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꾼 가슴은 이래저래 다 탄다

 
 송이꾼이 가장 기다리는 절기가 백로(白露)다. 이 때를 전후해 송이가 나기 때문이다.
백로 전의 절기인 처서(處暑)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고 일교차가 심해진다. 봄부터 뿌리를 통해 수분을 빨아들이던 소나무는 처서가 지나면서 수분 흡수를 멈추고 겨울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 무렵이 바로 송이균사가 발생해 번지는 시기다.
 소나무가 겨울준비를 하는 방법은 별 수 없이 뿌리를 통해 물기를 내뱉는 것이다. 온 몸에 지니고 있던 물기를 적당히 배출해야 추운 겨울 얼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송이꾼들은 이 과정을 “소나무가 물을 내린다”고 한다. 소나무가 잔뿌리를 통해 물을 내리면 그 잔뿌리에 붙어 공생 균근을 형성하고 있던 송이 균사가 활성화 돼 균사체를 만들고 그 균사체가 자라서 송이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나무는 자신의 잎으로부터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송이에게 공급하고 송이는 균사체를 통해 빨아들인 토양의 양분을 소나무에게 나눠준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리공생 관계다.
 이 상리공생 관계가 더욱 활발해 지는 시기가 처서 다음의 백로요, 그래서 백로 절기가 되면 “송이철이 왔다”고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핸 송이철이 왔는 데도 송이꾼들의 낯빛이 영 말이 아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백로 절기인데 되레 ‘된서리 맞은 까까머리 꼴’이다.
 이유인 즉 송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산을 타봤자 고작 몇 개 만나면 그만이요, 그것도 본송이(본밭에 나는 굵은 송이)가 아닌 벌송이(본밭이 아닌 곳에서 나는 가는 송이)가 대부분이니 기분 좋을 리 만무다. 더욱이 한몫 잡아야할 추석 대목이 코앞이니 그 심정 알 만하다.
 그렇다면 원인은 뭘까. 한 마디로 날씨 탓이다.
 처서가 지나 백로 절기인데 한낮 기온은 여전히 한여름이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건 좋은 데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니 소나무인들  생체 시스팀이 온전히 작동할 리 없고 송이 균사체인들 제대로 생장할 리 없다.
 게다가 가을 가뭄까지 심하다. 충북지방의 경우 얼마 전에 이어 사흘 전에도 비가 왔다고 하나 감질만 나게 했을 뿐이다. 산속 가랑잎에선 바스락 소리가 난다. 땅속을 파 봐도 언제 비가 왔느냐다.
 이대로 일주일만 더가면 송이 나긴 다 글렀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일부 꾼들은 2년전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극심한 가을 가뭄으로 송이 하나 제대로 나지 않은 게 2년전이다.
 그런데도 요즘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에선 송이가 나지 않는데 송이를 따려고 올라가는 외지(?) 사람들은 줄을 잇는다. 마치 행락철 인파를 방불케 한다.
 그러니 현지인들인 송이꾼들의 가슴은 더욱 찢어진다. 외지인들로부터 자신들의 송이밭을 지키기 위해선 매일 산을 올라야 하는데 송이는 나지 않고, 산을 안 오르자니 속은 타고…. 아예 죽을 지경이란다.
 송이는 나지 않는데 외지 사람들이 불이 나게 산을 오르내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송이가 나는 지역에 가보면 현재 각 상점마다 지천한 게 송이다. 실제로는 중국산,북한산,강원도산 혹은 경북산 등 종류도 갖가지지만 외지서 온 사람들은 그게 다 현지서 나는 줄로만 믿는다. 그러니 산을 오를 수 밖에.
 현지 상인들도 문제다. 떳떳하게 이건 어디 산이고 저건 어디서 갖다 파는 것이라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굳이 밝히지 않는다.
 산지에선 송이가 나지 않는데 송이 따려는 외지인들은 인산인해고, 지역 상점에선 송이가 수북히 쌓인 채 정신없이 팔려 나간다. 한 철 산에 올라 다음 일년을 먹고 사는 송이꾼들의 속이 이래저래 다 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달래강과 선비정신, 그리고 오늘의 세태


