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생태달력과 생태시계

 

우리 주변의 꽃들이 저마다 피고 지는 시기가 따로 있듯이 곤충들도 저마다 태어나 활동하는 시기가 다르다.

 

봄이 찾아와 동네 어귀 양지쪽에 냉이 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이면 겨우내 번데기 형태로 추위를 견뎌내던 배추흰나비가 어김없이 껍질을 벗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녹음이 푸르름을 더해가는 4월 중순쯤이면 탱자나무 가지에 매달려 월동을 마친 호랑나비 번데기 역시 탈피과정을 거쳐 멋들어진 자태를 드러낸다.

 

또 7,8월 무더위가 시작되면 각종 매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날개돋이를 마치고 독특한 울음소리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며, 가을이면 여기저기서 귀뚜라미들이 울음소리를 내며 계절이 겨울로 가고 있음을 전해준다.

 

곤충들은 또 ‘4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의 시간 흐름’을 정확히 알아차려 그들의 생활에 리듬을 주고 있다. 들꽃에 꿀벌이 가장 많이 날아드는 시간대는 오전 10시부터 낮 12시 사이이며, 귀뚜라미와 바퀴벌레는 하루해가 저물어야만 활발히 움직인다.

 

송충이 같은 나방 애벌레들도 하루 종일 이파리를 갉아먹는 게 아니라 오전과 오후 몇 차례씩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섭생과 휴식을 반복한다.

 

이렇듯 곤충들은 종에 따라 일년간의 활동주기와 하루 동안의 생활리듬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일컬어 ‘곤충 생태달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곤충들은 매년 같은 시기에 태어나 자라나고 생식을 하며, 하루 동안의 생활도 매일 같은 흐름으로 영위해 나가는데 그것이 마치 연중계획과 하루일과표에 의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곤충 생태달력은 이 지구상의 곤충들이 온도, 먹이 등 생활조건의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또한 곤충 달력은 수많은 종류의 곤충들이 저마다 일정한 순서에 따라 활동을 하도록 함으로써 계절적인 질서를 유지시켜 준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자연 생태계는 혼란의 연속일 것이다.'

 

 

'곤충의 생태시계 '

야행성 곤충들이 해가 넘어간 후에서야 먹이활동을 하는 것은 그들 체내에 시간의 흐름을 광주기를 통해 정확히 감지하는 일종의 시계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해가 진 뒤 상수리나무의 수액을 빨아먹기 위해 모여든 곤충들./자연닷컴

 

가을에만 나타나던 곤충이 어느 해부터 갑자기 봄과 여름에 나타나기 시작해 시도 때도 없이 들끓게 됐을 때의 자연 생태계를 생각해 보라. 그 자연생태계는 이미 계절적인 질서가 깨진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에서는 먹이사슬의 균형도 자연히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무엇이, 그 어떤 시스팀이 곤충들로 하여금 계절적인 변화를 알게 하고 하루 동안의 시간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게 하는 것일까.

 

이같은 의문의 실마리는 식물의 개화(開花) 시기가 광주기, 혹은 명암사이클에 의해 지배된다는 사실(이를 ‘식물 생태달력’이라 함)이 알려지면서부터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는데, 학자들의 연구 결과 곤충들도 그와 비슷한 시스팀을 통해 계절의 흐름을 인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즉, 곤충들은 밤낮의 길이(명암의 시간)가 변화하는 것을 체내의 특수한 장치(곤충 시계)를 통해 감지해 자신들의 연간주기 리듬(곤충 생태달력)을 유지하는데 활용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곤충들로 하여금 이 같은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은 하루 동안에 쏟아지는 빛의 양이 아니라 하루 동안의 명암 시간이며, 이것이 곧 자연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나아가 ‘자연계의 총체적인 생태달력’을 성립시키는 근본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또 빛의 양은 날씨에 따라 불규칙하게 변하지만 밤낮의 길이(명암사이클)는 계절에 따라 규칙적인 주기를 나타내고 있는 점을 들어 ‘곤충들은 명암사이클에 의한 계절주기의 영향을 받아 어느 시기에는 알을 낳고 어느 시기에는 날개돋이를 하는 등 각각의 생활사를 영위해 나간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례로 진딧물이 명암사이클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생활사를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알아보자. 진딧물은 일년 중 생활조건이 좋은 봄과 여름에는 날개가 없는 개체가 생겨나 각기 단성생식을 통해 급속히 번식하지만 가을에는 날개가 있는 수컷과 날개가 없는 암컷이 각기 태어나 유성생식을 한 다음 이들이 낳은 알로써 겨울을 지내는데,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명암사이클(광주기)인 것이다.

