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이 품을 연 곳으로 속리천은 흐르고

최상류 대부분 전형적인 산골 풍경 멋진 풍경

일부구간 하천정비사업으로 점차 옛 모습 잃어


산경표의 원리에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이 있다.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눈다는 뜻이니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과도 같다.


또 산경표에서는 두 능선 사이에 반드시 계곡이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반드시 능선이 있다고 본다. 또한 물길은 능선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해 서로 끊기지 않고 이어져 흐르니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어 결국 산과 강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흘러온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룬 뒤 바다로 흘러가듯 이 산 저 산줄기가 모여 정간과 대간으로 흘러들고 마침내 백두산으로 향하니 이 모든 것이 한반도의 산과 강을 이룬다는 것이다.


옛 선조들의 기막힌 논리를 생각하며 눈앞에 펼쳐진 속리산 자락을 보니 옛말이 틀림없다.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달래강 최상류)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물길에 서서 물과 산의 개념으로 바라보니 더욱더 새롭다. 본류(남한강)랑 만나는 곳이 북쪽이니 좀더 빠른 그쪽을 향해 물길을 틔울 법도 한데 정반대 방향인 남쪽을 향해 점잖게 머리를 틀고 있으니 이 또한 속리산의 매력이자 달래강의 멋이 아닌가 싶다.


천변에 자란 달뿌리풀이 한 길 가량 자라있다. 사내리 집단지구시설에서 처음으로 '인간냄새'를 맡으면서 BOD를 품었다고는 하나 물빛이 아직은 꽤나 맑은 표정이다. 물가엔 검은 듯 푸른 모습의 물잠자리 떼가 산란기를 맞아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없이 오가고 둑방에는 앙증맞은 엉겅퀴가 망울을 터트린 채 바람에 하늘거린다.

 

인근 도로로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들며 도시내음을 전해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산골 풍경이다.

 

속리천과 정이품송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다시 물길을 타고 상판교를 지나 중판리 쪽을 향하니 말티고개 쪽 골짜기서 내려오는 실개천과 만난다.

말티고개 정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 천왕봉서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이다. 고개 너머는 금강수계요 속리산 쪽은 속리천(달래강·남한강) 수계다.


이 지점부터 한동안은 왼쪽으로 한남금북정맥 능선을 두고 흐른다. 따라서 인근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그대로 속리천의 몸이 된다.


하천이 한바탕 휘도는 곳으로 둑방길을 따라 들어가니 중판리 점말교가 나타난다. 다리위에 서서 물이 흘러드는 위쪽을 바라보니 물길이 가냘프다.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하천물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점말교 바로 아래에 최근 '무전원자동수문'이 세워져 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곳 역시 텅 비어 있다.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이 자동수문은 보은군청 이호천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담당)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수질과 수량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신형 수문이다. 보은군청은 앞으로 이 자동수문을 속리천 곳곳에 더 설치해 연중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그 효과가 기대된다.

 

 

무전원자동수문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현재 속리천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중판리 자동수문으로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물이 넘칠 때의 모습(위)과 현재 모습(아래).

 

중판리 자동수문 아래에는 30년전(1979년) 건설된 '희망의 다리'가 고목처럼 누워있다.

 

인근에 속리터널이 뚫리면서 교통량이 많아지자 바로 아래에 중판교가 신설돼 다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런 탓인지 다리 입구에 새겨진 희망의 다리란 이름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보은군과 대한석유공사가 이 다리를 건설할 당시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밖의 세계로 통하는 희망'을 주기 위해 야심찬 이름을 붙였으련만 세월이 흐르면서 퇴물로 전락한 채 피서객들의 주차장과 그늘막 역할을 할 뿐이다.

 

속리천도 세월처럼 그렇게 흘렀으리라. 뒤에서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채지 않고 미련없이 낮은 곳만을 향해 줄달음 쳤으리라.


