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존심 '익수키미아 초이'

 

-(4)스승께 바친 報恩의 물고기 '崔고기'

 

 

■신종 발견의 계기  

 

1983년 3월 한국육수학회지 16권에 매우 의미있는 논문이 발표됐다. 주제는 「미호천의 담수어류상에 관한 연구」, 발표자는 당시 청주사범대(현 서원대) 생물학과 교수였던 손영목박사(현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장)였다.

 

미호천은 충북 진천의 백곡천과 초평천 등 여러 지류와 만나 충남 연기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그 때까지만 해도 이 하천의 전수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류상 조사는 손박사의 것이 최초였다.

 

손박사는 이 논문을 통해 "1982년 4~9월초까지 충북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 등 11개 지점에 대해 조사한 결과 미호천의 민물고기는 총 8과 36속 45종으로 나타났으며 한국고유종은 참종개를 포함해 총 15종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손박사는 또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 "미호천의 우점종은 피라미(23.47%) 돌마자(12.54%) 붕어(11.99%) 모래무지(9.90%)의 순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피라미가 전수역에서 우세를 보였다"고 설명한 후 "대부분의 하천에서는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버들치-갈겨니-피라미-붕어 등의 순으로 우세현상을 보이나 미호천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손박사는 이처럼 미호천의 정상적인 어류 분포형이 깨진 원인으로 저수지의 건설, 보(洑)의 설치 및 개간에 따르는 하천유역과 하상의 심한 파괴에서 오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밖에도 이 논문에는 도표 <미호천의 어류상>을 통해 "미꾸리과 어류로 미꾸리 17개체, 미꾸라지 2개체, 점줄종개 81개체, 참종개 81개체가 각각 채집됐다"고 실려 있는데, 이 내용이 발표후 얼마 안가 '미호종개'라는 신종 발견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참종개로 분류된 표본의 일부가 추후 관찰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던 종과는 전혀 새로운 종, 즉 신종임을 확신케 하는 직접적인 단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미호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호천은 흰빛 모래사장이 깔려 있는 푸른 하천이었다. 이 흰빛 모래사장은 한 어류학자의 학문적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미호종개'라는 신종을 발견케 하는 단초적 역할을 했다./자연닷컴

 

■'코비티스 초이'로 신종 발표

 

이 논문이 발표되자 곧바로 손박사를 찾은 이가 있었다. 전북대 생물학과 교수인 김익수박사로, 손박사와는 대학 동기동창인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당시 김박사가 손박사를 찾아간 이유는 훗날 학계에서 '비화'로 소개될 만큼 유명한 일이 되었기에 고 최기철박사의 기록을 통해 들어보자.

 

"1990년 11월 어느날, 전주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김익수박사가 문득 지난 1983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박사는 당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오르내렸는데 청주 인근 미호천을 지날 때마다 하얗게 깔린 모래사장에 늘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저렇게 모래가 많은 하천바닥이라면 참종개 외에도 특별한 참종개 무리가 살지 않을까? 만일 있다면 그것은 신종 아닌가?'란 생각을 항시 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침 손박사의 미호천 어류상에 관한 논문이 발표됐고, 그 내용을 보는 순간 '미호천의 참종개는 과연 참종개일까'란 순수한 학문적 의구심이 들어 곧바로 청주에 있는 손박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손박사의 양해를 얻은 김박사는 당시 미호천서 채집된 81개체의 참종개(당시의 분류기준으로는 참종개로 분류할 수 밖에 없었음)를 모두 관찰한 결과 꼬리자루가 무척 가늘고 몸 양측의 반문이 참종개와 다른 개체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 그 자리서 손박사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연구해 신종으로 밝혀질 경우 한국명은 '미호종개'로 할 것과 학명은 'Cobitis choii Kim and Son'으로 할 것을 말이다."

 

 

 

참종개(위)와 미호종개(아래) ./자연닷컴

 

공동연구에 들어간 손박사와 김박사는 얼마 안가 신종이라고 생각되는 종의 형태형질 인자가 참종개나 점줄종개와 같지 않다는 것과 몸 양측의 중앙부에 위치한 반문도 점줄종개나 참종개와 다르며, 꼬리자루가 유별나게 가늘고 비늘이 참종개보다 작다는 것 등을 알아냄으로써 신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두 박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해(1983년) 5월 23일부터 6월 20일까지 직접 현지조사를 실시해 미호종개 85개체 점줄종개 139개체 참종개 8개체를 채집, 3종이 같은 지역에 서식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1984년 한국동물학회지 27권 1호에 「한국산 기름종개속 어류의 1신종 '코비티스 초이(Cobitis choii Kim and Son)'」가 발표됨으로써 미호종개는 비로소 한국의 민물고기 목록에 오르게 됐다.

 

손박사의 세밀한 채집조사가 없었던들, 그리고 김박사의 학문적 의구심이 없었던들, 또한 두 박사의 서로에 대한 학문적 신뢰와 우정이 없었던들 미호종개는 어쩌면 영원히 발견되지 않은 채 저홀로 멸종의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익수 박사./자연닷컴

손영목 박사.자연닷컴

 

 

■스승께 바친 '보은(報恩)의 물고기'  

 

미호종개의 한국명과 학명을 붙이게 된 배경에 대해 손영목박사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국내에서 어떤 생물종을 신종 발표할 때에는 우리말 이름을 짓게 된다. 김익수박사와 공동으로 찾아낸 신종을 미호종개로 지은 것은 첫 채집장소가 미호천인 데다 당시에는 미호천에서만 발견되는 한국고유종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붙인 것이다.

또한 신종을 발표할 때는 라틴어를 사용해 린네가 주창한 이명법(二名法)에 따라 학명을 짓게 되는데 신종 발표 당시에는 미꾸리과 중에서 기름종개속(Cobitis속)에 속하는 새로운 종이었으므로 종소명을 'choii'로 작명해 'Cobitis choii'가 된 것이다. 여기서 'choii'는 라틴어식 발음에 의해 비록 '초이'로 발음되긴 하지만 발표자인 나와 김박사의 은사인 고 최기철박사님(최:崔)을 의미하는 것으로, 은사님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작명한 것이었다. 지금은 미호종개의 학명이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으로 바뀌었다."

 

고 최기철 박사는 이와 관련, 글을 통해 "신종 발표 직전 김박사와 손박사가 나를 생각해 'choii'라는 종소명을 지었으니 양해해 달라고 요청해와 굳이 사양했으나 끝내 거절하지 못했다"며 "고마운 일이긴 하나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렇듯 미호종개는 제자들이 찾아내 스승에게 바친 보은의 물고기로, 관련 학문을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오늘날 미호종개 하면 '崔고기' 혹은 '崔종개'란 별칭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글.사진 김성식 생태환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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