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허수아비와 생태 도둑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 바라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쓸쓸하다. 떼지어 날던 참새들도, 부산하게 움직이던 농부들도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내린 비 이후 바람도 스산해졌다. 된서리에 살얼음까지 얼었다. 계절은 이미 겨울문턱을 넘어섰다.
그런데 아직도 들녘에 서있는 존재들이 있다. 빛바랜 허수아비들이다. 철은 이미 지났건만 무슨 까닭인지 여전히 그 자리에 우두커니들 서 있다. 표정을 보니 하나같이 겸연쩍다. 하고 있는 모양새도 어줍다. 알곡이 익을 때만 해도 활짝 펼친 두 팔이 깨나 듬직해 보였을 그들, 이제 어깨도 쳐지고 몸도 기울어진 게 마치 패잔병처럼 보인다.
한 줄기 바람이 겨드랑이만 파고 들어도 별의별 궁상이 다 떠오르는 계절. 그래서인지 괴산의 한 마을을 지나는데 저 만치 논 한 편에 서 있는 허수아비들이 자꾸만 시선을 잡아 끌었다. 차를 세우고는 이런 궁상 저런 궁상 다 떨다가 결국은 "농부들이 얼마나 바빴으면 그대로 두었을까"하고 그들의 철 잃은 존재 이유를 막 이해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번엔 허수아비 군상 너머로 수상한 움직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쁜 걸음을 하는 3명의 사람들. 허수아비가 서 있는 논 옆 개울로 무언가를 잡으려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내친 김에 다음 행동을 눈여겨 봤더니 맨 앞에 선 사람이 배낭 속에서 무언가 꺼내 들고는 이내 개울로 들어갔다. 손에 든 건 배터리였다. 얼마 전 동면에 들어간 개구리를 잡기 위해 원정 온 외지꾼들이었다. 한 사람은 잡고 또 한 사람은 그릇에 주워 담고 또 한 사람은 망을 보고. 한참을 그렇게 불법으로 개구리를 잡은 그들, 안 되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다가갔더니 어느새 저멀리 달아났다.
가만히 서 있던 차에서 별안간 사람이 나와 다가가니 무척이나 놀랐던 모양이었다. 잡은 개구리를 그대로 놓고 튀었다. 다행이었다. 하나 이미 전기 맞은 개구리들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반쯤은 네 다리를 뻗은 채 죽어가고 있었다. 개울에 쏟아 부으면서 세어보니 2백 마리가 족히 넘었다. 시간상으로 보면 어딘가에서 잡은 뒤 이곳으로 온 것으로 보였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이들처럼 불법으로 개구리를 잡거나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겨울을 나기 위해 한 곳으로 모여드는 습성을 교묘히 이용해 싹쓸이 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초겨울엔 물흐름도 많지 않고 물도 맑은 데다 얼음도 아직 얼지 않아 불법꾼들이 활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호기다.
하천의 경우 매년 이맘때쯤이면 수심이 깊은 곳에 붕어, 잉어, 누치, 참마자 같은 대부분의 물고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모여드는데 꾼들이 이 시기를 놓칠 리 만무. 그물꾼이건 배터릿꾼이건 작살꾼이건 다 달려들어 너도나도 잡아가기 때문에 얼음 얼기 전에 이미 물고기들이 몰살 당한다. 수중배터릿꾼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년중 물속시야가 가장 좋고 수온 또한 그리 차지 않은 시기가 이맘때인 만큼 그들이 가장 바삐 움직이는 시기도 요즘이다. 이들은 주로 수심이 깊은 하천보나 호수에 들어가 동면중인 쏘가리나 잉어 등을 즐겨 잡는다.
열 사람이 한 도둑 못 잡는다고 했다. 기를 쓰고 도둑질 하려는 사람은 그만큼 잡기가 어렵다는 얘기리라. 이들 불법꾼도 마찬가지다. 기를 쓰고 잡는다는데 어찌 쉽게 단속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들이 활개치는 시기가 매년 이맘때쯤이란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단속만 한다면 그들이라고 근절 못 시킬 이유가 없다. 그러나 웬일인지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 철 지난 허수아비가 아니라 일년내내 할 일 없는 허수아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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