잠시 세월무상에 젖었다 발길을 돌리려니 새로 들어선 중판교 초입에 낯익은 돌탑이 금줄을 두르고 서있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자연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물길을 따라내려가다 속리산면의 하수처리상황은 어떨까 궁금해 하천옆(중판리)에 세워진 속리하수처리장을 잠깐 들렀다. 보은군이 지난 2003년부터 한국수자원공사에 위탁해 관리운영해 오고 있는 이 하수처리장은 하루 처리용량 4천톤 규모로 인근의 상판·중판·사내·갈목리 일원 하수를 총13km의 차집관거를 통해 걸러내고 있다. 방류구를 살펴보니 비교적 맑은 물이 속리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다시 도로로 나와 속리터널 앞을 거쳐 하류로 향하니 오른쪽으로 문화마을(중판2리)이 보일 쯤 하판교가 나타난다. 물길은 계속해서 왼편에 한남금북 마루금을 끼고 도로와 평행으로 달린다.


'샨띠와남'이란 독특한 이름의 요가수련원을 지나니 북암리와 마주친다. 마을 앞 세강교 아래엔 수령 3백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 역사를 대변하듯 마을간판처럼 서있고 왼쪽 수백m 위쪽으로 하천변 바위 절벽과 조화롭게 자란 소나무가 고풍스런 자태로 객을 반긴다.


37번 국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한바퀴 휘돌고나니 백현리 마을이다. 백현교로 들어서자 다리 아래 개울가 모습이 지금까지 보여온 자연하천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게 어색해 보인다. 최근에 마친 하상정비 사업으로 둑방엔 철망이 깔리고 하천바닥은 편평하게 다듬어져 '죽은 느낌'을 주고 있다.

 

 

속리천과 한남금북정맥의 멋진 만남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군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를 지나니 잠시 뒤 백석2교가 쉬어가라고 객을 부른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또 한바탕 휘도는 산모퉁이 중간에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가 있고 이어 나타나는 백석2교가 잠시 쉬어가란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지는 석양이 아쉬워 발길을 돌리니 백석1교가 지난 겨울의 모습을 떠올린다. 찬 바람이 불던 늦겨울 예비탐사차 이곳을 찾았을 때와 물빛이 확연히 다른 게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계속>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이 주요 분수계 역할
동북으로는 백두대간이 낙동강과 경계 지어
서북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이 금강과 물길 나눠


산과 물을 말할 때 요즘은 흔히 분수령과 마루금,재,분수계,수계란 말들을 사용하는데 이는 뒤에 설명하는 '산경표'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우선 분수령이란 산에 관한 개념으로서, 글자 그대로 물을 나누는 마루, 즉 산의 양쪽 사면이 만나는 곳 혹은 산의 양쪽 사면이 내려다 보이는 곳으로 능선과 같은 말이다. 마루금은 이 분수령(능선)을 서로 연결한 금(선)을 뜻하고 말티재,질마재,모래재 등의 '재'는 능선 중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 반대가 봉우리다.


또 분수계는 하나의 강 유역을 완전히 에두른 분수령의 집합으로 다른 강 유역과 구분되는 영역을, 수계는 분수계로 둘러싸인 안쪽의 전 영역을 일컬을 때 쓰인다. 다만 분수계는 산과 관련된 개념인 반면 수계는 물에 관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달래강(달천) 유역의 분수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대체적으로 달래강이 흐르는 방향인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따라 낙동강과 경계를 이루고 왼쪽으로는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금강과 경계를 이룬다.

 

■백두대간과 달래강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동·서로 구분짓게 하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속리산 천왕봉을 기점으로 북쪽을 향해 조령산 인근의 마력봉까지 줄달음을 하면서 동으로는 낙동강 물줄기를 일으키고 서로는 달래강 물줄기를 일으킨다.


