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입맛과 민물고기, 그리고 미꾸라지
이름에 가을을 품고 사는 물고기가 있다. 추어(鰍魚)다. 일년중 유독 가을(秋)에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미꾸라지의 옛 이름이다.
사실 미꾸라지는 추수가 끝난 다음 논바닥을 파헤쳐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것들을 잡아 탕으로 먹어야 제격이다. 지금이야 그런 정경을 보기가 '안개 뼈다귀 보듯' 힘들어졌지만 지난 70~80년대까지만 해도 추수철 뒤풀이격으로 으레 행해지던 연례행사였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추수 막바지철만 되면 버릇처럼 그때 그시절이 떠올려진다. 일그러진 양동이와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이 논 저 논 물꼬받이를 찾던 생각. 장화도 신지 않은 맨발로 엉거주춤 황새걸음하며 진흙탕을 찾아다니다가 용케 숨구멍 하나 발견하면 그때부터 작업 개시. 한쪽에선 삽으로 또 한쪽에선 맨손으로 돈내기 하듯 정신없이 진흙을 파헤치다 보면 여기저기서 꼬물락 거리며 미꾸라지들이 기어나왔다. 그러다가 행여 뱀처럼 생긴 드렁허리가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초풍했던 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물고기가 미꾸라지라는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세종대에 의뢰해 '내수면 소비동향 분석 및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의 77.7%가 2007년 한해 동안 한번이라도 민물고기(자라와 민물패류 포함)를 먹은 경험이 있으며 가장 많이 먹은 물고기는 미꾸라지(90%)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소비어종은 뱀장어,미꾸라지,패류(다슬기,우렁이,재첩),메기,빙어,붕어,쏘가리,동자개,송어,향어,피라미,자라,가물치,잉어였고 이들 중 뱀장어와 미꾸라지가 가장 맛이 좋은 물고기로, 잉어와 가물치는 맛 없는 물고기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쏘가리와 동자개,피라미는 맛에 대한 평가는 높은 반면 섭취율과 선호도는 낮아 소문만 무성한 물고기로 드러났다. 반대로 잉어는 맛에 대한 평가보다 섭취율과 선호도는 높아 판매업자 쪽에서는 가장 실속있는 물고기로 확인됐다.
물고기 생김새는 많은 사람들이 미꾸라지와 붕어는 잘 알고 있는 반면 횟감용인 송어,향어는 잘 모르고 있었다. 회를 먹을 때 생김새를 알고 먹지는 않는단 얘기다.
섭취형태는 추어탕을 포함한 매운탕이 가장 많이 소비(54%)됐으며 그 다음은 구이,회,국물,찜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자가 연간 6.85회 민물고기를 먹는 반면 여자는 4.89회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50~60대 이상이 연간 8.08회, 40대가 6.08회, 30대가 4.98회, 20대가 3.79회로 나타나 나이가 많을수록 민물고기를 좋아했다. 이는 '추억'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지역별 1인당 연간 소비빈도는 충북이 10.25회로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충남,부산,광주,서울,전북,경기,경남,강원,전남,경북 등의 순으로 나타나 역시 충북과 충남이 대표적인 민물고기 고장임이 입증됐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생산기술직,서비스직,퇴직·무직자,전문직,사무직,학생 순으로 소비횟수가 많았고 출신지역별로는 농촌지역 출신이 대도시 출신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 직업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입맛이 다르단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민물고기를 꺼려할까. 첫째는 위생과 관련된 감염위험 때문이고 그 다음은 환경오염 또는 항생제 사용,비린내,원산지에 대한 불안으로 조사됐다. 이 점이 가장 눈여겨 볼 대목으로 토종음식인 민물고기 음식, 나아가 양식과 유통 문화에 대한 일침이다. 또한 이것이 민물고기를 먹는데 1인당 연평균 4만6252원, 전체 1조6천97억원을 소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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