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와 미꾸리] 미꾸라지(왼쪽)와 미꾸리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달리 엄연히 종이 다른 별개의 물고기들이다./자연닷컴
◆미꾸리와 미꾸라지
우리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 물을 흐려 놓는다'는 말이 있다. 하찮은 존재가 일을 그르치게 만들었을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 나라 생태계가 바로 이와 똑같은 형국에 와 있다. 수입산 '미꾸릿과' 어종이 온 나라 안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구 수입해 오는 업자들과 또 그것을 구입해 자연수계에 무단 방류하거나 방생하는 사람들 때문에 생태계가 만신창이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가 남의 일인 양 먼 산만 바라보는 동안 '그 하찮은(?) 수입 물고기들'로 인해 생태계란 커다란 우물물이 온통 황톳빛으로 변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미꾸릿과 어류를 단순히 추어탕용 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음은 미꾸릿과 어류의 대표격인 '미꾸리와 미꾸라지'를 대부분 혼동하거나 같은 물고기쯤으로 알고 있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관심밖의 존재로 치부되고 있으면 분류학상 전혀 다른 물고기인 이들 두 종을 십중팔구의 사람들이 완전히 같은 종이라고 믿어 둘 중 하나를 방언이라고 알고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이 두 종의 물고기가 서로 다른 종이라고 주장 한다면 '맛이 가도 단단히 간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니 무관심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수염길이로 구분]미꾸라지(위)와 미꾸리 모두 수염이 5쌍이나 미꾸라지는 수염이 긴 반면 미꾸리는 비교적 짧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대 분명 이 두 종은 서로 다른 물고기로서 별개의 어종이다. 예컨대 붕어와 잉어처럼 종 자체가 전혀 다른 물고기들이다. 하지만 겉모양과 습성이 너무 흡사해 전문가가 아니고는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자연닷컴
이해를 돕기 위해 두 어종의 특징과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우선 미꾸리는 수염이 짧고(눈 지름과 비교해 2.5배를 넘지 않음) 몸높이가 낮으며 둥글어 일명 '동글이'라고 불리는 반면, 미꾸라지는 수염이 길며(눈 지름의 3∼4배) 몸높이가 높고 납작해 일명 '납작이'라고 부른다. <사진 참조>
반면 이들 두 어종은 아가미 외에 장(腸)으로도 호흡을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즉, 입으로 들이마신 공기의 일부를 아가미 외에 장으로 보내 그곳에서 산소를 흡수한 후 가스 교환된 이산화탄소를 방귀 뀌듯 밑(항문)으로 방출한다.
미꾸리 혹은 미꾸라지의 어원은 바로 이러한 특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처음에는 '밑으로 방귀를 뀌는 물고기'란 뜻의 '밑구리'로 불리다가 점차 '밋구리→미꾸리, 미꾸라지'로 변한 것이다.
◆분류 및 생활사
우리나라의 미꾸릿과(일부에서는 기름종갯과 혹은 잉엇과로 분류) 어류에는 약 20종이 있다. 과(科) 아래 속(屬) 단위로는 종개속, 쌀미꾸리속, 미꾸리속, 참종개속, 기름종개속, 수수미꾸리속, 좀수수치속, 새코미꾸리속 등 8속이 있는데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미꾸리속(Misgurnus)에 포함된다.
미꾸릿과는 전 세계적으로 27속 46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미꾸리의 학명은 'Misgurnus anguillicaudatus', 영명은 'muddy loach' 혹은 'oriental weatherfish:직역하면 '동양의 기상어(氣象魚)'로 비가 내릴 때 활발히 헤엄치는 데서 유래됐다.
입수염은 5쌍, 옆줄은 불완전하다. 호소나 논에 주로 살며 산소부족에도 잘 견딘다. 산란기는 4∼7월, 알에서 깨어나 1.5㎝까지 자라면 성어와 모양이 같아진다. 보통 16∼17㎝ 정도 자라지만 20㎝ 이상은 드물다. 잡식성이며 주로 3급수에서 산다. 전국에 분포하며 중국, 대만, 일본, 사할린에도 분포한다.
