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철에 물고기를 잡아보면 대부분은 잡는 순간 알 또는 정자를 몸밖으로 내 쏟는다.

 

온 집안을 쏘다니며 주부들의 가슴을 걸핏하면 콩알가슴으로 만들어 놓는 바퀴 벌레도 알을 실었을 때 잡으면 죽기 직전 영락없이 알을 깔린다.

 

사람도 병에 걸려 쇠약해지면 이성을 더 밝힌다는 얘기가 있고 목을 매 자살하거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도 숨을 거두는 순간 무의식적이지만 방정행위와 비슷한 행위를 한다는 얘기가 있다.

 

도축장의 소나 돼지들도 그같은 본능적인 방정행위를 하긴 마찬가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쓸모 없는 소나무 솔방울만 잔뜩 맺는다'는 말처럼 식물인 소나무 역시 영양상태가 나빠지거나 수세(樹勢)가 약해지면 서둘러 솔방울을 많이 맺는다.

 

이렇듯 미물이건 사람이건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 종족보존행위가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어찌 보면 그 종족보존행위 자체가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본연의 임무요, 하늘이 부여한 지고지순의 대임(大任)임을 입증해 준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관심을 끄는 실험결과가 나와 있다.

 

그것은 무두웅(無頭雄), 즉 '머리잘린 수컷'이란 소름끼치는 단어를 낳은 사마귀의 짝짓기에 관한 실험이다.

 

이 실험결과는 과거 2백여 년 동안 전세계 생물학계를 지배해 온 이론으로서 '사마귀 수컷은 짝짓기할 때 대부분 암컷에 의해 머리가 잘려지며 오히려 머리가 잘린 후 더욱 강렬하게 짝짓기 행위를 하고 마침내는 새끼들의 영양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암컷에게 잡혀 먹힌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최근 미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대학 연구팀이 실시한 반증실험을 통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에 부딪혀 있다.

 

다시 말해 최근의 실험은 과거 학자들이 사마귀의 짝짓기 장면을 관찰할 때 실험실 조명을 너무 밝게 해 암컷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게 했거나 암컷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지 않아 수컷을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론이야 어떻든 실제에 있어서는 머리가 잘려진 채 암컷 등에서 떨고 있는 무두웅의 사마귀가 가을철이면 더러 눈에 띈다.

 

이 때 신기한 것은 암컷 등을 타고 있는 수컷 사마귀는 비록 머리는 잘려져 암컷의 먹이가 됐지만 짝짓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짝짓기 기관을 암컷의 그것에 맞댄 채 계속해서 작짓기 행위를 하며, 암컷 역시 짝짓기를 마칠 때까지는 수컷을 잡아먹지 않고 있다가 그것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비로소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같은 장면을 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동변상련(?)과 함께 이 시대 남자들의 '고개숙인 뒷모습'을 떠올린 바 있다.

 

연쇄부도다 구조조정이다 하여 가는 곳마다 고개 숙인 남자요 어깨 쳐진 남자뿐인 요즘, 무두웅의 사마귀가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곧 나라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해 죽어라 일해 왔건만 대접은 커녕 하루아침에 내쫓김을 당해야 하는 이 시대 남자들의 신세가 '씨 주고 몸까지 바쳐야 하는 수컷 사마귀의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리라.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는 고개 숙인 남자들의 뒷모습은 차라리 머리가 없어 보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마냥 풀이 죽은 채 '머리 쳐 박은 자라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또 심한 자멸감과 자괴지심에 집을 뛰쳐나와 노숙생활을 하며 통한의 나날을 보내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원 칼날은 조금도 무뎌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갈수록 날카로워지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장들이 무두웅 신세가 될 지 걱정이다.

 

환경호르몬인가 뭔가 하는 죽음의 재들은 자꾸만 정자 수를 줄여 '남자 구실'을 빼앗아 가고 사회 경제 분위기는 삶의 의욕과 일터를 빼앗아 왕따 아닌 왕따로 만드는 극도의 위기 시대.

 

무슨 업보를 짊어졌길래 이 불운의 시대에 하필 태어나 이 시대의 잘못이란 잘못은 몽땅 다 뒤집어쓰고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는지.

 

오호 애재라.

 

남자들이여, 그대들의 이름은 정녕 '시대의 희생양'일 뿐이란 말인가.

 

(이 글은 1990년대 말 IMF 시기에 쓴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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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으로 인해 인류의 생식기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화학물질이 체내에 들어가 여성호르몬과 흡사한 작용을 할 경우 약(弱)정자증을 유발하는 등 수컷을 무기력화 시킨다는 이른바 '환경호르몬 이론'이 확산하면서 전 인류를 생존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1992년 덴마크 코펜하겐대 스콧 케벡박사는 연구논문을 통해 성인남자 1만4천여 명의 정액을 분석한 결과 정액 1㎖당 정자수가 1940년도에는 평균 1억1천3백만 개였으나 반세기가 지난 1990년도에는 6천6백만 개로 격감했으며 정액의 양도 그 사이에 3.4㎖에서 2.7㎖로 줄어드는 등 인간의 정자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1995년 프랑스 오제박사는 1973년 8천9백만 개로 나타났던 성인 남자들의 정자수가 1992년에는 6천만 개로 줄어드는 등 매년 2.1%의 비율로 감소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 후 일본의 데이쿄대 오시오 시게루교수는 최근 신체 건강한 남학생 30여 명의 정액을 얻어 정밀 분석한 결과 정자 수와 정자의 운동률(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정자의 비율)이 모두 정상인 학생은 단 2명뿐이었다는 보다 심각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상적인 성인 남자의 정자 수는 정액 1㎖당 1억 개 정도이며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는 정자수가 2만 개 이하, 정자의 운동률이 50% 이하면 불임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의 오시오교수가 조사한 피검 학생들의 평균 정자 수는 1㎖당 4천만 개 정도인 반면 운동률은 50%를 크게 밑돌아 운동률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현재 심각한 불임위기에 놓여있음이 확인됐다.

