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저수지 미호종개, 어항 물고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민물고기 중 학술적 이력이 가장 독특한 종은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Ⅰ급)다. 1982년 당시 서원대교수이던 손영목박사가 미호천에서 첫 채집해 1984년 김익수박사(전북대교수)와 공동으로 신종 발표한 이 물고기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금강 수계에만 사는 귀중한 유전자원이다.
 또한 이 물고기는 우리나라 전체 민물고기 200여종 가운데 '유일하게' 학명을 이루는 속명, 종소명, 명명자 모두가 국내 학자로만 만들어진 기념비 같은 어류이다.

 속명(Iksookimia)은 김익수박사의 이름을 따서, 종소명(choii)은 김박사와 손박사의 은사인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교수)의 성(崔)을 따서 붙였다.  지금의 정식 학명인「Iksookimia choii (Kim and Son)」에서, 최초 명명자를 뜻하는 괄호안의 Kim and Son은 신종발표자인 김박사와 손박사를 뜻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학명을 공식화 한 이는 루마니아의 Nalbant박사다. 기름종개속(屬)의 권위자인 Nalbant박사는 1993년 처음으로 Iksookimia속을 기재 발표하면서 기존의 기름종개속(Cobitis속)으로 분류되던 미호종개(발표당시 종명은 Cobitis choii)를 참종개, 왕종개, 부안종개, 남방종개 등과 함께 Iksookimia속으로 묶었다. 미호종개로 인해 미호종개속이란 하나의 분류체계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미호종개를 한국의 자존심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하지만 미호종개는 외롭고 가련한 존재이기도 하다. 지구상 우리나라에만, 그것도 금강 일부수역에만 살고 있다는 건 그만큼 태생적으로 외롭고 생태적으로도 밀려나 살고 있다는 뜻이다.

 미호종개 서식지는 2006년 이전까지만 해도 약 20개 지점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조사에서는

겨우 6곳(인공복원지 제외)밖에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개체수마저 급속히 줄고 있다. 국내 최대 서식지인 진천 백곡저수지의 상류부만이 약 1만 마리가량 살고 있을 뿐 다른 서식지에서는 겨우 서식사실만 확인될 정도로 극소수가 살고 있다. 학자들은 현존 개체수가 불과 2만 마리도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호종개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4대강 사업의 일환인 백곡저수지 둑높임 공사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강행될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충북도가 조정안을 내놨지만 내용이야 어쨌든 공사 진행 자체가 미호종개에겐 엄청난 위협이다. 상황에 따라선 '그나마 밀려나 가까스로 살아오던 최후 보루'마저 잃을 판이다.

 자연 생태계에서 한 동물의 집단 서식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군다나 백곡저수지내 미호종개 집단서식지의 경우 기존에 알려졌던 서식지와는 환경이 판이하다. 미호종개는 대부분 유속이 완만하고 모래가 깔린 하천의 얕은 여울에 서식하는데 백곡저수지에서는 상류의 하천 유입부 한 곳에 집중해 살고 있다. 유입수량과 수질, 저수위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공사후 5년간 현수위를 유지한 뒤 매년 30㎝씩 수위를 높인다고는 하나 지금과 같은 서식환경이 그대로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또한 대체 서식지란 것도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며 사업추진을 위한 면죄부용일 뿐이다. 자연상태의 물고기 서식지는 결코 어항이 아니다. 인위적 공간을 만들어 미호종개를 살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백곡천과 백곡저수지가 어항이 아니듯 미호종개 역시 어항속 물고기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 그들이 왜 전례없이 백곡저수지 상류에 몰려 살게 됐는지, 그 가련한 원인부터 생각해 볼 때이다.

추억 속 랜드마크 '금강'은 이제 슬프다

 

 

금강은 특별하다. 전북서 발원해 1천리를 굽이치고도 다시 전북을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큰 강 치고 발원지와 종착지가 한 도(道)에 있는 건 금강 뿐이다. 그러면서 물줄기는 전라 경상 충청을 아우른다. 그래서 삼기(三岐)의 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금강을 금강답게 특징 지웠던 것은 금빛 백사장을 끼고 수놓 듯 흐르던 푸른 물결이었다. 오죽했으면 비단강(錦江)이라 했겠는가.
푸른 물빛과 함께 곳곳에 펼쳐졌던 황금빛 모래사장은 가히 금강의 대명사였다. 대전 인근의 신탄진과 청원 부용의 금호리 일대는 해수욕장이 보편화 되기 이전에 이미 강수욕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곱디 고운 모래사장은 지류 곳곳에도 펼쳐져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미호천이다. 지금도 청주시민의 추억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팔결다리 백사장과 까치내 백사장은 학생들의 소풍 장소이자 주민들의 천렵 장소로서 손꼽히던 명소였다.