속리산 천왕봉서 시작해 마력봉까지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가자면, 우선 속리산 연봉인 비로봉,신선대,문장대 등을 차례로 지나 경북 용화와 화북을 연결하는 밤티에 이어 늘재를 만난 뒤 청화산,조항산,대야산,장성봉,희양산,시루봉,이만봉,백화산,황학산으로 이어졌다가 이내 이화령과 조령산,조령3관문을 지나 마지막으로 마력봉을 만난다.


이렇게 이어진 마루금은 대부분 충북과 경북 도계를 지나면서 능선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둘로 나누는 분수령 역할 뿐만 아니라 양 지역의 문화를 각기 달리 형성시킨 문화적 산파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마력봉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져 다시 방향을 바꾼 마루금은 월악산쪽 지릅재를 거쳐 대미산과 남산,마지막재,계명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동달천,내사천,충주호 등과 경계를 이룬다.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마력봉까지 이어졌다가 다시 충주 관내 계명산까지 이어진 마루금은 달래강의 오른쪽 유역, 즉 동북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백두대간의 '늘재'
백두대간은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유역을 낙동강 유역과 구분짓는 중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백두대간의 여러 분수령 가운데 하나인 늘재로, 오른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경북 상주시 쪽에서 바라본 늘재 △분수령 안내판 △충북 괴산 송면 쪽에서 바라본 전경 △고갯마루의 백두대간비.

 

백두대간의 '밤티'
속리산 문장대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경북 상주시의 밤티. 원내는 경북 용화에서 화북 방향으로 바라본  밤티 모습.

 

■한남금북정맥과 달래강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백두대간이 북쪽을 향해 오른쪽으로 달래강과 낙동강 유역을 나누는 것과는 달리 한남금북정맥은 왼쪽 방향으로 북쪽을 향해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다.


속리산 천왕봉서 처음엔 남서쪽으로 뻗기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은 이어 속리산 관문인 말티고개(현재 속리터널이 인근에 뚫렸지만 여전히 버스노선으로 이용되는 등 관문역할을 하고 있슴)를 지나면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장구봉,탁주봉,시루산,구봉산,국사봉,머구미재를 지나 청주 인근의 선두산,선도산,상당산으로 접어든다.

 

이어 충북 청원의 미원과 내수읍(초정 약수터)을 잇는 이티재를 지나 구녀산과 좌구산을 넘으면 괴산군의 청천 쪽에서 청안을 넘나드는 질마재가 나오고 이내 칠보산을 거쳐 괴산읍과 증평읍을 잇는 모래재를 지나 보광산,보천고개,행티재를 넘어 음성 관내의 소속리산에 이르게 된다. 소속리산에 다다른 한남금북정맥은 계속해서 경기도 안성의 칠현산을 거쳐 강화도를 향해 달리지만 달래강과의 인연은 소속리산 자락에서 끝을 맺는다.


한남금북정맥에서 갈라져 다시 방향을 튼 마루금은 음성 감우재를 지나 부용산과 수레의산,덕고개,자주봉산,솔고개,평풍산으로 이어지면서 남한강 본류 수계인 청미천과 앙성천,한포천 등과 경계를 이룬다.


이곳까지의 마루금은 달래강의 서남쪽 유역을 이루는 분수계 역할을 한다.

 

한남금북정맥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한남금북정맥은 북쪽을 향해 왼쪽 방향으로 치달으면서 달래강과 금강유역을 구분짓는 분수령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은 보은 삼년산성에서 바라본 한남금북정맥의 전경으로 오른쪽으로부터 천왕봉과 말티고개가 보인다.

