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의 처량한 신세를 잊지 말자

 

  미국의 농학자이며 식물병리학자인 노먼 볼로그란 사람이 있다. 2009년 타계한 그는 세계적인 식량증산에 기여한 공로로 197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미국 대통령 자유의 메달과 미 의회 금메달까지 받았다. 지금까지 이 3가지 상을 모두 수상한 이는 5명뿐이다.
 

 볼로그는 1942년 미네소타 대학에서 식물병리학과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멕시코에서 수확량이 많고 병해에 강한 밀 종자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4배나 많은 꿈의 밀을 개발해 멕시코, 파키스탄, 인도 등에 제공했다. 이 일로 멕시코는 단숨에 밀 수출국으로 변했으며 파키스탄과 인도는 밀 생산량이 2배로 증가해 식량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막힌 사실 하나가 있다. 녹색혁명의 결정적 역할을 한 꿈의 밀이 바로 우리나라 토종 밀의 개량종이란 사실이다. 앉은뱅이밀 혹은 난쟁이밀로 불리던 우리나라 달마종이 일본으로 건너가 농림 10호가 되고 이 것이 멕시코로 건너가 볼로그박사에 의해 소노라란 품종으로 재탄생된 것이다.

 

 기막힌 얘기 또 하나가 있다. 청양고추 얘기다. 청양고추는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 종자업체였던 중앙종묘

가 개발한 품종으로, 작고 매운 우리나라 토종 고추와 태국산 고추를 교배해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매운 고추의 대명사가 된 이 청양고추의 신세가 낙동강 오리알처럼 참으로 안타깝게 돼버렸다. 청양고추 종자를 보유하고 있던 중앙종묘가 1998년 멕시코계 세미니스에게 넘어가고 2005년엔 또 다시 미국계 몬산토에 인수됨으로써 종자 주권(主權)이 그들 소유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엉뚱한 타령만 하고 있다. 청양고추가 충남 청양이 원산지이니, 경북 청송과 양양이 고향(이들 지역명의 앞글자를 따서 청양고추가 됐다는 설)이니, 귀하고 비싸다는 뜻의 천냥고추에서 유래됐느니 말싸움만 하고 있다. 몬산토가 종자를 팔지 않으면 더 이상 재배할 수도, 매운 맛을 볼 수도 없게 됐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의 종자산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IMF 당시 국내 4대 종자업체이던 흥농·중앙·서울·청원종묘가 모두 외국업체에게 인수당한 이래 무려 800여개 업체가 종자를 만들고 있지만 그들의 97%가 종업원 10인 이하의 영세업체들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내 시장 점유율도 말이 아니다. 거대업체인 몬산토, 듀폰, 신젠타, 다키이 등이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약 26만점의 유전자원을 보유한 세계 6위라는 우리나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웬만한 종자는 외국에서 사오니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늘어만 가는 로열티가 말해준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최근 국내 재배면적이 늘고 있는 파프리카의 경우 종자 1g 가격이 12만원선이다. 금 1g 가격이 5만원선이니 금값의 2배가 넘는 셈이다. 파프리카 종자 1g이라고 해봤자 200알도 채 안 된다.

 

 이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그동안 미비했던 종자산업법의 개정 작업이 국회에서 진행중이란 소식이다. 국민중심당 심대평대표 등 11명이 발의해 현재 소관위원회 심의중인 종자산업법 일부 개정법률안은 국내 종자산업의 육성과 지원을 위해 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고 나아가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등 종자산업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농림수산식품부가 종자산업을 농업분야의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육성키로 한 가운데 한국형 시드밸리인 민간 육종연구단지의 조성방안이 제시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비록 늦기는 하지만 국내 종자산업이 눈을 뜨고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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