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존심 '익수키미아 초이'

 

-(4)스승께 바친 報恩의 물고기 '崔고기'

 

 

■신종 발견의 계기  

 

1983년 3월 한국육수학회지 16권에 매우 의미있는 논문이 발표됐다. 주제는 「미호천의 담수어류상에 관한 연구」, 발표자는 당시 청주사범대(현 서원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손영목박사(현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장)였다.

 

미호천은 충북 진천의 백곡천과 초평천 등 여러 지류와 만나 충남 연기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그 때까지만 해도 이 하천의 전수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류상 조사는 손박사의 것이 최초였다.

 

손박사는 이 논문을 통해 "1982년 4~9월초까지 충북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 등 11개 지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 미호천의 민물고기는 총 8과 36속 45종으로 나타났으며 한국고유종은 참종개를 포함해 총 15종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손박사는 또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미호천의 우점종은 피라미(23.47%) 돌마자(12.54%) 붕어(11.99%) 모래무지(9.90%)의 순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피라미가 전수역에서 우세를 보였다"고 설명한 후 "대부분의 하천에서는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버들치-갈겨니-피라미-붕어 등의 순으로 우세현상을 보이나 미호천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손박사는 이처럼 미호천의 정상적인 어류 분포형이 깨진 원인으로 저수지의 건설, 보(洑)의 설치 및 개간에 따르는 하천유역과 하상의 심한 파괴에서 오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밖에도 이 논문에는 도표 <미호천의 어류상>을 통해 "미꾸리과 어류로 미꾸리 17개체, 미꾸라지 2개체, 점줄종개 81개체, 참종개 81개체가 각각 채집됐다"고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이 발표후 얼마 안가 '미호종개'라는 신종 발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참종개로 분류된 표본의 일부가 추후 관찰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던 종과는 전혀 새로운 종, 즉 신종임을 확신케 하는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호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호천은 흰빛 모래사장이 깔려 있는 푸른 하천이었다. 이 흰빛 모래사장은 한 어류학자의 학문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미호종개'라는 신종을 발견케 하는 단초적 역할을 했다./자연닷컴

 

■'코비티스 초이'로 신종 발표

 

이 논문이 발표되자 곧바로 손박사를 찾은 이가 있었다.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인 김익수박사로, 손박사와는 대학 동기동창인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당시 김박사가 손박사를 찾아간 이유는 훗날 학계에서 '비화'로 소개될 만큼 유명한 일이 되었기에 고 최기철박사의 기록을 통해 들어보자.

 

"1990년 11월 어느날, 전주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김익수박사가 문득 지난 1983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박사는 당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르내렸는데 청주 인근 미호천을 지날 때마다 하얗게 깔린 모래사장에 늘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저렇게 모래가 많은 하천바닥이라면 참종개 외에도 특별한 참종개 무리가 살지 않을까? 만일 있다면 그것은 신종 아닌가?'란 생각을 항시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손박사의 미호천 어류상에 관한 논문이 발표됐고, 그 내용을 보는 순간 '미호천의 참종개는 과연 참종개일까'란 순수한 학문적 의구심이 들어 곧바로 청주에 있는 손박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손박사의 양해를 얻은 김박사는 당시 미호천서 채집된 81개체의 참종개(당시의 분류기준으로는 참종개로 분류할 수 밖에 없었음)를 모두 관찰한 결과 꼬리자루가 무척 가늘고 몸 양측의 반문이 참종개와 다른 개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 그 자리서 손박사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해 신종으로 밝혀질 경우 한국명은 '미호종개'로 할 것과 학명은 'Cobitis choii Kim and Son'으로 할 것을 말이다."

 

 

 

참종개(위)와 미호종개(아래) ./자연닷컴

 

공동연구에 들어간 손박사와 김박사는 얼마 안가 신종이라고 생각되는 종의 형태형질 인자가 참종개나 점줄종개와 같지 않다는 것과 몸 양측의 중앙부에 위치한 반문도 점줄종개나 참종개와 다르며, 꼬리자루가 유별나게 가늘고 비늘이 참종개보다 작다는 것 등을 알아냄으로써 신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두 박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해(1983년) 5월 23일부터 6월 20일까지 직접 현지조사를 실시해 미호종개 85개체 점줄종개 139개체 참종개 8개체를 채집, 3종이 같은 지역에 서식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1984년 한국동물학회지 27권 1호에 「한국산 기름종개속 어류의 1신종 '코비티스 초이(Cobitis choii Kim and Son)'」가 발표됨으로써 미호종개는 비로소 한국의 민물고기 목록에 오르게 됐다.

