너무나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건 일본측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생각 끝에 한국의 새박사 원병오박사에게 문의한 결과 기막힌 사연이 밝혀졌다. 문제의 가락지를 단 이가 다름 아닌 원병오박사요 그 가락지를 확인한 이가 원박사의 친아버지인 북한측 원홍구박사였던 것. 새 가락지 하나가 전쟁으로 갈라졌던 부자간의 핏줄을 다시 이어준 뜻밖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산과 들로 새를 쫓아다닌 경험 덕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조류학자가 된 원병오박사는 1957년 북방쇠찌르레기가 서울서 번식한다는 사실을 첫 발견한 이후 63년부터 가락지 표식을 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국산이 없어서 일본 것을 빌려 사용했다고 전한다.
요즘도 철새를 관찰하다 보면 다리에 가락지가 부착된 새들이 간간이 눈에 띈다. 그 많고 많은 새들 가운데 눈에 띄는 가락지 표식.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부자(父子) 새박사간의 기막힌 인연을 이어준 행운의 가락지다. 가락지는 역시 다리에 끼건 손가락에 끼건 어떤 연(緣)을 잇게 해주는 매개체인가 보다.

지금 이 땅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겨울을 나고 있다. 얼마 안 있으면 고향 찾아 떠날 그들이긴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 땅에 존재가치를 지닌 귀중한 생명들이다. 최근 들어 조류인플루엔자 매개체란 의심 때문에 졸지에 '간 졸이는 삶'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을 보호할 의무는 우리에게 있다. 그들이 건강해야 우리 삶도 건강할 수 있는 법. 그 옛날 남의 매에서 시치미를 잡아떼듯 우리가 결코 그들을 외면할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철새들의 마지막 안녕을 기원하며 아울러 새들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의 건투를 빈다.

까치 둥지의 교훈과 아이티 강진 대참사

 

까치들이 바빠졌다. 연초의 한파와 폭설 때 잔뜩 움츠렸던 모습과는 달리 날갯짓이 경쾌하다. 울음소리도 달라졌다. 추위 속 눈보라 칠 때만 해도 잔뜩 고뿔 걸린 소릴 내더니만 이젠 제법 맑은 소릴 낸다. 겨울을 '진하게' 나면서 득음이라도 한 양 소리가 딴판이다.

그들이 부산 떠는 까닭이 있다. 둥지틀기를 시작한 때문이다. 성급한 까치는 지난해 12월부터 나뭇가지를 물어나르고 있지만 대부분은 1월 중·하순께부터 둥지틀기에 들어갔다. 생각건대 까치가 한반도서 가장 이르게 둥지 트는 새가 아닌가 싶다. 다른 새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시기에 까치들은 태생적인 부지런함으로 남들보다 먼저 한 해 살림을 시작한다. 이 점이 바로 까치의 가장 큰 속성이다.

까치가 다른 새보다 이르게 둥지틀기에 들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둥지를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생태시계에 맞춰 새끼를 기르기 위함이다.

까치둥지는 매우 튼튼하다. 겉으로 보기엔 나뭇가지를 대충 얹어 얼기설기 지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질 않다. 시골서 자란 사람이라면 태풍에 넘어진 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육중한 나무줄기와 함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도 어디 수박 깨지듯 폭삭 부서진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일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튼튼하다.

까치둥지가 튼튼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흉내도 못낼 치밀한 건축 솜씨와 이중구조 때문이다. 무려 1600~2000개나 되는 나뭇가지를 물어다 단단한 부리로 이리 꿰고 저리 엮어 마치 철옹성 같은 둥근 외벽을 만든 다음 안쪽에는 부드러운 식물 줄기와 뿌리, 동물털 등으로 안락한 내부둥지를 튼다. 비바람에도 까딱없는 역학구조라 건축가들도 놀란다. 더욱 경이로운 건 바람이 거센 지역일수록 바깥둥지 모양을 유선형에 가깝게 짓는다는 점이다. 바람에 잘 견뎌내기 위해서다.

까치둥지는 인고의 산물이다. 절대로 얼렁뚱땅 짓질 않는다. 수많은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물어다 짓기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이나 걸린다. 그러니 자연 겨울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묵은 둥지를 보수해 사용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늦어도 1월 중·하순엔 시작해야 2월 중·하순 혹은 3월 이후 산란이 가능하다. 게다가 알 낳는 기간과 알 품는 기간(17~18일)을 합하면 둥지 틀고 난 뒤에도 거의 한 달 가까이 돼서야 새끼가 태어난다.