미꾸라지의 학명은 'Misgurnus mizolepis', 영명은 'Chinese muddy loach' 혹은 'Chinese weatherfish'. 미꾸리처럼 입수염이 5쌍, 옆줄은 불완전하다. 산란기는 4∼7월, 미꾸리보다 커서 20㎝ 이상까지 자란다. 3급수에서 살며 우리나라 외에 북한과 중국,대만에도 분포하나 일본에는 살지 않는다.
[중국산 미꾸라지]중국산 미꾸라지는 과거 수입초기에는 크고 검은 성어들이 수입됐으나 요즘에는 치어로 들여와 국내서 양식한 다음 출하하기 때문에 국내산과 구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흡사하다. /자연닷컴
◆일반적인 인식 및 확산 경로
중국산 수입 미꾸릿과 어종과 관련해 일반인들이 현재 잘못 알고 있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국산 미꾸릿과 어종'하면 으레 떠올리는 것이 '크기가 무척 크고 색깔도 검게 생긴 물고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은 과거 1980년대 이후 미꾸릿과 어종이 국내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국내에 수입된 미꾸릿과 어종 대부분이 말 그대로 크기가 엄청 크고 색깔도 확연히 검었던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요즘에 유통되는 '중국산 미꾸릿과 어종'은 '전문가도 모를 정도로 겉모습이 거의 흡사'하다.
어찌나 흡사한지 미꾸릿과 어종만 30년 넘게 다룬 상인들도 '추어탕이나 숙회로 만들어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전혀 구별해 내지 못할 정도'다. 굳이 먹어봐서라도 국내산과의 차이점을 찾자면 '뼈가 억세고 육질도 뻣뻣하다'는 정도다.
그렇다면 왜 요즘들어 중국산 수입 미꾸릿과 어종들이 국내산과 큰 차이점이 없어진 것일까.
문제는 간단하다. 과거처럼 다 큰 것을 들여오는 게 아니라 요즘에는 어린 치어를 들여와 국내 양식장서 적당한 크기(약 3∼4개월 소요)와 색깔로 키워 팔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모두 중국에도 분포하기 때문에 본래부터 크기와 색깔을 제외하고는 국내산과 흡사한 종들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에는 미꾸리와 미꾸라지 모두 수입된다고 볼 수 있는데 자료상으로 딱히 미꾸리가 얼마만큼 들어오고, 미꾸라지는 또 얼마나 들어오는지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모두 '미꾸라지'로 싸잡아 1년에 약 8700여t(2004년 기준) 수입된 것으로만 나타나 있을 뿐이다.
국내산(양식)도 구분하지 않고 '미꾸라지'로 싸잡아 통계내는 판에(이와는 달리 상인들은 미꾸리를 동글이로, 미꾸라지는 납작이로 별칭하며 서로 다른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음. 보통 미꾸리(동글이)가 미꾸라지보다 1.5∼2배가량 더 비쌈) 중국산, 그것도 대부분 치어로 들여오는 실정에 정확한 통계를 낼리 만무하다.
더 큰 문제는 국내산과 유전인자가 다른 이들 중국산 미꾸릿과 어종들이 국내에 들어와서 자연수계로 마구 흘러들면서 유전자 교란 등 씻지 못할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그 조그맣고 하찮은 물고기들'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양식장에서 바로 나온 것도 중국산인지 구별이 불가능한 데 자연으로 흘러들어 이미 정착한 것들을 무슨 수로 '외래어종'이라 하여 관리할 것인지 심히 우려될 따름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겨울이면 흔히 볼 수 있었던 시골 정경이 있다. 미꾸라지(혹은 미꾸리) 잡이다. 요즘 같은 농한기가 되면 으레 시골에선 삽과 양동이 들고 들로 나서는 게 일이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해온 일이기에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한 사람이 나서면 다른 사람이 자동으로 따라 나서는 식이었다.