 

■산경표


산경표는 우리 나라의 산이 어디서부터 시작해 어디로 흐르며 어디서 끝나는지를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한 지리서다.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여암 신경준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이 동국문헌비고(영조46년, 1770년)에 수록된 신경준의 여지고와 산수고를 바탕으로 편찬된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백두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이후의 산맥 분류 체계와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서 간(幹)은 줄기를, 맥(脈)은 줄기에서 뻗어나간 갈래를 지칭한다.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은 이 책의 분류에 따른 것으로 백두대간은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커다란 기둥줄기를 일컫고 이 기둥줄기로부터 뻗어나간 2차적인 갈래를 정간과 정맥이라 하는데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속리산 천왕봉으로부터 서북쪽으로 뻗은 줄기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도 산경표에서 나온 말로 '산 스스로 물을 나누는 경계, 즉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산경도는 산경표를 지도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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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속리산 삼파수는 천왕봉이다
------달래강의 숨결
 
   
 
   
속리산의 마루금 문장대서 천왕봉 직전까지 이어지는 속리산 연봉들은 모두 낙동강 수계와 남한강 수계를 나누는 '이파수(二波水)' 마루금(분수계)이다. 사진에서 보아 천왕봉 직전까지의 각 봉우리를 잇는 마루금 뒷편(동쪽 사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낙동강 줄기가 되고 앞쪽 사면(법주사 방면)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남한강 줄기가 된다. 비로봉 전망대서 파노라마 기법으로 촬영한 사진이기 때문에 각 봉우리의 높이는 실제와 다르게 보인다.

남한강·낙동강·금강 나누는 국내 물뿌리의 '으뜸'

속리산을 삼타수(三陀水) 혹은 삼파수(三波水)라 한다. 조선 중종 20년(1525년)에 간행된 용재총화에는 삼타수, 5년 뒤인 중종 25년(1530년)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삼파수로 기록돼 있다.

이들 문헌의 삼타수 혹은 삼파수가 정확히 어떤 물을 일컫는 지에 대해서는 설명돼 있지 않아 알 길이 없으나 현대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세 갈래로 흘러내리는 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 갈래로 흘러내리는 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왕봉의 삼파수비 천왕봉 정상에 서있는 비석에는 삼타수 대신 삼파수로 적혀있다

이는 곧 물줄기가 세 갈래로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바로 남한강과 낙동강, 금강이 이곳서 갈려져 나간다는 것을 뜻하리라.

물줄기를 나눈다는 것은 한편으론 물줄기가 시작된다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속리산은 산 정상으로 떨어진 빗방울을 남한강과 낙동강, 금강 등 세 갈래의 물줄기로 나누는 동시에 이들 세 강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그러면 삼파수(혹은 삼타수, 이하 편의상 삼파수로 칭함)의 정확한 지점은 어디일까. 옛 문헌은 문장대(해발 1054m)를 꼽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 문장대의 물은 세 갈래로 나뉘어 반공(半空)으로 떨어지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며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달천이 됐다가 금천, 즉 남한강으로 들어간다'고 적혀 있다. 다른 문헌들도 비슷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다시 말해 삼파수 지역은 천왕봉(해발 1057.7m) 산자락이다. 문장대 산자락은 단지 한강과 낙동강 등 두 갈래의 물줄기만 나눌 뿐이다.

따라서 문장대 산자락은 엄격히 말해 이파수(二波水)다. 문장대 외에도 청법대,신선대,입석대,비로봉 등 문장대서 천왕봉 직전까지 이어지는 속리산 연봉들은 모두 낙동강과 남한강만을 나누는 이파수의 분수계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는 문장대 산자락의 이파수 기능마저도 부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나라 땅 이름에 밝은 이형석씨는 한국의 산하란 책에서 '문장대 물은 동서남북 모두 법주사로 흘러 달래강(남한강)이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허나 이 주장은 문장대 자체, 정확히 말하면 현재 큰 바위로 이뤄진 문장대 정상만을 놓고 본 견해로서, 실제 취재팀이 답사한 바로는 문장대가 솟아있는 산 능선 자체는 분명 낙동강과 남한강을 나누고 있다.

다시 강조 하건대 속리산의 삼파수 지역은 유일하게 천왕봉이다. 즉,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서쪽으로는 남한강을, 남쪽으로는 금강을 발원한다.

