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새해 날씨가 몽땅 뿔났다!

 

새해 날씨가 뿔났다.

마치 새해업무가 시작되길 기다렸다는 듯이 기록적인 폭설에 한파까지 겹쳐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절기상 대한이 놀러와 얼어죽는다는 소한절기라 그런지 아주 본때를 보이고 있다. 단단히 혼쭐난 사람들은 아예 날씨가 미쳤다고까지 한다.


더욱 심각한 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의 새해 날씨가 몽땅 뿔났다는 점이다. 동유럽 폴란드에선 폭설로 강물이 불어나 둑이 터지고 마을이 고립되는 등 한겨울 홍수로 수십명이 숨졌다. 또 좀처럼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는 영국에선 30년만에 찾아온 한파와 잇딴 폭설로 온 나라가 얼어붙은 것을 비롯해 독일,스위스,네덜란드 등 거의 모든 유럽국가가 최악의 겨울날씨에 몸서리 치고 있다. 얼마나 추우면 유로스타가 두 번이나 멈췄을까.


미국도 마찬가지다.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강추위와 폭설이 계속되는 가운데 북동부의 버몬트주 벌링턴에는 80cm나 되는 폭설이 쏟아졌다. 중국은 더 하다. 베이징에는 59년만의 폭설과 한파가 들이닥쳤고 북부지역 내몽골에는 무려 3m가 넘는 눈벼락으로 달리던 열차가 멈춰섰다.

더운 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월달 낮기온이 섭씨 25도를 오르내리는 인도에서는 새해 들어 짙은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기온이 급강하 해 최소 100명이 얼어 죽었으며 이웃나라 방글라데시 역시 갑작스런 한파로 수십명이 동사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100여년만의 폭설을 기록한 서울 등 중부지역을 포함해 거의 모든 지역이 말 그대로 소리없는 눈폭탄에 치를 떨었다. 엄청난 적설량도 그렇거니와 짧은 시간에 쏟아진 눈보라는 도로마다 수백,수천톤씩 뿌려진 제설제를 무용지물로 만들었으며 시무식에 갈 길 바빴던 직장인들의 발길을 송두리째 마비시켰다.

웬만큼만 내렸어도 정초 서설(瑞雪)이니 복눈이니 해가며 반겼을 테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겨를도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너댓 시간을 걸어 고속도로를 탈출한 사람들을 두고, 졸지에 주저앉은 축사와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하는 농민들을 두고 그 어찌 서설타령을 할 수 있었겠는가. 또 혹한에 식수난까지 겪는 사람들은 어떻고.

기온도 말이 아니다. 영하 10도는 보통이요 걸핏하면 -20~30도까지 내려가니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아침에 쇠로 된 물건을 만지면 손이 쩍쩍 달라붙고 냇가 얼음판에선 찌렁찌렁 우는 소리가 난다. 얼다 못해 갈라지는 소리다. 방문틈새로는 상막한 황소바람이 기어들고 바깥바람은 면도날처럼 쭈뼛하다.


겨울은 춥고 눈이 와야 제격이라고는 하지만 올핸 너무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겨울철만 되면 으레 이상난동이 찾아와 오히려 푹한 날씨를 걱정케 하더니만 올겨울엔 이상하리만큼 춥고 눈도 잦다.

왜 이럴까. 전문가 얘기를 종합하면, 극지방의 찬 공기덩어리를 감싸고 있는 제트기류, 즉 폴라캡(Polar cap)이 변형됐기 때문이란다. 다시 말해 동서로 흐르며 찬공기를 차단하던 폴라캡이 엘니뇨의 교란에 의해 약화되면서 유럽처럼 북풍이 심한 곳에선 찬공기를 더욱 부추겨 대륙을 얼어붙게 만들고, 동아시아처럼 남·북풍이 함께 발달하는 곳에선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북쪽의 찬공기와 만나 폭설을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현상이요 심각한 얘기다.

아무쪼록 작금에 일고 있는 전 지구촌의 기상이변이 부디 그 이상의 의미(예를 들어 세기말적 현상같은)를 띠지 않았으면 한다. 기우는 기우를 낳는다고 말 많은 '2012년'이 바로 코앞이기에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어쨋거나 자연 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절감케 하는 새해벽두다.

'눈 위를 달리는 말(雪馬)'처럼 거침없이  내달리자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을 보면 1435년 3월 12일 함길도 감사가 아뢰기를 "길주 이북에 눈이 깊이 쌓여 우마가 태반이나 굶어 죽었고(중략) 새로 이사 온 백성들이 통행하지 못하옵기에 설마(雪馬)를 타는 자들을 시켜 미곡을 가지고 가서 구제하고 있습니다"란 기사가 나온다.
또 연산군편에는 1499년 7월 2일 이극균이 아뢰기를 "(전략) 적설이 많은 때를 만나서 화차를 운행할 수 없으므로 촌가의 설마(雪馬)를 가져다 화차를 싣고 암소로써 끌게 했더니 험한 곳도 오르내릴 수 있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정조때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거중기와 설마(雪馬),유형거,녹노 등 여러 운반기기를 이용해 공기(工期)를 5분의 1로 단축시켰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설마(雪馬)가 무엇일까. 내용으로 보면 사람이 타거나 물건을 싣는 기구 같다. 맞다. 설마는 썰매의 옛말이다.