 

손박사의 세밀한 채집조사가 없었던들, 그리고 김박사의 학문적 의구심이 없었던들, 또한 두 박사의 서로에 대한 학문적 신뢰와 우정이 없었던들 미호종개는 어쩌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은 채 저홀로 멸종의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익수 박사./자연닷컴

손영목 박사.자연닷컴

 

 

■스승께 바친 '보은(報恩)의 물고기'  

 

미호종개의 한국명과 학명을 붙이게 된 배경에 대해 손영목박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국내에서 어떤 생물종을 신종 발표할 때에는 우리말 이름을 짓게 된다. 김익수박사와 공동으로 찾아낸 신종을 미호종개로 지은 것은 첫 채집장소가 미호천인 데다 당시에는 미호천에서만 발견되는 한국고유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것이다.

또한 신종을 발표할 때는 라틴어를 사용해 린네가 주창한 이명법(二名法)에 따라 학명을 짓게 되는데 신종 발표 당시에는 미꾸리과 중에서 기름종개속(Cobitis속)에 속하는 새로운 종이었으므로 종소명을 'choii'로 작명해 'Cobitis choii'가 된 것이다. 여기서 'choii'는 라틴어식 발음에 의해 비록 '초이'로 발음되긴 하지만 발표자인 나와 김박사의 은사인 고 최기철박사님(최:崔)을 의미하는 것으로, 은사님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작명한 것이었다. 지금은 미호종개의 학명이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으로 바뀌었다."

 

고 최기철 박사는 이와 관련, 글을 통해 "신종 발표 직전 김박사와 손박사가 나를 생각해 'choii'라는 종소명을 지었으니 양해해 달라고 요청해와 굳이 사양했으나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며 "고마운 일이긴 하나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렇듯 미호종개는 제자들이 찾아내 스승에게 바친 보은의 물고기로,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오늘날 미호종개 하면 '崔고기' 혹은 '崔종개'란 별칭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글.사진 김성식 생태환경 전문기자

지구상 유일 금강.미호천 서식… 천연기념물 '미호종개'

 

학술적 연구와 보전을 위해 약품 처리한 후 고정해 놓은 미호종개 표본./자연닷컴

 

 

익수키미아 초이는 멸종위기 Ⅰ급어류이자 천연기념물 454호인 '미호종개'의 종명(Iksookimia choii)을 뜻한다. 미호종개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 금강, 그중에서도 미호천을 중심으로 한 극히 제한된 수역에만 사는 '금강특산종'이자 '한국고유종'인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총 215종의 민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학명(學名)을 이루는 속명(屬名·Iksookimia)과 종소명(種小名·choii), 명명자(命名者·Kim and Son) 모두가 순전히 국내 학자의 성과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어류다.

 

 <사진 설명> 미호종개는 미꾸리과의 다른 종에 비해 주둥이 앞부분이 유난히 뾰죽하고 길며 꼬리부분의 미병부가 가늘고 긴 특징이 있다. 몸 측면에는 반원 또는 세모 형태의 반점이 있고 등 쪽에는 불규칙한 얼룩무늬를 갖고 있다./자연닷컴

 

 

'익수키미아 초이'란

 

익수키미아 초이는 우리나라 민물고기 '미호종개'의 종명(種名) 'Iksookimia choii' 를 한글로 표현한 말이다. 미호종개는 1982년 손영목박사(전 서원대 교수, 전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장)가 청주 인근 미호천에서 채집하여 1984년 김익수 박사(전북대 교수)와 공동으로 신종 발표한 미꾸리과 어류로, 전 세계에 우리나라에만, 그것도 금강 수계의 청원 미호천과 공주 유구천 등 극히 제한된 수역에만 서식하는 매우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다시 말해 금강특산종이면서 한국고유종이요, 희소적 가치로는 국제적 희귀어종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총 215종의 민물고기 가운데 '유일하게' 학명(學名)을 이루는 속명(屬名)과 종소명(種小名), 명명자(命名者) 모두가 순전히 국내 학자의 성과 이름으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어류로서 학술적으로도 그 의미가 깊다.