 

 

'진딧물과 명암사이클'

진딧물은 봄,여름에는 날개가 없는 개체들이 태어나 단성생식을 하지만 가을에는 날개가 있는 수컷과 날개가 없는 암컷이 태어나 유성생식을 하는데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명암사이클이다./자연닷컴

 

다음에 중요한 것은 곤충의 어느 부위에 명암사이클을 감지하는 장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여러 학자들이 실험을 한 바 있다.

 

즉, 1960년대 A.D Lees라는 학자는 진딧물의 몸 구석 구석에 가느다란 빛을 비추는 실험을 실시한 결과 광주 반응이 나타나는 곳은 눈이 아니라 뇌 중앙 뒤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냈으며, C.M Williams는 집누에를 이용해 뇌의 각 부위와 뇌 주위의 신경색을 자르는 등의 실험을 통해 뇌의 두엽부(頭葉部) 중앙 옆의 신경분비세포군 부근에 ‘광주반응 장치’가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의 광주반응 장치는 명암사이클을 감지해 계절 및 시간 변화를 알아차리는 메카니즘으로서 흔히들 ‘곤충의 체내 시계(곤충 시계)’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카로티노이드란 색소계가 이 장치의 주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리하자면 곤충의 뇌 속에는 카로티노이드란 색소계로 이뤄진 명암사이클 인식장치(곤충 시계)가 있어 이를 통해 계절 및 시간의 흐름을 정확히 감지해 산란, 부화, 탈피 등의 각종 생명현상을 영위함으로써 각각의 곤충 생태달력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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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9년 05월 16일 14시 51분
머리 장식깃이 독특하고 아름다워 '생태계의 귀염둥이'라 불리는 '쇠백로(황새목 백롯과)'가 최근 고향인 한반도 내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백로서식지(신정로 81번길)를 찾아 번식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등 크게 달라진 환경 탓인지 작은 인기척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커다란 경계음을 내며 불안해 하고 있다./아시아뉴스통신=김성식기자  


생태계의 법칙, 강한 자는 사라진다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동물이 있다. 다람쥐다. 비록 산골 숲속이 아니더라도 도시근교의 야산과 공원, 심지어 학교운동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다람쥐다.
계절이 가을인 만큼 그들이 먹이 모으느라 분주히 움직이기에 자주 마주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개체수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산행을 다녀왔거나 밤 주우러 갔다온 사람들 마다 "곳곳이 다람쥐 천지"라고 말 할 정도로 숫자가 많아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갑자기 많아진 야생 고양이 때문에 먹잇감인 다람쥐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각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는데, 20년도 채 안 된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야생 고양이 천국이 아닌 다람쥐 천국이 돼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자연 생태계에는 야생 고양이만 다람쥐의 천적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 뱀도 있고 족제비, 오소리, 담비, 삵, 너구리도 있다. 맹금류인 올빼미와 매 무리도 대표적인 천적이다.
먹이사슬내의 약자인 다람쥐로서는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모험일 정도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천적이다. 도토리 하나 밤톨 하나를 주워도 맘 편히 먹지 못하는 게 다람쥐다. 밤과 낮, 하늘과 땅 가리지 않고 온통 천적으로부터의 위험 뿐이니 어느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어쩌랴. 먹이사슬의 법칙은 늘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강자는 그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과 생태계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약자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게 자연 생태계의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약자인 다람쥐는 여전히 건재할까. 1990년대 중반기 상황으로는 얼마 안 가 다람쥐는 사라지고 야생 고양이만 들끓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야생 고양이의 숫자가 늘기는커녕 되레 줄어든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약육강식의 논리대로라면 먹이사슬의 아랫단계로 내려 갈수록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사라져야 할 텐데, 오히려 최하위 단계인 다람쥐는 사라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엔 그 숫자가 더욱 늘었음은 무슨 까닭일까.
거기에 더하여 국내 먹이사슬의 최상위 단계인 호랑이와 표범, 늑대, 여우가 이미 멸종된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먹고 먹히는 힘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한반도 생태계를 지배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강한 자는 사라진다는, 아니 강한 자부터 사라진다는 생태계의 법칙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하면 약한 자는 남는다는 뜻이니 결국 자연 생태계를 끝까지 유지시켜 나갈 최후 보루는 다람쥐와 토끼 같은 약자들이다.
약자는 비록 약할 망정 강자가 갖고 있지 않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겸손함과 부지런함이다. 호랑이가 사라진 곳에선 늑대가 늑대가 사라진 곳에선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먹이사슬의 윗단계로 올라 갈수록 우쭐대고 뽐내며 게으른 습성이 있지만 약자인 다람쥐와 토끼는 힘이 없기에 스스로 낮출 줄 알고 부지런을 떤다.
둘째,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이 뛰어나다. 푸른숲에서 민둥산으로, 민둥산에서 또 다시 푸른숲이 되기까지 숱한 서식환경 변화를 겪어오는 동안 이 땅의 최상위 동물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쇠퇴한 반면 최하위 동물인 다람쥐와 토끼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은 바로 뛰어난 환경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 때문이다.
맹수는 배가 고파야 사냥한다. 힘이 있기에 그 힘만 믿다보니 생긴 습성이다. 하지만 다람쥐와 토끼는 늘 움직이며 먹어댄다.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이지만 절대 포기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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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야를 다니다 보면 돌연 믿기지 않는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된다. 황소개구리도 아닌 토종 개구리가 저보다 큰 무자치를 물고 발버둥치고 있거나 물고기인 동사리가 살모사와 입을 마주 문채 나뒹굴고 있는 모습, 또 유혈목이가 천적인 백로와 왜가리의 목을 감고 사생결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 등 가히 기적이라 할만큼 황당한 사건이 생태계서 벌어지곤 한다.

