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꾼 가슴은 이래저래 다 탄다

 
 송이꾼이 가장 기다리는 절기가 백로(白露)다. 이 때를 전후해 송이가 나기 때문이다.
백로 전의 절기인 처서(處暑)가 되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해지고 일교차가 심해진다. 봄부터 뿌리를 통해 수분을 빨아들이던 소나무는 처서가 지나면서 수분 흡수를 멈추고 겨울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 무렵이 바로 송이균사가 발생해 번지는 시기다.
 소나무가 겨울준비를 하는 방법은 별 수 없이 뿌리를 통해 물기를 내뱉는 것이다. 온 몸에 지니고 있던 물기를 적당히 배출해야 추운 겨울 얼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송이꾼들은 이 과정을 “소나무가 물을 내린다”고 한다. 소나무가 잔뿌리를 통해 물을 내리면 그 잔뿌리에 붙어 공생 균근을 형성하고 있던 송이 균사가 활성화 돼 균사체를 만들고 그 균사체가 자라서 송이가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나무는 자신의 잎으로부터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송이에게 공급하고 송이는 균사체를 통해 빨아들인 토양의 양분을 소나무에게 나눠준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리공생 관계다.
 이 상리공생 관계가 더욱 활발해 지는 시기가 처서 다음의 백로요, 그래서 백로 절기가 되면 “송이철이 왔다”고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핸 송이철이 왔는 데도 송이꾼들의 낯빛이 영 말이 아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백로 절기인데 되레 ‘된서리 맞은 까까머리 꼴’이다.
 이유인 즉 송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산을 타봤자 고작 몇 개 만나면 그만이요, 그것도 본송이(본밭에 나는 굵은 송이)가 아닌 벌송이(본밭이 아닌 곳에서 나는 가는 송이)가 대부분이니 기분 좋을 리 만무다. 더욱이 한몫 잡아야할 추석 대목이 코앞이니 그 심정 알 만하다.
 그렇다면 원인은 뭘까. 한 마디로 날씨 탓이다.
 처서가 지나 백로 절기인데 한낮 기온은 여전히 한여름이다.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는 건 좋은 데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니 소나무인들  생체 시스팀이 온전히 작동할 리 없고 송이 균사체인들 제대로 생장할 리 없다.
 게다가 가을 가뭄까지 심하다. 충북지방의 경우 얼마 전에 이어 사흘 전에도 비가 왔다고 하나 감질만 나게 했을 뿐이다. 산속 가랑잎에선 바스락 소리가 난다. 땅속을 파 봐도 언제 비가 왔느냐다.
 이대로 일주일만 더가면 송이 나긴 다 글렀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일부 꾼들은 2년전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극심한 가을 가뭄으로 송이 하나 제대로 나지 않은 게 2년전이다.
 그런데도 요즘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산에선 송이가 나지 않는데 송이를 따려고 올라가는 외지(?) 사람들은 줄을 잇는다. 마치 행락철 인파를 방불케 한다.
 그러니 현지인들인 송이꾼들의 가슴은 더욱 찢어진다. 외지인들로부터 자신들의 송이밭을 지키기 위해선 매일 산을 올라야 하는데 송이는 나지 않고, 산을 안 오르자니 속은 타고…. 아예 죽을 지경이란다.
 송이는 나지 않는데 외지 사람들이 불이 나게 산을 오르내리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송이가 나는 지역에 가보면 현재 각 상점마다 지천한 게 송이다. 실제로는 중국산,북한산,강원도산 혹은 경북산 등 종류도 갖가지지만 외지서 온 사람들은 그게 다 현지서 나는 줄로만 믿는다. 그러니 산을 오를 수 밖에.
 현지 상인들도 문제다. 떳떳하게 이건 어디 산이고 저건 어디서 갖다 파는 것이라 털어놓으면 좋으련만 굳이 밝히지 않는다.
 산지에선 송이가 나지 않는데 송이 따려는 외지인들은 인산인해고, 지역 상점에선 송이가 수북히 쌓인 채 정신없이 팔려 나간다. 한 철 산에 올라 다음 일년을 먹고 사는 송이꾼들의 속이 이래저래 다 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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