 충북엔 유난히 정자와 구곡(九曲)이 많다. 선비의 고장임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다.
정자의 경우 모두 50여 개소인데 이중 19개소가 괴산군에 있다. 도내서 가장 많은 숫자다. 더욱이 특별한 건 이들 정자 대부분이 달래강 유역에 있다는 점이다.
 구곡 역시 괴산지역, 특히 달천강 유역에 집중돼 있다. 화양·선유·쌍곡구곡을 비롯해 최근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존재가 밝혀진 연하(칠성)·갈은(〃)·풍계구곡(연풍)에 이르기까지 모두 6곳이다.
 게다가 유사 개념의 구경(九景)이란 이름이 붙여진 고산구경(괴산읍)까지 합하면 7곳이요, 명칭만 남아있는 거차비(청천)·운하구곡(〃)까지 더하면 무려 9곳이다. 관내는 다르지만 청원 미원의 옥화구경 역시 달래강변에 있다.
 강줄기 하나에 이처럼 많은 정자와 구곡이 존재하는 곳은 아마 달래강뿐이리라. 그만큼 풍취가 남다른 천혜의 강이다. 풍취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시가 전하고 그 속에 선비정신까지 배어있으니 멋과 풍류 또한 으뜸이다.
 우리나라 정자는 백제 의자왕 15년(655년)에 지어진 망해정이 최초다. 달래강 유역의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건 괴산 제월리 강변의 고산정으로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지어졌다. 
 구곡의 기원은 본래 중국 무이산의 무이구곡서 비롯됐다. 무이산은 중국 푸젠성(福建省)의 명산으로 이곳에 있는 9개의 절경에 남송때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朱子)가 들어가 각 곡의 이름을 붙이고 무이구곡가를 지은 게 효시다.
 고려말 우리나라에 들어온 주자학(성리학)은 조선 중기에 이르러 보편화됐는데 이를 계기로 성리학자들, 이른바 선비들 사이에서 구곡을 설정하고 구곡시를 짓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각 절경마다 설정된 구곡과 구곡시다.
 지금은 괴산댐으로 인해 물속에 잠겼지만 조선시대 노성도란 선비가 설정한 연하구곡에도 각 곡마다 남겨진 한시가 있으니 제9곡(병풍바위)에 관한 시를 통해 당시 선비들이 가졌던 사상의 일면을 살펴보자.
 ‘병풍바위 산마루엔 초속적 흥취가 넉넉한데/ 혼연하게 진실한 본성을 연마하게 해주네/ 마을어귀엔 이끼 낀 돌 깊이 박혀 있는데/ 나 자신은 산수자연에 묻혀 도가(棹歌)를 부르네’
 구곡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정자에도 많은 시가 전하는데 그 중 괴산의 애한정과 관련된 백곡 김득신선생의 시를 보자.
 ‘높고 푸른 산벽에 저녁노을 밝더니/ 깊은 숲속엔 어둔 빛이 점점 생기는구나/ 산그림자와 저녁연기가 서로 얽히니/ 그림으로도 글로도 그려내기 어렵구나(애한정 팔경의 ’창벽낙조(蒼壁落照)‘
 자고로 자연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던가. 조선시대 선비들은 산수가 빼어난 이들 구곡과 정자를 찾아 자연을 노래하면서 실물을 통한 정신수양에 해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지금도 이들 구곡과 정자를 찾아가 보면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절로 시흥이 돋고 마음까지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 마음이 다 같은 건 아닌가 보다. 선조들이 남긴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으니 선비의 고장 체면이 말이 아니다. 구곡은 구곡대로 각종 낙서와 각자(刻字)로 훼손돼 있고 정자는 정자대로 편액과 현판이 사라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을 뒤로하고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면서도 자신들의 꿋꿋한 정신세계를 일궈나감으로써 세계사에 유례없는 선비정신을 낳았던 우리 선조들. 그 선조들의 멋과 슬기가 한낱 흑심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왔다 가노라‘ 어느 구곡 바위에 새겨진 글자 같지 않은 글자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의 산과 들, 냇가를 돌아다니다 보면 야생동물이 남긴 각종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마치 사람이 다니는 길처럼 빤질빤질하게 나 있는 이동통로에서부터 배설물,발자국,먹이 흔적,머물던 자리(혹은 잠자리),영역 표시 등 그 종류도 많다.
이들 흔적은 대부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것을 남긴 동물의 실체는 물론 그 동물의 삶과 생활방식, 습성이 담긴 메모리칩이나 다름없다. 예를 들어 어느 산중에서 동물의 배설물을 발견했다면 그것의 생김새와 색깔,냄새,구성물 등의 분석을 통해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이고 식성은 어떤지를 알 수 있으며 또 굳은 정도를 가지고 그 동물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알 수 있다.
또 같은 류의 배설물이라 하더라도 크기와 양, 무더기 수를 통해 그 동물이 어미인지 새끼인지 또 몇 마리가 집단을 이뤄 활동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느 특정 동물을 추적하거나 서식여부를 확인하고자 할 때도 흔적만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생태를 연구하는 이들은 야생동물의 흔적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만일 생태조사를 할 때 각종 흔적은 많지만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울 경우엔 차선책으로 그 흔적들을 증거로 제시해 서식여부를 간접 확인하기도 한다.
‘달래강의 숨결’을 기획취재 중인 필자는 요즘 시쳇말로 ‘사냥개’가 다 돼 가고 있다.

달래강 물길 3백리 가는 곳마다 짐승똥이란 똥은 보이는 대로 주워들고 냄새를 맡아가며 수달과 삵,하늘다람쥐 등 몇몇 중요한 종을 집중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흔적과 관련해 몇 해 전 겪은 일이다.