까치는 바로 그 기간을 계산한 것이다. 자신들의 새끼가 태어날 때쯤이면 먹이들도 활동하게 되는 생태고리를 익히 알고 있음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하고 오묘한 까치세계다.

자연 앞에 힘 없이 무너진 아이티 대참사를 보면서 언뜻 떠오른 게 까치둥지의 교훈이다. 자신들에게 닥쳐 올 대자연의 역경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모진 겨울 인내를 통해 미리 대비하는 까치들의 지혜. 비바람 아니라 나무가 송두리째 넘어가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만큼은 까딱없게 만들 줄 아는 그들의 유전자가 한치 앞도 못 내다 보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강진발생 가능성은 우리나라도 존재한다. 아이티의 눈물이 결코 남의 집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조급증으로 얼렁뚱땅 지어진 건축구조물이 아직 남아있지는 않은지. 내진시설 강화책과 함께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아울러 급변하는 자연현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개구리가 뜀 뛰듯 언제 어디서 어떤 시련이 돌발할 지 모르는 게 작금의 지구환경이다.

위기의 시대, 급변의 시대에 절실한 게 전천후 대비 자세다. 나라는 나라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만사 불여튼튼의 마음가짐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금 바로.

14년전의 금강하구 취재와 람사르 습지 등록

 

1996년 겨울 필자는 금강하구를 찾아 그 일대에 사는 조류들을 취재한 바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백운기박사와 동행한 당시 취재에서는 뜻밖의 성과가 얻어져 학계가 놀랐다. 다름 아닌 국제적 희귀조이자 우리나라 천연기념물(326호)겸 멸종위기야생동물인 검은머리물떼새가 무려 1910마리라는 대집단을 이뤄 충남 서천 금강하구와 유부도 일대서 월동하고 있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기 때문이다.
검은머리물떼새는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서는 번식하지 않는 새로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1917년 4월 일본인 조류학자 구로다 나가미치박사에 의해 영산강 하구서 알 2개가 발견되면서 국내 번식사실이 최초 기록됐다.
그로부터 반세기여가 지난 73년과 74년 6월, 국내 학자인 원병오박사가 강화도 앞 대송도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알을 잇따라 발견함으로써 드물게나마 번식한다는 사실이 학회에 알려졌다. 
그후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한반도 서해안의 무인도서 매년 150마리 내외의 작은 집단이 번식하는 외에도 겨울철에는 동북아 북쪽의 번식집단이 한반도 서해안과 금강 하구 일대로 날아와 함께 월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추적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그중 특히 84년에는 850마리라는, 당시로서는 최대 집단이 한꺼번에 발견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또다시 12년이 지난 96년 겨울, 필자가 포함된 취재팀이 뜻밖에도 1910마리(백운기박사의 계측치)라는 최대 월동군을 찾아냄으로써 다시 학계의 관심을 검은머리물떼새로 쏠리게 했던 것이다.
천연기념물을 지정 관리하는 문화재청도 99년 10월 국내 최초로 종합 실태조사를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재청은 당시 조사를 통해 금강하구와 유부도 등에서 1230마리의 월동군을 확인하는 한편 이 새가 거의 모든 월동기간을 금강하구의 장항 앞 갯벌서 먹이를 잡아먹은 뒤 인근 유부도서 휴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조사에서는 매년 8월 이후 1400~3200마리의 검은머리물떼새가 안정된 집단을 이뤄 월동하다가 이듬해 3월이 되면 번식집단이 빠져나가 690개체로 감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조사 연구를 통해 금강하구와 유부도를 포함한 서천 연안갯벌은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검은머리물떼새 전체집단의 30% 이상이 월동하는 중요한 서식지이자 황조롱이,노랑부리저어새와 같은 여러 법정 보호종의 서식지로서 '높은 보전가치'가 입증됨에 따라 비록 늦었지만 2008년 1월 국내 습지보호법상 습지보호지역으로 전격 지정됐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하여 더욱더 반가운 일은 이 일대가 지난해 12월 29일자로 국제적 보호습지인 람사르 습지로 등록돼 본격적인 보전 관리를 받게 됐다는 소식이다. 국내 연안습지로는 순천만과 무안갯벌에 이어 세 번째다. 그야말로 박수 칠 일이다. 국제조약인 람사르 협약에서는 자연상태의 희귀하고 독특한 유형을 갖추고 있거나 생물다양성 보전이 필요한 습지를 람사르 습지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서천군과 국토해양부는 이번 람사르 습지 등록을 계기로 서천 갯벌이 국제적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됨에 따라 올해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총 200여억원을 투자해 갯벌관리 인프라 구축과 함께 해안 복원 등 각종 세부사업을 추진키로 했단다.
오랫동안 추진돼 온 군산·장항 국가산업단지 개발로 인해 언제 사라질 지 모르던 백척간두의 땅, 위기의 땅에서 비로소 생명의 땅, 생태보고의 땅으로 되살아나게 된 것이다. 학계, 환경단체, 주민, 기관이 모두 나서 이뤄낸 쾌거요 살아 숨쉬는 대자연의 승리다. 서천 갯벌이여, 영~원~하~라!

