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어린 시절 매를 길러본 적 있다. 지금이야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불법행위지만 그 당시엔 야생의 매를, 그것도 어린 새끼를 내려다 기르는 일이 그리 별쭝맞은 짓이 아니었다.
매라고 해야 붉은배새매 아니면 황조롱이가 대부분이었으나 두 종 모두 매라고 불렀다. 맹금류인 두 종이 분류학적으로 서로 다른 무리란 걸 안 건 먼훗날의 일이었다. 붉은배새매(현재 천연기념물 323-2호)는 수리과이고 황조롱이(천연기념물 323-8호)는 매과로서, 둘은 날개의 생김새가 확연히 달랐다. 수리과인 붉은배새매는 날개 끝이 갈라져 있는 반면 매과인 황조롱이는 날개 끝이 갈라져 있지 않고 길고 뾰족했다. 당연히 나는 모습도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식탐이 유난히 많았다. 어릴수록 그랬다. 개구리면 개구리, 쥐면 쥐, 살아있는 것이면 종류 불문하고 잡아다 주는 족족 무섭게 받아 먹었다. 그러니 성장속도도 매우 빨랐다.
또 영리했다. 참새는 물론 박새, 멧새, 딱새, 때까치, 밀화부리, 물총새, 소쩍새, 올빼미, 심지어 쏙독새까지 별의별 새들을 다 길러봤지만 이들 매처럼 영리한 새는 별로 보질 못했다. 우선 사람을 잘 알아봤다. 누가 누군지 신통방통할 정도로 잘도 구별했다. 그 만큼 주인도 잘 따랐다. 하루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5리가 넘는 학교까지 졸졸 따라와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매 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단어가 긴장감이다. 부리부리한 눈, 갈고리 같은 부리, 낫처럼 날카로운 발톱(매류의 속명인 Falco는 낫을 뜻하는 라틴어 Falx에서 유래), 금방이라도 비상할 것 같은 날렵한 날개 등 몸 생김새부터가 늘 긴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야성(野性)까지 강했다. 온갖 정성을 다해 길러 놓으면 십중팔구는 야성을 보이며 배신하기 일쑤였다. 먹잇감도 잘 받아먹고 말을 잘 듣다가도 돌연 집을 뛰쳐나가거나 딴전을 피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게 바로 야생 매의 특성이요 죽기 전까지 버리지 못하는 게 야성이었다.

 


요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북한 땅이 있다. 우리측 서해 5도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는 북녘 땅, 바로 장산곶과 사곶, 해주, 옹진반도, 개머리 해안, 무도 등 '연평도 도발'의 근원지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지역이 어떤 곳인가. 예부터 해류의 소용돌이가 심하고 험한 바위와 암초가 많아 해난사고가 유난히 많았다는 곳 아닌가. 해서 바다 쪽으로 가장 튀어나온 장산곶사(長山串祠)에서는 봄·가을이면 으레 제를 올렸고 효녀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전래소설 '심청전'의 배경이 됐던 곳이며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드니~"로 시작되는 몽금포타령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들 지역, 특히 장산곶과 해주는 '매'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 지역 매는 특별히 장산곶매라 불리는데 사냥 나가기 전날 밤 자기 둥지를 부수면서까지 부리를 가는 속성이 있다"고 했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정말로 공교롭게도, 포성을 앞세운 긴장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해난사고가 잇따랐던 이유에서일까. 아니면 매의 본고장으로서 매의 못된(?) 습성만 본받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심술궂은 매사냥꾼의 '시치미 떼는 기질'이 남아서일까. 걸핏하면 엉뚱한 행동으로 서해 5도 주민은 물론 우리나라 국민 나아가 전세계인들을 마냥 경악케 하고 있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몽금포타령의 장단은 언제쯤에나 '한반도의 화음'으로 울려퍼질는지. 갈 길은 계속 멀어지고 행선도 점점 더 더뎌지는 것 같아 속이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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