속리산 자락의 어느 산중에서 버섯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청년 하나가 돈내기 하듯 정신없이 산비탈을 내려 오면서 “사람 살려” 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렇쟎아도 방금 전 멧돼지의 생생한 흔적(온기있는 은신처)을 목격한 후 내심 긴장하고 있던 터에 혼비백산한 청년을 보니 직감적으로 멧돼지를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청년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 “내 뒤에 멧돼지 안 따라 오냐”며 빨리 내튀라고 손짓까지 한다. 뒤쪽을 확인하면서 “안 따라온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하는 말이 버섯을 따는 데 뭔가 이상해 고개를 들었더니 멧돼지가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어 버섯자루고 뭐고 다 팽개치고 줄행랑쳤단다.
지금도 산을 오르다 보면 종종 멧돼지 흔적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그 청년 얼굴이 떠올라 한편으론 헛웃음이 쳐지고 또 한편으론 모골이 송연해져  더욱 촉각을 세우게 된다.

요즘 들어 우리 주변에는 야생동물의 흔적이 부쩍 많이 눈에 띄고 있다. 멧돼지 같이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는 동물들의 흔적이야 농민들에겐 반가울 리 없겠지만, 그래도 한반도의 자연을 생각할 때 그 안의 생태계가 더욱 건강해지고 있다는 청신호이기에 우려보다는 반가움이 앞선다.
하지만 이렇듯 반가움을 주는 ‘자연의 흔적’이 있는가 하면 보면 볼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인간의 흔적’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어 묘한 대조를 보인다.

더욱이 행락철이 끝나가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던 물가나 계곡 주변 마다엔 몰상식한 이들이 남긴 비양심의 흔적들이 곳곳에 널려 있어 갈 길이 먼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냄새와 파리 때문에 고추밭에 들어가려면 몸서리가 쳐져 오죽하면 ‘밭에 똥 싸지 말 것’이란 노골적인 팻말을 써붙이겠냐며 길게 한숨짓던 한 계곡 마을 주민의 일그러진 표정이 이 사회에 남기는 또 다른 흔적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하다.
자연을 바라보기가 괜히 민망해 지는 가을의 초입이다.

 괴산 송면의 연리지 소나무가 죽은 뒤에도 줄곧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던, 건강하던 소나무가 갑자기 죽은 데 대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이 연리지가 세계서 가장 아름답고 빼어났었다”는 때늦은 가치 평가와 함께 “보호수 지정 기관인 괴산군 스스로가 이 나무를 죽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산26의 이 연리지 소나무는 수령 약 100년된 소나무 2그루가 전생에 못다한 사랑을 주고받듯 가지 하나를 서로 붙인 채 계집 녀(女) 형상을 하고 있는 등 수형이 특이해 괴산군이 지난 2004년 군보호수(112호)로 지정, 보호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지난해 가을부터 푸른 잎이 붉어지면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올 봄이 되자 수세가 더욱 악화돼 지금은 완전히 말라죽은 채 흉물로 서있다.
 이 연리지가 죽자 가장 먼저 아쉬움을 나타낸 이들은 다름 아닌 국내 연리지 연구가들. 그 중 전 세계의 연리지를 연구해 온 한 전문가는 “그동안 연리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실물을 봐왔지만 괴산 송면의 연리지만큼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계집 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못봤다”며 “연리지의 본 고장 중국에도 송면의 연리지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연리지를 관광상품화 해 지역 브랜드로 활용할 정도로 귀중히 여기고 있다”며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지만, 그런 면에서 볼 때 송면의 연리지를 잃은 것은 엄청난 자연자원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과 함께 ‘책임 소재’에 대한 지역여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괴산군의 이중적인 행정이 송면의 연리지를 죽였다’는 쪽으로 여론이 쏠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역민들이 괴산군에 책임을 떠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면 괴산군이 연리지를 보호수로만 지정해 놨을 뿐 그에 따른 실질적 보호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인접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 줌으로써 연리지가 죽었다고 지역민들은 믿기 때문이다.
 한 지역민은 “연리지에 바로 인접해 건축허가를 내준 것도 잘못이지만 공사 도중에 허가사항은 잘 지켜지는지, 또 연리지에 악영향은 주지 않는지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며 “그 결과 중장비 및 기초 공사에 따른 땅울림과 뿌리 훼손, 시멘트 독성 등으로 인해 결국 소나무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연리지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등 가슴 뿌듯해 했는데 이젠 되레 소나무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주민들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며 “많은 군민이 아쉬워하는 만큼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에 의하면 괴산엔 현재 용추골의 연리목을 비롯해 20개 가까운 연리지가 있는 등 전국서 가장 많은 연리지가 발견된 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이들의 존재를 밝힐 경우 ‘송면 연리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지금까지 함구해 오고 있다고 한다.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옥(玉)이 수 십 말 있으면 뭘 하겠는가. 그것이 있다고 마냥 떠들어 댈 줄만 알 뿐 그것을 실에 잘 꿰어 보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없었기에 스스로 빚은 결과다.
 만일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슬기롭게 대처하고 지혜로움을 발휘했더라면, 그 가치와 존재들이 떳떳하게 널리 알려져 아마도 괴산은 지금쯤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연리지의 고장’이 돼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주홍날개꽃매미가 2~3년 전부터 급속히 번지면서 이에 대한 말들이 많다.