 

인류는 수십만 년 전부터 지구상에 뿌리를 내려 종족보존과 함께 찬란한 문화를 일궈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산업화 공업화가 낳은 각종 공해물질로 인해 인류의 생활환경은 크게 악화돼 거의 모든 인류가 심각한 공해병을 앓고 있다.

 

인류문명의 발달은 또 한편으론 사람의 평균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리는 계기를 만든 반면 다른 한편으론 환경호르몬의 양산으로 '생식기능의 저하'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만일 프랑스 오제박사가 밝힌 대로 매년 2.1%의 비율로 인간의 정자수가 준다면 앞으로 길게 잡아봐야 60년 안에 우리 인류는 '임신 불가'라는 씻지 못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꼭 그렇게 되기야 하겠냐마는, 그렇다고 그냥 흘려보낼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갈수록 지구환경이 악화하면서 남성들로 하여금 제 구실을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 측은한 생객마저 든다.

 

남성들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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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주 작은 새가 있었다.

 

몸집이 어찌나 작던지 꼬리까지 합쳐봐야 고작 13cm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생김새는 무척 귀여워 얼굴과 가슴에 난 털은 갓 태어난 강아지 털처럼 복슬복슬하고 눈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동그랗고 초롱초롱해 여간 예쁜 게 아니었다.

 

부리는 십자매처럼 짧고 뭉툭하나 오히려 풀씨와 같은 딱딱한 먹이를 먹거나 둥지 틀기에 아주 제격이고 머리와 등은 진한 적갈색에 가슴과 배는 옅은 황갈색을 띠어 귀티까지 났다.

 

사람들은 이 같은 특징을 들어 이 새에게 '붉은머리오목눈이'란 근사한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이름은 잊혀지고 전혀 엉뚱하게 '뱁새'라는 이명(異名)으로 불리면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됐다.

 

한 마디로 불운의 씨앗은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작고 가늘게 옆으로 째진 눈을 '뱁새눈', 작고 샐룩한 눈을 '뱁새눈이'라고 하여 마음껏 폄하는가 하면 남이 한다고 덩달아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다가 되레 화를 입으면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이 새는 그러한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열중하며 충실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몸집은 비록 작지만 둥지를 틀 때면 다른 새보다 열 배 백 배 더 바삐 움직이며 둥지 재료를 물어 나르고 날라 온 재료는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 튼튼한 보금자릴 만든다.

 

또한 번식기가 돼 알 낳아 새끼 깔 때에는 한 시라도 경계를 늦추지 않다가 작은 새라고 깔보고 덤벼드는 천적이 있으면 죽을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강한 모성애까지 보인다.

 

하지만 번식기가 지나 새끼(한 배에 보통 3~5마리를 낳음)가 어느 정도 자라면 본래의 온순한 성질로 되돌아와 사람이 다가가도 본체만체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

 

참으로 부지런한 새요 보면 볼 수록 정감이 가는 새다.

 

비록 비아냥조의 뱁새라는 껄끄러운 별명이 붙어 있지만 그것은 순전히 타의적인 것이고 타고난 모성애와 부지런함은 말 그대로 '자연계의 귀감'이요 '생태계의 모범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범생도 갈수록 심화되는 환경오염과 먹이고갈로 점차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산란기 때 어미가 물어다 준 농약 묻은 먹이를 먹고 시름시름 죽어 가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몸집이 작고 눈이 오목하게 들어간 것이 무슨 큰 업보인 양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해 온 것만도 억울해 장이 뒤틀릴 판인데 이젠 사람들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생명까지 위협당하고 있으니 운명 치곤 대단히 재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이제 그들은 '잘난 우리들', '잘난 인간들'을 향해 항변하고 있다.

 

대자연의 중요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알량한 경제적 부만을 좇아 죽을 둥 살 둥 개발과 파괴를 일삼다가 결국―당신들이 우리더러 뭐가 뭐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고 했듯이―양쪽 가랑이가 홀라당 찢어져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된다고.

 

그들은 또 '어리석은 우리들'을 향해 욕하고 있다.

 

저희들이 양산해낸 환경호르몬인가 뭔가로 인해 갈수록 사람구실도 못하고 움푹 들어가 샐룩해진 눈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뱁새눈이요, 왕쪼다다"라고 말이다.

 

쪼다 중의 쪼다 왕쪼다.

 

이것이 자연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의 질타요 우리들의 현재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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