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법칙, 강한 자는 사라진다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동물이 있다. 다람쥐다. 비록 산골 숲속이 아니더라도 도시근교의 야산과 공원, 심지어 학교운동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다람쥐다.
계절이 가을인 만큼 그들이 먹이 모으느라 분주히 움직이기에 자주 마주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개체수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산행을 다녀왔거나 밤 주우러 갔다온 사람들 마다 "곳곳이 다람쥐 천지"라고 말 할 정도로 숫자가 많아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갑자기 많아진 야생 고양이 때문에 먹잇감인 다람쥐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각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는데, 20년도 채 안 된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야생 고양이 천국이 아닌 다람쥐 천국이 돼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자연 생태계에는 야생 고양이만 다람쥐의 천적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 뱀도 있고 족제비, 오소리, 담비, 삵, 너구리도 있다. 맹금류인 올빼미와 매 무리도 대표적인 천적이다.
먹이사슬내의 약자인 다람쥐로서는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모험일 정도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천적이다. 도토리 하나 밤톨 하나를 주워도 맘 편히 먹지 못하는 게 다람쥐다. 밤과 낮, 하늘과 땅 가리지 않고 온통 천적으로부터의 위험 뿐이니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어쩌랴. 먹이사슬의 법칙은 늘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강자는 그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과 생태계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약자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게 자연 생태계의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약자인 다람쥐는 여전히 건재할까. 1990년대 중반기 상황으로는 얼마 안 가 다람쥐는 사라지고 야생 고양이만 들끓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야생 고양이의 숫자가 늘기는커녕 되레 줄어든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약육강식의 논리대로라면 먹이사슬의 아랫단계로 내려 갈수록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사라져야 할 텐데, 오히려 최하위 단계인 다람쥐는 사라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엔 그 숫자가 더욱 늘었음은 무슨 까닭일까.
거기에 더하여 국내 먹이사슬의 최상위 단계인 호랑이와 표범, 늑대, 여우가 이미 멸종된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먹고 먹히는 힘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한반도 생태계를 지배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강한 자는 사라진다는, 아니 강한 자부터 사라진다는 생태계의 법칙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하면 약한 자는 남는다는 뜻이니 결국 자연 생태계를 끝까지 유지시켜 나갈 최후 보루는 다람쥐와 토끼 같은 약자들이다.
약자는 비록 약할 망정 강자가 갖고 있지 않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겸손함과 부지런함이다. 호랑이가 사라진 곳에선 늑대가 늑대가 사라진 곳에선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먹이사슬의 윗단계로 올라 갈수록 우쭐대고 뽐내며 게으른 습성이 있지만 약자인 다람쥐와 토끼는 힘이 없기에 스스로 낮출 줄 알고 부지런을 떤다.
둘째,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이 뛰어나다. 푸른숲에서 민둥산으로, 민둥산에서 또 다시 푸른숲이 되기까지 숱한 서식환경 변화를 겪어오는 동안 이 땅의 최상위 동물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쇠퇴한 반면 최하위 동물인 다람쥐와 토끼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은 바로 뛰어난 환경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 때문이다.
맹수는 배가 고파야 사냥한다. 힘이 있기에 그 힘만 믿다보니 생긴 습성이다. 하지만 다람쥐와 토끼는 늘 움직이며 먹어댄다.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이지만 절대 포기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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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가 사람 잡네

 

