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둥지의 교훈과 아이티 강진 대참사
까치들이 바빠졌다. 연초의 한파와 폭설 때 잔뜩 움츠렸던 모습과는 달리 날갯짓이 경쾌하다. 울음소리도 달라졌다. 추위 속 눈보라 칠 때만 해도 잔뜩 고뿔 걸린 소릴 내더니만 이젠 제법 맑은 소릴 낸다. 겨울을 '진하게' 나면서 득음이라도 한 양 소리가 딴판이다.
그들이 부산 떠는 까닭이 있다. 둥지틀기를 시작한 때문이다. 성급한 까치는 지난해 12월부터 나뭇가지를 물어나르고 있지만 대부분은 1월 중·하순께부터 둥지틀기에 들어갔다. 생각건대 까치가 한반도서 가장 이르게 둥지 트는 새가 아닌가 싶다. 다른 새들은 감히 꿈도 못 꿀 시기에 까치들은 태생적인 부지런함으로 남들보다 먼저 한 해 살림을 시작한다. 이 점이 바로 까치의 가장 큰 속성이다.
까치가 다른 새보다 이르게 둥지틀기에 들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둥지를 튼튼하게 짓기 위해서고 또 하나는 생태시계에 맞춰 새끼를 기르기 위함이다.
까치둥지는 매우 튼튼하다. 겉으로 보기엔 나뭇가지를 대충 얹어 얼기설기 지은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질 않다. 시골서 자란 사람이라면 태풍에 넘어진 나무 꼭대기의 까치둥지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육중한 나무줄기와 함께 땅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도 어디 수박 깨지듯 폭삭 부서진 것을 한 번이라도 본 일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튼튼하다.
까치둥지가 튼튼한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람 손으로는 도저히 흉내도 못낼 치밀한 건축 솜씨와 이중구조 때문이다. 무려 1600~2000개나 되는 나뭇가지를 물어다 단단한 부리로 이리 꿰고 저리 엮어 마치 철옹성 같은 둥근 외벽을 만든 다음 안쪽에는 부드러운 식물 줄기와 뿌리, 동물털 등으로 안락한 내부둥지를 튼다. 비바람에도 까딱없는 역학구조라 건축가들도 놀란다. 더욱 경이로운 건 바람이 거센 지역일수록 바깥둥지 모양을 유선형에 가깝게 짓는다는 점이다. 바람에 잘 견뎌내기 위해서다.
까치둥지는 인고의 산물이다. 절대로 얼렁뚱땅 짓질 않는다. 수많은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물어다 짓기에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이나 걸린다. 그러니 자연 겨울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묵은 둥지를 보수해 사용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늦어도 1월 중·하순엔 시작해야 2월 중·하순 혹은 3월 이후 산란이 가능하다. 게다가 알 낳는 기간과 알 품는 기간(17~18일)을 합하면 둥지 틀고 난 뒤에도 거의 한 달 가까이 돼서야 새끼가 태어난다.
까치는 바로 그 기간을 계산한 것이다. 자신들의 새끼가 태어날 때쯤이면 먹이들도 활동하게 되는 생태고리를 익히 알고 있음이다. 참으로 신통방통하고 오묘한 까치세계다.
자연 앞에 힘 없이 무너진 아이티 대참사를 보면서 언뜻 떠오른 게 까치둥지의 교훈이다. 자신들에게 닥쳐 올 대자연의 역경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모진 겨울 인내를 통해 미리 대비하는 까치들의 지혜. 비바람 아니라 나무가 송두리째 넘어가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만큼은 까딱없게 만들 줄 아는 그들의 유전자가 한치 앞도 못 내다 보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강진발생 가능성은 우리나라도 존재한다. 아이티의 눈물이 결코 남의 집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조급증으로 얼렁뚱땅 지어진 건축구조물이 아직 남아있지는 않은지. 내진시설 강화책과 함께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아울러 급변하는 자연현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개구리가 뜀 뛰듯 언제 어디서 어떤 시련이 돌발할 지 모르는 게 작금의 지구환경이다.
위기의 시대, 급변의 시대에 절실한 게 전천후 대비 자세다. 나라는 나라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만사 불여튼튼의 마음가짐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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