처음부터 중국발 매미의 대습격이니 외래곤충의 창궐이니 하는 말들이 나돌더니 이젠 괴벌레떼에다 욕설조의 ‘짝퉁매미새끼들’이란 말까지 인터넷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말이 말을 만들어내면서 급기야 주홍날개꽃매미 신드롬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신드롬은 기실 낯선 곤충의 다량 출현이란 데서 출발했지만 그 보단 원산지가 외국, 특히 중국이라는 ‘소문’에 더 기인하고 있다. 그에 더해 국내 유입경로 또한 중국화물에 묻어 들어왔느니 태풍과 황사에 휩쓸려 들어왔느니 하는 등의 ‘억측’이 난무하면서 신드롬을 부추기고 있다.
요즘엔 없는 피해까지 발생했다는 ‘또 다른 말’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곤충이 침범한 나무는 시들어 죽기까지 한다는 말이 들리고 어떤 집에선 정원이 쑥대밭 되고 어떤 사람은 피부병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연·생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중국서 들어온 곤충이니 무조건 싫고 혐오스럽다는 쪽으로 정서가 굳어지는 느낌이다. 오죽하면 “너무 싫다. 소름끼쳐 밖에 나가기도 무섭다. 벌레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잘못 됐다. 한 마디로 과민반응이란 얘기다.
아직까지 중국서 들어왔다는 근거도 없고 나무 수액을 빨아 먹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고사시키진 않으며 더군다나 사람에게 알레르기나 피부병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미관상으로도 서식지 주변이 배설물로 검게 변할 뿐 생김새 자체는 오히려 앙증맞고 예쁘다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다른 매미처럼 울지도 않아 소음문제도 없다.
국립중앙과학관 안승락박사(곤충학)는 이미 지난해 8월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1970년대 발간된 국내 곤충도감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으나 개체수가 적어 눈에 띄지 않다가 근래들어 개체수가 급증한 것 같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당시 김재길박사(한국천연약물자원연구소장)는 “중국 최초 의약서인 신농본초경에 주홍날개꽃매미를 운계(橒鷄)라 하여 어혈을 풀어주고 몸속의 독을 제거해 주는 명약으로 소개될 만큼 유용한 면이 있다”며 “굳이 해충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끈끈이를 이용한 방제법을 창안해 낸 박철하 충북나무병원장도 “낯선 곤충이 갑자기 많이 나타나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질 뿐이지 실제로는 수액을 빨아먹는 외에 나무를 죽게 하거나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진 않는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종합해 볼때 주홍날개꽃매미의 출현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 곤충이, 적어도 40년 가까이 이 땅에 살아온 곤충이 왜 갑자기 확산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기후·환경 변화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상기후 같은 여건 변화로 발생환경이 나아진 데다 조류 등 천적이 줄어든 것이 대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또 산림훼손에 따른 서식지 및 생태균형 파괴가 급속한 확산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비단 주홍날개꽃매미 뿐 아니라 충북 영동에선 갈색여치가, 천수만에선 깔따구가, 전남 여수에선 갯강구가, 경남 산청에선 먼지벌레류가 유례없이 대발생하는 등 곤충들의 이상발생 현상이 잇따르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과연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괴상하게 생긴 벌레들의 이상발생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변화라는 큰 혼돈의 바퀴 속에서 한반도 생태계가 변하는 징조로 받아들일 것인가.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원인유발자란 사실이다.

개울가에 뭔가 목을 길게 뺀채 꼼짝 않고 서있다.

살그머니 다가가니 백로가 먹이를 잡는 중이다.

얼마나 열중인지 강태공이 낚시삼매경에 빠진 것 같다. 사람 같으면 목이 저려 몇 분도 못 있을텐데 한참을 그러고 있다.

그러더니 결국 피라미 한 마리 낚아챈다.
이번엔 양쪽 날개를 부채처럼 펴서 물위에 드리운다. 그늘을 만들 모양이다.

1차 작전이 잘 먹히지 않으니 2차로 우산작전을 쓰려는 게다.
날개 아래 그늘진 곳으로 물고기를 유인해 잡으려는 의도다. 이 때도 인내가 필요하다.

역시 부동자세다. 그러길 십여 분. 이번엔 제법 큰 물고기가 걸려들었다.