요즘 산골 사람들의 얼굴빛이 무척이나 어둡다. 측은할 정도다. 송이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이철이 다가왔건만 정작 송이가 나지 않으니 심기가 말이 아니다. 가슴이 타들어간다는 사람도 있다.
안 나는 정도가 아니다. 송이가 나기만 하면 하루에 보통 10kg 이상은 거뜬히 따는 꾼들마저도 온종일 산을 타봤자 고작 몇 백g 따기 일쑤요, 그나마 웬만한 사람은 송이 구경조차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사로 치면 폐농 수준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송이 보따리를 풀기 보다는 한숨 보따리만 늘어놓고 있다. 다들 밥 굶어 죽기 십상이란다. 송이가 사람 잡는다는 푸념까지 덧붙인다.
송이가 나지 않으면 산에 오르지 않으면 될 것을 왜 사서 고생하냐고 반문할 지 모르나 그건 송이꾼 마음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이제나저제나 송이가 나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지만, 하나든 둘이든 자신의 송이밭에서 나는 송이는 제 날짜에 꼭 따내야 하는 그들만의 철칙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밭을 지켜내지 못한다. 만약 오늘 올라온 송이를 하나라도 따내지 않으면 그 송이밭은 십중팔구는 끝이다. 그 송이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밭 전체를 잃는다. 다행히도 송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송이만 따고 밭은 건드리지 않는데 그건 극소수고 대부분은 또 다른 송이를 찾기 위해 그 주변을 무자비하게 파헤친다. 먹잇감 하나를 발견한 멧돼지가 애먼 곳까지 온통 파헤쳐 놓듯이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 좋든 싫든 무작정 산을 올라야 하고, 그래서 나오는 게 "송이가 사람 잡네"라는 넋두리다.
산골 사람들에게 송이는 일년 농사나 다름 없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재미로 송이를 따러 산에 오른다고 하지만 산골 사람들은 송이 따는 일이 밥줄이요 돈줄이다. 송이 팔아 식량 사고 자녀들 학비까지 댄다. 지인들 중에는 한해 송이 따서 버는 수입이 2천~3천 만원은 족히 넘는 사람이 여럿 있다. 한해 연봉이 단 며칠 만에 쏟아지는 셈이다. 그런데 송이가 나지 않으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송이는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송이가 많이 나는 해는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지만 그렇지 않은 해는 돈 냄새 맡기 힘들다. 산촌에는 송이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딴 송이를 수집하는 중간상이 있고 또 경매에 붙이는 조합과 그곳에서 물건을 떼다가 소비자에게 파는 소매인들이 즐비하다. 식당과 그밖의 상점들도 송이철 한 철 벌어 다음 한 해를 나는 곳이 부지기수다. 괴산 청천을 예로 들자면 송이 산출량이 제법 많았던 지난해 한 신협 점포에 50억원의 '송잇돈'이 예치됐다는 소문이 나돈 적 있다. 다른 은행 점포까지 합치면 그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송이로부터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송이가 나지 않는 원인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대부분이 날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징글징글했던 폭우와 폭염, 극과 극을 달리듯 하루 아침에 급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거기에 겹친 가을가뭄 등등. 송이 포자 아니라 그 어떤 버섯 포자도 배겨낼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직 시기적으로 여유가 있고 또 이번 주중 반가운 비소식이 있으니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바람이 송이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것이 한낱 희망사항으로 끝날지 아니면 대박을 가져다 줄 사실이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거의 절망적이다.
부디 2006년과 2008년, 2009년과 같은 송이 흉년은 겪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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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울 무렵의 농촌

 

요 며칠 사이에 매미 울음소리가 달라졌다. 유례없던 폭염 탓에 유난히도 쩌렁쩌렁 울어대더니만 이젠 지쳤는지 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짱이와 풀무치 소리도 점점 풀이 죽어가고 있다. 반면 귀뚜라미 소리는 갈수록 커져만 간다.
잠자리 날갯짓도 달라졌다. 며칠 전만 해도 사뿐사뿐하던 날갯짓이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마냥 굼뜨게만 보인다. 반쯤 해진 날개로 힘겹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도 보인다.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숲속 다람쥐도 행동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자꾸만 물어나른다. 어치와 동고비 역시 부산하게 왔다갔다 하며 월동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울이 오려면 아직도 두 세 달은 족히 남았건만 무슨 까닭인지 깨나 부지런을 떨고 있다. 인간 세계의 조급증이 자연계로 옮겨 붙은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름철새들의 행적도 묘연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음소리가 들려오던 꾀꼬리는 벌써 사라졌고 귀신 울음소리 같던 호랑지빠귀 소리도 안 들린 지 꽤 오래됐다.
번식을 위해 각기 흩어져 있던 텃새들도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원앙과 흰뺨검둥오리들이 떼지어 나는 것은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참새들 역시 큰 무리를 이뤄 이 논 저 논 넘나들며 허수아비를 놀려댄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동구밖 오솔길에는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한들한들 꽃을 피운다. 어머니 품 냄새 같은 향기로 이 나비 저 나비 불러들여 가을 정취를 더한다. 미련 많은 꿀벌들의 날갯짓도 더없이 빨라졌다.
시골길 옆으로는 억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냇가에는 달뿌리풀과 갈대들이 저마다 키재기하며 하늘을 간질이고 있다. 아침 저녁 불어오는 바람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가을 들판은 이제 막 황금 빛으로 일렁이고 있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찬 비가 쏟아질 때만 해도 "흉년 들겠네" 모두들 걱정이 태산 같더니만 다행히도 가을 햇볕이 좋아 농부들 시름이 반쯤 사라졌다.
도토리 나무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고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올핸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궁금하다. 으름도 그렇고 다래와 머루도 얼마나 달렸는지 궁금하다. 시절로 보면 으름은 이미 다 익어 벌어졌을 테고 다래와 머루도 먹음직스럽게 익기 시작했을 시기다.
산밤도 얼마 안 있으면 밤송이가 벌어질 태세이고 어린 시절 동심이 묻어 있는 보리수나무 열매도 살이 올라 붉기 시작했다.
산에서는 물푸레나무와 산진달래가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있다. 송이와 능이 철이 오고 있다는 징표다. 물푸레나무와 산진달래는 산골 사람들의 시계 역할을 한다. 물푸레나무와 산진달래가 이파리를 떨어뜨리는 만큼 그들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농촌의 가을은 이래저래 사람들을 바쁘게 만든다. 벼베기 하랴 밭곡식 거둬 들이랴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인삼 농가에선 인삼 캐기 바쁘고 과수 농가들은 이 과일 저 과일 따다 시장에 내느라 코가 열자다. 씨앗 뿌리는 망종 절기 만큼이나 눈코 뜰 새 없는 시기가 요즘이다. 발등에 오줌 싸고 불 때는 부지깽이도 부려먹는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하지만 불행스럽게도 일년 중 가장 바쁘게 일 해야 하는 시기에 하늘만 바라보며 한숨 짓는 농가들이 있다. 고추 농가들이다. 징글징글하게 쏟아진 지난 여름 비에 몽땅 피해 입어 밭마다 거둬들일 고추가 없으니 막상 '할 일'이 없단다. 비싼 고춧값도 빛 좋은 개살구다. 내다 팔 고추가 없는데 값만 비싸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내년 농사를 짓기 위해선 고춧대라도 뽑아야 하는데 일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어느 고추 농사꾼의 푸념이 영화속 워낭소리 만큼이나 가슴을 할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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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울고 웃는 사람들

