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를 달리는 말(雪馬)'처럼 거침없이 내달리자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을 보면 1435년 3월 12일 함길도 감사가 아뢰기를 "길주 이북에 눈이 깊이 쌓여 우마가 태반이나 굶어 죽었고(중략) 새로 이사 온 백성들이 통행하지 못하옵기에 설마(雪馬)를 타는 자들을 시켜 미곡을 가지고 가서 구제하고 있습니다"란 기사가 나온다.
또 연산군편에는 1499년 7월 2일 이극균이 아뢰기를 "(전략) 적설이 많은 때를 만나서 화차를 운행할 수 없으므로 촌가의 설마(雪馬)를 가져다 화차를 싣고 암소로써 끌게 했더니 험한 곳도 오르내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정조때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거중기와 설마(雪馬),유형거,녹노 등 여러 운반기기를 이용해 공기(工期)를 5분의 1로 단축시켰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설마(雪馬)가 무엇일까. 내용으로 보면 사람이 타거나 물건을 싣는 기구 같다. 맞다. 설마는 썰매의 옛말이다.
감저(甘藷)가 감자가 되고 보패(寶貝)가 보배로, 석류황(石硫黃)이 성냥으로 변한 것처럼 본래 한자어였던 것이 고유어로 굳어진 예다.
소가 끄는 썰매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소를 길들일 때 자주 이용됐다.
어느 정도 자란 소를 일소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써 그 과정이 필요했다. 코를 갓뚫은 소에 썰매를 지운 다음 처음에는 땅위에서 썰매만 끌게 하다가 웬만큼 사람말을 알아들으면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다.
어릴적 그것을 많이 타본 필자는 지금도 당시의 느낌이 묘하게 남아 있다. Y자형의 큰 나무를 잘라 대충 만든 썰매도 불안하거니와 땅위를 바퀴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거친 승차감(?)에다 아직 길도 덜 들여져 시도때도 없이 날뛰는 소 때문에 잔뜩 겁먹고는 손잡이를 있는 힘껏 쥐어잡던 기억이 생생하다.
썰매는 뭐니뭐니 해도 얼음판 위에서 타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얗게 눈 내린 얼음판 위를 썰매타고 내달리다 보면 추위고 방학숙제고 뭐고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해가 마냥 짧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났던 건 얼음이 얇게 얼어 고무다리처럼 낭창낭창한 얼음판을 묘기부리듯 오가며 노는 일이었다. 그러다가는 얼음이 깨져 찬물에 풍덩 '메기' 잡고는 그 메기를 구워먹는답시고 불 피워 양말과 옷 말리다가 불티에 구멍 내 된통 혼나던 일은 추억속 백미다.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저수지처럼 깊은 곳의 얼음판에는 으레 숨구멍 같은 위험지역이 도사리고 있어 그곳에 빠졌다간 졸지에 동네사람 다 출동시키는 급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썰매타기는 예전 사람들도 즐겼던 것 같다. 인조때 형조판서를 지낸 이경전은 '노호승설마기(露湖乘雪馬記)'란 글을 통해 눈이 많이 내린 뒤 친구들과 함께 밤중에 썰매(雪馬) 탔던 추억을 65세에 남겼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최근 들어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들과 함께 썰매타기를 즐기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겨울축제 현장이나 팜스테이 마을, 펜션촌에선 인기있는 이벤트가 됐다. 더구나 올 겨울엔 잦은 눈과 강추위 때문인지 썰매 타는 이들이 더욱 많이 눈에 띈다. 비록 썰매 재질과 모양은 크게 달라졌어도 오랫 동안 잊혀졌던 고향의 모습이라 그런지 가슴 한쪽이 쿵쾅거릴 정도로 반갑다.
그렇다. 경인년 새해도 밝았으니 잠시만이라도 세상사 모두 잊은 채 어릴적 그 옛날로 돌아가 쌩~쌩 썰매 타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밤새 눈이 내려 아무런 흔적도 없는 눈판과 얼음판 위를 맨처음 달릴 때의 벅찬 기분으로, 올 한해도 거칠 것 없이 한껏 내달릴 수 있도록 한바탕 기분풀이 해보면 어떨까.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콧노래까지 신나게 부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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