감저(甘藷)가 감자가 되고 보패(寶貝)가 보배로, 석류황(石硫黃)이 성냥으로 변한 것처럼 본래 한자어였던 것이 고유어로 굳어진 예다.


소가 끄는 썰매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소를 길들일 때 자주 이용됐다.

어느 정도 자란 소를 일소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써 그 과정이 필요했다. 코를 갓뚫은 소에 썰매를 지운 다음 처음에는 땅위에서 썰매만 끌게 하다가 웬만큼 사람말을 알아들으면 아이들을 태우고 다녔다.

어릴적 그것을 많이 타본 필자는 지금도 당시의 느낌이 묘하게 남아 있다. Y자형의 큰 나무를 잘라 대충 만든 썰매도 불안하거니와 땅위를 바퀴도 없이 질질 끌려가는 거친 승차감(?)에다 아직 길도 덜 들여져 시도때도 없이 날뛰는 소 때문에 잔뜩 겁먹고는 손잡이를 있는 힘껏 쥐어잡던 기억이 생생하다.

썰매는 뭐니뭐니 해도 얼음판 위에서 타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얗게 눈 내린 얼음판 위를 썰매타고 내달리다 보면 추위고 방학숙제고 뭐고 까마득히 잊은 채 하루해가 마냥 짧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났던 건 얼음이 얇게 얼어 고무다리처럼 낭창낭창한 얼음판을 묘기부리듯 오가며 노는 일이었다. 그러다가는 얼음이 깨져 찬물에 풍덩 '메기' 잡고는 그 메기를 구워먹는답시고 불 피워 양말과 옷 말리다가 불티에 구멍 내 된통 혼나던 일은 추억속 백미다.


위험천만한 일도 있었다. 저수지처럼 깊은 곳의 얼음판에는 으레 숨구멍 같은 위험지역이 도사리고 있어 그곳에 빠졌다간 졸지에 동네사람 다 출동시키는 급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썰매타기는 예전 사람들도 즐겼던 것 같다. 인조때 형조판서를 지낸 이경전은 '노호승설마기(露湖乘雪馬記)'란 글을 통해 눈이 많이 내린 뒤 친구들과 함께 밤중에 썰매(雪馬) 탔던 추억을 65세에 남겼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최근 들어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들과 함께 썰매타기를 즐기는 어른들이 많아졌다. 겨울축제 현장이나 팜스테이 마을, 펜션촌에선 인기있는 이벤트가 됐다. 더구나 올 겨울엔 잦은 눈과 강추위 때문인지 썰매 타는 이들이 더욱 많이 눈에 띈다. 비록 썰매 재질과 모양은 크게 달라졌어도 오랫 동안 잊혀졌던 고향의 모습이라 그런지 가슴 한쪽이 쿵쾅거릴 정도로 반갑다.


그렇다. 경인년 새해도 밝았으니 잠시만이라도 세상사 모두 잊은 채 어릴적 그 옛날로 돌아가 쌩~쌩 썰매 타고 달려보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밤새 눈이 내려 아무런 흔적도 없는 눈판과 얼음판 위를 맨처음 달릴 때의 벅찬 기분으로, 올 한해도 거칠 것 없이 한껏 내달릴 수 있도록 한바탕 기분풀이 해보면 어떨까.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콧노래까지 신나게 부르면서 말이다.

경인년 새해, 호랑이에게 길을 묻다

 

1년전 우리는 소띠 해를 맞으면서 소의 몸집처럼 풍요롭고 황소걸음처럼 여유로운 한해가 되길 기원했다.

비록 글로벌 금융위기로 모든 분야가 암울했지만 지혜와 슬기를 모으면 빈집에 소 들어가듯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행여 힘들고 지치더라도 소의 충직함과 우직함을 본받아 묵묵히 참고 견뎌내면 잘 되는 집 큰소만 낳듯 행운이 찾아올 것이란 희망도 가졌다.

어디 그 뿐인가. 비록 상대방 뜻이 귀에 거슬리더라도 소가 닭 쳐다보듯 닭이 소 쳐다보듯 서로가 넓은 가슴으로 관용을 베풀고 배려하면 만사가 형통하리라 굳게 믿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기축년의 끝자락. 소배꼽 만큼 남은 2009년 한해를 되돌아 보니 무척이나 착잡하다. 아니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방아 찧은 것처럼 찜찜하기까지 하다.
쇠고삐가 먼저 떠오른다. 이리 끌면 이리 가고 저리 끌면 저리 가도록 굴레와 코뚜레에 매여진 쇠고삐, 그 쇠고삐 끝에 국민이 매여 있었고 부단히도 끌려다닌 한해였다는 생각이 앞선다. 국민이 우매한 소인가. 묘하게도 워낭소리가 오버랩된다.
앞걸음질 보다는 뒷걸음질이 생각난다. 새해 첫날의 구름 탓이었을까. 일년내내 기대했던 찬란한 서광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늘을 탓할 수 있으랴.

