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술과 의태(擬態)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다양하고 오묘하다.

종류 수만 해도 1백만 종이 넘는 데다, 같은 종이라도 지역적, 환경적 조건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나타나는 등 그들의 삶의 모습은 실로 천태만상이요, 보면 볼수록 신비롭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다양하고 오묘한 곤충들의 삶의 형태는 결국 그들이 이 지구상의 생태계에서 살아남느냐 아니면 천적에게 잡아먹히느냐의 중대한 문제와 연관이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오늘날 갖추고 있는 종 특유의 몸 구조와 함께 체색 및 몸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생존전략’과 관련이 있다.

 

이번에 설명하고자 하는 곤충의 위장술과 의태 역시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연생태계 내에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전략적 방편이자 수단이다.

또한 곤충의 위장술과 의태는 그들의 어떠한 행동이나 습성보다도 더한 신비로움이 내재돼 있으며 우리가 이해 못할 여러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먼저 위장술을 보자. 위장술의 사전적 정의는 다 아는 바와 같이 ‘자신의 존재를 적이 쉽게 알지 못하도록 어떠한 수를 쓰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주머니나방과의 애벌레인 도롱이 벌레는 자신의 몸에 검불이나 아주 작은 나뭇가지 등을 덕지덕지 붙인 채 돌아다니는데 이는 천적으로 하여금 나뭇가지나 덤불뭉치 등 먹이감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위한 하나의 지혜이다.

 

또 나방 가운데에는 나뭇잎으로 몸을 감싼 채 번데기 형태로 겨울을 남으로써 감쪽같이 천적의 눈을 피하는 것이 있으며 나비 가운데에도 이끼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위장함으로써 새와 같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 있다.

 

반면 의태는 ‘곤충의 몸 자체가 나무줄기나 낙엽, 꽃잎 등 자연물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거나 몸 색깔이 주변색깔과 비슷한 보호색을 띰으로써 천적의 눈을 속이는 것’을 의미한다.

 

일례로 호랑나비의 3~4령 애벌레는 온몸이 새똥처럼 생겨 천적인 새가 아예 잡아먹을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기막힌 전략’을 갖고 있으며, 상당수의 나방류들은 나무줄기와 가랑잎 등 주변환경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거나 몸에 보호색을 띠어 천적의 공격을 피하고 있다.

 

 사진설명 '낙엽이 아닙니다'

밤나방과의 곤충들은 대부분 낙엽 모양의 의태를 통해 천적의 눈을 속이고 있다. 금방이라도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은 이 나방을 그 어떤 천적이 잡아먹겠는가./자연닷캄

 

사진설명 '이거 새똥 아냐? '

호랑나비의 3~4령 애벌레는 그 모습이 마치 새똥과 흡사해 새나 사마귀 등 천적들도 감쪽같이 속는다. 사진은 호랑나비의 4령 애벌레./자연닷컴    

 

더욱더 신기한 것은 눈알무늬의 가짜 눈으로 천적을 놀라게 함으로써 생명을 구하는 곤충도 있다. 실례로 공작나비는 날개를 접었을 때와 폈을 때의 색깔과 무늬가 전혀 딴판인 데 천적이 자신에게 다가오면 즉시 눈알무늬가 있는 부분이 나타나도록 날개를 활짝 펴 기겁을 하게 한다. 공작나비 특유의 본능적인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같은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신기하다 못해 저절로 혀가 쳐진다.

 

나비목 곤충인 줄박각시 애벌레와 호랑나비 5령 애벌레에도 눈알무늬의 가짜 눈이 선명히 나 있는데 이들은 천적이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눈을 부라리듯 머리에 있는 눈알무늬를 크게 하고 몸을 좌우로 흔들어 위협한다. 실제 눈 보다 훨씬 크고 선명한 눈알무늬가 별안간 나타나는 것만 해도 자지러질 판인데 거기에다 좌우로 흔들기까지 하니 제 아무리 배고픈 새라 한들 달아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곤충 가운데에는 천적이 무서워하거나 기피하는 동물의 모습을 스스로 닮아 위험을 피하는 것들도 있다.

 

하늘소의 한 종인 긴알락하늘소가 종류가 전혀 다른 말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파리목(目)인 ‘꽃등에’ 종류가 벌목(目)의 꿀벌을 닮은 것이 그 좋은 예이다. 특히 꽃등에류의 의태는 어찌나 완벽에 가까운 지 사람들까지도 벌 종류로 착각해 가까이 할 엄두도 못내는 이들이 허다할 정도다. 하기야 사람 역시 꽃등에의 천적이라면 천적이라 할 수 있으니 그들의 의태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테지만 말이다.    