어찌보면 먹잇감(피식자)의 반란 같기도 하고 약자의 최후 발악 같기도 한 이광경. 하지만 포식자의 입장에선 그들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치욕의 순간이다. 어쨌거나 서로가 생과 사를 걸고 벌이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싸움을 보노라면 이 세상 생명체들이 얼마나 자신의 생명에 집착하는 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그렇다면 이들 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대부분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으나 간혹 양쪽 모두가 죽고 마는 극한상황까지 벌어진다. 반면 약자인 피식자가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령 이긴다해도 목숨만 부지할 뿐 상대를 집어삼키진 못한다.

비슷한 일이 곤충세계서도 일어난다. 생태계내에서 강자인 말벌이 꿀벌을 공격했다가 화가 난 꿀벌들의 역습으로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가 그 예다. 이 경우도 말벌은 죽지만 타격은 꿀벌들에게도 만만찮다. 강한 턱과 이빨을 가진 말벌이 순순히 당할 리 없다.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그 결과 싸움이 끝난 자리엔 말벌의 사체 외에도 꿀벌의 사체 또한 부지기수다.

생태계내 먹잇감의 하극상(?)은 이렇듯 희생을 가져온다. 아니 그 희생은 이미 예견된 결과다. 생태계에는 그만큼 비정한 먹이사슬의 법칙이 있다. 피식자는 포식자의 섭식활동에 결과적으로 순응토록 돼 있다. 다만 쉽사리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생존경쟁을 벌이고 필사의 저항을 할 뿐이다. 그 생존경쟁과 저항은 양쪽 모두를 진화하게 하는 모티브가 된다. 이것이 생태계다.

만일 동물계의 먹이사슬에 인간이 끼어들어 한 동물의 먹이체계를 뒤바꿔 놓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초식성 동물에게 육식성 먹이를 먹도록 강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경우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지금 우린 그 엄청난 결과를 '실제 상황'으로 목격하고 있다. 다름아닌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이 그 답을 던져주고 있다.

생각해 보자. 이미 알려진 바대로 광우병의 발병 원인은 근본적으로 소의 먹이(사료)에 있다. 20여년 전부터 영국 등지서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리고 비육우를 빨리 살 찌우기 위해 양과 소의 장기, 뼈, 살코기 등을 사료원료로 이용한 게 단초가 된 것이다.

초식성인 소에게 단백질을 공급한답시고 육식성 사료를 섞어 먹인 것이 화근이 돼 결국 광우병이란 해괴망칙한 병을 낳고 말았다.

그결과 전 세계는 광우병의 공포에 휩싸이게 됐고 우린 지금 그 병의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문제로 전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촛불시위의 피킷마다 '미친소=미친정부'라며 아우성이다. 이젠 해외 동포들까지 나서 우리의 '미친 정국'을 우려하고 있다.