다시 되돌아 보지만 참으로 힘들었던 한해였다. 가식적이라도 어디 한번 큰소리로 웃어본 적 있었는가. 지금 당장의 기쁨은 고사하고 어느 한가닥 희망이 있어 가슴속으로나마 쾌재를 불러본 적 있었는가. 나라는 나라대로,사회는 사회대로,경제는 경제대로,가정은 가정대로 한없이 움츠러든 느낌이었으니 한숨과 탄식이 절로 나왔다.

참으로 우울했던 한 해였다.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해 한 사람은 부엉이바위의 한을, 또 한 사람은 인동초의 한을 남겨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전국에 울려퍼진 조종(弔鐘)과 추모 물결은 2009년의 대표적인 잔영이다.             

또 안팎으로 얼마나 시끄렀웠는가. 북한 미사일발사,미네르바 사건,용산 참사,해커 공격,신종플루 창궐,임진강 방류사태,미디어법 충돌,대운하와 4대강 논란,세종시 논란,나영이 사건,연예계 인사 자살 등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이젠 앞을 보고 싶다.

2010년 범띠 해(庚寅年)를 맞아 진짜 희망을 갖고 싶다. 백수의 왕 호랑이처럼 당당하게 어깨 펴고 힘들었던 일,우울했던 일 모두 떨쳐내고 한바탕 웃으며 포효하고 싶다.
호랑이의 나라에서 호랑이 해를 맞은 만큼 나라의 위상이 다시 우뚝 서는 한해가 되길 염원한다. 세 사람만 우겨 대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있듯이 내년에는 제발 그런 추잡한 꼴들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 호랑이가 개 어르듯 꼼수 부려봤자 서로가 새벽 호랑이 된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호랑이도 제 새끼는 안 잡아먹는다고 했지 않는가. 같은 국민끼리 으르렁거려 봐야 나라망신이요 꼴불견이다.
밝아오는 새해에는 모두가 진정으로 화합했으면 한다. 자는 호랑이에게 공연히 코침 주는 일도,또 거기에 맞서 선불 맞은 호랑이 날뛰듯 기고만장하는 일도 제발 없었으면 한다.

용 가는 데 구름 가고 범 가는 데 바람 간다고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할 길을 찾음으로써 모든 국가 구성원들이 산 만난 호랑이처럼, 아니 날개 얻은 호랑이처럼 한발짝에 두걸음을 뛰는 비약의 한해가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역술상 경인년의 화두는 "자기 이상만 고집 말고 현실을 망각하거나 독선을 드러내지 말라"다. 호랑이의 기세만 믿지 말란 경고다.
1년뒤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도 못 그렸네 라며 한탄하는 일 없었으면 한다.

'티컵 강쥐'에 이어 '디자이너 독'이 오고 있다

 

T컵강쥐(강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대체 T컵강쥐가 무엇이기에 3년 가까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을까. 
유행어 혹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지 못할 이 말은 Teacup 즉 찻잔 속에 들어갈 만큼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를 일컫는다. 본래 이 말은 미국의 마이크로독(Micro-dog)이 일본으로 건너가 티컵독(Teacup Dog : Supermini)으로 불리면서 유행하게 됐고 이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T컵강아지-T컵강쥐(강지)로 불리게 됐다. 여기서 강쥐 혹은 강지는 강아지를 귀엽게 부르는 말로서 이미 인터넷사전에 등재된 신어다.


그렇다면 얼마나 작을까. 놀라지 마시라. 이견이 있지만 성견이 돼도 몸길이가 10cm 대에 불과하다. 길이로 보면 분명 '쥐만한 강아지' 즉 강쥐라 부를 만하다. 몸무게는 또 어떤가. 이 부분도 이견이 많은데 보통 1kg 이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현재 이런 크기의 강아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해서 말들이 많다. T컵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람과 분양한다는 곳은 많지만 정작 기준(?) 안에 드는 강아지는 별로 없으니 말들이 많을 수밖에. 더욱 놀라운 것은 일부 사람들이 T컵강아지를 분양하기 위해 머그컵에, 컵보다 큰 강아지를 꾸겨넣듯 집어넣고는 사진찍어 버젓이 광고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가격도 놀랍다. 수십만원은 보통이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강아지도 있다. 하지만 시비가 잦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반품 시비가 생긴다. 구입할 당시엔 긴가민가했는데 얼마 안가 일반 개와 비슷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불만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자타가 인정할 만한 기준이 없어서다. 몸길이도 그렇고 몸무게도 그렇다. 보는 이에 따라 제각각이다.  