 사진 설명 '벌을 닮은 파리'

꽃등에과의 곤충들은 분류상 엄연히 파리 목(目)에 속하지만 겉모습은 엉뚱(?)하게도 벌 종류인 꿀벌과 흡사해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있다. 사진은 양봉꿀벌을 닮은 배짧은꽃등에의 모습./자연닷컴

 

몸 자체가 동물이 아닌 식물체를 닮아 천적의 눈을 혼동케 하는 곤충으로는 자벌레와 대벌레가 있다. 나뭇가지 모양을 한 자벌레는 그 생김새가 워낙 나뭇가지와 흡사해 옛날 어떤 사람이 이를 진짜 나뭇가지인 줄 알고 무심코 질그릇 주전자를 걸었다가 그만 떨어뜨려 아까운 주전자만 깼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명 ‘질그릇주전자깨기’란 곤충은 바로 자벌레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온몸에 마디가 있어 대나무가지처럼 생긴 대벌레 역시 ‘눈속임의 명수’인데 이 벌레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 몸의 형태를 대나무가지 형태로 뻗은 후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천적이 사라지면 다시 활동하는 능청(?)을 떤다.

 

이밖에 나뭇잎벌레와 포도유리나방도 각기 나뭇잎과 나무껍질 모양을 닮아 있어 천적의 눈을 쉽사리 속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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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과 곤충

 

야생곤충의 생활사를 관찰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접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알이 부화시기가 지났어도 부화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든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종이 태어나 눈을 의심케 하기도 한다. 앙증맞게 생긴 어린 사마귀의 부화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몇날며칠을 기다렸건만 도대체 새로운 생명의 기미가 보이질 않아 알집을 헤집어 봤더니 속이 텅 비어 있다거나 가까스로 새 생명이 태어나긴 했는데 종이 다른 사마귀수시렁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그런 사례다.
또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돌연 죽음을 맞는다든가 반쯤 날개돋이한 상태에서 도중에 허물벗기를 멈추거나 날개돋이는 마쳤으나 상태가 불완전해 곧바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오랜 기간 애벌레로 땅속 생활하다가 어렵사리 땅밖으로 기어나와 성충이 되려던 순간 훼방꾼인 개미를 만나 졸지에 숨을 거두는 매미 애벌레와 반쯤 날개돋이한 채 미처 배부분을 탈피 못해 풀이삭에 매달린 채 죽는 잠자리 애벌레, 머리와 몸통은 멀쩡하게 태어났지만 속날개가 불완전해 가뜩이나 짧은 성충 시기를 더욱 앞당겨 마감하는 풍뎅이가 그 같은 경우다.
그런가 하면 날개돋이를 마쳐 이제 막 첫 비행을 앞둔 순간 천적에게 속절없이 잡혀 먹히는 불운도 있다. 알-애벌레-번데기 과정을 거쳐 날개돋이까지 마쳤으나 날개를 말리는 과정에서 돌연 천적인 사마귀 눈에 띄어 당랑권의 희생이 되는 나비들이 그 예다.
야생곤충의 세계는 이처럼 삶 자체가 모험이요 각 단계의 성장 과정마다 위험과 역경의 연속이다. 1초 앞을 장담치 못하는 그 숱한 위험과 역경을 벗어나 성충으로서의 대임(종족 번식)을 마쳐야 비로소 한 세대의 생활사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곤충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생존전략이 있다. 진화하는 과정에서 유전자에 새겨진 지혜다.
호랑나비를 예로 들어보자.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부지런히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등의 운향과 식물을 찾는다. 알을 낳기 위해서다. 굳이 그들 나무를 찾아가는 것은 알에서 태어날 애벌레를 위한 배려다. 호랑나비 애벌레는 그들 나무 이파리 외엔 절대 먹질 않는다. 알을 낳아도 잎 뒷면에 붙인다.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다. 생존 전략은 그 뿐만이 아니다. 부화한 애벌레는 1령에서 4령까지 새똥 같은 위장색을 띤다. 5령도 푸르스름한 보호색을 띤다. 또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는 위기가 닥치면 머리에서 노란 뿔 같은 것을 내밀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번데기로 변할 때도 한 가닥의 실을 토해내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나뭇가지에 붙잡아 맨다. 마치 아기를 업을 때 포대기를 둘러매는 모양새다. 기막힌 지혜다.
창과 방패의 논리 같은 곤충의 세계는, 그래서 들여다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신비와 지혜도 앞서 말한 뜻밖의 상황에선 그저 무색할 뿐이다. 더구나 기상악화와 같은 악조건을 만나게 되면 더더욱 속수무책이다. 올해처럼 큰비와 거센 바람이 잦을 경우엔 그야말로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람도 맥없이 당하는데 그들이라고 온전할 수 있겠는가. 재앙 수준의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다. 곤충알에 내리치는 빗방울 하나의 위력이 사람 머리위로 4륜구동 승용차 한 대가 날아드는 것과 같은 정도이니 요즘 끊임없이 내리붓는 물폭탄 아래선 어떻겠는가.
가는 곳마다 부화 안 된 각종 곤충알과 탈피 또는 날개돋이 도중에 죽거나 불완전하게 우화해 힘겹게 살아가는 곤충들이 유난히 많은 올해. 곤충의 세계에도 지난 겨울의 혹한 이후 계속되고 있는 기상이변의 여파가 '현재진행형 재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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