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로 가는 문턱이 이렇게도 높은가

 
 사람마다 날씨가 미쳤다고들 한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단다. 말복이 지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으로 전국을 달궈대니 그럴만도 하다.

   어떤 지역은 수은주를 40도 가까이 끌어 올려 사람들을 맥 못추게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까라질 판이다. 어디 사람뿐이랴. 축산농가의 소,돼지도 기진맥진이다. 대형선풍기를 틀고 물까지 뿌려 주며 차광막으로 햇볕을 가려줘도 소용없다. 알 낳는 산란계들은 알 낳길 포기했다. 오리들은 아예 수도꼭지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입추가 지난 지는 열흘 됐고 닷새 후면 처서다. 처서가 무엇인가. 더위가 물러가 선선한 가을로 접어든다는 절기다. 이 때가 되면 모기들도 입이 비뚤어질 만큼 기온변화가 확연하다.

한데 올핸 아니다. 늦더위가 되레 극성이다. 게다가 이번 늦더위는 반짝성이 아니라 여러날 이어지고 있다.


 하기야 올해 날씨가 어디 한 두번 미쳤는가. 좀 과한 표현이지만 미친 개 널뛰듯 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긴 가뭄끝에 봄이 왔으나 돌연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정작 농삿철이 돼서는 기온이 뚝 떨어져 농작물에 냉해를 입혔으며 여름 들어서는 하늘둑이 무너진 양 하루가 멀다하고 물폭탄을 퍼붰다. 어디 그 뿐인가. 장마가 끝난 후엔 곧바로 태풍 2개가 올라오면서 또다시 물폭탄을 들이부어 애먼 사람들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런 뒤에 찾아온 게 다름 아닌 요즘의 ‘불꽃 폭탄’ 폭염이다.


 목하 이상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피서행렬까지 되돌려 놓고 있다. 말복 뒤에 이어진 폭염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또다시 피서지로 향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말복과 함께 휴가철이 끝나가면서 한산해지던 피서지가 돌연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해수욕장은 물론 산간계곡의 물가마다 늦더위를 피해 몰려든 사람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다. 지난 주말의 경우 속리산 뒤편 화양·사담계곡과 달래강 물가에는 한여름 피서객보다도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뤘다. 이 때문에 주변 도로는 연 이틀째 차량정체가 극심해 운전자들이 생고생했다.


 이렇다 보니 때아닌 호황을 맞은 곳들도 있다. 피서지 숙박시설과 음식점들이다. 지역명품 대학찰옥수수 장사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사실 이들은 말복을 정점으로 여름장사를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그러니 졸지에 밀려든 피서객들이 일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을 맞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돌려보냈던 알바생까지 다시 부를 정도다. 대학찰옥수수는 산지에서조차 동이 났다.        

 
 폭염을 반기는 사람들이 또 있다. 농부들이다. 벼와 과일이 잘 여물려면 햇빛이 잘 내리쬐야 하는데 지난 여름내내 잦은 비로 일조량이 부족해 속 깨나 썩었던 그들로서는 요즘 폭염이 보약보다 낫다고 반색이다. 이들에겐 이번의 ‘미친 날씨’가 되레 다행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이번 폭염을 ‘쥐약’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버섯꾼들이다. 장마 이후 선선한 날씨가 이어져야만 송이 등 각종 버섯이 많이 나는데 요즘처럼 날씨가 따갑고 햇볕이 강하면 포자번식이 잘 안되기 때문에 걱정이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금년 버섯 산출량이 많을 것이라며 좋아하던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정반대다. 그들은 지금 지난해 같은 가을가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럴 경우 연3년째 버섯농사가 꽝이니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날씨는 이제 우리 삶과 직결돼 있다. 그런 만큼 절기에 맞게 적당한 날씨가 뒤따라 준다면야 더없이 좋으련만 이 땅의 날씨는 갈수록 삐딱해지는 양상이다. 입추에서 처서로 넘어가는 계절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삼복에 집중됐던 피서철도 옮겨야할 판이다.

