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종이나 더 '철창 신세'를 질 지 두고 볼 일이다

 

한반도 대운하 논란이 들끓을 때 일부 어류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 바 있다. "주요 물길이 연결될 경우 민물고기의 생물다양성 파괴가 예상되므로 각 수계별로 전문시설을 만들어 전 어종을 별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철창 같은 현장외(現場外) 보전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겠는가.
수 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사업을 학자들이 굳이 주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현장내(現場內) 보전이 최선책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물고기가 살던 그대로 그 지역에 보전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그 원칙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사업을 추진하려 하니 차선책을 내놓을 수밖에.


서로 떨어져 있던 물길을 갑자기 이을 때의 시나리오다. 우선 물길을 잇기 전부터 문제가 생긴다. 기존의 하천바닥을 송두리째 파헤치고 없던 도수로까지 내서 억지로 큰물길을 만들게 되면 당장 거덜나는 게 생태계 다양성이다. 꼬불꼬불한 물길을 따라 때론 산간 계류와 여울을 이뤘다가 때론 깊은 소를 만들어 쉬었다 가던 물길이 어느 한 순간에 배가 다닐 정도의, 일률적인 거대수로로 바뀌게 되면 기존 생태계 다양성이 유지될 리 만무다. 생태계 기반이 만신창이가 된다.


어디 그 뿐이랴. 물고기의 종 다양성도 급감한다. 여울성,계류성 물고기가 사라지고 큰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들로 종이 바뀐다. 하천 중·상류에 졸지에 수심 깊은 하류가 들어서는 격이니 물고기인들 종이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물길이 이어진 뒤의 일이다. 물길이 이어지면 물 흐름을 따라 물고기가 이동하기 마련이다. 한강에 살던 물고기가 낙동강과 금강으로 흘러들고 금강과 낙동강에 살던 물고기는 다른 수계로 터전을 옮겨간다. 그러면 가장 먼저 유전자 다양성이 훼손된다. 한반도 어종이라고 해서 유전자가 같은 게 아니다. 지역(수역)별로 유전적 특성이 다 다르다.


국내 멸종위기종의 35%가 본래 서식지 혹은 자생지가 아닌 보전기관에 살고 있다는 뉴스다. 보전기관에 살고 있다는 것은 현장외 보전에 의해 인위적으로 종이 유지되고 있다는 얘기다. 두 말 하면 잔소리지만 생물종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제 자리에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될 때 가치가 큰 것이다. 서식·자생지를 떠난 생물종은 '살아있는 박제 혹은 표본'과 다를 바 없다. 지구상에 유독 금강수계에만 서식하는 미호종개가 어항에 담겨 어느 생태전시관에서 길러지고 있다고 치자. 유전자원적, 교육적, 연구적 가치 외에는 별 의미가 없다. 금강을 떠난 순간, 또 금강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는 한 '금강의 미호종개'가 갖는 본래의 가치는 이미 상실한 상태다.
관계기관에서는 이 점을 중시해 본래의 자리에 복원키 위한 한 방편으로 현장외 보전을 해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35%'란 비율이 문제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증거다. 보전한다고 노력해도 우리가 받는 점수는 줄곧 낙제점수다. 그것이 자연이요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이 시작됐다.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주요 강줄기들의 많은 구간이 인위적인 손길에 의해 메스가 가해진다. 사업효과가 크다고 운운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이다. 가만히 내버려 놔도, 아니 줄곧 지키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사라지는 게 생물자원인데 이제 막 거대한 칼을 빼들고 한반도 주요 동맥인 강들을 수술하려 한다.   

   
사업구간에는 법정보호 동식물이 68종이나 깃들어 산다. 일부 서식지는 보존하거나 대체서식지를 만들기로 했다고는 하지만 사업종료 후 몇 종이나 더 보전기관으로 옮겨져 현장외 보전 처방을 받을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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