학자들은 본래 낙동강과 남한강, 금강은 하나의 물줄기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던 것이 천왕봉을 비롯한 속리산 연봉들이 지각변동으로 새롭게 생겨나면서 서로 분리돼 다른 물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약 20년전에 밝혀진 '종개의 분포'다.

과거에는 종개라는 물고기가 한강과 금강 이북에서만 발견되는 '북방계 어종'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지난 1990년도에 있었던 속리산종합학술조사에서 돌연 남방계 수계인 속리산 동쪽 낙동강 최상류에서도 이 물고기가 채집됨으로써 지각변동 이전에는 이들 세 물줄기가 서로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우리 나라에 물줄기를 나누는 분수령(分水嶺) 혹은 분수계(分水界)는 많지만 삼파수로 불리는 곳은 오로지 속리산(천왕봉) 뿐이다.

이는 바로 이 지역이 우리 민족에게 생명의 젖줄을 제공하는 가장 '으뜸의 물뿌리'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천왕봉의 이름을 얼마전까지 부르던 천황봉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천황'이란 의미를 굳이 일제의 잔재로만 볼 게 아니라 삼파수의 중요성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물의 뿌리, 즉 강의 발원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물줄기가 시작되는 물의 시원(始源)이자 물이 흐름을 일으키는 머리(물머리)란 점에서 여느 지역 이상의 숭고한 의미를 지닌다.

강의 시작은 인류 역사의 시작이자 문화의 시작이란 말이 있다. 역사는 강의 흐름과 더불어 이어져 왔고 문화의 태동과 발전도 강과 함께 해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세 강줄기의 뿌리인 속리산 삼파수는 한반도 중부권 역사를 태동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킨 모태라 할 수 있다.

생명의 젖줄이자 역사의 터전인 강, 또 그 강의 뿌리를 세 개씩이나 보듬고 있는 속리산 천왕봉. 그 삼파수 지역을 잘 지켜나가고 그가 갖는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는 일도 우리 역사, 우리의 뿌리를 올바로 알고 지켜나가는 하나의 중요한 방편일 것이다.

   

 

천왕봉서 바라본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면 삼파수의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 정 중앙으로 길게 뻗은 마루금(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왼쪽(장각계곡)으로는 낙동강 수계를, 오른쪽(대목골, 만수계곡)으로는 금강 수계를 이룬다. 맨 오른쪽 저수지가 보은 삼가저수지다.

   
도도한 물흐름 달래강
  달래강 3백리 물길은 유독 계곡이 많아선지 더욱더 도도히 흐른다. 그 도도한 물흐름은 이 고장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탄생시킨 '역사의 터전'이자 주민들의 삶과 생을 이어준 '생명의 요람'이다. 125km 물굽이에 대한 심층 탐사를 통해 달래강의 어제와 오늘을 재조명하고 참다운 가치를 발굴해냄으로써 내일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사진은 옥화5경인 금봉서 바라본 달래강 전경)  
 
숱한 설화와 사연 안고 도도한 물흐름

심층탐사 통해 참 가치 발굴 비전 제시

역사·생태·문화·개발·보전방안 재조명



◇ 삶의 젖줄, 역사의 터전

   
 
   
 
예부터 물맛이 달다하여 단내(달래,甘川) 혹은 수달이 많이 산다해서 수달내(달천,獺川), 덕을 입은 강이라하여 덕천(德川)으로 불리던 달래강. 속리산 천왕봉에서 물머리를 시작해 충주 탄금대 부근서 남한강과 하나 되기까지 총연장 125km를 남에서 북으로 굽이치며 흐르는 커다란 물줄기다.

조선초 성현의 <용재총화>에 '조선 제일의 물맛'으로 기록될 만큼 물맛 좋기로 유명했던 달래강은 지금도 주민들의 중요한 생명수이자 젖줄로서 숱한 설화와 사연을 안고 도도한 물흐름을 하고 있다.

