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가 사람 잡네
요즘 산골 사람들의 얼굴빛이 무척이나 어둡다. 측은할 정도다. 송이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송이철이 다가왔건만 정작 송이가 나지 않으니 심기가 말이 아니다. 가슴이 타들어간다는 사람도 있다.
안 나는 정도가 아니다. 송이가 나기만 하면 하루에 보통 10kg 이상은 거뜬히 따는 꾼들마저도 온종일 산을 타봤자 고작 몇 백g 따기 일쑤요, 그나마 웬만한 사람은 송이 구경조차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사로 치면 폐농 수준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마다 송이 보따리를 풀기 보다는 한숨 보따리만 늘어놓고 있다. 다들 밥 굶어 죽기 십상이란다. 송이가 사람 잡는다는 푸념까지 덧붙인다.
송이가 나지 않으면 산에 오르지 않으면 될 것을 왜 사서 고생하냐고 반문할 지 모르나 그건 송이꾼 마음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이제나저제나 송이가 나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지만, 하나든 둘이든 자신의 송이밭에서 나는 송이는 제 날짜에 꼭 따내야 하는 그들만의 철칙이 있기 때문이다.
욕심 때문이 아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밭을 지켜내지 못한다. 만약 오늘 올라온 송이를 하나라도 따내지 않으면 그 송이밭은 십중팔구는 끝이다. 그 송이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밭 전체를 잃는다. 다행히도 송이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송이만 따고 밭은 건드리지 않는데 그건 극소수고 대부분은 또 다른 송이를 찾기 위해 그 주변을 무자비하게 파헤친다. 먹잇감 하나를 발견한 멧돼지가 애먼 곳까지 온통 파헤쳐 놓듯이 아예 쑥대밭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니 좋든 싫든 무작정 산을 올라야 하고, 그래서 나오는 게 "송이가 사람 잡네"라는 넋두리다.
산골 사람들에게 송이는 일년 농사나 다름 없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야 재미로 송이를 따러 산에 오른다고 하지만 산골 사람들은 송이 따는 일이 밥줄이요 돈줄이다. 송이 팔아 식량 사고 자녀들 학비까지 댄다. 지인들 중에는 한해 송이 따서 버는 수입이 2천~3천 만원은 족히 넘는 사람이 여럿 있다. 한해 연봉이 단 며칠 만에 쏟아지는 셈이다. 그런데 송이가 나지 않으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송이는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송이가 많이 나는 해는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지만 그렇지 않은 해는 돈 냄새 맡기 힘들다. 산촌에는 송이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딴 송이를 수집하는 중간상이 있고 또 경매에 붙이는 조합과 그곳에서 물건을 떼다가 소비자에게 파는 소매인들이 즐비하다. 식당과 그밖의 상점들도 송이철 한 철 벌어 다음 한 해를 나는 곳이 부지기수다. 괴산 청천을 예로 들자면 송이 산출량이 제법 많았던 지난해 한 신협 점포에 50억원의 '송잇돈'이 예치됐다는 소문이 나돈 적 있다. 다른 은행 점포까지 합치면 그 보다 훨씬 많은 돈이 송이로부터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송이가 나지 않는 원인에 대해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다. 대부분이 날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징글징글했던 폭우와 폭염, 극과 극을 달리듯 하루 아침에 급변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거기에 겹친 가을가뭄 등등. 송이 포자 아니라 그 어떤 버섯 포자도 배겨낼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아직 시기적으로 여유가 있고 또 이번 주중 반가운 비소식이 있으니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냐는 일말의 바람이 송이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것이 한낱 희망사항으로 끝날지 아니면 대박을 가져다 줄 사실이 될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현재로선 거의 절망적이다.
부디 2006년과 2008년, 2009년과 같은 송이 흉년은 겪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부터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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