 


금강은 또 여러 생명체를 껴안은 생명의 강이었다. 서식 환경이 다양하니 그곳에 깃든 동식물도 다양할 수밖에. 물고기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에 오로지 금강수계에만 사는 미호종개(천연기념물 454호, 멸종위기Ⅰ급)를 비롯해 어름치(〃 238·259호), 감돌고기(멸종위기Ⅰ급), 흰수마자(〃), 퉁사리(〃), 꾸구리(〃Ⅱ급), 돌상어(〃), 둑중개(〃), 금강모치, 종어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갑고 소중한 물고기들이 지천했다.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i-미호종개의 학명)'의 주인공 전북대 김익수교수가 '미호천엔 색다른 물고기가 살 것'이란 학술적 상상을 가짐으로써 결국 미호종개를 발견해 냈던 모티브도 바로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봐왔던 미호천 모래사장이었다. 금강은 또 '물고기 할아버지' 고 최기철박사의 학문적 고향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금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지류이긴 하지만 금강 언저리서 태어나 그 물에 멱 감으며 자랐고, 언론사에 몸 담은 뒤론 줄곧 '주요 출입처'로서 늘 관심을 가져왔다. 금강 토박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인연이요 당연함이었다.

 


그러나 이제 금강은 슬프다. 보면 볼수록 가슴 설렜던 본래 모습은 이미 사라졌다. 적어도 비단강 시절의 금강은 이젠 없다. 속살이 훤히 비치던 푸른 물결도, 금가루가 금세 묻어 나올 것만 같던 모래사장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생명의 숨소리도 야위어 있다. 부여의 진상품이던 종어는 오래 전에 절종됐고 어름치는 수십년째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인공복원됐다. 뿐만 아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랫바닥을 훑기만 해도 한 줌씩 잡혀나왔던 재첩은 물론 갈퀴질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튀어나왔던 모래무지, 커다란 그림자를 그리며 떼지어다닌다 하여 멍석이라 불렀던 잉어떼들…. 모두가 옛날 얘기다.

 


강은 자체가 생명이다. 생로병사가 있다. 수십,수백 억 년을 라이프사이클(Life Cycle)에 따라 모습을 갖춰온 복합생명체다. 그러나 그같은 복합생명체도 '인위'에는 약하다. 강의 최대 천적은 인간이다.
어느날 졸지에 물흐름이 바뀌고 곳곳이 단절된 채 상하류가 뒤죽박죽 된 것도 사람에 의해서요, 한반도 형성기부터 뿌리 내려온 물고기들이 어느 한 순간 사라져간 것도 사람에 의해서다.

 


금강은 이제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 가뜩이나 벼랑끝 신세이던 금강이 목하 4대강 사업의 손안에서 '조각(彫刻)'되고 있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숱한 세월을 이어온 자연의 라이프사이클에 감히 마구 손을 대도 되는 건지 시간이 흐를수록 두렵다. 어디로 굴러갈지 모르는 금강의 라이프사이클, 그 와중에 우리들 추억속 랜드마크까지 갈가리 '조각'나고 있다.

금강 상류에 놓여진 '남의 숟가락'

 

금강상류는 우리나라 생태보전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강에만 사는 것으로 알려졌던 어름치가 발견돼 1972년 '금강의 어름치'란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238호로 등재된 곳이다.
금강에서의 어름치 발견은 한강 특산에서 한강 및 금강 특산으로 서식범위가 넓게 밝혀진 것 외에도 과거 이들 강이 서로 연결됐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란 점에서 지질사학적으로도 중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금강의 어름치는 발견된 지 10년도 채 안 된 1978년 전북 무주 내도리와 충남 금산 방우리에서 마지막 확인된 것을 끝으로 8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다.

 


그뒤 학자들이 나서 금강의 어름치를 찾아 헤맸지만 허사였다. 필자도 90년대초부터 수년간 전문가들과 함께 금강의 어름치를 찾아 나섰으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당시 학자들은 어름치가 사라진 원인을 첫째 남획, 둘째 농약에 의한 수질오염 및 서식지 파괴를 든 바 있다. 필자가 만난 현지 주민들도 한결같이 남획을 가장 주된 요인으로 꼽았었다. 몸집이 제법 크고 맛까지 좋아 사람들이 보는 족족 잡아먹었다 한다. 그런 데다 강물에 농약성분이 흘러들고 각종 공사로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어느 순간 사라진 물고기가 됐단다.

 


