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추억이 사라진 가을들판
가을이 깊어가면서 들판에 빈 논이 늘어나고 있다. 벼베기와 탈곡을 동시에 하는 콤바인이 숨 가쁘게 지나간 자리에 벼그루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쓸쓸하다. '지난 1년'을 송두리째 내어준 결과가 처량하다. 여름날 그 따갑던 햇볕이 내리쬘 때만 해도, 폭풍우가 모든 걸 삼켜버릴 듯이 휘몰아칠 때만 해도 농부들의 희망과 근심이 논배미 가득 넘실거렸는데, 이젠 그나마도 없다.
알곡이 털린 지푸라기마저 돈이 된다고 다들 걷혀진다. 되돌려지거나 남겨지는 그 무엇도 없다. 지난 1년의 흔적이 고작 논바닥에 낙인처럼 찍힌 콤바인 자국과 몸통 잘려나간 벼그루터기 뿐이다. 예전의 논과는 분위기와 모습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졌다.
우선 생명이 없다. 친환경 농법을 하는 몇몇 논을 제외하고는 그 흔하던 벼메뚜기도 뛰지 않고 개구리도 놀라 방황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벼베기가 한창이거나 끝난 논배미에는 졸지에 의지할 곳 없어진 벼메뚜기와 개구리들이 혼비백산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건만 지금은 고요하다. 빈 논배미에 뛰어들어 들판이 떠나가도록 흙범벅을 하던 개구쟁이들도, 벼이삭을 줍던 아낙네들의 굽은 허리도 이젠 볼 수 없다. 하물며 미꾸라지를 잡느라 이 논도랑 저 논도랑 후비며 다니던 가을천렵꾼들이 보일 리 만무고 새뱅이와 붕어 잡느라 둠벙물을 퍼내던 정경이 보일 리 더더욱 만무다.
알몸을 드러낸 논배미들의 모습 또한 무척 달라졌다. 경지정리로 비뚤배뚤하던 논두렁은 일직선으로 변했고 그에 따라 논 형태도 네모 반듯한 두부판처럼 변했으며 높다랗던 논두렁은 있는 둥 마는 둥 그저 다른 논과의 경계표지 쯤으로 낮아졌다.
논이 물을 담는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뒤로 하고 벼를 생산하는 한낱 공장으로서의 역할만 중시되다 보니 그 구조 또한 많이도 변했다. 그 중 눈에 띄는 변화가 논배미에서 둠벙과 논도랑이 사라진 점이다. 대신 논배미 마다에는 하천 혹은 저수지와 연결된 수로가 설치돼 있거나 관정 하나씩 관행처럼 파져 있다. 언제나 필요하면 수로의 문을 열면 되고 전기 스위치만 올리면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니 둠벙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됐으며, 논물을 모으거나 흘려 보내는 논도랑 역시 농법 변화와 함께 필요성이 사라져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소 쟁기질 대신 트랙터로 논을 갈고 손모내기 대신 이앙기로 모를 내며 퇴비 대신 화학비료를 쓰고 피사리 대신 제초제를 쓰는 현대 농법이 보편화하면서 논 모습이 크게 변한 것이다.
하지만 편리함과 수확량 증대라는 '얻은 것' 이면에는 '잃은 것' 또한 많다는데 우리 농촌의 아픔이 있다. 특히 우리가 잃은 것 중에는 논 둠벙과 도랑이 사라지면서 불러온 논 생태계 파괴는 쉽사리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손실이다. 앞서 말한 생명의 부재가 바로 논에서 둠벙과 도랑이 사라진 뒤에 찾아든 재앙이다.
논 둠벙과 도랑은 단순히 물을 대고 유지하는 수원(水源)으로서가 아닌, 논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지탱해 온 소중한 생명그릇 이른바 비오톱(Biotope)이었다. 논 둠벙이 생명을 잉태하고 보듬으며 증식·보급해 주는 생태 창고 같은 역할을 해왔다면 그 창고와 논을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한 것이 논도랑이었다. 논에 물이 괴어 있을 땐 자연스레 논과 둠벙, 도랑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논에 물이 없을 땐 온갖 생명들이 숨어드는 피난처 역할을 한 것이 둠벙이요 그 피난처로의 안내길이 되어 준 게 논도랑이다.
논 둠벙과 도랑이 사라진 들판, 생명도 사라지고 우리의 추억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 막 벼베기가 끝난 논에서 더없는 황량함만이 맴도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사라진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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