 

속명인 IksookimiaIksookim은 김익수박사의 이름이며, 종소명인 choii는 김익수박사와 손영목 박사가 그들의 은사이자 한국 어류학계의 거두인 고 최기철 박사(전 서울대교수)를 기리고자 그의 성(崔)을 따서 붙인 이름으로, 라틴어식 발음에 의해 '최'가 아닌 '초이'로 읽힌다.

 

또한 미호종개의 정식 학명은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인데, 여기에서 괄호안의 Kim and Son은 다름 아닌 최초 이름을 붙인 김익수·손영목박사의 이니셜이다. 참종개 왕종개 가는돌고기 점몰개 동사리, 얼룩동사리, 퉁사리, 좀수수치 등 국내 학자들에 의해 신종 발표된 다른 18종의 민물고기들과 함께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갖게 하는 '특별한 물고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은 현재 쓰이고 있는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이란 학명을 공식화 한 이가 루마니아의 Nalbant박사란 점이다. 기름종개속 어류의 세계적 권위자인 Nalbant 박사는 1993년 처음으로 Iksookimia속(屬)을 기재 발표하면서 기존의 기름종개속(Cobitis속)으로 분류되던 미호종개(당시 종명 Cobitis choii)와 참종개 왕종개 부안종개 남방종개 등을 Iksookimia속으로 묶었다. 뿐만 아니라 Kottelat란 학자도 최근 몽골산 기름종개속의 lebedevi Iksookimia속에 포함시켜 기록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이들 어종의 대부분을 신종 발표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김익수박사의 업적에 근거한 것으로, 특히 이들 어종이 갖는 형태 및 생태·생리적인 특징이 다른 미꾸리과 어종과 차이가 있음을 남보다 앞서 문제 제기했던 김 박사의 '혜안'을 존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국내 학자의 특별한 노력이 국제 학계로 하여금 하나의 새로운 속(屬)을 기재 발표케 한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이다. 손영목 박사와 함께 제기했던 미호종개의 분류학적 특성 또한 그러한 모티브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사진 설명> 미호종개의 최초 채집 장소인 충북 청원의 미호천 팔결교 부근<사진>은 미호종개의 타입 로컬리티이다. 타입 로컬리티란 어떤 생물 종의 모식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서식하는 개체(신종 발표시 이 곳서 채집 동정한 개체를 '모식표본·type species'이라 함)가 타 지역서 채집되는 개체와 비교 동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미호천 팔결교 부근에서는 미호종개가 거의 채집되지 않는 등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기로에 선 '한국의 자존심'

 

미호종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학술적, 유전자원적 혹은 종 다양성 보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이 물고기가 정작 국내에서 그 존재성과 가치성이 널리 알려지기도 전에 멸종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환경오염과 서식처 파괴 등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속히 줄어들어 최초 채집 장소인 청원 미호천의 팔결교 부근(사진 참조: 이곳은 미호종개의 '타입 로컬리티'로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에서 조차 종적을 감추어가고 있는 등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급어류'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재청도 미호종개의 존재가 첫 알려진 이후 20여 년만인 지난 2005년 3월 '천연기념물 454호'로 지정, 보호에 나섰지만, 이 역시 사후약방문격(死後藥方文格)이다.

 

최근엔 환경부가 주축이 돼 미호종개 복원 사업에 나서고 있으나, 완전복원 가능성은 아직 불투명하다. 내로라하는 국내 유수 학자들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망가진 서식환경과 생태 시스팀이 복원 노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식환경과 생태 시스팀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처방과 대책이 병행되지 않는 한 한낱 헛수고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감도 제기되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가 지키고 가치를 높여야 할 '한국의 자존심'이 끝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상황인 것이다.