일견 우스꽝스럽고 아둔해 보이지만 어쨋거나 신기한 광경이다.

몸집이 작은 물총새는 다른 방법을 쓴다.

다리가 유난히 작아 물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물가 바위나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물고기가 떠오르면 잽싸게 다이빙해 낚아챈다.

이 새도 집중력과 인내심이 보통 아니다.
하지만 여름 물새들 중 먹이잡이의 백미는 단연 검은댕기해오라기의 루어낚시다.

새가 가짜미끼를 이용하니 놀랄 노자다.
이 새는 우선 작은 깃털,나뭇잎,스티로폼, 곤충류 등 물고기가 먹이로 착각할 만한 물체를 찾아 입에 물고는 여울을 찾아간다.

그런 다음 물이 흘러오는 쪽에 그것을 띄워놓고 물고기가 달려들길 기다린다.

그게 다가 아니다. 가짜미끼가 어느 정도 내려가면 또 다시 본래 위치에 갖다놓고 또 내려가면 또 갖다놓길 수 없이 반복한다.

그럴때 마다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마치 생각하며 낚시하는 것 같다.

입질이 시원찮으면 장소를 바꾼다.  
검은댕기해오라기가 이런 행동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자연에서 배운 듯하다.

물가 나무로부터 벌레나 씨앗이 수면에 떨어지면 그것을 향해 물고기가 달려드는 걸 보고 학습한 지혜로 볼 수 있다.
검은댕기해오라기의 이같은 섭식행동은 인간세계의 루어낚시(혹은 플라이낚시)와 원리 및 방법이 너무나 흡사하다. 혹시 루어낚시를 개발한 사람이 검은댕기해오라기의 섭식행동을 보고 착안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강물이 불고 호소의 물도 활성화되는 장마철을 맞아 바야흐로 인간세계에도 본격적인 루어낚시철이 왔다.

더욱이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루어낚시 동호인들로 각 강의 여울목과 호소에는 요즘 루어낚시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 역시 물가 혹은 여울에 들어가 가짜미끼를 던졌다 감아올리고 또다시 던졌다 감아올리는 모습이 검은댕기해오라기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허나 이쯤 해서 지적할 게 있다.

다름 아닌 외래어 무단방류 문제다.

가뜩이나 급속도로 번진 육식성 외래어종이 언제부턴가 소위 '루어꾼'들에 의해 더욱 번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욕심이 지나친 몇몇 사람들의 무분별한 방류행위로 외래어종이 전혀 없던 곳까지 점령당하기 일쑤다.

달래강 상류가 대표적 사례다. 이곳엔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배스류가 없었으나 요즘엔 자주 눈에 띈다. 주민들은 루어꾼들을 의심한다.

취미도 좋고 여가활동도 좋지만 후대들에게 물려줄 자연하천을 온통 외래어 천국으로 만들어놔서야 되겠는가.

한쪽에선 잡아내느라 애쓰고 다른 한쪽에선 푸느라 정신없고….

'Chicken Head'가 별건가. 새들이 웃을까 걱정된다.
낚시광이던 필자가 낚시를 그만 둔 이유가 있다.

어느 해 낚시를 하는데 백로가 저쪽 건너에서 목을 길게 빼고 예의 부동자세를 하고 있는 걸 목격한 것이다.

그 순간 "나도 저 새의 눈에는 '왜 저러고 있나'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낚싯대를 접은 게 10년째다

"대낮에도 밤나무/양반동네 상나무/오줌싸고 쉬나무/방귀뽕뽕 뽕나무/대끼이놈 대나무/화가나도 참나무…"
며칠전 속리산에 올랐다가 산중턱의 뽕나무를 보면서 문득 떠오른 구전동요다.

정확한 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적 입이 닳도록 주절거린 때문인지 노랫가락은 아직도 생생하다.
더욱이 오디가 익을 때면 친구들과 어울려 입과 손이 까맣도록 오디를 따먹고는 연신 나오는 방귀를 이 노랫가락에 맞춰 뿜어대면서 '방귀 뽕뽕 뽕나무' 부분을 더 크게 외치며 깔깔거리던 일이 생각나 똥끝이 찌릿하다.