 

 

비는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다. 올해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 아래에선 더 더욱 그렇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치를 떨게 했던 비였는데, 이젠 비가 그립다는 사람들이 있다. 비 그친 지 보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이곳 저곳에서 가뭄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수와 고추, 벼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야 따사로운 햇볕이 반갑기 그지 없지만 다른 작물을 기르는 농가들은 내심 야속하다는 눈치다. 전례없던 '지난 여름비'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맘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한여름 같은 쨍쨍한 날씨를 고맙게 여기는 이웃들이 있기에 대놓고 "비야 내려라" 외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제발 비좀 와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혹자는 "비 그친 지 얼마나 됐다고 비 타령이냐" 할 지 모르나 작금의 농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우선 채소 농가가 그렇다. 배추와 무, 브로콜리, 양배추 같은 채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요즘 때 아닌 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비 이후 계속되는 이상고온으로 이제 막 갓 심은 채소들이 비비 꼬이면서 말라 죽어들어 가자 밤낮 없이 하천수를 끌어다 밭고랑에 대고 지하수를 퍼올려 스프링쿨러를 돌리는 등 고생이 여간 아니다. 콩 작물 역시 이파리가 누렇게 타들어갈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천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정이 영 좋질 않다.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벌건 흙탕물이 지겹기만 했던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아진 수위로 되레 손을 놓은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그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쏟아질 땐 불어난 물 때문에 그물질이며 다슬기잡이며 엄두를 못 냈는데 비가 그치자마자 언제 그랬냐며 거짓말처럼 하천물이 잦아든 요즘에 와서는 그물을 쳐도 빈 그물이요 다슬기잡이를 나가도 빈 바구니이니 이래저래 한숨타령 뿐이다. 물가 생활 몇 십년만에 올 같은 해는 처음이란 어부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걱정이 가장 심각하다. 바야흐로 버섯철은 왔건만 모두가 '버섯 먹은 사람'들처럼 행보가 조용하다. 예년 같으면 싸리버섯이 쏟아지네, 밤버섯과 솔버섯이 지천이네 떠들며 이산 저산 정신없이 나돌아다닐 시기지만 올핸 그야말로 조용하다. 지난 비에 버섯 포자들이 다 사그라져 버섯들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고, 최근의 무더위와 가뭄 탓에 나오던 버섯들도 쏙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다. 추석 때만 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송이버섯도 올핸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단양, 괴산 등 일부 지역에선 한 두 송이 비치기 시작하긴 했다지만 싹수가 노랗단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위 꾼들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 저을 정도로 올해 전망이 별로 밝질 않다. 송이 특성상 고온과 가뭄에 민감하기에 요즘 같은 날씨라면 재작년과 재재작년 같은 흉년이 들기 십상이란다.
만일 그같은 전망대로 올해마저 송이가 흉년 든다면 산사람들의 사정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한철 벌어 일년을 먹고 사는 그들이기에 송이 자체가 생명줄이요 송이 산출량에 따라 살림살이와 밥그릇 사정이 좌지우지 되기에 그렇다. 하여 싹수가 노랗다는 소문은 그들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작년 전반기에 다소 송이 맛을 봤을 뿐 송이다운 맛을 본 게 4년 전이니 그 심정 어떻겠는가.
모든 게 최첨단을 걷는 시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늘바라기 신세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에 유난히 별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날씨다. 아, 하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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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칡과 등나무, 바로 알자 

 

