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젤라 불어대면 "뱀 나온다"
옛 어른들은 집안에서 나는 '큰소리'를 경계했다.
말다툼하는 소리는 물론 흥얼거리듯 무심코 부는 휘파람까지 싫어했다. 휘파람을 얼마나 못마땅해 했으면 "이놈아, 뱀 나온다"며 손사래를 쳤다. 게다가 오밤중에 휘파람을 불면 "집안 망한다"며 꾸지람 했다.
집안에서 호드기를 불어도 언짢아했다.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나 밀짚 대를 꺾어 주둥이쪽을 얇게 만든 다음 피리처럼 불던 것이 호드기인데 이것을 밖에서 불면 별 상관 않다가도 집안에서 불면 영락없이 나무랐다. 그때도 잊지않고 던지던 말이 "뱀 나온다"였다.
집안에 손님이 왔을 땐 더 했다. 손님이 와 있는데 휘파람 불고 호드기 불었다간 날벼락이 떨어졌다.
코흘리개 시절엔 어른들의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실제로 뱀 나오고 집안 망하면 어쩌나 해서 겁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뱀 나오고 집안 망한 적은 없었다. 조금 더 크고 난 다음에야 알았지만 "어서 말 듣고 행동을 자제하라"는 어른들의 엄포였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그런 뻔한 거짓말로 엄포를 줬을까. 다시금 생각 하건대 일종의 자연 경외요 업이나 터주에 대한 공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집집마다 구렁이 같은 업 내지 터주가 있다고 믿어온 어른들이기에 행여 휘파람이나 호드기 소리가 그들을 노(怒)하게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금기시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건 옛 어른들의 교육방식이기도 했다. 집안에서 점잖아야 집밖에서도 점잖을 수 있다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해, 손님이 왔을 땐 손님에 대한 배려심을 심어주기 위해 돌출행동을 자제토록 신경썼던 것이다.
남아공에서 들려오는 부부젤라 소리가 연일 시끄럽다.
아니 시끄럽다 못해 왕짜증 날 정도다. 솥단지 만한 장수말벌집을 들쑤셔놔도, 수천 마리의 코끼리떼를 건드려놔도 아마 그렇게까지 요란하진 않을 게다. 머릿속에 온통 장수말벌이 들끓고 양쪽 귀로 코끼리떼가 뛰어드는 것처럼 정신이 없다. 하룻밤이 지나도 얼얼한 게 여운도 꽤 오래 간다. 기차소리, 사격장 소리보다 더한 120데시벨 정도라니 가히 소음공해다.
제 아무리 응원도구라고 해도 불 때 안 불 때가 있고 질서와 정도가 있는 법인데 이건 완전 도떼기시장은 저리 가라다. 시도 때도 없고 부는 사람 마음대로니 소리만 크면 장땡인가 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웬만한 사람은 다 하나씩 들고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오래 부나 돈내기하는 듯 설쳐댄다.
코끼리 울음소리라고는 하나 그냥 코끼리 울음소리가 아니다. 삼복더위에 불맞은 코끼리소리다. 줄루어로 '시끄러운 소리를 만든다'는 뜻에서 유래했건 '소나기'에서 유래했건 명칭부터가 예사롭지 않더니 그야말로 전세계인의 신경을 있는 대로 긁어놓고 있다.
그러니 말도 많다.
남아공 경기든 다른 나라 경기든 또 주야간 불문하고 줄기차게 불어대니 불쾌감을 넘어서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도 수없이 많다. 며칠전엔 부부젤라 사용을 반대하는 안티싸이트도 생겼다. 월드컵을 중계하는 각국 아나운서와 해설자까지 나서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FIFA는 부부젤라를 아프리카 전통으로 인정해 사용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지만 정작 불만이 극에 달한 건 축구팬들이다.
제 나라 경기장서 제 나팔 제가 분다는데 뭘 그리 탓하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대회가 뭔가. 화합의 마당 아닌가. 개막식때 보여준 바오밥나무는 폼이었나. 가정으로 따지면 손님을 불러놓고 소리만 꽥꽥 질러대는 격이다.
'무대뽀'에는 '무대뽀'가 약이다.
불든 짖든 까불든 우리 앞길을 가는 게 상책이다. 내일 새벽 나이지리아전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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