한,중,일이 하나의 강(고황하)으로 연결돼 있던 먼옛날 생겨난 민물고기가 있다. 붕어,잉어,피라미,미꾸리 같은 이른바 3국 공통어종이라 불리는 것들로 이들의 분포도는 지질시대에 3국이 하나의 대륙으로 이어져 있었음을 입증하는 귀중한 단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붕어로서 특히 이 물고기는 3국서 불리는 명칭까지 어원이 같은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중국에서의 명칭 변화를 보면 고대에는 후유,근대에는 지유,현재는 지로 바뀌었는데 그 중 후유,지유란 말이 한반도에 유입돼 조선 초·중기까지 부어(鮒魚)와 즉어(魚+卽 魚)란 한자어가 병용됐다. 그러던 것이 허준의 동의보감에 이르러 한글로 붕어라 표기됐으니 이로 보아 그 무렵(1600년대초) 이전에 붕어란 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붕어란 말은 물론 부어에서 유래됐다. 일본에서는 붕어를 후나라 하는데 역시 중국어의 후유(부어)에서 유래됐다. 즉, 후나의 '후'가 한자어 '부'의 일본식 발음이다.
한,중,일 3국의 붕어는 본래 고향이 고황하란 점에서 처음엔 유전적으로나 형태적으로나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간빙기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고황하가 사라지고 한,중,일 수계가 단절되면서 각기 종 분화가 이뤄져 오늘날처럼 유전 및 형태학적으로 약간씩 다른 종 구성을 이루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토종붕어를 하나의 종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일본에서는 5개의 아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름은 각기 킨부나,긴부나,나가부나,니고로부나,겡고로부나로 불린다. 물고기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고 최기철박사가 생전에 "국내 붕어의 분류학적 체계를 못 세운 것이 한이 된다"고 밝힌 바 있듯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종의 세분화 작업과 함께 각 아종의 서식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면 외래종의 유입과 품종개량 등으로 토종붕어의 유전자가 크게 교란돼 가는 데다 각 서식지를 대상으로 한 치어 방류사업이 지자체별,단체별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한강쪽 붕어가 금강으로 유입되고 금강쪽 붕어가 한강으로 유입되는 등 토종본래의 지역적 특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입돼 토종 붕어의 유전적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외래종 붕어는 일본산 떡붕어와 중국산 자장붕어,쨔지붕어,잉붕어,향붕어,무창위붕어 등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중 특히 일본서 들여온 떡붕어는 일본내에서 자연산 겡고로부나를 개량한 가와치부나가 원종으로서 일명 헤라부나(납작붕어)라고도 하는데 종 특성상 토종과 잡종 형성이 잘 이뤄지고 타 어종의 알까지 마구 먹어치우는 등 망나니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애물단지같은 떡붕어가 급기야 마지막 토종붕어의 천국으로 남아있던 충북 괴산호까지 점령하는 씻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졸지에 외래어종 천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토종붕어가 지천하던 괴산호가 낚시만 던지면 떡붕어 잡종(일명 희나리)이 잡혀올라올 정도로 어종이 급변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역민들은 몇해 전부터 실시한 붕어 치어방류를 원흉으로 꼽는다. 여기에 더하여 일부 몰지각한 낚시꾼들에 의해 몰래 유입됐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물속의 폭군 큰입배스에 이어 이젠 망나니까지 들어와 휘젓고 있으니 괴산호 생태계는 말 그대로 안방 내주고 몸 주고 거기다 씨까지 빼앗긴 신세가 됐다. 조선 후기 이규경선생이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해 "비린내도 안 나고 맛도 가장 좋다"고 치켜세웠던 '충북의 붕어 체면'을 그나마 최근까지 지켜온 곳이 괴산호였는데 허사가 됐다. 이를 어찌 할꼬. 실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피서행렬과 동물들의 이동이 다른 이유

 
 여름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은 자연대로 인간세계는 인간세계대로 나름의 이동을 통해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여름행렬 가운데엔 더위를 씻기 위해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일부 동물처럼 아예 삶의 터전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여름의 시련을 극복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선 자연계의 이동부터 들여다보자. 자연계의 이동행렬이라면 가장 먼저 철새들의 이동모습이 떠오르겠지만, 그것은 계절변화와 기후 환경에 따라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고 가는 1년 단위의 서식지 옮기기 즉 넓은 의미의 철새이동으로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여름행렬과는 성격이 다르다. 다시 말해 한여름철인 요즘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각종 야생동물의 자리이동을 들여다 보자는 것이다.

 하기야 오래 전엔 철새마저도 의미가 모호했던 때가 있었다. 철새가 계절이 바뀌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자취를 감추는 것을 마치 같은 지역내에서 자리이동해 종(種)이 바뀌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제비는 음력 9월 9일께가 되면 깊은 산 고목으로 들어가는 대신 고목 속에 있던 콩새가 교대해 나온다고 믿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아닌 조선후기의 우리 사고방식이다.   


