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런 날씨에 동물도 사람도 넋 나갔다
한밤중 농가에 느닷없이 고라니가 뛰어들고 한쪽에선 너구리가 처마밑에 기어들어 젖은 몸을 말린다.
낮에는 올망졸망한 꺼병이들이 어미 까투리와 함께 농가 마당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고 마루밑으로는 어린 아이 팔뚝만한 살모사가 기어들어 또아리 튼 채 주인행세를 한다.
뿐만 아니다. 물가에선 줄풀에 둥지 틀고 알 품던 쇠물닭들이 밤낮 없이 쾃~쾃 울어대며 둥지주위만 맴돌고 빈 까치집에 새끼 깐 파랑새 부부는 먹이 물어올 생각은 않고 연신 땍~땍 거리며 먼하늘만 바라본다.
만화 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희귀한 일들이 요즘 농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생태계 주인공들이 연일 정신없다. 그들의 행동으로만 보면 마치 대지진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이 땅은 요즘 그런 엄청난 일에 직면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이 뽀개진 듯 아예 하늘둑이 송두리째 터진 듯 들입다 쏟아붓는 장마폭탄 행렬에 야생동물마저 모두가 넋이 빠졌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얼마나 똥줄 탔으면 사람 냄새만 나도 칠색팔색하는 야생동물들이 사람 사는 인가로 뛰어들고, 비 오는 날 잠시라도 둥지를 비우면 알이 곯아 새끼농사 망치는 어미새들까지 둥지밖으로 뛰쳐나와 졸지에 ‘청개구리 신세’가 되겠는가. 아무리 자연이 자연에게 내리는 기상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 이 계절의 생태 주인공들에겐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허구한 날 여우가 시집가는 양 변덕 일변도의 날씨는 사람들의 혼줄까지도 홀딱 빼앗아갔다. 터질듯 말듯한 물풍선을 머리 꼭대기에 이고 사는 격이다. 언제 터질 지 어느 곳이 터질 지 종이라도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죽을 맛이다.
몸까지 피곤하다. 반짝 빛이 들 땐 돌연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진을 빼고, 그러다가도 구름이 몰려올라치면 언제 그랬냐며 돈내기하듯 쏟아붓는 ‘물벼락’에 갑자기 한기를 느끼게 되니 생체리듬인들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세상 온갖 게 다 떠내려간다해도 아무 걱정없는 사람들이야 관심 없겠지만, 요즘 뉴스 듣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절개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산간계곡에 사는 사람들, 물가에 농경지가 많은 사람들, 저지대 상습침수 지역에 사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엔 TV나 라디오를 켰다하면 듣게 되는 “언제까지 몇 백mm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멘트가 마치 “때린 데 또 때릴 것이니 알아서 커버하라”는, 공갈 아닌 공갈로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때린 데만 용케 또 때리는 게 요즘 장마이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변덕스런 날씨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기상청 사람들이다.
여의봉이 요술부리듯 쥐락펴락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신출귀몰하게 변덕 부리는 요즘 날씨 탓에 수시로 기상특보 발령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얼마전엔 한 일기도에 5개의 기상특보가, 그것도 각기 다른 색깔로 컬러풀하게 그려져 예보된 적 있다. 땅덩어리는 한 개의 기압골보다 좁은 나라서 어떤 곳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포비로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발령된 반면 어떤 곳엔 34도의 찜통더위로 뜬금없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어떤 곳엔 초속 20m 바람으로 강풍주의보가, 또 어떤 곳엔 큰 파도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장마철 대기불안정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에 심각한 변화가 온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심각한 변화, 그 변화로 인해 이 땅의 동물과 사람들은 걸핏하면 홍역을 치르게 됐다. 그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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