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충과 들풀에 시달려야 하는 농민들에게는 농약이 한 때 구세주나 다름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기를 쓰고 잡아내고 뽑아내도 뒤돌아보면 불가사리처럼 또 다시 생겨나는 게 해충과 들풀이었으니 그 어떤 농민인들 이들을 손쉽게 없애주는 농약이 구세주 같지 않았겠는가.

 

물약이든 가루약이든 이리저리 흩뿌리기만 하면 해충과 들풀이 죄 다 없어지는 것을 본 농민들은 어쩌면 농약을 뿌리면 뿌리는 대로 효과를 보는 신통방통한 요술방망이 같은 존재로까지 여겼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농민들의 가슴 속엔 어느덧 농약이면 만사 오케이라는 '농약 만능주의'가 생겨나 걸핏하면 분무기를 짊어지고 논밭으로 나섰고 장을 보고 오는 농민들의 손 마다에는 두 세 종류의 농약봉지가 쥐여져 있었다.

 

심지어는 기생해충인 이와 벼룩을 잡는 데도 농약이 동원돼 그 독하디 독한 DDT를 온몸에 바르고도 모자라 주머니에 넣어 바지가랑이 속에 달고 다니기까지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1960~70년대 모습이요 '농약혁명'이 오던 시절의 얘기다.

 

그러나 이러한 농약만능주의의 폐해는 곧바로 나타나기 시작해 곳곳에서 농약중독에 따른 인축(人畜) 피해가 잇따르고 논밭에서는 메뚜기와 개구리가 자취를 감춰갔다.

 

또한 강에서는 기형어가 잡히고 철새의 몸에서는 농약성분인 중금속이 검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하여 사람이 먹는 우유와 모유, 인체에서 고농도의 농약성분이 검출되는 최악의 사태까지도 빚어졌다.

 

그 결과 우리 나라에서도 1980년 말 농약관리법이 제정된 데 이어 이듬해 3월엔 환경청 고시로 농작물 중 농약잔류 허용기준이 설정됐으며 이와 함께 농작물별로 각 농약의 사용회수, 수확 전 살포 가능일수 등이 설정된 농약 안전사용기준이 공포됐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농약 본래의 특성상 약효기간에 따른 잔류문제로 많은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

 

특히 DDT,BHC 등 유기염소계 농약은 생산이 중지된 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분해되지 않은 채 독성을 발휘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서는 고분해성 농약이 상품화되고 있으나 농민들이 수확 바로 전까지 이를 살포함으로써 여전히 잔류성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반 시장에서 유통 중인 시금치, 상추 등에서 법정 허용치를 최고 9백 배까지 초과하는 농약성분이 검출돼 이를 출하한 농민들이 무더기로 입건된 적이 있다.

 

적발된 농민들 중 일부는 출하 하루 전에도 상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농약을 살포한 것으로 드러나 '빗나간 농심(農心)'을 그대로 엿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한 시대일지언정 자신들의 부모 형제가 먹을 수 있는 채소에 농약을 잔뜩 발라 출하시키는 '검은 마음'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아연실색이요 기가 막힐 따름이다.

 

농약은 잘못 쓰면 극약이요 아무리 잘 써도 보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왜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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