 자연계의 여름행렬은 여러 행태로 나타난다. 한낮 땡볕더위가 시작되면 멧비둘기와 참새같은 조류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물가를 찾아 날개 적시거나 나무그늘 아래서 구덩이 파고 모래욕을 즐기는 등 각기 선호하는 장소로 이동해 더위를 피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새들 뿐만이 아니다. 멧돼지 같은 들짐승들도 산속의 진흙탕 혹은 계곡물 찾아 더운몸 식히거나 동굴속 시원한 바닥 찾아 배 깔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반대로 내리쬐는 햇볕이 아까워 볕 잘 드는 곳만 찾는 동물도 있다. 자라와 뱀 같은 변온동물들이다. 물속에 사는 자라는 서식지 주변 바위 위에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면 너나 할 것 없이 일광욕하러 기어오르고 각종 뱀 역시 체온을 덥히기 위해 양지쪽을 자주 찾는다.
 한여름철 먹이활동을 위해 가족단위로 이동하는 동물도 있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새와 들짐승들로서 삼복더위에 되레 새끼 기르기에 전념함으로써 이열치열한다. 새의 경우는 물닭,쇠물닭,논병아리 같은 대부분의 물새류와 꾀꼬리,때까치,파랑새 같은 종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이라고 해서 더위에 먹이사냥하기가 좋을 리 없겠지만 무더위에 새끼 깠으니 어쩔 도리 있겠는가. 새끼들을 하루라도 빨리 키워야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고 또 철새인 경우 제때 월동지로 갈 게 아닌가.
 목숨 건 필사의 이동행렬도 있다. 올해처럼 집중호우가 잦은 해에 자주 목격되는 여름행렬로서, 생(生)을 잇기 위한 이동본능이 얼마나 경이로운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개미의 경우 큰비 올 기미가 보이면 마치 철수명령에 따라 퇴각하는 군부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동한다. 들쥐 역시 비가 많이 와 둥지가 잠길라치면 어미는 털도 안 난 빨간 새끼들을 데리고 피신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인간세계에도 목하 여름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다름 아닌 피서행렬이다. 외국여행을 겸한 것이든 국내에서의 피서여행이든 이 또한 여름의 시련을 피하려는 인간만의 삶의 한 방식이다. 자연계의 그것과 다른 게 있다면 으레 흔적을 남긴다는 점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스스로도 부끄러운 일들이 상처처럼 남겨지기 일쑤다. 자연계의 동물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비양심적인 행적 말이다. 모두가 머물던 자리, 그대로 아름다운 자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청호 태형동물의 추억이 가슴을 후벼 판다

 
 민물태형동물이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충청지역에선 이미 금강수계인 천안 병천천을 시작으로 미호천 상류인 이월·초평·백곡저수지 등지서 발생한 데 이어 남한강 수계인 달천의 괴산호와 음성천 하류에서도 발견되는 등 날이 갈수록 발생장소와 개체수가 늘고 있다.


태형동물은 무척추동물로서 물에 사는 하등동물이다. 대체적인 모습이 이끼와 비슷해 일본인들이 태형동물(苔形動物)이라 이름 붙였는데 국내서는 이끼벌레란 명칭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5,000종 가량 분포하나 대부분 바닷물에 살고 50여종만 민물에 산다.
 민물태형동물에 관한 국내기록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일본인에 의해 1종이 보고된 것이 최초이며 그후 1941년 역시 일본인에 의해 9종이 추가 보고됨으로써 10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 있은 지 50여년이 지나도록 국내 학자들의 철저한 외면속에 서식사실조차도 까마득하게 잊혀져옴으로써 기록은 있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생물로 치부돼 왔다.
 그러던 중 대가뭄이 찾아든 1994~5년께 대청호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민물태형동물이 대거 출현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학계를 비롯한 관계기관의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필자는 타 언론에 앞서 대청호의 태형동물 서식실태를 심층취재 보도함으로써 수공(水公)과 충북도로 하여금 국내 최초로 전문적인 실태조사에 나서게 한 바 있다. 그 무렵에 새롭게 발견된 종이 일명 큰공(큰빗)이끼벌레라 불리는 종으로, 그로써 국내 분포종이 총 11종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목격했던 필자는 되레 풀리지 않는 의문점을 안게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때부터 가진 첫번째 의문은 태형동물의 발생과정과 관련한 생태적 특성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동물은 왜 매년 같은 지역에 번성하지 않고 특정 연도 특정 수역을 중심으로 집중 발생하는지가 궁금하다. 대청호 다발 때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듯이 긴 가뭄과 이상기온 끝에 출현한 것으로 보아 일단 수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추측 보다는 환경 생태학적으로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 다량 발생하는 지 궁금할 따름이다.