 

 

<사진설명> 몇 안 되는 미호종개 서식지 중의 한 곳인 대전 갑천의 상류지역. 수심이 얕고 유속이 비교적 완만하며 바닥에는 잔자갈과 모래가 적당히 섞여 있다. 지난해 8월 예비 조사때 촬영한 것으로 주변에는 풀과 숲이 어우러져 있으나 이곳 역시 서식개체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8개월간의 취재 여정

 

이에 미호종개가 처한 오늘의 상황을 보다 상세히 밝혀내고, 나아가 이 종이 다른 미꾸리과 어종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형태형질 분석과 유전자 분석(분자계통학적 분석)을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종 자체가 지닌 학술적 가치를 찾아내고 아울러 종 다양성 보전 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고자 이번 기획취재를 마련했다.

 

8개월간 35회 걸쳐 상세보도

 

4월부터 12월까지 8개월여 동안 총 35회에 걸쳐 보도예정이며, 주요 내용으로는 한반도 민물고기의 유래 금강의 미꾸리과 어류'익수키미아 초이''의 탄생 미호종개의 형태적 특징 유전 다양성과 분자계통학적 특징 학술적·문화재적 가치 서식 현황과 환경 사라지는 이유 생식특성과 생활사 먹이특성 복원 노력과 과제 복원 성공을 위한 제언 등을 다루게 된다.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특히 미호종개의 첫 발견에서부터 학계 보고 과정, 현재의 학명이 붙여지기까지의 과정, 종 특성 등을 상세히 추적 소개함으로써 미호종개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와 자긍심을 고취시킴은 물론 '멸종위기급어류'로서의 미호종개와 '천연기념물 454호'로서의 미호종개가 갖는 의미를 재고찰하고, 개체수 감소요인 및 멸종위기에 처한 오늘의 상황 규명을 통해 보전방안 마련을 촉구하는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아울러 전문가와의 동행 취재 및 연구 분석 의뢰를 통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호종개의 생활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지상 토론회 등을 통해 합리적인 복원방안 제시와 함께 종 다양성 보전 차원의 관심과 노력 제고를 촉구할 예정이다.

 

/ 김성식 충청타임즈 생태환경 전문기자2007년 04월 12일

 

 

<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07년 4월부터 약 8개월 동안 김성식 생태환경 전문기자가 충청타임즈에 기획 보도한 자료를 '자료 제공' 차원에서 재편집해 싣습니다.

지금은 미호종개를 둘러싼 상황이 이 기사 보도할 때와는 매우 달라졌음을 감안해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쉬리와 붕어

 