하기사 오디를 많이 먹으면 방귀가 잘 나와 방귀나무란 뜻의 뽕나무가 됐다는 속설은 훨씬 뒤에 알았지만 어쨋거나 어릴적 오디를 많이 먹으면 신기하게도 방귀가 잦았던 건 사실이다.
또 그땐 왜 그렇게 뽕나무에 백랍이 많았던지 뽕밭에 들어가면 하얀 거미줄 같은 분비물이 머리와 옷에 잔뜩 달라붙어 온몸이 끈적거리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백랍의 실체 역시 나무 수액을 빨아먹는 일종의 나무이(뽕나무이)란 사실을 안 것도 머리통이 크고 난 뒤이지만 지금도 백랍을 뒤집어썼던 그때 모습을 생각하면 온몸이 스믈거려 움찔해진다.
밭 오디는 이미 다 지고 산 오디만 자잘하게 남은 요즘 웬 뜬금없는 뽕나무 타령인가 하면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이 자꾸만 '상구지계(桑龜之戒)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옛날 바닷가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어부가 있었다. 어느날 바다에 나가 그물을 거두는데 그날따라 무엇이 잡혔는지 쉽게 딸려오질 않았다. 한참 동안 씨름한 끝에 간신히 그물을 끌어올리니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거북이였다.
처음엔 두려워 놓아줄까 생각했지만 노쇠한 어머니를 위해 삶아드리는 게 좋겠다 싶어 지게에 지고 집으로 가 솥에다 불을 지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불을 아무리 때도 거북이는 삶아지지 않고 살아움직였다.
생각 끝에 놓아주기로 하고 다시 지게에 지고 바다로 가던 중 언덕에서 쉬게 됐다. 하루종일 거북이와 씨름한 탓에 하도 피곤해 잠시 눕는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한참을 자는데 뽕나무가 꿈에 나타나 "거북이는 뽕나무로 삶아야 잘 삶아지는데 그것도 모르느냐"며 이내 사라지는 게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어부는 마지막으로 뽕나무가 일러준 대로 해보기로 하고 옆에 있던 뽕나무를 베어 집으로 가 거북이를 다시 삶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금전까지 삶아지지 않던 거북이가 흐물흐물 잘도 삶아지는 게 아닌가. 결국 뽕나무 덕에 아들은 효도하고 노모는 거북이를 먹고 원기를 되찾아 오래 살았다'는 이 우화에서 상구지계(桑龜之戒)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뽕나무가 서로에게 불리한 약점만 일러주지 않았어도 거북이도 살고 자신도 살았을 터인데 그만 그 비밀을 말한 바람에 거북이는 물론 자신도 죽게됐다는 이 우화는 자신의 처지는 망각한 채 상대방의 처지와 약점만 드러낼 경우 결국 둘 다 화를 입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떤가.

민생은 절망의 늪을 마냥 헤매는데 양극으로 갈라진 목소리는 연일 상대방 비난에만 열 올리며 밖으로 겉돌고 있다.

사회통합,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국회는 있는 둥 마는 둥 제 할 일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고 정부 역시 매번 큰 실망만 안기고 있다.

우리 사회에 상생의 길, 화합의 길은 있기나 한 것인지 도무지 끝간 곳 없이 양끝을 향해 치닫기만 한다.

갈수록 깊어지는 사회의 골을 바라보면서 이러다가 우리 모두 상구지계의 뽕나무와 거북이가 되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대끼이놈 대나무/화가나도 참나무"

꼭 우리사회를 향해 던지는 화두같아 섬뜩할 따름이다.

18세기 독일 북부에 프로이센 왕국이 있었다.

이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절대주의 국가를 확립한 군주로 유명한 데 엉뚱하게도 버찌를 좋아했다. 

어느날 그가 정원을 거닐다가 벚나무에 참새가 날아와 버찌를 먹어치우는 걸 목격했다.

화가 난 그는 즉시 포고령을 내려 참새란 참새는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추상같은 명령에 온 나라가 뒤집혀 참새 사냥을 한 결과 2년만에 해충이 들끓어 나무와 곡식이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버찌마저 열리지 않게 됐다.

뒤늦게 참새의 역할을 깨달은 프리드리히 대왕은 성급했던 판단을 후회하며 곧바로 참새 보호에 나섰다.

2백년 뒤 중국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공산혁명을 마친 중국정부는 쥐,파리,벼룩,참새를 소위 사해(四害)라 하여 대대적인 추방운동을 펼쳤는데 그 결과 베이징에서만 30만 마리의 참새가 잡혀죽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참새가 줄수록 되레 농산물 생산량이 줄어든 것이다.

조사결과 대흉작의 원인이 참새와 해충간의 역학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정부는 서둘러 참새박멸을 중단했다.

단편적이나마 이들 사례는 큰 교훈을 던져준다.

하나는 그릇된 자연 환경정책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를 역사적 사실로써 입증해준다.

자연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게 자연 환경인 만큼 인간의 짧은 소견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건 금물임을 일깨워준다.

또 하나는 비록 추진중인 정책일지라도 잘못된 것일 경우엔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뤄봤자 손해다.

우리도 이미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수초와 조류(藻類)를 없앤답시고 외국서 초어와 백련어를 들여다 강과 저수지에 풀고 자원증식 시킨다고 육식어종인 블루길과 큰입배스를 들여와 함부로 호소에 푼 것이 민물생태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 않았는가.

또 산림을 녹화하고 화전을 없앤다며 아까시나무와 리기다소나무,낙엽송,은사시나무를 마구 심었다가 훗날 이상한 식생이 나타나자 돌연 조림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지 않았는가.