 다음은 오염과의 관련성 여부다. 지난 1994~5년 당시도 필자 등이 나서서 이 점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실태조사 보고서는 한결같이 ‘NO’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대부분 청정지역보단 오염수역서 더 잘 발견된다. 지금도 그렇다.
 독성 나아가 군체를 이루는 형태적 특성과 관련해 실제 피해 가능성 여부도 궁금하다. 문헌에는 일부 종의 경우 물고기를 폐사 시킬 정도의 강한 독성을 갖고 있으며 덩치 큰 큰공이끼벌레는 댐 발전소의 수로를 막아 피해 입힐 가능성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민물태형동물의 대청호 다량발생 이후 품었던 이같은 의문점들이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궁금한 숙제로 남아 있는 가운데 당시 한 조사보고서의 문구가 문득 떠올라 가슴을 후벼 판다. “태형동물이 독성, 수질오염 등과 관련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보도는 다분히 작위적인 것임”. 관계기관의 긴급 요청으로 불과 수개월만에 제출된 보고서가 당시 언론보도 내용을 싸잡아 평가한 결론부분으로, 중요한 건 이 한 줄의 평가가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68년전 자신의 전공도 아닌 생소한 생물을 한반도서 발견(9종)하고는 마치 보물을 찾아낸 양 소중히 채집해다 동료학자에게 건네줌으로써 한반도 민물태형동물의 족보를 거의 완성케 한 한 일본인의 학자적인 양심,학자적인 의욕이 돌연 부러워짐은 무슨 연유일까.

변덕스런 날씨에 동물도 사람도 넋 나갔다

 
 한밤중 농가에 느닷없이 고라니가 뛰어들고 한쪽에선 너구리가 처마밑에 기어들어 젖은 몸을 말린다.

   낮에는 올망졸망한 꺼병이들이 어미 까투리와 함께 농가 마당에 들이닥쳐 소란을 피우고 마루밑으로는 어린 아이 팔뚝만한 살모사가 기어들어 또아리 튼 채 주인행세를 한다.
   뿐만 아니다. 물가에선 줄풀에 둥지 틀고 알 품던 쇠물닭들이 밤낮 없이 쾃~쾃 울어대며 둥지주위만 맴돌고 빈 까치집에 새끼 깐 파랑새 부부는 먹이 물어올 생각은 않고 연신 땍~땍 거리며 먼하늘만 바라본다.
 

   만화 혹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희귀한 일들이 요즘 농촌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생태계 주인공들이 연일 정신없다. 그들의 행동으로만 보면 마치 대지진 같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 이 땅은 요즘 그런 엄청난 일에 직면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이 뽀개진 듯 아예 하늘둑이 송두리째 터진 듯 들입다 쏟아붓는 장마폭탄 행렬에 야생동물마저 모두가 넋이 빠졌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얼마나 똥줄 탔으면 사람 냄새만 나도 칠색팔색하는 야생동물들이 사람 사는 인가로 뛰어들고, 비 오는 날 잠시라도 둥지를 비우면 알이 곯아 새끼농사 망치는 어미새들까지 둥지밖으로 뛰쳐나와 졸지에 ‘청개구리 신세’가 되겠는가. 아무리 자연이 자연에게 내리는 기상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 이 계절의 생태 주인공들에겐 생과 사를 넘나드는 크나큰 시련이 아닐 수 없다.

 허구한 날 여우가 시집가는 양 변덕 일변도의 날씨는 사람들의 혼줄까지도 홀딱 빼앗아갔다. 터질듯 말듯한 물풍선을 머리 꼭대기에 이고 사는 격이다. 언제 터질 지 어느 곳이 터질 지 종이라도 잡았으면 좋겠는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으니 죽을 맛이다.

 몸까지 피곤하다. 반짝 빛이 들 땐 돌연 30도를 웃도는 폭염에 진을 빼고, 그러다가도 구름이 몰려올라치면 언제 그랬냐며 돈내기하듯 쏟아붓는 ‘물벼락’에 갑자기 한기를 느끼게 되니 생체리듬인들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 세상 온갖 게 다 떠내려간다해도 아무 걱정없는 사람들이야 관심 없겠지만, 요즘 뉴스 듣기가 겁난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절개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 산간계곡에 사는 사람들, 물가에 농경지가 많은 사람들, 저지대 상습침수 지역에 사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 가운데엔 TV나 라디오를 켰다하면 듣게 되는 “언제까지 몇 백mm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니 철저히 대비하라”는 멘트가 마치 “때린 데 또 때릴 것이니 알아서 커버하라”는, 공갈 아닌 공갈로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때린 데만 용케 또 때리는 게 요즘 장마이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변덕스런 날씨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또 있다. 기상청 사람들이다.