지구상 우리나라에만 사는 민물고기 쉬리. 이 물고기가 학계에 처음 알려진 해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으로, 당시 한반도에 건너와 조선땅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신종 물고기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눈이 벌겄던 모리 타메조라는 일인 학자에 의해서였다. 모리는 남한강 수계에서 '처음 보는 특별한 조선 물고기' 쉬리를 채집해 'Coreoleuciscus splendidus Mori'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했다.
모리가 찾아낸 물고기는 체형이 날씬하고 몸색깔과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기생피리, 여울각시, 연애각시 등으로 불러온 그야말로 조선토종 물고기였다. 모리가 처음 잡았을 때 얼마나 감탄했으면 종소명을 'splendidus'라 했겠는가. splendidus의 splendid는 매우 인상적이거나 아름다울 때 쓰는 말이다.
그로부터 72년 뒤인 2007년 모리가 살아 있더라면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 국내 젊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다름 아닌 '쉬리가 1종이 아니라 2종'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순천향대 방인철교수팀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충청타임즈 2007년 6월 25일자 최초 보도> "국내에 서식하는 쉬리를 형태 분석과 함께 유전다양성 및 분자계통학적 분석을 병행한 결과 한강과 금강에 사는 쉬리(일명 북방계)가 낙동강과 섬진강에 사는 쉬리(일명 남방계)와 뚜렷이 구분됐다. 특히 남방계 쉬리는 모리가 신종으로 발표했던 기존의 쉬리(북방계)와는 다른 신종으로서 앞으로 보강 연구를 더 실시해 정식으로 신종 발표할 계획이다."
신종 발표가 이뤄질 경우 한국산 쉬리는 1종에서 2종으로 늘어나게 된다. 방교수가 밝힌 북방계 쉬리와 남방계 쉬리는 외형상 체색과 지느러미 반점, 뺨부위 암점 등 여러 면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분자 계통학적으로도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변이에서 온 것이건 분포지리학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건 분명한 것은 쉬리가 보다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20여년 전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은 바 있다. 대청호에서 발견한 '한국 최초의 민물해파리'를 들고 찾아간 필자에게 대뜸 "우리나라에 토종 붕어가 몇 종류 사는지 아느냐"고 묻기에 "글쎄요, 저수지에 사는 일반 토종 붕어와 강에 사는 점박이 붕어(일명 돌붕어), 그리고 …"하면서 머뭇거렸더니 "적어도 대여섯 종류, 많게 보면 8종류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학문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물고기 분류가 주로 형태형질 분석에 의존하던 때여서 최박사도 그것을 기준으로 잠정 분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 분자계통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한 원로학자의 학문적 고백이 아닌가 싶다.
어느 물고기 한 종이 형태적으로 다양한 형질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적으로도 다양한 인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전 다양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전 다양성은 그 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유전 다양성이 풍부하면 그만큼 자연계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은 반면 유전 다양성이 낮으면 환경 변화에 민감해지고 적응력이 떨어져 종 자체가 사라지기 쉽다.
오늘날 미호종개나 어름치 같은 고유종들이 백척간두에 서있게 된 것은 다음 아닌 유전 다양성이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같은 물줄기에 살든 다른 물줄기에 살든 모두가 '한 혈통 같은 핏줄'이니 조그만 환경변화에도 순식간에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유전 다양성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백곡저수지 미호종개, 어항 물고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중 학술적 이력이 가장 독특한 종은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Ⅰ급)다. 1982년 당시 서원대교수이던 손영목박사가 미호천에서 첫 채집해 1984년 김익수박사(전북대교수)와 공동으로 신종 발표한 이 물고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금강 수계에만 사는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또한 이 물고기는 우리나라 전체 민물고기 200여종 가운데 '유일하게' 학명을 이루는 속명, 종소명, 명명자 모두가 국내 학자로만 만들어진 기념비 같은 어류이다.

 속명(Iksookimia)은 김익수박사의 이름을 따서, 종소명(choii)은 김박사와 손박사의 은사인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교수)의 성(崔)을 따서 붙였다.  지금의 정식 학명인「Iksookimia choii (Kim and Son)」에서, 최초 명명자를 뜻하는 괄호안의 Kim and Son은 신종발표자인 김박사와 손박사를 뜻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학명을 공식화 한 이는 루마니아의 Nalbant박사다. 기름종개속(屬)의 권위자인 Nalbant박사는 1993년 처음으로 Iksookimia속을 기재 발표하면서 기존의 기름종개속(Cobitis속)으로 분류되던 미호종개(발표당시 종명은 Cobitis choii)를 참종개, 왕종개, 부안종개, 남방종개 등과 함께 Iksookimia속으로 묶었다. 미호종개로 인해 미호종개속이란 하나의 분류체계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미호종개를 한국의 자존심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하지만 미호종개는 외롭고 가련한 존재이기도 하다. 지구상 우리나라에만, 그것도 금강 일부수역에만 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태생적으로 외롭고 생태적으로도 밀려나 살고 있다는 뜻이다.

 미호종개 서식지는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약 20개 지점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조사에서는

겨우 6곳(인공복원지 제외)밖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개체수마저 급속히 줄고 있다. 국내 최대 서식지인 진천 백곡저수지의 상류부만이 약 1만 마리가량 살고 있을 뿐 다른 서식지에서는 겨우 서식사실만 확인될 정도로 극소수가 살고 있다. 학자들은 현존 개체수가 불과 2만 마리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호종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인 백곡저수지 둑높임 공사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강행될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충북도가 조정안을 내놨지만 내용이야 어쨌든 공사 진행 자체가 미호종개에겐 엄청난 위협이다. 상황에 따라선 '그나마 밀려나 가까스로 살아오던 최후 보루'마저 잃을 판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한 동물의 집단 서식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군다나 백곡저수지내 미호종개 집단서식지의 경우 기존에 알려졌던 서식지와는 환경이 판이하다. 미호종개는 대부분 유속이 완만하고 모래가 깔린 하천의 얕은 여울에 서식하는데 백곡저수지에서는 상류의 하천 유입부 한 곳에 집중해 살고 있다. 유입수량과 수질, 저수위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사후 5년간 현수위를 유지한 뒤 매년 30㎝씩 수위를 높인다고는 하나 지금과 같은 서식환경이 그대로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또한 대체 서식지란 것도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며 사업추진을 위한 면죄부용일 뿐이다. 자연상태의 물고기 서식지는 결코 어항이 아니다. 인위적 공간을 만들어 미호종개를 살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곡천과 백곡저수지가 어항이 아니듯 미호종개 역시 어항속 물고기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 그들이 왜 전례없이 백곡저수지 상류에 몰려 살게 됐는지, 그 가련한 원인부터 생각해 볼 때이다.