등칡과 등나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식물로 알고 있는, 가장 흔히 혼동하는 식물이다. 오죽하면 사전에도 "등칡은 등나무의 잘못"이라고 풀이돼 있겠는가. 그러나 두 종은 엄연히 다르다. 물고기의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서로 다른 것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확연히 다르다.
먼저 두 종은 과(科)부터가 다르다. 등칡은 쥐방울덩굴과인 반면 등나무는 콩과이다. 과가 다르다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같은 과에 속하는 미꾸리와 미꾸라지의 차이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등칡과 등나무는 줄기와 잎, 꽃, 열매가 모두 다르다. 그 중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게 꽃이다. 실제 두 식물의 꽃을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등칡 꽃부터 보자. 한 마디로 묘하게 생겼다. 노란 꽃이 U자형으로 꼬부라진 게 일단 색소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아주 민망한 생김새다. 옆에서 보면 남자 거시기 같기도 하고 앞에서 보면 은근히 여성의 상징을 닮았다. 보면 볼수록 묘하고 민망하다. 해서 옛 사람들은 "처녀는 보면 안 된다"며 시선을 돌리게 했다. 반면 등나무 꽃은 콩과 식물답게 아까시나무(콩과) 꽃이 아래로 처진 것처럼 줄줄이 핀다. 다만 꽃빛깔만 연한 자주색을 띤다.
등칡과 등나무는 같거나 비슷한 면도 있다. 같은 것은 둘 다 나무란 점이다. 어린 순을 보면 풀처럼 보이나 둘 다 덩굴성 나무다. 등나무와 같은 콩과 식물인 '칡'도 마찬가지로 풀이 아닌 나무다.
이왕 칡 얘기가 나왔으니, 등칡과 등나무를 자꾸만 헷갈리게 하는 이면엔 칡이 자리하고 있다. '등칡'이란 이름 자체가 등나무와 칡을 섞어놓은 것처럼 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만큼 등칡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등나무요 칡이다. 여기에 등나무와 칡이 같은 콩과 식물이란 점까지 더해져 오해가 부풀려진 것이다.
세 식물의 줄기가 서로 비비꼬이는 성질 또한 그러한 오해를 부추겨 왔다. 갈등의 갈이 칡 갈(葛) 자이고 등이 등나무 등(藤) 자인 데다, 등칡마저도 줄기가 항상 비비꼬이면서 올라간다는 점에서 세 식물은 으레 혼동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런 데다 오랜 관행상 등나무 뿌리를 등칡으로 불러온 것도 '등칡=등나무'란 그릇된 등식에 한몫을 해 왔다.
등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고상하고 여름이면 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꽃 또한 향기롭고 예쁘게 핀다는 점(등칡 꽃을 음탕하게만 보지 않는다면)에서 예부터 집안의 뜰이나 공원 등에 정자목 혹은 관상수로 많이 심겨져 왔다. 하지만 등나무와는 달리 등칡은 웬일인지 '대(代) 내림'이 약해 오늘날엔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 보호할 정도로 귀한 몸이 돼 버렸다.
등나무도 몇몇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의 등나무(4그루)와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군락지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갑자기 등칡과 등나무 얘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라 최근 나비 사육과 나비 관찰·학습장이 인기를 끌면서 쥐방울덩굴과 식물인 등칡과 쥐방울덩굴이 졸지에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쥐방울덩굴과 식물은 사향제비나비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주요 먹이식물(꼬리명주나비는 주로 쥐방울덩굴을 먹고 자람)로서, 나비 애호가나 사육가들이 탐내는 식물이다. 하지만 쥐방울덩굴 역시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이들 식물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남채될 소지가 많다. 미래 생태계의 주인인 어린이들에게 나비 생활사를 보여준답시고 오늘의 소중한 유전자원을 훼손하는 행위가 우려되기에 뜬금없지만 등칡과 등나무에 얽힌 얘길 꺼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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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과 곤충

 