T컵강아지 자체에 대한 반대여론도 뜨겁다. 인위적으로 작게 만들어 건강도 약하고 수명도 짧게 만들어 마치 인형처럼 취급하는 것은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해서 일부 반대론자는 모 포털사이트를 통해 "T컵 강아지 판매를 중지할 것"을 청원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수천명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물론 찬성론자도 많다. 돼지를 작게 만들어 애완용으로 키우고 소,닭까지 좋은 것 먹여 육질 좋게 만들어 잡아먹으면서 유독 T컵강아지만 동물학대라고 몰아치는 건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비록 수명은 짧아질 지언정 사는 동안 예쁨 받고 좋은 대접 받으면 그게 더 삶의 질이 높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T컵강아지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느냐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항간에는 DNA 조작설까지 퍼져 있다. 하지만 국내외 실정상 그 방법으로 초소형견을 다량 생산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다. 설령 그 방법이 동원된다 하더라도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많은 이들은 무녀리처럼 시원찮은 강아지(열성)끼리 교배시키거나 근친교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성공률도 낮고 선천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태어난다.


시대가 바뀌어 애완견을 반려견으로 부르는 세상이다. 가지고 노는 동물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물로 인식이 바뀌었다. 가족 취급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T컵강아지,T컵고양이 같은 억지춘양식의 초소형화 추세를 보면서 과연 이 시대 사람들의 진정한 속내는 어디에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 미국에선 마이크로독에 이어 혼혈견(Designer Dog)이 인기란다. 취향에 맞게 디자인된 또다른 강쥐다.

혈통이야 어찌됐건 이 종 저 종 교배시켜 앙증맞게 만든 '맞춤' 강아지, 그들이 또 우릴 향해 오고 있다.

총을 드니 어릴 적 버릇이 되살아나는가

 

장난감총이 귀하던 시절 얘기다. 그 시절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제총을 갖고 놀았다.

수제총이래 봤자 새총 아니면 딱총이었지만 그 시절 어린 아이들에겐 그보다 더한 장난감이 없었고 놀이 또한 전쟁놀이나 새총놀이 이상 가는 게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아이가 있는 집은 늘 고무줄이 남아나질 않았다. 새총과 딱총의 중요한 소재가 고무줄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흔하고 흔한 게 고무줄이지만 그 시절엔 꺼먹 고무줄이든 노란 고무줄이든 무조건 삭아 끊어질 때까지 썼을 만큼 흔칠 않았다. 오죽하면 팬티 고무줄을 잇고 또 이어서 나중엔 굵기도 다르고 색깔마저 형형색색이 됐겠는가.

당시 부모들은 장에 가면 으레 리어카장수한테 들러 고무줄 사는 게 일거리였다. 하지만 사다 놓으면 뭣하랴. '아는 도둑놈'이 그냥 놔둘리 만무였다.
새총과 딱총 때문에 남아나지 않았던 건 고무줄만이 아니었다. Y자로 생긴 나뭇가지와 가죽, 송판, 심지어 쇠로 된 우산대까지 동이 날 지경이었다. Y자형 나뭇가지와 가죽은 새총을, 송판과 우산대는 딱총을 만드는 데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토록 부모 속을 뒤집어 놓으면서까지 애써 만든 총으로 잘만 놀면 되는데 엉뚱하게도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아무 데나 겨루고 쐈다가 애먼 아이 울리는 건 예사고 남의 장독대까지 깨부수기 일쑤였으니 부모들에겐 그야말로 '웬수'가 따로 없었다.
어쩌다가 건전(?)하게 논다는 게 고작 가을걷이 끝난 들판에다 대고 새총알을 누가 더 멀리 쏴대느냐 시합하거나 동네앞 나무 전신주에 표적을 그려놓고 누가 먼저 맞히는가 시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위험천만했다. 총알 때문이었다. 가을철에 도토리를 새총알로 쏠 땐 비교적 작고 가벼워 큰 문제가 없었으나 돌멩이로 쏠 땐 근처를 지나는 사람이나 가축들에게 크나큰 위험요인이었다.
딱총 역시도 화약만 터트리는 단순한 형태에서 벗어나 나중엔 자전거 바퀴의 밸브어댑터를 장착해 그 안에 초와 화약을 함께 다져넣은 다음 못으로 공이를 만들어 쏘는, 당시로선 엄청난 화력(비록 소리만 컸지만)의 총이 만들어지면서 걸핏하면 남의 애 고막이나 손상시키는 말썽의 원흉이 됐다.


세월이 바뀌어 이제 나무로 만든 딱총은 볼 수 없게 됐지만, 그것이 진화한 장난감총의 모양과 성능은 실제 살상용에 버금갈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새총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해 지금은 농성장에서 쇠구슬을 날리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변한 것을 보면 가슴이 아리다 못해 쓰리다. 