여의봉이 요술부리듯 쥐락펴락 한반도를 오르내리며 신출귀몰하게 변덕 부리는 요즘 날씨 탓에 수시로 기상특보 발령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얼마전엔 한 일기도에 5개의 기상특보가, 그것도 각기 다른 색깔로 컬러풀하게 그려져 예보된 적 있다. 땅덩어리는 한 개의 기압골보다 좁은 나라서 어떤 곳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포비로 호우경보와 주의보가 발령된 반면 어떤 곳엔 34도의 찜통더위로 뜬금없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지고 어떤 곳엔 초속 20m 바람으로 강풍주의보가, 또 어떤 곳엔 큰 파도로 풍랑주의보가 발령되는 이변을 낳은 것이다.


 장마철 대기불안정이 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이 땅에 심각한 변화가 온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지구온난화로 대변되는 심각한 변화, 그 변화로 인해 이 땅의 동물과 사람들은 걸핏하면 홍역을 치르게 됐다. 그게 현실이다.

누룩뱀이 중형조류인 꾀꼬리 새기를 잡아먹는 진기한 장면이 촬영됐다.

누룩뱀의 꾀꼬리 포식, 그 생생한 장면을 찍다

 
 지난 2일엔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하는 진기한 광경을, 그것도 야외 사진촬영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생태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날 아침 카메라 가방을 챙기면서 오늘은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다 문득 며칠전 꾀꼬리 소리가 들렸던 괴산의 한 밤나무숲이 떠올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니 꾀꼬리 한쌍이 날카롭게 경계음을 냈다. 낯선 방문객이 침범했다는 자기들만의 신호였지만, 새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기에 오히려 “우리 둥지 이 근처에 있소” 라는 고백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위를 살핀 지 3분도 안돼 나뭇가지에 매달린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둥지 한구석으론 불그스레한 새끼 주둥이까지 보였다. 몸집이 어느 정도 자라 있다는 증거다. 직감은 적중했다. 부화한 지 열흘 이상 지난 새끼 4마리였다.


 위장텐트를 치고 곧바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꾀꼬리의 먹이장면은 이미 몇 년 전 촬영한 바 있으나 그 땐 필름카메라였다. 해서 올핸 기필코 디지털카메라로 다시 찍기로 마음먹어 오던 터였다.
 망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길 3시간여. 말이 3시간여지 불과 1㎡도 안 되는 좁은 텐트안에서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꼼짝 않고 갇혀 있기란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무릎에 쥐가 나고 허리가 저려도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했다. 한데 그 놈(?)의 꾀꼬리 어미들은 왜 그리 의심이 많은지. 웬 낯선 사람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물체속에 들어가는 것을 본 어미들은 계속 경계음만 낼 뿐 먹이를 물어다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2개의 배터리 중 하나는 이미 소진한 상태여서 조바심까지 생겼다.


 그래도 오기가 있지, 너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막 다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니터에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둥지안에 있던 새끼 한 마리가 돌연 공중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눈을 의심했지만 우선 셔터부터 눌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날개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새끼가 공중부양하듯 허공으로 떠올라 날개를 푸드득 거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을 확대해 보았다. 아뿔사! 뱀이었다. 1m쯤 되는 커다란 누룩뱀 하나가 나무에 기어올라 새끼를 낚아챈 것이다. 잡힌 새끼는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 쳤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날카로운 이빨에 머리를 물려 입안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였다. 놀란 건 어미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끼가 뱀에게 잡혀먹히는 것을 본 어미들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캬~아 캬~아! 최악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어미들의 다급한 콜음(CAll音)이 일순간 숲속을 뒤덮었다. 평소 낯선 사람이 둥지 근처만 지나가도 잽싸게 공격하는 꾀꼬리지만 그날따라 속수무책이었다.


 손에 땀이 났다. 더위도 잊혀졌다.

   아프리카 밀림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야생의 먹이사슬 현장을 생비디오로 보며 사진촬영하는 행운이 나에게도 오다니,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기회를 놓칠 세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동영상을 합쳐 2백컷을 찍었다.