추억 속 랜드마크 '금강'은 이제 슬프다

 

 

금강은 특별하다. 전북서 발원해 1천리를 굽이치고도 다시 전북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큰 강 치고 발원지와 종착지가 한 도(道)에 있는 건 금강 뿐이다. 그러면서 물줄기는 전라 경상 충청을 아우른다. 그래서 삼기(三岐)의 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강을 금강답게 특징 지웠던 것은 금빛 백사장을 끼고 수놓 듯 흐르던 푸른 물결이었다. 오죽했으면 비단강(錦江)이라 했겠는가.
푸른 물빛과 함께 곳곳에 펼쳐졌던 황금빛 모래사장은 가히 금강의 대명사였다. 대전 인근의 신탄진과 청원 부용의 금호리 일대는 해수욕장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이미 강수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은 지류 곳곳에도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미호천이다. 지금도 청주시민의 추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팔결다리 백사장과 까치내 백사장은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서 손꼽히던 명소였다.

 


금강은 또 여러 생명체를 껴안은 생명의 강이었다. 서식 환경이 다양하니 그곳에 깃든 동식물도 다양할 수밖에. 물고기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에 오로지 금강수계에만 사는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Ⅰ급)를 비롯해 어름치(〃 238·259호), 감돌고기(멸종위기Ⅰ급), 흰수마자(〃), 퉁사리(〃), 꾸구리(〃Ⅱ급), 돌상어(〃), 둑중개(〃), 금강모치, 종어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소중한 물고기들이 지천했다.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i-미호종개의 학명)'의 주인공 전북대 김익수교수가 '미호천엔 색다른 물고기가 살 것'이란 학술적 상상을 가짐으로써 결국 미호종개를 발견해 냈던 모티브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봐왔던 미호천 모래사장이었다. 금강은 또 '물고기 할아버지' 고 최기철박사의 학문적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금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류이긴 하지만 금강 언저리서 태어나 그 물에 멱 감으며 자랐고, 언론사에 몸 담은 뒤론 줄곧 '주요 출입처'로서 늘 관심을 가져왔다. 금강 토박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요 당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금강은 슬프다.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렜던 본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적어도 비단강 시절의 금강은 이젠 없다. 속살이 훤히 비치던 푸른 물결도, 금가루가 금세 묻어 나올 것만 같던 모래사장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생명의 숨소리도 야위어 있다. 부여의 진상품이던 종어는 오래 전에 절종됐고 어름치는 수십년째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인공복원됐다. 뿐만 아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랫바닥을 훑기만 해도 한 줌씩 잡혀나왔던 재첩은 물론 갈퀴질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튀어나왔던 모래무지,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떼지어다닌다 하여 멍석이라 불렀던 잉어떼들…. 모두가 옛날 얘기다.

 


강은 자체가 생명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수십,수백 억 년을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에 따라 모습을 갖춰온 복합생명체다. 그러나 그같은 복합생명체도 '인위'에는 약하다. 강의 최대 천적은 인간이다.
어느날 졸지에 물흐름이 바뀌고 곳곳이 단절된 채 상하류가 뒤죽박죽 된 것도 사람에 의해서요, 한반도 형성기부터 뿌리 내려온 물고기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져간 것도 사람에 의해서다.

 


금강은 이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뜩이나 벼랑끝 신세이던 금강이 목하 4대강 사업의 손안에서 '조각(彫刻)'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숱한 세월을 이어온 자연의 라이프사이클에 감히 마구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금강의 라이프사이클, 그 와중에 우리들 추억속 랜드마크까지 갈가리 '조각'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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