그러던 중 금강상류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어 방류사업으로 30여 년만에 어름치가 다시 노니는 꿈같은 일이 재현된 것이다. 인공 치어방류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어쨌든 금강상류서 어름치 특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2년 전부터 상류 곳곳에서 산란탑이 관찰되고 있고 어미 개체도 다수 확인되는 등 정착단계에 와 있다. 일부에선 금강상류가 멸종위기어종 복원사업의 메카란 평까지 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진 관련 기관 단체들의 '10년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앙내수면연구소가 1999년 처음으로 어름치 치어를 예비방류한 것을 비롯해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환경부,국립수산과학원,문화재청,순천향대 등 여러 기관 단체가 협력해 어름치 복원사업을 벌여온 결과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문제(?)가 생겼다. 국토해양부의 4대강(금강) 살리기 사업이 상류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가뜩이나 시선이 곱지 않았던 터에 지난 20일엔 무주 남대천서 있은 어름치 치어방류 행사에 돌연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가 주최측으로 끼어들어 여러 '말'을 듣고 있다. 환경단체로부터는 "하천바닥을 파헤치면서 한편으론 어름치 치어를 방류한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 하는 격이요 4대강 사업의 반대여론을 희석시키려는 물타기 행보"란 비난을 받고 있고, 방류행사 참여자들로부터는 "그동안 여러 기관 단체가 합심해 이뤄놓은 업적과 순수한 목적을 하루아침에 훼손시켰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금강살리기 사업구간에는 최근 어름치 산란탑이 관찰된 금산 천내습지도 포함돼 있어 속과 겉이 다른 이중행태란 쓴말도 나오고 있다.

 


금강의 어름치 복원과정에서 봐왔듯이 물고기 1종을 복원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많은 인내와 노력, 예산, 민·관·학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어느 단체의 지적처럼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끼어든 격'이라면 그야말로 문제다.
자연생태계는 어항처럼 마음대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4대강 사업취지에 걸핏하면 환경복원, 생태복원 운운하지만 자연상태의 환경과 생태계를 작위적으로 파괴하고 나서 또 작위적으로 복원하는 일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진정으로 환경을 위하고 생태계를 위한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것부터 재고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한,중,일이 하나의 강(고황하)으로 연결돼 있던 먼옛날 생겨난 민물고기가 있다. 붕어,잉어,피라미,미꾸리 같은 이른바 3국 공통어종이라 불리는 것들로 이들의 분포도는 지질시대에 3국이 하나의 대륙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단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붕어로서 특히 이 물고기는 3국서 불리는 명칭까지 어원이 같은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중국에서의 명칭 변화를 보면 고대에는 후유,근대에는 지유,현재는 지로 바뀌었는데 그 중 후유,지유란 말이 한반도에 유입돼 조선 초·중기까지 부어(鮒魚)와 즉어(魚+卽 魚)란 한자어가 병용됐다. 그러던 것이 허준의 동의보감에 이르러 한글로 붕어라 표기됐으니 이로 보아 그 무렵(1600년대초) 이전에 붕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붕어란 말은 물론 부어에서 유래됐다. 일본에서는 붕어를 후나라 하는데 역시 중국어의 후유(부어)에서 유래됐다. 즉, 후나의 '후'가 한자어 '부'의 일본식 발음이다.
한,중,일 3국의 붕어는 본래 고향이 고황하란 점에서 처음엔 유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고황하가 사라지고 한,중,일 수계가 단절되면서 각기 종 분화가 이뤄져 오늘날처럼 유전 및 형태학적으로 약간씩 다른 종 구성을 이루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토종붕어를 하나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5개의 아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름은 각기 킨부나,긴부나,나가부나,니고로부나,겡고로부나로 불린다. 물고기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고 최기철박사가 생전에 "국내 붕어의 분류학적 체계를 못 세운 것이 한이 된다"고 밝힌 바 있듯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종의 세분화 작업과 함께 각 아종의 서식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면 외래종의 유입과 품종개량 등으로 토종붕어의 유전자가 크게 교란돼 가는 데다 각 서식지를 대상으로 한 치어 방류사업이 지자체별,단체별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한강쪽 붕어가 금강으로 유입되고 금강쪽 붕어가 한강으로 유입되는 등 토종본래의 지역적 특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입돼 토종 붕어의 유전적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외래종 붕어는 일본산 떡붕어와 중국산 자장붕어,쨔지붕어,잉붕어,향붕어,무창위붕어 등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중 특히 일본서 들여온 떡붕어는 일본내에서 자연산 겡고로부나를 개량한 가와치부나가 원종으로서 일명 헤라부나(납작붕어)라고도 하는데 종 특성상 토종과 잡종 형성이 잘 이뤄지고 타 어종의 알까지 마구 먹어치우는 등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애물단지같은 떡붕어가 급기야 마지막 토종붕어의 천국으로 남아있던 충북 괴산호까지 점령하는 씻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졸지에 외래어종 천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토종붕어가 지천하던 괴산호가 낚시만 던지면 떡붕어 잡종(일명 희나리)이 잡혀올라올 정도로 어종이 급변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역민들은 몇해 전부터 실시한 붕어 치어방류를 원흉으로 꼽는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몰지각한 낚시꾼들에 의해 몰래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속의 폭군 큰입배스에 이어 이젠 망나니까지 들어와 휘젓고 있으니 괴산호 생태계는 말 그대로 안방 내주고 몸 주고 거기다 씨까지 빼앗긴 신세가 됐다. 조선 후기 이규경선생이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비린내도 안 나고 맛도 가장 좋다"고 치켜세웠던 '충북의 붕어 체면'을 그나마 최근까지 지켜온 곳이 괴산호였는데 허사가 됐다. 이를 어찌 할꼬.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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