 덕분에 소중한 경험과 자료를 얻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사흘을 더 그곳을 찾고도 어미가 먹이주는 장면은 찍지 못한 것이다. 첫날의 끔찍함 때문인지 그날 이후 나만 나타나면 처절한 CALL음을 내며 도무지 촬영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를 보면 누룩뱀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결국 연민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우리 생태계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누룩뱀의 포식장면, 그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수달 밀렵, 그게 우리 소관이여?

 
 지난 23일 오전 7시 30분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괴산 청천에 사는 지인이었다. 이른 시각도 그러려니와 평소 전화를 자주 않던 그였기에 심상찮은 예감부터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는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마른 번개치듯 들려왔다. 다짜고짜 수달이 덫에 치여 죽어가니 빨리 오란다. 
  

   부랴부랴 현장에 도착하니 상황이 심각했다. 목불인견이었다. 커다란 덫에 양쪽 앞발을 치인 수달이 피를 흘리며 나뒹굴고 있었다. 두 발목은 잘려져 가죽만 붙어있는 듯 덜렁거리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엔 눈물이 흥건하다.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쏟는 모습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도착한 주민과 함께 우선 덫을 풀어주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소위 촌사람 셋이서 어린 수달 한 마리를, 그것도 양쪽 앞발이 모두 덫에 쳐 있는 수달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발버둥 치는 수달을 일단 가만히 있도록 제압해야만 덫을 풀 수 있겠는데 제압은 커녕 몸뚱이에 손도 댈 수 없었다. 세 사람중 하나는 짐승깨나 다뤄봤다지만 그마저도 속수무책이었다. 되레 죽기살기로 날뛰는 수달의 야성과 사나움에 혀만 내두를 뿐이었다. 게다가 덫의 성능은 왜 그리 센지 두 사람이 발로 밟고 펼치려 해도 꿈쩍도 안했다.


 이러단 안 되겠다 싶어 결국 119에 구조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19라고 생각처럼 빨리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라고 긴급 상황을 모를리야 없었겠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더디게 느껴졌다. 기다리는 중에도 ‘그놈의 덫’을 풀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봤다. 역시 허사였다. 그럴수록 안타까움만 더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달도,사람도 지쳐갔다.


 탈진직전의 수달을 하천 물속에 넣어 진정시키고 있을 즈음 119 대원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달랑 절단기 하나에 방화복 윗도리, 면장갑만 가져온 처지라 건들면 날뛰는 수달을 쉽게 다루지 못했다. 마취주사 하나만 가져왔어도 수월했으련만 그렇질 못했다. 주민과 119대원 등 다섯명이 합세해 가까스로 절단기로 덫을 끊고 나무상자에 수달을 넣어 구급차량으로 옮긴 시각은 오전 9시20분경. 그리고 10시쯤이 돼서야 다친 수달이 충북대 동물의료센터에 도착,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인근 주민에 의해 수달이 첫 발견된 지 3시간여가 지나서야 구조활동이 끝난 것이다.


 1주일이 지난 지금 그 수달은 처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빠르게 기력을 회복해 먹이도 잘 먹는 등 상태가 좋아 1~2개월 뒤면 자연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취재에 열중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방관만 할 수 없어 직접 구조활동에 뛰어들었던 장본인이기에 더욱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당시 충청타임즈 보도 후의 반향은 의외였다. 방송 3사가 앞다퉈 취재하고 그중 2사는 중앙 뉴스까지 탔다. 지역 신문 보도도 잇따랐다. 뿐만 아니라 라디오 등 기타 매체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잇따르고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사고현장 주변에 현수막까지 내걸어 수달 보호를 외치고 있다. 지역주민 한 사람의 남다른 신고정신으로 불거진 이번 ‘달래강 수달 사고’가 커다란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향에도 불구, 계도·단속권을 가진 행정당국에서는 사고직후 단 한차례 전화만 하더니 이제껏 꿩 궈먹은 소식이다.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

    거창하게 보호동물 지정만 해놓고 관리는 나몰라라다. 사고당시 한 공무원은 출동하다 그냥 돌아갔다. 멸종위기종에 천연기념물, 나아가 국제보호종이 덫에 치여 죽어가는 데도 남의 일이란다.

    한심해도 여간 한심한 게 아니다. “에라~”

달래강 수계에서 덫에 걸린 수달, 그 안타까운 모습을 통해 우리의 자연보호 의식을 되돌아보게 하는 충격적인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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