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울고 웃는 사람들
비는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다. 올해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 아래에선 더 더욱 그렇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치를 떨게 했던 비였는데, 이젠 비가 그립다는 사람들이 있다. 비 그친 지 보름도 안 지났는데 벌써 이곳 저곳에서 가뭄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수와 고추, 벼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야 따사로운 햇볕이 반갑기 그지 없지만 다른 작물을 기르는 농가들은 내심 야속하다는 눈치다. 전례없던 '지난 여름비'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맘고생하는 사람들이 많고 또 한여름 같은 쨍쨍한 날씨를 고맙게 여기는 이웃들이 있기에 대놓고 "비야 내려라" 외치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제발 비좀 와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혹자는 "비 그친 지 얼마나 됐다고 비 타령이냐" 할 지 모르나 작금의 농촌 현실은 그게 아니다.
우선 채소 농가가 그렇다. 배추와 무, 브로콜리, 양배추 같은 채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요즘 때 아닌 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비 이후 계속되는 이상고온으로 이제 막 갓 심은 채소들이 비비 꼬이면서 말라 죽어들어 가자 밤낮 없이 하천수를 끌어다 밭고랑에 대고 지하수를 퍼올려 스프링쿨러를 돌리는 등 고생이 여간 아니다. 콩 작물 역시 이파리가 누렇게 타들어갈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천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정이 영 좋질 않다.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벌건 흙탕물이 지겹기만 했던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낮아진 수위로 되레 손을 놓은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극과 극을 오가는 그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쏟아질 땐 불어난 물 때문에 그물질이며 다슬기잡이며 엄두를 못 냈는데 비가 그치자마자 언제 그랬냐며 거짓말처럼 하천물이 잦아든 요즘에 와서는 그물을 쳐도 빈 그물이요 다슬기잡이를 나가도 빈 바구니이니 이래저래 한숨타령 뿐이다. 물가 생활 몇 십년만에 올 같은 해는 처음이란 어부들이 부지기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걱정이 가장 심각하다. 바야흐로 버섯철은 왔건만 모두가 '버섯 먹은 사람'들처럼 행보가 조용하다. 예년 같으면 싸리버섯이 쏟아지네, 밤버섯과 솔버섯이 지천이네 떠들며 이산 저산 정신없이 나돌아다닐 시기지만 올핸 그야말로 조용하다. 지난 비에 버섯 포자들이 다 사그라져 버섯들이 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고, 최근의 무더위와 가뭄 탓에 나오던 버섯들도 쏙 들어갔다는 얘기도 있다. 추석 때만 되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송이버섯도 올핸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단양, 괴산 등 일부 지역에선 한 두 송이 비치기 시작하긴 했다지만 싹수가 노랗단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소위 꾼들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 저을 정도로 올해 전망이 별로 밝질 않다. 송이 특성상 고온과 가뭄에 민감하기에 요즘 같은 날씨라면 재작년과 재재작년 같은 흉년이 들기 십상이란다.
만일 그같은 전망대로 올해마저 송이가 흉년 든다면 산사람들의 사정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한철 벌어 일년을 먹고 사는 그들이기에 송이 자체가 생명줄이요 송이 산출량에 따라 살림살이와 밥그릇 사정이 좌지우지 되기에 그렇다. 하여 싹수가 노랗다는 소문은 그들에겐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다. 작년 전반기에 다소 송이 맛을 봤을 뿐 송이다운 맛을 본 게 4년 전이니 그 심정 어떻겠는가.
모든 게 최첨단을 걷는 시대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늘바라기 신세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고스란히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기에 유난히 별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날씨다. 아, 하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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