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해법, 토끼몰이 다음엔 올무?
토끼몰이란 게 있다.
지금이야 일부 겨울철 축제에서 전통놀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육 토끼를 사다 풀어놓고는 참가자들로 하여금 맨손으로 잡게 하는 깜짝 이벤트로 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웬만한 시골마을이나 학교 뒷산에서 흔히 펼쳐지던 연례행사이자 단체놀이였다.
우선 눈이 오면 마을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작대기 하나씩을 들고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다 모이면 경험 많은 사람이 나서서 편을 가르고 작전을 짰는데 그 작전이란 게 기막히게 치밀했다. 그물의 유무에 따라 혹은 사람 수와 적설량에 따라 작전내용이 달라졌다.
그물(족구네트처럼 생김)이 있는 경우엔 산능선에 목을 잡아 그것을 비스듬히 친 뒤 아래로부터 위를 향해 일제히 산토끼를 몰도록 작전을 짰고 그물이 없거나 눈이 많이 쌓였을 땐 토끼 은신처를 빙둘러 에워싼 뒤 위에서 아래쪽으로 몰아붙이며 포위망을 좁히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왜냐면 산토끼는 뒷다리 보다 앞다리가 짧아 위쪽으로는 잘 뛰지만 내리막쪽으로는 잘 뛰지 못하는 데다 당황하면 아예 굴러버리거나 갈피를 못잡기 때문이었다. 토끼몰이에서는 우연찮게 노루나 고라니가 잡히기도 했는데 그런 날은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토끼몰이는 시골학교의 전통이기도 했다. 해서 일부 학교에선 어느 해에 몇 마리를 잡았다는 '실적 통계'가 은연중에 대내림하기도 했다. 물론 그 학교 출신들은 지금도 동창회 같은 모임때면 으레 토끼몰이를 화제 삼아 서로 몇 마리 잡았느니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토끼몰이 전통이 남아있는 마을도 없거니와 설령 그것을 재현하려 한다 해도 고령화로 인해 산에 오를 사람조차 없는 딴세상이 됐다. 시골학교 역시도 대부분 폐교됐거나 학생수가 크게 줄어들어 엄두도 못낼 뿐더러 공부만 아는 귀한 자식들 동원해 토끼몰이 할 '간 큰 교사'도 없다.
다만 남아 있다면,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올무나 덫,독극물 등을 이용한 밀렵행위들 뿐이다. 이들 행위는 집단놀이 형식의 토끼몰이와는 근본이 다르다. 한 마리라도 더 잡으려는 싹쓸이 심보에 잔인한 방식, 번식기를 가리지 않는 사계절 포획,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밀거래 등 온통 불법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필자가 아는 동네서 개 한 마리가 홀연히 없어졌다. 개 주인은 사냥 하기 위해 애지중지 길러오던 개라며 밤낮없이 찾아다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사흘째 되던 날 동네 뒷산서 다 죽어가는 개를 끌고 내려왔다. 자신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 있더란다. 그 해 봄엔 동네 사람 하나가 그 올무에 걸려 발목을 다치기도 했다. 쳐놓기만 했지 걷질 않아서다.
갑자기 토끼 잡는 얘길 꺼낸 이유가 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이 꼭 예전에 토끼몰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뻔한 밀렵행위를 하는 것 같기도 해 기분이 찝찝하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세종시 형국이다.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줄기차게 충청권 설득에 온힘을 쏟고 있는 정부와 여당, 청와대측을 보면 마치 토끼몰이 해서 안되면 올무라도 칠 것처럼 집요하다 못해 섬뜩하다. 충청권, 아니 그 안에 살고 있는 충청인들이 이리 몰면 예서 잡히고 저리 몰면 제서 잡히는 토끼란 말인가.
설령 토끼라 해도 그렇다. 순한 토끼도 건들면 무는 법이다. 토끼가 무는 것도 그렇지만, 자신이 친 올무에 자기집 개가 걸렸을 때의 기분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봤는지, 실로 걱정 돼서 묻고 싶다.
지금 눈밭에는 자신들이 왜 쫓겨야 하는 지도 모르는 민초 토끼들이 잔뜩 내몰려 있다. 엄동설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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