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복과 장화, 마스크를 착용하고 한 손엔 부대를 든 사람들. 그들이 거리를 좁히자 한쪽으로 닭과 오리가 내몰린다.

영문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닭과 오리들. 맨앞 무리가 억지로 떠밀려 웅덩이로 떨어지거나 잽싼 손아귀에 잡혀 부대에 넣어지자 뒤쪽 무리가 난리 친다. 죽음을 아는듯 발버둥 치지만 소용없다. 외마디 비명들이 파편처럼 튄다. 아수라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쪽에선 굴삭기가 흙을 퍼담는다.

홀로코스트의 현장이 이랬을까.
차마 눈 뜨고 못 볼 생지옥, 바로 가금류 살처분 현장이다.

처참한 이 장면들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또다시 나라안이 'AI(조류 인플루엔자) 신드롬'에 빠졌다.

닭과 오리 사육농가는 물론 사료·식품업계까지 초비상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치킨 사달라던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며 조용해졌고 닭고기와 계란 매장, 심지어 삼계탕집, 오리요리집까지 발걸음이 뜸해졌다.

무의식적인 연쇄반응인지 경험적인 훈련인지 파장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 2003년 이후 벌써 세번째다.
아니 세번째도 세 번째지만 이번엔 그 피해가 사상 최대일 것이라는 게 문제다. 관련 업계의 줄도산이 있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검은 그림자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걱정이다. 왜 이럴까.

잊을 만하면 터지고 잠잠하다 싶으면 날벼락이다. 속이 상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AI를 막을 근본처방은 없는가. 정녕 없다면 그 피해만이라도 줄일 방도는 없는가.

우선 방역체계부터 생각해 보자. 지금껏 당국은 뒷북치기 일쑤였다. 발병하고 확산된 뒤에야 비로소 '잊고 있던 할 일'이 생각난 듯 허겁지겁 역학조사니 고병원성 확인작업이니 야단법석을 떤다.

한번도 어느 지역에 AI 발생이 우려되니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는 사전예고를 들어본 적 없다. 사전 및 상시 예찰시스팀이 미비해서다.

또 하나 발병 및 확산 경로에 대한 관심 소홀이다. 지금까지 숱한 지역, 숱한 농가에서 AI가 발생했어도 지역별·농가별 발병 및 전파경로에 대한 자세한 분석결과가 나오질 않는다.

어떻게 발생해 어떤 경로로 주로 전파되는지를 알아야 효과적으로 차단할 게 아닌가. 그런 데도 안한다. 그러니 제대로된 방역이 이뤄질 리 만무다.

 

일단 발병하면 서둘러 끌어묻는 살처분 과정에도 문제 있다.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고병원성 AI 발생시 조속한 살처분 정책을 펴고 있기에 그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과정이 문제다.

제 아무리 병에 걸렸다하더라도 그들도 생명체인 이상 굳이 잔혹하게 대할 필요는 없잖은가.
사전방역에 실패해 발병케 한 것도 부끄러운데 그들을 마구 대하기 일쑤고, 또 무슨 자랑거리라고 공개적으로 땅에 끌어묻는가.

국보 1호가 불 탄 건 국민적 수치라 한나절도 안돼 급히 천막 두르면서 농민이 애써 기른 가축은 병 들었다는 이유로 공개처형하듯 천막 한 조각 두르지 않고 버젓이 살처분한다.

제발 부탁한다. 국민 정서를 위해 최소한 임시 가리개라도 두른 상태서 작업()하길 당부한다.

또 아무리 급하더라도 지하수 오염도 생각하길 바란다. 그들이 썩으면 그 썩은 물이 어디로 가겠는가. 얇은 비닐 한 두겹으로 그 엄청난 침출수를 막겠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닭과 새는 본래 닭대가리 행동, 새대가리 행동을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볼 뿐이다.

괜한 닭, 괜한 새 얕잡아 보지 말고 이참에 우리 스스로 닭대가리, 새대가리 같은 짓 안하는 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AI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변종을 만들어가고 방역체계는 되레 뒷걸음질 치니 걱정거리가 자꾸만 늘어난다.

제 아무리 변이를 거듭하는 AI 바이러스라 하더라도 인간의 건강까지 넘 봐서는 안되는데, 마음이 영 놓이질 않는다.

미국에서는 소고기 협상에 따른 쓰나미가, 국내에서는 AI 발생에 따른 날벼락이 축산농가들의 혼을 몽땅 빼앗아가고 있는 이 현실. 이 암울한 현실이 우리의 뿌리, 농촌을 더욱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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