또 시화호와 새만금 사업의 악몽은 어떻고….

자연은 미래로부터 빌려온 후손들의 재산이다.

그런 만큼 현재 보이는 알량한 이익과 욕심 때문에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더욱이 도를 넘어선 과도한 개발은 미래 후손들의 재산을 선조 임의로 훼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건 엄청난 재물손괴다.
그럼에도 우린 목하 한반도 대운하란 소용돌이에서 2년 가까이 허우적대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 추진 않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다. 완전 백지화 선언이 아닌 '국민이 반대한다면'이란 묘한 단서 때문이다.

현재의 반대여론을 두고 한 말인지, 앞으로 국민의사를 묻는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외신들도 '포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해석할 뿐이다. 때문에 찬반여론이 다시 들썩이고 관련 건설업계,부동산 시장,주식시장은 갈팡질팡하고 있다.

물길 마다엔 그곳에 적응된 여러 생명체가 독특한 유전형질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같은 종이라도 한강 것과 금강 것이 다르다. 그들의 유전자엔 그들 종이 지닌 생명의 비밀과 한반도의 비밀이 내재돼 있다. 그래서 토종 물고기라도 함부로 이동시켜선 안되는데 하물며 물길을 송두리째 터 연결하는 건 이만저만 큰 사건이 아니다. 유전 다양성에 대한 반란이다.
참새 한 종 잘못 건드려도 곧바로 화가 되돌아오는 게 자연이다.

그런 자연을 얕잡아 보고, 참새를 단지 버찌나 따 먹고 곡식 낟알이나 훔쳐먹는 생도둑으로 몰았다가 된통 당한 그 옛날 독선자들의 망령을 다신 보지 않았으면 한다.

비단 대운하 뿐만이 아니고 모든 자연 환경정책에서….

제비가 많던 시절 둥지밑에 떨어지는 제비새끼가 더러 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보면 불쌍히 여겨 둥지에 넣어주곤 했는데 이튿날이면 또다시 떨어져 아예 죽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제 어미가 뭔가 시원찮아 일부러 떨어뜨리든가 아니면 새끼의 실수로 추락한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 혼자 사는 독신제비의 심술에 의한 것이라는 놀라운 내용이 발표됐다.

내용인 즉슨 산란철 배우자를 구하지 못한 독신제비가 남의 가정에 파탄을 일으켜 상대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란 것이다. 즉, 새끼 깐 남의 둥지에 몰래 들어가 새끼를 계속 떨어뜨려 죽임으로써 불화를 만들고 결국 부부관계를 파탄시켜 배우자를 가로챈다는 것이니, 제 아무리 새라 한들 생명을 미끼로 사랑을 빼앗는다는 사실에 혀가 내둘러질 따름이다.

바람난 사람제비들도 감히 엄두 못낼 일을 자연계의 제비들이 벌이고 있으니 참으로 묘한 일이다.
어쨋거나 제비처럼 일부일처종인 새들도 '배우관계외 교미' 이른바 EPC(Extra-Pair Copulation)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끌고 있다.

배우관계외 교미란 배우관계에 있는 새가 자기 짝이 아닌 다른 새와 교미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는 일부일처종만 아니라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종에서도 일어난다. 다만 확률상 일부일처종 보다 다부일처나 일처다부종에서 높게 나타날 뿐이다.
일부일처종인 경우 평균 4.5%가 EPC를 하고 있는데 그 중 딱새처럼 자기들만의 독립된 세력권을 갖는 일부일처종의 3.2%, 백로처럼 집단번식하는 일부일처종의 5.8%가 EPC를 하는 것으로 나타나 집단성 종이 아무래도 '바람끼'가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들이 왜 이처럼 다른 배우자와 일(?)을 벌이는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사회에서의 불륜과는 다른 행동이란 게 학자들 견해다.

이 연구 외에도 동양인의 사고체계를 뒤바꿀 만한 연구결과가 발표돼 충격을 주고 있다.

금슬은 곧 원앙이요 원앙 하면 곧 금슬이란 단어가 떠오를 만큼 동양에서는 원앙이가 한번 맺은 부부의 연을 죽을 때까지 이어간다고 믿어왔는데 사실은 정반대로 순전히 바람둥이란 것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원앙은 산란철이 오기 전 월동지서 짝을 찾는데 이 때마다 암컷이 수컷을 갈아치우는 'changing partner의 명수'란다.
이 내용이 사실일 경우 '원앙처럼 살아라'는 주례사는 되레 엄청난 험담이 되고 혼롓상에 원앙을 올려놓는 풍습 또한 쌍스런 일이 된다.
하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충북 보은서 원앙을 25년간 사육해온 김중구씨는 원앙은 한번 짝 맺으면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배우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수컷이 먼저 죽으면 남은 암컷을 다른 수컷들이 그냥 놔두질 않아 곧바로 죽을 뿐이란다.

