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이변과 곤충

 

야생곤충의 생활사를 관찰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알이 부화시기가 지났어도 부화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든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종이 태어나 눈을 의심케 하기도 한다. 앙증맞게 생긴 어린 사마귀의 부화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기다렸건만 도대체 새로운 생명의 기미가 보이질 않아 알집을 헤집어 봤더니 속이 텅 비어 있다거나 가까스로 새 생명이 태어나긴 했는데 종이 다른 사마귀수시렁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또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돌연 죽음을 맞는다든가 반쯤 날개돋이한 상태에서 도중에 허물벗기를 멈추거나 날개돋이는 마쳤으나 상태가 불완전해 곧바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애벌레로 땅속 생활하다가 어렵사리 땅밖으로 기어나와 성충이 되려던 순간 훼방꾼인 개미를 만나 졸지에 숨을 거두는 매미 애벌레와 반쯤 날개돋이한 채 미처 배부분을 탈피 못해 풀이삭에 매달린 채 죽는 잠자리 애벌레, 머리와 몸통은 멀쩡하게 태어났지만 속날개가 불완전해 가뜩이나 짧은 성충 시기를 더욱 앞당겨 마감하는 풍뎅이가 그 같은 경우다.
그런가 하면 날개돋이를 마쳐 이제 막 첫 비행을 앞둔 순간 천적에게 속절없이 잡혀 먹히는 불운도 있다. 알-애벌레-번데기 과정을 거쳐 날개돋이까지 마쳤으나 날개를 말리는 과정에서 돌연 천적인 사마귀 눈에 띄어 당랑권의 희생이 되는 나비들이 그 예다.
야생곤충의 세계는 이처럼 삶 자체가 모험이요 각 단계의 성장 과정마다 위험과 역경의 연속이다. 1초 앞을 장담치 못하는 그 숱한 위험과 역경을 벗어나 성충으로서의 대임(종족 번식)을 마쳐야 비로소 한 세대의 생활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곤충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있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유전자에 새겨진 지혜다.
호랑나비를 예로 들어보자.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부지런히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등의 운향과 식물을 찾는다. 알을 낳기 위해서다. 굳이 그들 나무를 찾아가는 것은 알에서 태어날 애벌레를 위한 배려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그들 나무 이파리 외엔 절대 먹질 않는다. 알을 낳아도 잎 뒷면에 붙인다.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생존 전략은 그 뿐만이 아니다. 부화한 애벌레는 1령에서 4령까지 새똥 같은 위장색을 띤다. 5령도 푸르스름한 보호색을 띤다. 또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는 위기가 닥치면 머리에서 노란 뿔 같은 것을 내밀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번데기로 변할 때도 한 가닥의 실을 토해내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나뭇가지에 붙잡아 맨다. 마치 아기를 업을 때 포대기를 둘러매는 모양새다. 기막힌 지혜다.
창과 방패의 논리 같은 곤충의 세계는, 그래서 들여다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신비와 지혜도 앞서 말한 뜻밖의 상황에선 그저 무색할 뿐이다. 더구나 기상악화와 같은 악조건을 만나게 되면 더더욱 속수무책이다. 올해처럼 큰비와 거센 바람이 잦을 경우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람도 맥없이 당하는데 그들이라고 온전할 수 있겠는가. 재앙 수준의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곤충알에 내리치는 빗방울 하나의 위력이 사람 머리위로 4륜구동 승용차 한 대가 날아드는 것과 같은 정도이니 요즘 끊임없이 내리붓는 물폭탄 아래선 어떻겠는가.
가는 곳마다 부화 안 된 각종 곤충알과 탈피 또는 날개돋이 도중에 죽거나 불완전하게 우화해 힘겹게 살아가는 곤충들이 유난히 많은 올해. 곤충의 세계에도 지난 겨울의 혹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기상이변의 여파가 '현재진행형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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