야생곤충의 생활사를 관찰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알이 부화시기가 지났어도 부화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든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종이 태어나 눈을 의심케 하기도 한다. 앙증맞게 생긴 어린 사마귀의 부화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기다렸건만 도대체 새로운 생명의 기미가 보이질 않아 알집을 헤집어 봤더니 속이 텅 비어 있다거나 가까스로 새 생명이 태어나긴 했는데 종이 다른 사마귀수시렁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또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돌연 죽음을 맞는다든가 반쯤 날개돋이한 상태에서 도중에 허물벗기를 멈추거나 날개돋이는 마쳤으나 상태가 불완전해 곧바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애벌레로 땅속 생활하다가 어렵사리 땅밖으로 기어나와 성충이 되려던 순간 훼방꾼인 개미를 만나 졸지에 숨을 거두는 매미 애벌레와 반쯤 날개돋이한 채 미처 배부분을 탈피 못해 풀이삭에 매달린 채 죽는 잠자리 애벌레, 머리와 몸통은 멀쩡하게 태어났지만 속날개가 불완전해 가뜩이나 짧은 성충 시기를 더욱 앞당겨 마감하는 풍뎅이가 그 같은 경우다.
그런가 하면 날개돋이를 마쳐 이제 막 첫 비행을 앞둔 순간 천적에게 속절없이 잡혀 먹히는 불운도 있다. 알-애벌레-번데기 과정을 거쳐 날개돋이까지 마쳤으나 날개를 말리는 과정에서 돌연 천적인 사마귀 눈에 띄어 당랑권의 희생이 되는 나비들이 그 예다.
야생곤충의 세계는 이처럼 삶 자체가 모험이요 각 단계의 성장 과정마다 위험과 역경의 연속이다. 1초 앞을 장담치 못하는 그 숱한 위험과 역경을 벗어나 성충으로서의 대임(종족 번식)을 마쳐야 비로소 한 세대의 생활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곤충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있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유전자에 새겨진 지혜다.
호랑나비를 예로 들어보자.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부지런히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등의 운향과 식물을 찾는다. 알을 낳기 위해서다. 굳이 그들 나무를 찾아가는 것은 알에서 태어날 애벌레를 위한 배려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그들 나무 이파리 외엔 절대 먹질 않는다. 알을 낳아도 잎 뒷면에 붙인다.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생존 전략은 그 뿐만이 아니다. 부화한 애벌레는 1령에서 4령까지 새똥 같은 위장색을 띤다. 5령도 푸르스름한 보호색을 띤다. 또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는 위기가 닥치면 머리에서 노란 뿔 같은 것을 내밀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번데기로 변할 때도 한 가닥의 실을 토해내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나뭇가지에 붙잡아 맨다. 마치 아기를 업을 때 포대기를 둘러매는 모양새다. 기막힌 지혜다.
창과 방패의 논리 같은 곤충의 세계는, 그래서 들여다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신비와 지혜도 앞서 말한 뜻밖의 상황에선 그저 무색할 뿐이다. 더구나 기상악화와 같은 악조건을 만나게 되면 더더욱 속수무책이다. 올해처럼 큰비와 거센 바람이 잦을 경우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람도 맥없이 당하는데 그들이라고 온전할 수 있겠는가. 재앙 수준의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곤충알에 내리치는 빗방울 하나의 위력이 사람 머리위로 4륜구동 승용차 한 대가 날아드는 것과 같은 정도이니 요즘 끊임없이 내리붓는 물폭탄 아래선 어떻겠는가.
가는 곳마다 부화 안 된 각종 곤충알과 탈피 또는 날개돋이 도중에 죽거나 불완전하게 우화해 힘겹게 살아가는 곤충들이 유난히 많은 올해. 곤충의 세계에도 지난 겨울의 혹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기상이변의 여파가 '현재진행형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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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백사의 죽음

 

지난 여름 어느날 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흰 바탕에 붉은 줄무늬가 있는 뱀이 무슨 뱀이냐"고 물어왔다. 뜬금없는 질문에 "국내에 그런 뱀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낼 테니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잠시 뒤 사진이 전송돼 왔다. 확인해 보니 정말 흰바탕에 붉은 색 무늬가 선명한 뱀이었다. 백사였다. 무늬로 보아 '백사 중의 백사'라는 능구렁이(능사) 백사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뱀의 상태가 온전해 보이질 않았다. 똬리를 튼 것도 부자연스러웠다. 들고 찍은 다른 사진 속에서도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사연을 물으니 기막힌 일이 있었다. 그 후배가 전날 밤 청원 미원의 한 도로를 지나는데 차앞 쪽에서 희고 커다란 뱀 하나가 기어가더란 것이다. 처음 보는 뱀이라 신기해 구경도 할 겸 지나가길 기다리느라 잠시 멈춰서는 순간 곧이어 뒤따라 오던 차가 그만 그 뱀을 치고 지나간 것. 차를 멈추게 할 겨를도 없었던 데다 그 차의 운전자가 미처 뱀을 보지 못한 것이다.
뱀은 즉사했다. 안타깝지만 어쩌랴. 차를 다시 출발하려는데 뱀 종류가 궁금했다. 난생 처음 보는 뱀이기에 더욱 그랬다. 해서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도로 밖으로 치워 놨단다. 물론 그 뒷날 다시 가봤지만 그 뱀은 온데 간데 없었단다.
백사가, 그것도 능사백사가 어떤 동물인가. 긴다난다 하는 땅꾼도 평생 한 번 볼까말까 한다는, 전해지는 얘기로는 한 번 보기만 해도 운수대통한다는 귀하디 귀한 존재가 아닌가. 그런데 그 능사백사가 로드킬 당했다. 야밤을 택해 이 쪽에서 저 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다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백사를 보는 시각은 동서양이 다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신비스러운 존재, 영물로 여기고 있다. 보양 보신문화가 뿌리깊은 우리나라에선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영약으로 믿는 이가 많다. 산삼은 저리가라란다. 필자는 15년 전 백사 1마리를 수천만원 주고 달여먹는 사람을 직접 본 적 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 1억2천만원을 호가하는 능사백사주(酒)가 올라와 있다. 혹자는 그까짓 뱀 1마리가 무슨 영약일까 의심을 품겠지만 백사 전문가들은 여느 뱀에게는 없는 삼산화황(SO3)과 사포닌 성분이 들어있다고 믿고 있다.
일본에서는 백사를 신성시하고 있다. 백사를 모시는 신사가 있을 정도다. 또한 백사를 국가지정 천연기념물(1972년 지정)로 보호하고 있기도 하다.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는 백사기념관도 있다. 박제와 함께 살아있는 백사를 전시하고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자연적인 현상, 즉 알비노(Albino)로 보고 있다. 알비노는 돌연변이에 의한 백화(白化)현상이다. 하지만 그들도 알비노의 출현 확률 만큼은 극히 드물게 보고 있다. 생물 종에 따라 다르지만 뱀의 경우 최소 10만분의 1정도로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같은 종 10만 마리 가운데 많아야 1마리 가량 태어날 정도이니 그들도 분명 예삿일로 보지는 않는 듯하다. 그들도 일부 동물원에 알비노 뱀을 전시하고 있다.
뱀 잡이가 성행했던 1980~9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약 10마리의 백사가 잡혔다. 그 중 능사백사는 고작 1~2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니 수천만원을 호가할 수밖에.
로드킬 문제가 비단 귀한 동물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귀한 동물이든 여느 동물이든 심각한 건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능사백사보다도 더 귀하고 소중한 생명이 속절없이 희생당하고 있음을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도로는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사선(死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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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뎅아 풍뎅아 빙빙 돌아라!

