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스케치(직박구리 대란)
'가을빛 사과 과수원 한편에 직박구리(참새목 텃새) 한 무리 날아든다. 마릿수는 6마리. 방금 전 5마리가 왔다 갔는데 이번엔 한 마리 더 늘었다. 앉은 곳은 하필 주인 농부가 잔뜩 기대하고 있던 나무. 사과 알이 유난히 커 이제나 저제나 익을 때만 기다려 하루 뒤면 수확하려던 참이었다는데, 새들이 그걸 눈치챈 모양이다.
무리 중 어미로 보이는 하나가 자리를 고쳐 잡더니 연방 고개를 갸웃 거린다. 어느 사과에 입을 댈지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이윽고 사과나무 잔가지 가늘게 요동친다. 송곳 같은 주둥이 하늘로 향하는가 싶더니 이내 흰 점 하나 허공에 뜬다. 사과 한 살점. 주인 농부의 꿈이 하얗게 부서지는 순간이다. 이어 머리를 앞 뒤로 한 번 뿌듯하게 움직인다. 꿀~꺽. 농부의 한 해 땀방울이 속절없이 삼켜진다. 입맛을 자꾸만 다시는 폼이 엄청나게 맛 있는가 보다. "찌~익 찌~익!" 피멍 든 농부의 한숨이 직박구리의 쾌재가 되어 하늘 멀리 울려 퍼진다.
이번엔 다른 새들이 나섰다. 앞선 놈 하는 짓 그대로 따라 한다. 1년생 새끼들이다. 하지만 이미 경험들이 많은 듯 행동이 빈틈 없다. 잘 익은 사과만 귀신 곡하게 찾아내 정신없이 쪼아 댄다. 여기저기서 주인 농부의 꿈이 한바탕 또 부서진다. 허공에 머물다 사라진 흰점 하나에 사과 한 알이 통째로 날아간다. 흠집 하나만 있어도 일년농사 허사다.
한참을 그렇게 심술 떤 직박구리들. 주인 농부 나타나자마자 일제히 솟구친다. "찌~이이익!" 가뜩이나 놀란 농부 가슴에 또 그렇게, 한아름의 시름과 함께 치 떨리는 비명을 안기곤 저멀리 도망친다. 점 하나, 점 둘, 점 셋…. 그들이 날아간 나무 아래서 주인 농부 망연자실, 담배를 피워 문다.'
지난 주말 괴산의 한 과수원으로 새사진 찍으러 갔다가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광경을 차례로 옮겨봤다. 한 마디로 대란이라고 할까. 직박구리의 횡포가 말이 아니다. 농부들의 말대로라면 과수농사 못 지어먹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
지난해와는 상황이 다르다. 지난해엔 직박구리와 까치, 말벌 등이 합세해 피해를 주었으나 올핸 직박구리의 단독 범행(?)이 눈에 띄게 늘었단다. 그만큼 개체수가 더 늘었다는 얘기다. 또 지난해엔 한 나무에 10개 안팎의 피해를 입었으나 올핸 그보다 훨씬 많단다.
실제 확인해 봐도 잘 익은 사과는 성한 게 별로 없다. 한 입 쪼인 것, 여러 번 쪼인 것, 다양하다. 그러나 피해는 같다. 상품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져 팔질 못한다. 새들보다 먼저 수확하면 되지 않냐고 할 지 모르나 불가능하다. 나무 주변을 늘 서성거리며 눈독 들이는 새들을 어떻게 당해 내겠는가.
직박구리로 인해 화병이 난 사람도 있다. 과수원 전체에 그물을 칠 수도 없고 총을 쏠 수도 없어서 차선책으로 폭음기를 설치했으나 그 마저 소용 없으니 화병이 안 나겠는가. 더 큰 문제는 사과 외에도 배와 복숭아, 감 등 과수 전반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수차례 우려한 바와 같이 직박구리는 당분간 개체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무한정 늘어나진 않겠지만, 현 기후변화와 환경변화 추세로 볼 때 개체수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 지금도 일부지역에선 참새보다도 많은데, 더 이상 숫자가 는다면 피해 또한 더 커지는 건 불문가지다.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줄일 방법은 없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옛 사람들이 이 새를 왜 후루룩빗죽새라 불렀는지. 특이한 울음소리에서 따왔다고는 하나 혹시 후루룩 비가 오듯이 여기서 비죽 저기서 비죽 한다고 붙여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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