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칡과 등나무, 바로 알자
등칡과 등나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식물로 알고 있는, 가장 흔히 혼동하는 식물이다. 오죽하면 사전에도 "등칡은 등나무의 잘못"이라고 풀이돼 있겠는가. 그러나 두 종은 엄연히 다르다. 물고기의 미꾸리와 미꾸라지가 서로 다른 것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확연히 다르다.
먼저 두 종은 과(科)부터가 다르다. 등칡은 쥐방울덩굴과인 반면 등나무는 콩과이다. 과가 다르다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같은 과에 속하는 미꾸리와 미꾸라지의 차이점과는 차원이 다르다.
등칡과 등나무는 줄기와 잎, 꽃, 열매가 모두 다르다. 그 중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게 꽃이다. 실제 두 식물의 꽃을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등칡 꽃부터 보자. 한 마디로 묘하게 생겼다. 노란 꽃이 U자형으로 꼬부라진 게 일단 색소폰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아주 민망한 생김새다. 옆에서 보면 남자 거시기 같기도 하고 앞에서 보면 은근히 여성의 상징을 닮았다. 보면 볼수록 묘하고 민망하다. 해서 옛 사람들은 "처녀는 보면 안 된다"며 시선을 돌리게 했다. 반면 등나무 꽃은 콩과 식물답게 아까시나무(콩과) 꽃이 아래로 처진 것처럼 줄줄이 핀다. 다만 꽃빛깔만 연한 자주색을 띤다.
등칡과 등나무는 같거나 비슷한 면도 있다. 같은 것은 둘 다 나무란 점이다. 어린 순을 보면 풀처럼 보이나 둘 다 덩굴성 나무다. 등나무와 같은 콩과 식물인 '칡'도 마찬가지로 풀이 아닌 나무다.
이왕 칡 얘기가 나왔으니, 등칡과 등나무를 자꾸만 헷갈리게 하는 이면엔 칡이 자리하고 있다. '등칡'이란 이름 자체가 등나무와 칡을 섞어놓은 것처럼 둘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만큼 등칡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등나무요 칡이다. 여기에 등나무와 칡이 같은 콩과 식물이란 점까지 더해져 오해가 부풀려진 것이다.
세 식물의 줄기가 서로 비비꼬이는 성질 또한 그러한 오해를 부추겨 왔다. 갈등의 갈이 칡 갈(葛) 자이고 등이 등나무 등(藤) 자인 데다, 등칡마저도 줄기가 항상 비비꼬이면서 올라간다는 점에서 세 식물은 으레 혼동의 대상이 돼 왔다. 그런 데다 오랜 관행상 등나무 뿌리를 등칡으로 불러온 것도 '등칡=등나무'란 그릇된 등식에 한몫을 해 왔다.
등칡과 등나무는 줄기가 고상하고 여름이면 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꽃 또한 향기롭고 예쁘게 핀다는 점(등칡 꽃을 음탕하게만 보지 않는다면)에서 예부터 집안의 뜰이나 공원 등에 정자목 혹은 관상수로 많이 심겨져 왔다. 하지만 등나무와는 달리 등칡은 웬일인지 '대(代) 내림'이 약해 오늘날엔 산림청이 희귀식물로 지정 보호할 정도로 귀한 몸이 돼 버렸다.
등나무도 몇몇은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경북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의 등나무(4그루)와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군락지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갑자기 등칡과 등나무 얘기를 꺼낸 건 다름이 아니라 최근 나비 사육과 나비 관찰·학습장이 인기를 끌면서 쥐방울덩굴과 식물인 등칡과 쥐방울덩굴이 졸지에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쥐방울덩굴과 식물은 사향제비나비와 꼬리명주나비 애벌레의 주요 먹이식물(꼬리명주나비는 주로 쥐방울덩굴을 먹고 자람)로서, 나비 애호가나 사육가들이 탐내는 식물이다. 하지만 쥐방울덩굴 역시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이다.
따라서 자칫하면 이들 식물은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 남채될 소지가 많다. 미래 생태계의 주인인 어린이들에게 나비 생활사를 보여준답시고 오늘의 소중한 유전자원을 훼손하는 행위가 우려되기에 뜬금없지만 등칡과 등나무에 얽힌 얘길 꺼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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