 

 

"풍뎅아 풍뎅아 마당 쓸어라/ 풍뎅아 풍뎅아 빙빙 돌아라…." 가사와 음이 생각날둥말둥 아스라이 맴도는 노래, 어린 시절 여름이면 유행가처럼 불러댔던 노래. 여기에 또 이런 노래도 있었다. "쓸어라 쓸어라 마당 쓸어라/ 손님들 들어온다 마당 쓸어라…."
이른바 풍뎅이 노래들이다. 지역에 따라선 풍뎅이를 풍딩이, 핑등이, 핑겡이로 불렀으니 명칭만 달랐을 뿐 가락과 장단은 거의 비슷했으리라.
이 노래들은 놀이 동요다. 어린이들이 풍뎅이를 잡아 가지고 놀면서 부르던 노래다. 하지만 그 이면엔 섬뜩함이 있었다. 오늘날 정서로는 동물학대다.
우선 풍뎅이를 잡으면 다리부터 떼어내고 머리를 두세 바퀴 돌렸다. 그런 다음 땅바닥에 뒤집어 놓고는 이내 손뼉과 바닥을 치면서 경쟁하듯 노래를 불러댔다. "풍뎅아 풍뎅아 빙빙 돌아라~." 졸지에 다리 잘려지고 목 돌려진 풍뎅이는 그저 본능적으로 날갯짓하면서 빙글빙글 돌아댔다. 여기서 빙글 저기서 빙글 정신없이 돌아댔다.
문제는 그 다음. 다리 잘리고 목까지 돌아간 풍뎅이가 무한정 돌리는 만무. 한 번 용 쓰던 풍뎅이가 멈추면 재빨리 2단계 수순으로 들어갔다. 다시 힘 내라며 손뼉과 바닥을 연방 쳐대고, 그래서 안 되면 입으로 훅~훅 불고, 그래도 안 되면 남은 겉날개마저 떼어내 결국 돌게 만들었다. 이젠 "쓸어라 쓸어라 마당 쓸어라~."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 짓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들과 만나면 으레 하던 장난이었으니 풍뎅이는 늘 애먼 희생물이었다.
희생물이 어디 풍뎅이 뿐이었는가. 잠자리는 잡아서 시집 보낸다며 꼬리를 잘라내고 풀이삭을 끼운 뒤 괜히 날려보냈다. 그 때 잠자리를 잡으면서 불렀던 노래가 "잠자리 동동 파리 동동/ 멀리멀리 가면은 똥물 먹고 뒈진다~"였다. 시집이 아닌, 되레 황천길로 보내면서 똥물 먹고 뒈진다고 엄포 놨으니 놀이치곤 너무했던게 아니었나 싶다.
또 찝게벌레로 불렸던 사슴벌레는 잡는 족족 싸움꾼을 만들어 대리만족했고, 방아깨비와 풀무치 역시 걸핏하면 잡아 괜한 시달림을 줬다. 요즘이야 다양한 장난감들이 나와 있지만 30~40년 전만 해도 주변의 곤충과 초목들이 그것을 대신했다. 그만큼 흔하기도 했다. 동물학대란 말은 나돌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런 놀이들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바야흐로 곤충의 계절 여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숲은 숲대로, 들과 하천변은 그곳대로 온갖 곤충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부 곤충, 특히 애벌레 시절의 곤충은 흔히 '벌레'라 부르지만 보는 눈에 따라선 그것을 그저 징그럽고 흉한 벌레로 볼 수도 있고 신비로운 생명체로도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의 곤충들은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종에 따라 즐겨 먹는 먹이와 자주 찾는 지역이 따로 있다. 풍뎅이나 사슴벌레는 주로 참나무 숲속을 서식 근거지로 삼는 반면 호랑나비는 인가 탱자나무를, 제비나비는 산길 옆 산초나무를 좋아한다.
종마다 애벌레와 성충 시기가 따로 있듯 하루 중에도 활동하는 시간이 각기 다르다. 나비·잠자리·매미류는 주로 한낮에, 풍뎅이·사슴벌레·나방류는 대부분 밤에 나타난다.
남은 휴가철, 더욱이 어린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물놀이 피서나 명승지 여행도 좋지만 가까운 산야로 나가 곤충 체험을 하면 어떨까 싶다. 낮과 저녁, 밤 언제든지 좋다. 직접 잡아 느껴보게도 하고 잡은 것을 도로 놔주게도 함으로써 생명의 소중함과 신비로움을 깨닫게 하면 좋을 성 싶다. 예전의 '쓴 추억들'을 기억하는 가장들에겐 더욱더 권하는 바다. 다만 이번엔 노래만 부르고 실제 놀이는 흉내만 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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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소리