인간세계를 보자.

이혼이 무슨 풍토병처럼 마구 번지더니 이젠 젊은층이나 황혼층이나 예사로운 일이 됐다.

더욱이 말다툼 한번 했다고 홧김에 법원으로 달려가는 충동이혼율까지 갈수록 늘어나 심각한 지경이다.
이에 부부가 이혼하기 전 다시 한번 생각토록 하는 이혼숙려제도가 22일부터 본격 시행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까진 오전에 협의이혼을 신청하면 오후에 법원도장이 찍혔다. 징글징글한 부부들이야 편리한 제도라 할지 모르나 충동이혼인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가정법원이 이혼숙려제를 시범 실시해온 결과 협의이혼 취하율이 2배 이상 높아졌다는 건 상당수가 다시 한번 생각하면 마음을 달리한다는 의미다.

사람이 새와 다른 건 사리분별 때문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

떠날 땐 말없이 떠날지언정 사람이기에 정녕 다시 생각하면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새들도 의사표현을 한다.

평화로울 땐 노래도 부르고 위급하면 경계신호도 보낸다.

슬픈땐 울부짓기도 하고 배고프면 보채기도 한다. 또 몸짓을 통해서도 의사를 소통한다.

조류학자가 꿈이었던 필자는 어릴 적 유난히도 새를 좋아했다.

오죽하면 등교하다가도 처음 보는 새를 만나면 호기심에 따라가 기필코 둥지를 발견한 후 새알 모양과 특징 등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학교가는게 다반사였을까.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새소리만 듣고도 종류는 물론 그 새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쯤은 대강 안다.

중학교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날 걸어서 집에 가는데 도랑을 만났다.
풀이 우거진 도랑을 풀쩍 뛰어 건너는 순간 발밑에서 기절초풍할 일이 벌어졌다.

뭔가가 '꽥∼'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져 허우적거리는 게 아닌가. 기겁을 한 후 돌아서보니 해오라기였다.

건너뛰기전 풀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해오라기가 갑자기 뛰어든 불청객에 놀라 그만 까무러쳤던 것이다.

그 일로 새들도 된통 놀라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11살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30m가 넘는 동네어귀 미루나무에 올랐다 죽을 뻔한 일이다.

빈 까치 둥지에 부화한 어린 참새새끼가 탐이 나 며칠을 벼른 끝에 어른들이 들로 나간 틈을 타 나무에 올랐다.

처음부터 심상찮은 경계음을 내던 참새어미들은 어린 꼬마놈이 둥지 가까이 이르자 더욱 큰 소릴 내며 덤벼들 태세였다.
이윽고 손을 내밀어 둥지에 넣는 순간 작대기만한 황구렁이가 혀를 낼름거리며 불쑥 머리를 내미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떨어질 뻔했지만 어디서 생긴 호기인지 되레 손으로 뱀머리를 내리치곤 똥줄이 빠져라 내려왔으니 지금도 생각하면 등줄기가 오싹하다.

그일 이후 새들은 상황에 따라 경계음을 달리 낸다는 걸 알았다.

새소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른바 'SONG'과 'CALL'이다.

SONG은 말 그대로 노랫소리, 즉 평화스런 지저귐이다. 산란기를 맞은 암수컷이 서로 구애하거나 세력권을 표시할 때 내는 본능적인 의사표현이다.
반면 CALL은 SONG 이외의 소리, 즉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적 언어다.
천적이 가까이 있거나 침입할 때의 신호음 또는 놀라서 내는 비명소리,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소리, 무리를 지을 때 통일성을 가지려고 주고받는 소리가 포함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새들의 CALL 같은 불만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집권층의 소통의 부재가 빚은 민중들의 CALL이 촛불축제와 시위를 통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오로지 재협상만이 쇠고기 수입문제의 해법이라 외쳐대는 어린 학생과 학부모들의 생존권적인 CALL, 온갖 악재로 생계를 위협받아 농기구 대신 피킷을 들고 나선 농민들의 한맺힌 CALL, 대운하 계획 등 무모한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는 환경론자들의 결사적인 CALL, 초고유가로 더이상 생업을 잇지못하겠다는 화물업계의 절규의 CALL 등 목소리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 보다 더 무서운 CALL이 있다.

집단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속앓이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소리없는 CALL'이다. 그들이라고 어찌 나서고 싶지 않고 소리내어 외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침묵할 따름이다.

가슴에 응어리 지고 피가 맺혀도 이 땅에 '평화의 SONG'이 울려퍼지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은 희망한다. 민심 달래기에 급급한 임기응변식 사탕발림이 아닌, 소통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진정 원한다.

가슴을 열고 생각해 보라.

새들은 해맑게 SONG을 부르는데 우리사회는 왜 CALL이 만연하는지.

하늘 보기가 민망하잖은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