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꽃 피는 계절의 단상

 

 

1601년 프랑스에 미국으로부터 블랙 로커스트(Black Locust)란 나무가 들어왔다.

들여온 사람은 Jean Robin과 그의 아들. 그후 100여년이 지나 이 나무는 저명한 식물학자 린네에 의해 로비니아 수도아카시아(Robinia pseudoacacia)란 학명이 붙여졌다. 로빈이 들여온 아카시아 비슷한 나무란 뜻이다. 열대수종 아카시아를 닮았지만 아카시아는 아니다란 의미도 있다.

그후 187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세계박람회에 참가했던 일본인 쓰다가 수도아카시아 가로수를 보고 종자를 들여온 게 일본의 첫 도입 계기가 됐고 그것이 1878년 한 농업잡지에 니세아카시아란 일본이름과 明石屋樹란 한문이름으로 소개됐다. 일본어로 니세아카시아 즉 가짜아카시아라 부른 것은 종소명인 pseudoacacia를 그대로 번역한 때문이다. 문제는 아카시야노키(明石屋樹)란 일본식 한문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아까시나무란 모호한(?) 한국명을 낳고 나아가 아카시아란 그릇된 이름으로 부르는 빌미가 됐다는 점이다.

어쨋거나 아까시나무는 일본보다 16년 늦은 1891년 일본인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됐는데 그 목적이 조경용이었다. 다름 아닌 사까키란 사람이 중국 상하이에서 묘목을 가져다 인천공원에 심은 것이다. 그뒤 1898년 일본출정철도감부가 인천 월미도에 조림한 것을 비롯해 1940년까지 무려 1억그루 가까이 심어졌다.

해방후에도 아까시나무는 계속 심어져 한때 인공조림수의 10%에 이를 만큼 사방·조림공사가 꾸준히 이뤄져 오다가 산림녹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공식재가 중단됐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번째의 아까시나무 대국이 됐다.

그러나 아까시나무에 대한 국내 인식은 정반대다. 도입된지 100년 넘는 유일한 나무이자 우리나라 조림역사의 산증인인 대표수종이 되레 쓸모없는 나무로 푸대접 받는 신세다. 기껏해야 양봉가들의 밀원수 내지 땔나무 정도로만 인식될 뿐 가구용 고급목재나 건축용 목재, 동물사료용으로 널리 이용하면서 줄곧 식재면적을 넓히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전혀 딴판이다. 원산지인 미국조차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우리 다음으로 넓은 식재면적을 갖고 있는 헝가리도 목재수요량의 80%를 아까시나무로 대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서 아까시나무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데는 2가지 원인이 있다. 하나는 일제 강점기때 들여왔다는 부정적 시각이고 또 하나는 조상묘를 해치는 나쁜 나무란 인식이다. 일본인이 들여온 나무가 조상묘를 파고드는 것도 미워죽겠는데 뽑아도 뽑아도 계속 돋아나니 좋아할 리 만무란 얘기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일제때 그들이 자체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헝가리의 성공사례를 들어 아까시나무의 긍적적인 면이 부각돼 있다. 재질의 내구성이 좋아 농기구재로 그만이며 토양개량 효과가 있어 산림황폐화를 막는데도 효과적이라고 소개된 것이다. 수탈의 상징인 철도 침목을 만들고 우리 산야를 망치기 위해 들여왔다고 믿는 우리들로서는 한번쯤 곱새겨볼 만한 대목이다.

또 한가지 아쉬움은 민둥아까시나무에 대한 푸대접이다. 우리나라 산림청은 1960년대 세계 최초로 가시없는 민둥아까시나무를 개발하고도 가치를 이해 못해 활용은커녕 방치하고 있었는데 미국서는 이를 다량 번식해 귀중한 사료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기막힌 일이다. 천안제일고 교정에 쓸쓸히 서있는 민둥아까시나무 원종들을 떠올릴 때마다 아까시나무 대국이면서 아직도 생태교란종 논란만 거듭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부끄러워 손톱밑이 가시 찔린 것처럼 아려온다. 아~까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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