 

개구쟁이 시절 여름이면 즐겨했던 장난이 있다. 매미잡기다. 잡아도 그냥 잡는 게 아니라 소꼬리 털로 옭아잡는 짓궂은 장난이었다.
우선 소꼬리에서 가장 긴 털을 뽑아 그것을 기다란 막대 끝에 묶어 올가미를 만든다. 올가미는 10원짜리 동전 3~4개 정도 들어갈 크기면 족하다. 그런 다음 매미를 찾아 올가미를 매미 머리맡에 살그머니 갖다대면 자동으로 뒤집어 쓴다. 매미가 자기 죽을 줄 모르고 올가미를 뒤집어 쓰는 이유는, 다람쥐가 낚싯줄 올가미를 스스로 뒤집어 쓰는 것처럼, 특유의 묘한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거미줄 같은 게 거치적거리면 그걸 떼어내려고 머리빗질하듯 앞발을 자꾸만 쓸어올리는 본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쨋거나 올가미를 뒤집어 쓴 매미는 줄에 매단 풍선처럼 막대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속절없이 잘도 잡혔다. 그 때 매미가 할 수 있었던 건 단 두 가지 뿐이었다. 나에게 봉변이라도 주듯 냅다 오줌을 갈기는 것과 짧고 날카로운 소릴 내는 일이었다. 그나마 수컷인 경우에만 소릴 질렀고 암컷은 소리도 못 지르고 그저 날개만 푸덕였다.
대개의 사람들은 수컷 매미가 매번 같은 톤, 같은 소리만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질 않다. 천적을 만나거나 경쟁 상대를 만나면 더 큰 톤으로 악 쓰듯 소릴 낸다. 실제로 북미에 사는 어느 종은 평소 105.9 데시벨의 소리를 내다가 천적인 새가 나타나면 즉시 108.9 데시벨의 소리를 낸다는 보고가 있다. 매미가 기를 쓰고 울어대는 이유는 새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서란 보고도 있다.
매미는 주변 소음이 많을수록 더 큰 소릴 낸다. 도심 매미가 시골 매미보다 더 시끄러운 건 그 때문이다. 소음속에서 암컷을 부르려니 더 큰 소리가 필요한 건 당연하다. 또 천적에게 잡혔을 때엔 올가미에 걸렸을 때처럼 보다 높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살려고 발버둥치며 발음근을 있는 힘껏 오므리기 때문이다. 발음근은 진동판에 붙은 근육이다.
매미 소리는 날씨와 기온에 따라서도 다르다. 궂은 날 보다 화창한 날, 선선한 날 보다 가마솥 더윗날 소리가 더 높고 크다.
또 한 가지. 매미가 평상시 내는 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구애음이다. 암컷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뽐내는 소리다. 조류(새)로 치자면 Call이 아니라 번식기에 내는 Song에 해당된다. 울음은 천적 혹은 사람에게 잡혔을 때나 내는 소리다. 새에게 잡힌 매미의 절규와 올가미에 걸린 매미의 외마디가 우는 소리다. 그런데도 우린 무턱대고 울음으로 표현한다. 매번 울면서 구애하는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린 지난 2003년 9월 엄청난 '매미 소리'로 치를 떤 적 있다. 태풍 매미다. 피해, 경로, 위력에 있어서 1959년 9월의 태풍 사라와 여러모로 닮은 초강력 태풍이었다. 공교로운 건 발생 번호 또한 둘 다 14호였다는 점이다. 또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죄로 두 이름 모두 태풍명단에서 영구제명됐다.
며칠전 괴산 달천변의 어느 식당에 들렀다 뜰앞 커다란 나무를 베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끄러운 매미 소리 탓이랬다. 손님이 얼마나 짜증냈으면 그랬겠냐마는 좀 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옛 선인들은 일부러 기생개구리를 기르고 정원에 나무 심어 매미를 불러들였다는데….
태풍과 매미의 발생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받는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단다. 짜증을 내고 나무를 벨 게 아니라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줄여 나가는 데 관심 가지면 어떨까 싶다.
매미 소리는 본래 거친 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만든 건 우리들이요 그걸 감수해야하는 것도 우리들이다. 매~앰,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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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낚시와 요즘 낚시