목적지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대부분이 그 동네 토박이들이었기에 언제 어딜 가면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은 훤히 알고 있었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우선 얼음을 깨고 물을 퍼냈다. 논도랑이나 수렁 같은 곳에 미꾸라지가 많았기에 물이라고 해봤자 삽으로 몇 번 퍼내면 그만이었다. 물이 잦아지면 삽이나 손으로 열심히 진흙을 들춰냈다. 그러면 동면하던 미꾸라지들이 놀라서 꼬물꼬물 삐져나오기 마련이었는데, 날씨가 추운 날엔 미꾸라지의 몸이 굳어져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움직임이 굼뜨거나 아예 죽은 양 꼼짝 않는 것들도 있었다.
잡은 건 비단 미꾸라지만이 아니었다. 알을 실은 개구리들도 더러 잡곤 했다. 별미 혹은 약용 목적이었다. 지금이야 일부러 개구리만 골라 잡는 전문꾼이 생겨났지만 그 때만 해도 개구리는 잡아도 그만 안 잡아도 그만인 계륵 취급을 받았다. 아니, 오히려 안 잡는 사람이 더 많았다.
미꾸라지 잡이가 끝나면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한 쪽에선 미꾸라지 손질하느라 시끌벅적, 또 한 쪽에선 가마솥에 양념 넣고 물 끓이느라 시끌벅적, 또 다른 쪽에선 수제비 준비하느라 시끌벅적, 말 그대로 잔치분위기였다. 비록 잡아온 미꾸라지 양은 얼마 되지 않을 지언정 큼직한 무와 대파 썰어넣고 거기에 수제비까지 빚어 넣으면 그야말로 명품 추어탕이 따로 없었고 그 것 한 그릇이면 동장군도 저멀리 달아났다.
지금이야 거의 볼 수 없는 화석화된 시골 모습이지만 그 당시엔 웬만한 시골 마을에선 비일비재하게 이뤄졌던 정겨운 겨울나기요 훈훈한 광경이었다. 지금도 커다란 가마솥을 보거나 시골집 굴뚝 연기를 보면 그 시절 그 사람들이 마냥 그리워지곤 하는데, 요 며칠 전 보은의 어느 산골 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은 뒤로는 마치 추억의 한 장면을 영영 도둑맞은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얘기인즉슨 이렇다. 달천 상류가 자신들의 고향이어서 매년 이맘때 쯤이면 형제자매들이 모여 미꾸라지 천렵을 하곤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시골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이다. 골짜기마다 새로운 집과 공장이 들어서고 논배미마저 택지로 바뀌거나 기계화 영농으로 대부분 마른논으로 변해 미꾸라지와 개구리가 살 만한 곳 자체가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개체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더구나 개구리의 경우 논배미든 산골짜기든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씨가 말랐단다. 그들은 서식환경 악화도 문제지만 배터리를 이용한 싹쓸이 남획이 더 큰 문제라고 열 올렸다. 미꾸라지와 개구리가 있을 만한 곳이면 으레 배터리를 들이대고 마구 지져대니 그들이 살아남을 리 만무란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첩첩산골도 이런 지경인데 찻길이 훤히 뚫린 다른 곳들은 어떻겠냐는 그들의 푸념속에서 생태계는 물론 우리의 추억마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널 대로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찾으면야 어디 미꾸라지 개구리 몇 마리쯤 찾아내지 못할 시골 마을이 있겠냐마는, 우리의 무관심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싹쓸이 남획이 근절되지 않는 한 정말이지 미꾸라지 개구리 한 마리 살지 않는 그런 세상이 올 것은 뻔한 이치다. 배터리에 감전돼 쭉쭉 뻗는 미꾸라지와 개구리의 잔영이 아른 거린다. 이 추위에.