장난감총이라도 역시 총은 총인가 보다. 그러니까 시대 불문하고 더욱 정교하고 더욱 강한 성능을 갖도록 진화하는 것 아니겠는가. 더욱 희한한 것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손에 총만 들면 뜬금없는 생각과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먼옛날 수렵·채집 시대에 각인된 유전인자가 오늘날까지 대내림해 온 까닭은 아닌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엔 충북의 한 순환수렵장 지역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현수막을 보았다. '통신케이블에 제발 총을 쏘지 마세요. 신고하여 포상금 받자'
현수막을 나붙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수렵인들이다. 되나가나 쏴대는 무분별한 총잡이들 때문에 참다못한 KT가 궁여지책으로 내 건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총을 드니 괜히 어릴 적 버릇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케이블 맞춰봤자 박수쳐 줄 사람 아무도 없고 피해만 끼치는 데도 막무가내다. 케이블에 앉은 새 때문이라고 핑계 대지만 그건 엽도를 몰라서 하는 얘기다. 손에 든 총이 새총도 딱총도 아니고 사냥총을 가진 엽사들이라면 적어도 엽도가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로봇 물고기가 무슨 요술방망이인가

 

신종 물고기(?)로 시끄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언급한 4대강 수질감시용 로봇물고기 때문이다. 그날 이 대통령은 동영상으로 소개된 물고기 형체를 향해 "저건 고기가 아니라 로봇입니다. 고기와 똑같이 생겼으니 함께 노는 것이지요. 그런데 낚시를 해도 물지는 않습니다"라고 설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나 그날 로봇물고기 발언은 웃음 뿐만 아니라 일파만파의 논란을 불러왔다. 학계,정치권,네티즌 할 것 없이 벌집 쑤셔놓은 꼴이다. 반발쪽 얘기로는 깜짝쇼요 한낱 웃음거리다.
먼저 학계 반응이다. 대한하천학회와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은 곧바로 기자회견을 갖고 "물고기로봇은 아직 '수족관외 현장검증'된 것이 아닌 데도 검증된 것처럼 거짓말했다"고 꼬집었다.
정치권도 거세다. 지난 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민주당 김상희의원은 "실용단계도 아닌 로봇물고기로 수질오염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하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 지적했고 같은 당 김재윤의원은 "로봇물고기가 휘젓고 다니면 기존 물고기들이 놀라 스트레스 받을 것이니 오히려 환경파괴"라고 반박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의원은 "대통령이 깜짝쇼를 보여줬다"고 퍼붰다.
한나라당 의원도 거들었다. 한나라당 차명진의원은 "내용도 없는 것을 대통령이 발표하게 하면 되나. 홍수가 와서 로봇물고기가 떠내려가거나 낚시꾼이 집어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발끈했다.
네티즌들도 신랄하다. 가격이 4천만원대이니 예산낭비다, 강속의 로또이니 낚아 올리자, 국민들은 물고기가 아니니 상한 떡밥으로 대국민 낚시를 그만하라, 루어낚시하다 걸려 나오면 어쩌나 등등의 의견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추가설명이 없다. 그래서 '성질 급한' 일부 언론이 나서 국내 기술진에게 물어봤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2005년께부터 연구를 시작해 현재 실험실 수조서 운용하는 단계에 있으며 향후 3년이면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영국이 개발중인 로봇물고기는 길이가 1.5m 정도지만 국내 것은 50cm 정도(향후 1m 이내)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 것의 속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로봇의 최대속도는 초당 1m다. 가격은 양산할 경우 4천만원 이하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왜 중요한 시기에 개발이 덜된 로봇물고기를, 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소개했을까 하는 점이다. 일부에선 정치적으로 보고 있지만 대통령의 심경을 먼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난제가 수두룩한 로봇물고기를 4대강 수질문제 해결책으로 내세웠겠는가. 또 얼마나 궁했으면 현 수질측정시스템과 상치되는 안을 마치 요술방망이라도 되는 양 발표했겠는가. 현 시스템은 각 하천에 대표적인 지점을 선정해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앞으로 보완할 건 이 시스템이다. 


또 한가지, 발상자체가 반생태적이다. 강이 왜 수질만을 위해 존재하는가. 수질만큼 중요한 게 생태다. 그럼에도 한낱 로봇에 불과한 장치를 물고기와 함께 '놀게 한다'니 발상이 의심스럽다. 설령 로봇물고기가 성공적으로 개발된다 할지라도 그것을 물속에 집어넣는 순간 물고기 평화는 깨질 것이다.


굳이 경제성을 따진다면 로봇물고기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릿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물고기도 아닌 것이 물고기 흉내를 내며 빠른 속도로 활개칠 것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오갈 때마다 물고기들은 식은 땀을 흘려야 한다. 50cm 이상되는 괴물체가 뜬금없이 달려드는데 간 조리지 않을 물고기가 어디 있겠는가.

물밖으로들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된다. 물고기 살려!

까치 얼어 죽 듯 짐승도 사람도 얼어붙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 하나가 있다. 해가 떠도 일어나지 않고 자꾸만 이불속을 파고드는 어린 나를 향해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얘야, 밤새 뒤꼍에 까치가 하얗게 얼어죽었으니 얼른 일어나 주워와라."
처음 이 말을 들었던 게 대여섯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그땐 진짜인 줄 알고 뒤꼍엘 가봤다. 없었다.