세종시 해법, 토끼몰이 다음엔 올무?

 

토끼몰이란 게 있다.

지금이야 일부 겨울철 축제에서 전통놀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육 토끼를 사다 풀어놓고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맨손으로 잡게 하는 깜짝 이벤트로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웬만한 시골마을이나 학교 뒷산에서 흔히 펼쳐지던 연례행사이자 단체놀이였다.

우선 눈이 오면 마을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작대기 하나씩을 들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다 모이면 경험 많은 사람이 나서서 편을 가르고 작전을 짰는데 그 작전이란 게 기막히게 치밀했다. 그물의 유무에 따라 혹은 사람 수와 적설량에 따라 작전내용이 달라졌다.  
그물(족구네트처럼 생김)이 있는 경우엔 산능선에 목을 잡아 그것을 비스듬히 친 뒤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일제히 산토끼를 몰도록 작전을 짰고 그물이 없거나 눈이 많이 쌓였을 땐 토끼 은신처를 빙둘러 에워싼 뒤 위에서 아래쪽으로 몰아붙이며 포위망을 좁히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왜냐면 산토끼는 뒷다리 보다 앞다리가 짧아 위쪽으로는 잘 뛰지만 내리막쪽으로는 잘 뛰지 못하는 데다 당황하면 아예 굴러버리거나 갈피를 못잡기 때문이었다. 토끼몰이에서는 우연찮게 노루나 고라니가 잡히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토끼몰이는 시골학교의 전통이기도 했다. 해서 일부 학교에선 어느 해에 몇 마리를 잡았다는 '실적 통계'가 은연중에 대내림하기도 했다. 물론 그 학교 출신들은 지금도 동창회 같은 모임때면 으레 토끼몰이를 화제 삼아 서로 몇 마리 잡았느니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토끼몰이 전통이 남아있는 마을도 없거니와 설령 그것을 재현하려 한다 해도 고령화로 인해 산에 오를 사람조차 없는 딴세상이 됐다. 시골학교 역시도 대부분 폐교됐거나 학생수가 크게 줄어들어 엄두도 못낼 뿐더러 공부만 아는 귀한 자식들 동원해 토끼몰이 할 '간 큰 교사'도 없다.
다만 남아 있다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올무나 덫,독극물 등을 이용한 밀렵행위들 뿐이다. 이들 행위는 집단놀이 형식의 토끼몰이와는 근본이 다르다.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는 싹쓸이 심보에 잔인한 방식, 번식기를 가리지 않는 사계절 포획,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밀거래 등 온통 불법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필자가 아는 동네서 개 한 마리가 홀연히 없어졌다. 개 주인은 사냥 하기 위해 애지중지 길러오던 개라며 밤낮없이 찾아다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흘째 되던 날 동네 뒷산서 다 죽어가는 개를 끌고 내려왔다. 자신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 있더란다. 그 해 봄엔 동네 사람 하나가 그 올무에 걸려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쳐놓기만 했지 걷질 않아서다.

갑자기 토끼 잡는 얘길 꺼낸 이유가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꼭 예전에 토끼몰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뻔한 밀렵행위를 하는 것 같기도 해 기분이 찝찝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세종시 형국이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줄기차게 충청권 설득에 온힘을 쏟고 있는 정부와 여당, 청와대측을 보면 마치 토끼몰이 해서 안되면 올무라도 칠 것처럼 집요하다 못해 섬뜩하다. 충청권, 아니 그 안에 살고 있는 충청인들이 이리 몰면 예서 잡히고 저리 몰면 제서 잡히는 토끼란 말인가.

설령 토끼라 해도 그렇다. 순한 토끼도 건들면 무는 법이다. 토끼가 무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친 올무에 자기집 개가 걸렸을 때의 기분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실로 걱정 돼서 묻고 싶다.
지금 눈밭에는 자신들이 왜 쫓겨야 하는 지도 모르는 민초 토끼들이 잔뜩 내몰려 있다. 엄동설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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