3백리 물길로 이어지는 본류와 지류 곳곳에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빚어 청풍명월의 멋을 한껏 더해놓고, 각 고을 마다엔 삶의 숨결을 불어넣어 이 고장 특유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탄생시켜 놓았다. 이른바 중원문화의 한 뿌리이다.

백두대간과 한남금북정맥을 분수계로 하여 동으로는 낙동강, 남·서로는 금강과 물굽이를 달리하는 달래강 유역은 속리산을 중심으로 화양계곡과 쌍곡계곡, 옥화9경, 수주팔봉, 수옥정폭포, 용추폭포 등 수많은 계곡과 명소를 아우르고 있다. 또 그 품안에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서 소중한 자연자원인 수달과 하늘다람쥐, 까막딱따구리, 미선나무, 망개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물줄기 주변엔 '국민 소나무' 정이품송을 비롯해 그 부인격인 정부인송, 용이 틀임하는 듯한 기괴한 모습의 용송(왕소나무) 등 이름난 소나무들이 천년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서제일의 가람 법주사, 우암 송시열의 화양서원과 만동묘, 벽초 홍명희의 삶과 혼이 깃든 괴강변,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 충민사, 우륵의 가야금 선율과 신립장군의 호국얼이 배 있는 탄금대 등이 지역민의 자긍심을 키우는 역사와 문화의 산실로 남아 있다.

또한 물 맑고 공기 좋아 곳곳이 청정지역인 달래강 유역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특산물이 산출되고 있다. 봄·여름이면 산과 들에 온갖 나물들이 지천하고, 가을이면 송이,능이,싸리버섯 등 각종 버섯이 쏟아져 나온다. 인근 농경지에서 생산되는 인삼은 충북의 대표적인 농산물로서 한국 인삼농업의 역사를 다시 쓰는 주역으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고 사과, 복숭아, 고추, 절임배추, 논콩 역시 전국에 충북 농업을 알리는데 앞장서 온 효자 농산품이다.

달래강 물길은 곧 이 지역 주민들의 삶과 생을 이어준 요람이자 터전이요, 애환과 기쁨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자 동반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달래강에도 변화를 재촉하는 시대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다름 아닌 온천개발과 댐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십수 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데다 최근엔 대운하 통과 예상지역으로 부각되면서 주민들을 또다시 찬반논란의 장으로 내몰고 있다. 지역의 위기냐, 발전의 계기냐를 놓고 주민들은 심한 갈등까지 빚고 있다.

이에 지역 환경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심혈을 기울여온 충청타임즈가 달래강 3백리 물길에 대한 심층취재를 통해 어제와 오늘을 재조명하고 참 가치를 발굴해냄으로써 내일을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달래강의 설경
  달래강에 눈이 내렸다. 계곡과 바위, 물,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놓았다. 설경에 묻힌 달래강이 금새라도 숱한 전설을 통해낼 것 같다.  
 


◇ 달래강의 참모습 재조명

이번 기획취재에서는 △달래강의 현황(발원지 및 지리현황)을 비롯해 △역사(유래, 속리산 삼파수와의 관계) △문화(명승유적, 설화, 민속) △달래강 사람들 △특산물 △생태(식물상, 어류상, 조류상, 포유류상, 곤충류상, 양서파충류상 및 주요 동식물) △보전과 개발(관리·개발 실태와 보전방안)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취재팀은 달래강의 사계(四季)를 담기 위해 이미 지난 1월부터 사전 취재에 들어가 문헌·자료 조사와 함께 주요 지역에 대한 예비 답사, 겨울철새 및 발원지 탐사 등을 실시한 바 있으며, 이어 오는 10월까지 달래강 물길 전 수역에 대한 현지 답사 및 탐사를 통해 달래강의 참모습을 심층 취재 보도한 후 11∼12월 중에는 보전방안 등 결론 도출을 위한 지상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특히 역사 문화와 생태 분야는 각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동행 취재 및 탐사를 실시하고, 희귀종으로서 우리나라 주요 자연유산이자 천연기념물인 하늘다람쥐와 수달, 까막딱따구리 등에 대해서는 현장 잠복 취재및 촬영을 통해 상세한 서식현황과 생태를 밝힐 계획이다