죽은 까치는 커녕 산 까치도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이웃집 애가 먼저 와서 주워갔단다. 그 뒤로도 뒷산,앞산,동구밖 등 장소만 바꿔가며 걸핏하면 하얗게 얼어죽었다는 까치는 전혀 보질 못했다. 어머니는 늘 내가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일은 우리집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어린 아이가 있던 집은 겨울이면 으레 까치가 얼어죽었다.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어머니들의 이같은 농담이 어린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줘 어서 일어나라고 하는 지혜였다는 것과 얼어죽은 까치가 하얗게 내린 서리였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뜬금없이 얼어죽은 까치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정서가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예전엔 까치소리를 들으면 기쁜 소식이나 반가운 손님이 올 거라 여겼는데 요즘엔 되레 까치가 진짜로 얼어죽는 게 반가운 소식이라는 말까지 나도는 세태다.

길조를 넘어서 시조(市鳥)니 도조(道鳥)니 국조(國鳥)니 떠들 땐 언제고 이제와 망나니 대접을 하는 세태가 안타까운 것이다.

언제 그들이 대접받기를 원했는가. 반가운 새니 시,도,나라를 대표하는 새니 했던 것도 다 사람 입에서 나왔지 언제 그들 입에서 나왔는가.


유해조수도 그렇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했다 하여 무조건 때려잡아야 할 해조로 몰아세운 것 역시 우리들이다. 그들은 단지 둥지 틀 장소가 모자라 전봇대에 둥지 틀고 먹거리가 마땅치 않아 과수에 입질 했을 뿐이다. 둥지 틀 장소와 먹거리 부족은 누가 가져왔는가. 개체수가 늘었다는 것도 편견이다. 그 원인 역시 사람이 불러왔다.

 

더 큰 문제는 종 전체를 싸잡아 망나니 취급하는 일이다.

까치라고 해서 모두 다 전봇대에 둥지 틀고 과수에 입질하는 건 아니다. 일부만 그런다. 엄밀히 따지면 피해를 주는 현행범은 그 일부다.

어느 한 사람이 강도짓 했다고 해서 사람 모두를 강도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를 게 뭐 있겠는가.


수렵철인 요즘 순환수렵장 지역은 조용하다 못해 썰렁하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냥꾼은 많은데 짐승이 보이질 않는다. 멧토끼,고라니,멧돼지 보다 사냥개 수가 더 많다.

꿩과 멧비둘기는 물론 각 하천에 그 많던 흰뺨검둥오리며 청둥오리,비오리,논병아리 등도 모두 다 꽁지를 감췄다.

수렵장 운영 한 달이 지나면서 전혀 딴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관할 기관에 신고된 포획건수는 극소수다. 신고 건수로만 보면 소위 '엽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껏 '공포탄'만 쐈다는 얘기다. 그럴 리 없다. 잡은 사람이 신고토록 돼 있는 현행규정의 모순 때문이다.

기껏해야 인가 근처서 드물게 만나는 까치나 까마귀의 행동도 달라졌다. 자라에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마구잡이 총질에 얼마나 놀랐으면 낯선 사람, 아니 동네로 접어드는 낯선 차량만 봐도 똥줄이 빠져라 내뺀다.


사람들도 놀라 있다. 순환수렵장내 사람들 얘기다. 오죽하면 그들은 요즘 가까운 산은 커녕 밭에도 못 간다. 행여 짐승으로 오인돼 졸지에 탄환밥이 되지 않을까 겁 나서다.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써도 날뛰는 사냥개가 무섭단다.
수렵기간은 아직 석달 남았는데 까치도 얼고 들짐승도 얼고 사람들도 얼어 붙었다. 꽁~꽁.

'쓰레트'만 보면 떠 오르는 아린 기억

 

우리 농촌서 잊혀진 모습이 있다. 초가지붕이다. 둥그스런 곡선이 뒷동산 봉우리와 어우러져 포근함을 안겨주던, 그래서 언제나 고향의 품을 그립게 하던 정서적 랜드마크가 초가지붕이다.

초가지붕엔 많은 추억이 얹혀 있다. 해질 무렵이면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던 굴뚝연기 속엔 이 세상 어느 냄새보다 더 향기로운 어머니품 냄새가 배 있고, 해진 창호지 사이로 어슴푸레 흘러나오던 등잔불빛엔 할아버지의 구성진 이야기가 감동으로 각인돼 있다.


초가지붕은 공동체 삶의 산물이었다. 비록 작은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 깃든 삶들의 애환이 공동으로 꿈틀대던 정겨운 공간이었다. 모든 게 우리의 개념으로만 통했다. 밖으로도 울은 있었지만 남과 구분짓는 경계가 아니었다. 해서 지붕을 일 때도 늘상 이웃이 함께 했다. 일손이 부족하면 품앗이를 통해 이집 저집 돌아가며 지붕을 단장했다. 초가지붕을 이던 모습은 초가가 보편적이던 시절의 보편적인 행사였지만 그 역시 지금은 볼래야 볼 수 없게 된 아련한 고향 모습이다.