 

옛 사람들은 낚시를 어떻게 했을까. 우선 낚싯줄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하다. 18세기 후반 조선 학계에 영향을 끼친 일본의 화한삼재도회에는 "참외덩굴을 햇볕에 말리면 철선처럼 질겨서 끊기 어려우므로 낚싯줄로 쓰는데 어가(漁家)에서 가장 귀히 여긴다"고 기록돼 있다. 화한삼재도회가 중국의 삼재도회를 본떠 지은 것이기에 당시 일본산이었건 중국산이었건 오늘날의 참외덩굴과 얼마만큼 달랐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낚싯줄로 썼다는 게 쉽게 이해되질 않는다. 아마도 참외덩굴의 섬유질 부분을 실처럼 꼬아 사용한 게 아닌가 싶다.
또 같은 책에는 중국 광동서 생산되는 천잠사(天蠶絲)를 낚싯줄로 썼다는 기록도 보인다. 천잠사는 산누에고치에서 뽑은 명주실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에는 삼이나 칡 껍질로 만든 실을 이용해 오늘날에는 사라진 오리낚시(鴨釣)를 했다고 소개돼 있다.
다음엔 찌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화한삼재도회에는 "갈대 혹은 기장 줄기를 1~2촌 정도 잘라 썼다"고 전하며 중국에서는 새깃털을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 후기 문신 남구만은 시문집 약천집에서 "낚시할 때 무릇 낚싯줄에 삼대(짚대공이란 설도 있음)를 매다는 이유는 그것이 뜨고 가라앉는 것을 보고 물고기가 먹이를 삼키거나 뱉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남구만은 또 "그것이 움직이기만 하고 잠기지 않은 것은 물고기가 미끼를 완전히 삼키지 않은 것이어서 이 때 당기면 너무 빠른 것이고 삼켰다 다시 토하는 것을 천천히 당기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므로 잠길락 말락할 때 당기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낚싯바늘. 서유구는 전어지에서 "낚시는 쇠갈고리를 달아서 물고기를 잡는 도구로서, 쇠갈고리 즉 낚싯바늘(鉤:구)에는 거꾸로 된 가시(미늘 혹은 구거:鉤距)를 만들어 쓴다"고 설명하고, 난호어목지에서는 "무쇠 혹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든다"고 설명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낚싯바늘은 가는 철과 바늘을 갈고리처럼 구부린 다음 닭의 뒷 발톱(距)처럼 생긴 미늘을 만들어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끼는 무엇을 썼을까.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 먹이를 던져 물고기 모으는 방법(投餌聚魚法)을 소개하면서 "깻묵과 술지게미는 모두 냄새를 많이 풍기는 물고기 미끼이다. 깻묵과 술지게미를 두 손으로 두드려 덩어리를 만들고 황토진흙으로 얇게 싸서 햇볕에 말린 다음 배를 타고 물고기가 노는 곳에 던져 넣는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든다. 그런 뒤에 그 곳에 낚싯대를 드리우면 만에 하나라도 실수하는 법이 없다."고 썼다.
서유구는 또 같은 책에서 오늘날의 여울낚시격인 유조법(流釣法)을 소개하면서 "지렁이나 물가 돌밑의 청충(靑蟲:수서곤충의 유충)을 미끼로 써서 얕은 여울에 낚시를 던져 넣고는 연 날리듯 줄을 풀거나 당기면 물고기가 잡힌다"고 설명했다.
낚시에 관한 옛기록을 살피다 보면 오늘날의 주낚처럼 예전에도 일타백피식 싹쓸이 낚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난호어목지에 소개된 만등조법(萬燈釣法)이 그것이다. 기다란 낚싯줄에 수백 개의 바늘을 매달고 미끼를 꽂아 바다나 포구같은 곳에 가로질러 놓았다가 이튿날 아침 거두는 방식이다. 걸려든 물고기 모습이 만등을 달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단다.
강태공이 봤다면 혀를 찰 일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질 만큼 성행했던 것으로 보아 예전 사람들도 물고기를 많이 잡고 싶은 욕심은 요즘 사람 못지 않았나 보다.
모든 낚시도구가 현대화된 오늘날 국내 낚시계에는 잡는 것보다 풀어주는 게 미덕이라는 바람이 불고 있다. 모처럼만에 부는 멋진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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