자고로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 했다. 개도 먹을땐 건드리지도 말라 했잖은가. 그만큼 먹을거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난도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는 건 곧 신뢰성과 안전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제 아무리 약자인 피식자라도 열 받고 궁지에 몰리면 반격하는 게 자연계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자신의 먹을거리가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억지에 의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건 생존의 문제다. 그 어찌 분노가 극에 달하지 않겠는가.

온 산야가 시끌벅적하다.

우수 경칩 이후 들려오기 시작한 봄의 소리, 생명의 소리가 청명을 지나면서 더욱 요란해지고 있다.
계절이 바뀌었음이리라.

겨울철새들이 혹한을 무대 삼아 멋진 군무와 운율을 펼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계절은 벌써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를 향해 달리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대자연은 스스로 무대를 바꾸고 바뀐 무대엔 새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곧 생태시계요 자연의 이치다.
봄은 소리없이 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생태계의 봄은 생물들의 사랑노래로부터 시작된다.

겨우내 움츠렸던 개구리들이 땅위로 기지개를 켜자마자 부르는 게 바로 사랑의 세레나데다. 생태계를 깨우는 서곡이자 봄을 알리는 전령가인 셈이다.
그 뒤를 잇는 게 텃새들의 합창이다. 참새와 박새 같은 텃새들이 생명의 계절 잉태의 계절, 봄이 되면 일제히 사랑노래를 쏟아놓는다. 사람이 사춘기가 되면 변성기를 맞듯 새들도 짝짓기철이 오면 울음소리가 바뀐다. 평소의 울음소리와 짝 찾아 사랑 나눌 때의 소리가 다르고, 둥지 틀어 새끼 기를 때 소리가 다르다. 산란철에 천적을 만나면 더욱 독특한 경계음을 낸다. 호르몬의 작용 때문이다.

 
4월은 바야흐로 텃새들의 산란철이다.

부산히 움직이고 재잘거리며 열심히 사랑을 나눠야 '대(代) 내림'이란 숭고한 사명을 마칠 수 있다.
지난 4월 4·5일, 속리산 천왕봉 숲속에선 말 그대로 '대자연의 교향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무심코 들으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소리겠지만, 계절 따라 상황 따라 울음소리가 변하는 새들의 생태와 속내를 알고 있는 필자로선 하나하나의 울음소리도 예사롭게 들을 수 없었다.
고운 빛깔의 곤줄박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려고 먹이를 문 채 애절하게 유혹하는 소리, 그에 화답하듯 재잘대며 교태부리는 암컷, 뭐에 뾰루퉁해졌는지 난 데 없이 사랑다툼 하는 진박새 부부, 그 사이에서 먹이를 찾다 황급히 달아나며 서로를 부르는 쇠박새 부부, 고목 둥치에 뒤늦게 둥지를 파느라 낯선 객이 오는지도 모르고 나무를 쪼는 청딱따구리 수컷, 그 옆나무서 망을 보다 수컷에게 경계신호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청딱따구리 암컷, 깊은 골짜기를 타고 멀리서 들려오는 멧비둘기의 구애소리….
사랑과 평화, 긴장과 경계의 신호가 서로 엇갈려 얼핏 들으면 불협화음처럼 들리지만 결코 그들의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 세상 어떤 오키스트라가 이처럼 절묘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낼 수 있을까. 달래강 발원지 탐사를 위해 세 번째 올랐던 당시 산행은 그래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9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온 나라 안이 시끄럽다. 시끄럽다 못해 활극장을 방불케 한다.

모두가 저만 잘났다고 아우성이다. 민생이야 어떻든 내 알바 아니라며 온갖 고성과 손가락질로 상대방 비난에만 열 올리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수라장이다.

땅도 같고 계절도 같은데 인간계와 자연계가 내는 현재음(現在音)이 이렇듯 확연히 다르다.

한쪽에선 사랑과 생명의 하모니가 울려퍼지는데 다른 한쪽에선 협잡과 이기로 가득 찬 불협화음이 난무하고 있다.
대자연의 소리도 생태계가 건강히 유지될 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법.

하물며 우리 사회는 어떠랴. 서로 존중하고 정도를 지켜 나갈 때 비로소 사랑과 화합의 합창이 울려퍼지지 않을까.

입후보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이여. 선거종반으로 갈수록 적극 투표의사를 가진 사람수가 줄고, 부동층이 느는 이유를 아는가.

그대들이 무시해온 유권자·국민들의 '낮은 소리'가 표심이 되어 결국 '천둥소리'를 낼 것이란 걸 정녕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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