동장군이 오기 전 연례행사로 펼쳐지던 초가지붕 이기는 이러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선 편을 갈라 한쪽에선 묵은 이엉을 걷고 한쪽에선 새 짚으로 이엉과 용마름을 엮었다. 묵은 지붕이 정리되고 새 이엉과 용마름이 엮어지면 이어 본격적인 지붕 이기에 들어가는 데 이때부터 경험과 기술이 필요했다. 물론 이엉과 용마름도 경험과 기술이 있어야 엮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엮어진 이엉과 용마름을 이는 데엔 그보다 더한 요령이 필요했다. 이엉과 용마름을 잘 이어야 비도 덜 새고 보온도 잘 되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사람의 지휘 아래 이엉과 용마름이 이어지고 나면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일이 남는데 이때도 요령이 필요했다. 가지가 여럿 달린 기다란 나무로 위에서 아래로 힘차게 쓸어 내려야 보기 좋은 지붕이 완성됐다.
집집마다 지붕 이기가 마쳐지는 날엔 동네가 달라 보였다. 색바랜 지붕 대신 풋풋하고 산뜻한 지붕들로 온동네가 훤해졌다. 


이러한 정경들을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한 것이 70년대 새마을 운동이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란 노래 가사처럼 너도나도 앞장 서 초가지붕을 없앤 게 당시 불어닥친 지붕개량 사업이었다. 더구나 못과 망치만 가지면 손쉽게 지붕을 일 수 있는 일명 쓰레트(슬레이트, 이하 쓰레트)가 나오면서 지붕개량 사업은 더욱 가속도를 얻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한두 채씩은 모두 쓰레트로 교체했다. 쓰레트가 얼마나 유행했었는가 하면 자투리판에 고기까지 구워먹을 정도였다.


그후 30여년. 우리 모두를 어리석은 국민으로 내몬 장본인이 쓰레트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난 87년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후에도 석면이 최고 20% 가량 함유된 쓰레트를 계속 머리에 이고 사는, 그러면서도 당장 걷어내지도 못하고 있는 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석면에 노출되면 일정기간 잠복기를 거쳐 석면폐,폐암,악성중피종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양곡 창고의 상당수가 쓰레트 지붕이다. 어디 그 뿐이랴. 농가 본채는 물론 헛간과 화장실,축사 등 곳곳이 쓰레트다.
석면성분은 가벼워서 공기중에 날아다니거나 옷,머리카락 등에 붙어 다른 장소로 쉽게 옮겨지기 때문에 함부로 만지지도 못한다. 고온용융 등 특별처리를 하지 않는 한 잘 소멸되지도 않는 '소리없는 살인자'다. 정부 혹은 지자체가 나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쓰레트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 위에 구워먹은 삼겹살이 몽땅 넘어올 것 같은 이 기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몇 종이나 더 '철창 신세'를 질 지 두고 볼 일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란이 들끓을 때 일부 어류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주요 물길이 연결될 경우 민물고기의 생물다양성 파괴가 예상되므로 각 수계별로 전문시설을 만들어 전 어종을 별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철창 같은 현장외(現場外) 보전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겠는가.
수 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을 학자들이 굳이 주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현장내(現場內) 보전이 최선책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물고기가 살던 그대로 그 지역에 보전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그 원칙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사업을 추진하려 하니 차선책을 내놓을 수밖에.


서로 떨어져 있던 물길을 갑자기 이을 때의 시나리오다. 우선 물길을 잇기 전부터 문제가 생긴다. 기존의 하천바닥을 송두리째 파헤치고 없던 도수로까지 내서 억지로 큰물길을 만들게 되면 당장 거덜나는 게 생태계 다양성이다. 꼬불꼬불한 물길을 따라 때론 산간 계류와 여울을 이뤘다가 때론 깊은 소를 만들어 쉬었다 가던 물길이 어느 한 순간에 배가 다닐 정도의, 일률적인 거대수로로 바뀌게 되면 기존 생태계 다양성이 유지될 리 만무다. 생태계 기반이 만신창이가 된다.


어디 그 뿐이랴. 물고기의 종 다양성도 급감한다. 여울성,계류성 물고기가 사라지고 큰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로 종이 바뀐다. 하천 중·상류에 졸지에 수심 깊은 하류가 들어서는 격이니 물고기인들 종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물길이 이어진 뒤의 일이다. 물길이 이어지면 물 흐름을 따라 물고기가 이동하기 마련이다. 한강에 살던 물고기가 낙동강과 금강으로 흘러들고 금강과 낙동강에 살던 물고기는 다른 수계로 터전을 옮겨간다. 그러면 가장 먼저 유전자 다양성이 훼손된다. 한반도 어종이라고 해서 유전자가 같은 게 아니다. 지역(수역)별로 유전적 특성이 다 다르다.


