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어릴때 '금단의 장난'을 한 적 있다. 제비를 올가미로 잡았다 풀어준 것이다.
함부로 대하면 죄받는다는, 그래서 성스럽게 여기기까지 했던 제비를 산 채로 잡았다 풀어주는 별난 짓을 벌였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대체 제비 몸뚱이가 얼마나 가볍기에 가느다란 거미줄에 걸렸을 때 거미줄이 끊어지지도 않고 쉽게 빠져 나오지도 못하는가 하는 의문 때문에 엉뚱한 짓을 벌였던 것이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두려워서다. 해서 아랫집 친구를 꼬드겼다. 한데 그 친구 왈 "그 까짓것 뭘 겁내냐"며 선뜻 응했다. 더구나 자기네집 제비를 자기가 직접 올가미 쳐 잡아보겠다고 나섰다.
거사(?)는 그렇게 이뤄졌다.
제비는 정말 가벼웠다. 솜뭉치 같았다. 몸에 살점은 없고 털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제비를 만져본 다음 곧바로 풀어줬다. 다행히도 그 제비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친구네집 둥지에 머물면서 새끼를 까 나갔다. 지금 생각해도 엉뚱했던 당시 그 경험 덕에 제비가 거미줄에 걸려드는 이유를 알긴 했지만 가슴속에 미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한반도에 제비가 언제 찾아오는지를 정확히 알아내려는 노력이 수년전 진행된 바 있다. 아마추어탐조동호인연합이 그 주체로 이 모임에서는 지난 2006~7년께 전국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른 봄철 제비를 목격한 장소와 시기를 온라인을 통해 제보 받았다. 이른바 제비 도래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제비 도래전선이란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를 각 지역에서 기록해 날짜별로 선으로 연결한 것으로, 이웃나라 일본에선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당시 탐조동호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세한 제비 전선은 완성되지 못했지만, 제비는 이동기의 기온 여하에 따라 매년 도래날짜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예전보다 일러지는 경향이 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다. 실례로 지난 2007년의 경우 3월 이전인 2월 26일에 전남 해남 영암호 간척지에서 1마리가 발견된 것을 시작으로 3월 3일엔 전남 홍도에서 3마리, 3월 5일엔 경기 고양 서오릉부근에서 2마리, 3월 6일엔 충남 서산에서 1마리가 목격됐다.
이같은 도래현황은 예년에 비해 열흘에서 보름가량 이른 것으로 특히 홍도의 경우 2006년엔 3월 15일께 첫 도래보고가 있었던 것에 비해 무려 17일 가량 이르게 도래했다. 당시 동호인연합 관계자는 "2007년 겨울 유례없는 이상기온 현상으로 생물들의 생태시계가 혼돈을 일으켜 제비들도 이동시기가 일러진 것 같다"고 풀이한 바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의 조사자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점차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제비들의 이른 귀향이 또다른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들어 잦아진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귀향길이 황천길로 바뀌는 불운한 제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월동지를 떠날 땐 푹했던 날씨가 도중에 혹은 한반도 도착 즈음에 돌변하면서 제비가 탈진하거나 얼어죽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계절은 어느덧 제비가 찾아오는 시기다.
성급한 제비들은 이미 한반도 남쪽 어느 곳에 고단한 날개를 접었을 법도 한데 아직 발견소식이 없다. 봄은 왔으나 제비가 보이지 않고 있다. 춘래미도래연(春來未渡來燕)이니 불사춘(不似春)이라 해야 할까.
봄과 겨울이 마냥 널뛰기하는 동안 이역만리 날아온 제비의 꿈이 산산이 깨지고 있다. 날씨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 날씨를 누가 불러왔는가. 흩어진 제비의 꿈에 혹 우리 미래의 꿈은 없는지. 조용한 봄에 조용히 되새겨 볼 일이다.(2010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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