이름에 가을을 품고 사는 물고기가 있다. 추어(鰍魚)다. 일년중 유독 가을(秋)에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미꾸라지의 옛 이름이다. 사실 미꾸라지는 추수가 끝난 다음 논바닥을 파헤쳐 꼬물꼬물 기어나오는 것들을 잡아 탕으로 먹어야 제격이다. 지금이야 그런 정경을 보기가 '안개 뼈다귀 보듯' 힘들어졌지만 지난 70~80년대까지만 해도 추수철 뒤풀이격으로 으레 행해지던 연례행사였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추수 막바지철만 되면 버릇처럼 그때 그시절이 떠올려진다. 일그러진 양동이와 삽 한자루 달랑 들고 이 논 저 논 물꼬받이를 찾던 생각. 장화도 신지 않은 맨발로 엉거주춤 황새걸음하며 진흙탕을 찾아다니다가 용케 숨구멍 하나 발견하면 그때부터 작업 개시. 한쪽에선 삽으로 또 한쪽에선 맨손으로 돈내기 하듯 정신없이 진흙을 파헤치다 보면 여기저기서 꼬물락 거리며 미꾸라지들이 기어나왔다. 그러다가 행여 뱀처럼 생긴 드렁허리가 뛰쳐나오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 기절초풍했던 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물고기가 미꾸라지라는 재미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세종대에 의뢰해 '내수면 소비동향 분석 및 소비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의 77.7%가 2007년 한해 동안 한번이라도 민물고기(자라와 민물패류 포함)를 먹은 경험이 있으며 가장 많이 먹은 물고기는 미꾸라지(90%)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소비어종은 뱀장어,미꾸라지,패류(다슬기,우렁이,재첩),메기,빙어,붕어,쏘가리,동자개,송어,향어,피라미,자라,가물치,잉어였고 이들 중 뱀장어와 미꾸라지가 가장 맛이 좋은 물고기로, 잉어와 가물치는 맛 없는 물고기로 인식되고 있었다. 또 하나 아이러니한 것은 쏘가리와 동자개,피라미는 맛에 대한 평가는 높은 반면 섭취율과 선호도는 낮아 소문만 무성한 물고기로 드러났다. 반대로 잉어는 맛에 대한 평가보다 섭취율과 선호도는 높아 판매업자 쪽에서는 가장 실속있는 물고기로 확인됐다.
물고기 생김새는 많은 사람들이 미꾸라지와 붕어는 잘 알고 있는 반면 횟감용인 송어,향어는 잘 모르고 있었다. 회를 먹을 때 생김새를 알고 먹지는 않는단 얘기다. 섭취형태는 추어탕을 포함한 매운탕이 가장 많이 소비(54%)됐으며 그 다음은 구이,회,국물,찜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자가 연간 6.85회 민물고기를 먹는 반면 여자는 4.89회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별로는 50~60대 이상이 연간 8.08회, 40대가 6.08회, 30대가 4.98회, 20대가 3.79회로 나타나 나이가 많을수록 민물고기를 좋아했다. 이는 '추억'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지역별 1인당 연간 소비빈도는 충북이 10.25회로 가장 높게 나타난 가운데 충남,부산,광주,서울,전북,경기,경남,강원,전남,경북 등의 순으로 나타나 역시 충북과 충남이 대표적인 민물고기 고장임이 입증됐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생산기술직,서비스직,퇴직·무직자,전문직,사무직,학생 순으로 소비횟수가 많았고 출신지역별로는 농촌지역 출신이 대도시 출신보다 더 많이 소비했다. 직업에 따라, 출신지에 따라 입맛이 다르단 얘기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민물고기를 꺼려할까. 첫째는 위생과 관련된 감염위험 때문이고 그 다음은 환경오염 또는 항생제 사용,비린내,원산지에 대한 불안으로 조사됐다. 이 점이 가장 눈여겨 볼 대목으로 토종음식인 민물고기 음식, 나아가 양식과 유통 문화에 대한 일침이다. 또한 이것이 민물고기를 먹는데 1인당 연평균 4만6252원, 전체 1조6천97억원을 소비하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