국내 멸종위기종의 35%가 본래 서식지 혹은 자생지가 아닌 보전기관에 살고 있다는 뉴스다. 보전기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현장외 보전에 의해 인위적으로 종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두 말 하면 잔소리지만 생물종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제 자리에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될 때 가치가 큰 것이다. 서식·자생지를 떠난 생물종은 '살아있는 박제 혹은 표본'과 다를 바 없다. 지구상에 유독 금강수계에만 서식하는 미호종개가 어항에 담겨 어느 생태전시관에서 길러지고 있다고 치자. 유전자원적, 교육적, 연구적 가치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금강을 떠난 순간, 또 금강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는 한 '금강의 미호종개'가 갖는 본래의 가치는 이미 상실한 상태다.
관계기관에서는 이 점을 중시해 본래의 자리에 복원키 위한 한 방편으로 현장외 보전을 해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35%'란 비율이 문제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보전한다고 노력해도 우리가 받는 점수는 줄곧 낙제점수다. 그것이 자연이요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 시작됐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주요 강줄기들의 많은 구간이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 메스가 가해진다. 사업효과가 크다고 운운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이다. 가만히 내버려 놔도, 아니 줄곧 지키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사라지는 게 생물자원인데 이제 막 거대한 칼을 빼들고 한반도 주요 동맥인 강들을 수술하려 한다.   

   
사업구간에는 법정보호 동식물이 68종이나 깃들어 산다. 일부 서식지는 보존하거나 대체서식지를 만들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사업종료 후 몇 종이나 더 보전기관으로 옮겨져 현장외 보전 처방을 받을 지 두고 볼 일이다.

 

국민 입맛과 민물고기, 그리고 미꾸라지

 

이름에 가을을 품고 사는 물고기가 있다. 추어(鰍魚)다. 일년중 유독 가을(秋)에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미꾸라지의 옛 이름이다.
사실 미꾸라지는 추수가 끝난 다음 논바닥을 파헤쳐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것들을 잡아 탕으로 먹어야 제격이다. 지금이야 그런 정경을 보기가 '안개 뼈다귀 보듯' 힘들어졌지만 지난 70~80년대까지만 해도 추수철 뒤풀이격으로 으레 행해지던 연례행사였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추수 막바지철만 되면 버릇처럼 그때 그시절이 떠올려진다. 일그러진 양동이와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이 논 저 논 물꼬받이를 찾던 생각. 장화도 신지 않은 맨발로 엉거주춤 황새걸음하며 진흙탕을 찾아다니다가 용케 숨구멍 하나 발견하면 그때부터 작업 개시. 한쪽에선 삽으로 또 한쪽에선 맨손으로 돈내기 하듯 정신없이 진흙을 파헤치다 보면 여기저기서 꼬물락 거리며 미꾸라지들이 기어나왔다. 그러다가 행여 뱀처럼 생긴 드렁허리가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초풍했던 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물고기가 미꾸라지라는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세종대에 의뢰해 '내수면 소비동향 분석 및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의 77.7%가 2007년 한해 동안 한번이라도 민물고기(자라와 민물패류 포함)를 먹은 경험이 있으며 가장 많이 먹은 물고기는 미꾸라지(90%)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소비어종은 뱀장어,미꾸라지,패류(다슬기,우렁이,재첩),메기,빙어,붕어,쏘가리,동자개,송어,향어,피라미,자라,가물치,잉어였고 이들 중 뱀장어와 미꾸라지가 가장 맛이 좋은 물고기로, 잉어와 가물치는 맛 없는 물고기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쏘가리와 동자개,피라미는 맛에 대한 평가는 높은 반면 섭취율과 선호도는 낮아 소문만 무성한 물고기로 드러났다. 반대로 잉어는 맛에 대한 평가보다 섭취율과 선호도는 높아 판매업자 쪽에서는 가장 실속있는 물고기로 확인됐다.


물고기 생김새는 많은 사람들이 미꾸라지와 붕어는 잘 알고 있는 반면 횟감용인 송어,향어는 잘 모르고 있었다. 회를 먹을 때 생김새를 알고 먹지는 않는단 얘기다.
섭취형태는 추어탕을 포함한 매운탕이 가장 많이 소비(54%)됐으며 그 다음은 구이,회,국물,찜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자가 연간 6.85회 민물고기를 먹는 반면 여자는 4.89회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50~60대 이상이 연간 8.08회, 40대가 6.08회, 30대가 4.98회, 20대가 3.79회로 나타나 나이가 많을수록 민물고기를 좋아했다. 이는 '추억'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지역별 1인당 연간 소비빈도는 충북이 10.25회로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충남,부산,광주,서울,전북,경기,경남,강원,전남,경북 등의 순으로 나타나 역시 충북과 충남이 대표적인 민물고기 고장임이 입증됐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생산기술직,서비스직,퇴직·무직자,전문직,사무직,학생 순으로 소비횟수가 많았고 출신지역별로는 농촌지역 출신이 대도시 출신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 직업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입맛이 다르단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민물고기를 꺼려할까. 첫째는 위생과 관련된 감염위험 때문이고 그 다음은 환경오염 또는 항생제 사용,비린내,원산지에 대한 불안으로 조사됐다. 이 점이 가장 눈여겨 볼 대목으로 토종음식인 민물고기 음식, 나아가 양식과 유통 문화에 대한 일침이다. 또한 이것이 민물고기를 먹는데 1인당 연평균 4만6252원, 전체 1조6천97억원을 소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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