93년만에 한남금북정맥 연결…'속리산 관문'
13일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 열려

[충북=아시아뉴스통신] 김성식기자기사입력 : 2017년 10월 13일 09시 53분

<13일 충북 보은군이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을 가진 가운데 정상혁 보은군수(왼쪽 아홉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보은군청)>

일제 강점기인 1924년 끊긴 충북 보은 속리산 말티재의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이 ‘생태축 복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이어졌다.

보은군은 13일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을 가졌다.

도로건설 명목으로 끊긴 지 93년 만의 일이다.

보은군은 이번 생태축 복원을 계기로 ‘수학여행 1번지’로의 재도약을 꿈꾸는 등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은 1924년 일제 강점기 당시 끊긴 한남금북정맥(보은 속리산 ~ 안성 칠현산) 중 말티재 마루금을 잇는 사업으로 속리산 자연생태계의 건강성과 연속성을 유지?회복하고 백두대간 속리산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추진됐다.

여기에 더해 보은군은 군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속리산과 법주사의 관문을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상징적인 명소로 복원했다.

지난 2015년 착공해 국비 39억원, 도비 5억원, 군비 18억원 등 모두 62억원의 예산을 들여 완공한 이 사업은 생태축 복원사업으로는 전국 처음으로 3층 복층터널로 마루금을 이어 생태축을 복원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해발 430m에 위치한 관문의 1층은 폭 12m 길이 79m 높이 6m로 차량이 통행하도록 만든 공간이며 2층은 폭 12m 길이 79m 높이 6m로 250명 규모의 생태문화 교육장과 역사?문화, 사진 등의 상설 전시관으로 조성됐다.

3층은 폭 45m 길이 51m 높이 8m로 단절되기 전의 지형으로 복원해 동물이 드나들고 식물이 서식하는 자연공간으로 만들었다.
 
<충북 보은군의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조감도.(사진제공=보은군청)>

또한 속리산 방향 1층 터널 위에 ‘자비성’이란 글자를, 2층에는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이란 현판을 달고 왼쪽 벽에 법주사 ‘팔상전’과 오른쪽 벽에 ‘쌍사자석등’을 배치했다.

보은 방향 1층 터널 위에는 ‘보은성’이란 글자를, 2층 좌측 벽에는 매미 날개형 ‘보은대교’와 우측 벽에 신라 초기 축조된 중부지방 최대 성곽인 ‘삼년산성’을 배치했다.

 2층 아치형 공간에는 동서통로·휴게실·교육관·화장실을 설치했으며 양편 출입구 위에 유리창에는 7가지 무지개 색깔을 입혀 보은군의 희망을 상징했다.

 3층에는 문장대 및 천왕봉 모형과 동물들의 이동을 위한 생태통로를 설치했다.

군은 지난 2015년 6월 생태축 복원사업 대상지를 신청한 뒤 정상혁 보은군수를 비롯한 관계 공무원들이 충북도, 산림청, 기획재정부를 수시 방문해 복원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한 끝에 같은 해 10월 산림청으로부터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이날 준공에 이르게 됐다.

정상혁 보은군수는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은 꼬부랑길, 숲체험 휴양마을, 솔향공원, 짚라인, 모노레일을 연결하는 중심지가 될 것”이라며 “속리산 관문의 보은을 상징하는 명소가 돼 속리산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13일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갈목리 말티재 일원에서 열린 '속리산 말티재 생태축 복원사업' 준공식 장면.(사진제공=보은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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