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송면의 연리지 소나무가 죽은 뒤에도 줄곧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던, 건강하던 소나무가 갑자기 죽은 데 대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 전에 “이 연리지가 세계서 가장 아름답고 빼어났었다”는 때늦은 가치 평가와 함께 “보호수 지정 기관인 괴산군 스스로가 이 나무를 죽였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산26의 이 연리지 소나무는 수령 약 100년된 소나무 2그루가 전생에 못다한 사랑을 주고받듯 가지 하나를 서로 붙인 채 계집 녀(女) 형상을 하고 있는 등 수형이 특이해 괴산군이 지난 2004년 군보호수(112호)로 지정, 보호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지난해 가을부터 푸른 잎이 붉어지면서 이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올 봄이 되자 수세가 더욱 악화돼 지금은 완전히 말라죽은 채 흉물로 서있다.
이 연리지가 죽자 가장 먼저 아쉬움을 나타낸 이들은 다름 아닌 국내 연리지 연구가들. 그 중 전 세계의 연리지를 연구해 온 한 전문가는 “그동안 연리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실물을 봐왔지만 괴산 송면의 연리지만큼 두 나무 가지가 완전히 붙어 계집 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못봤다”며 “연리지의 본 고장 중국에도 송면의 연리지만큼 뛰어난 것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연리지를 관광상품화 해 지역 브랜드로 활용할 정도로 귀중히 여기고 있다”며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지만, 그런 면에서 볼 때 송면의 연리지를 잃은 것은 엄청난 자연자원을 잃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과 함께 ‘책임 소재’에 대한 지역여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괴산군의 이중적인 행정이 송면의 연리지를 죽였다’는 쪽으로 여론이 쏠리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지역민들이 괴산군에 책임을 떠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면 괴산군이 연리지를 보호수로만 지정해 놨을 뿐 그에 따른 실질적 보호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인접 지역에 건축허가를 내 줌으로써 연리지가 죽었다고 지역민들은 믿기 때문이다.
한 지역민은 “연리지에 바로 인접해 건축허가를 내준 것도 잘못이지만 공사 도중에 허가사항은 잘 지켜지는지, 또 연리지에 악영향은 주지 않는지 감독을 철저히 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며 “그 결과 중장비 및 기초 공사에 따른 땅울림과 뿌리 훼손, 시멘트 독성 등으로 인해 결국 소나무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 주민은 “연리지가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지역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등 가슴 뿌듯해 했는데 이젠 되레 소나무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주민들이란 오명을 쓰게 됐다”며 “많은 군민이 아쉬워하는 만큼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이런 일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전문가에 의하면 괴산엔 현재 용추골의 연리목을 비롯해 20개 가까운 연리지가 있는 등 전국서 가장 많은 연리지가 발견된 지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이들의 존재를 밝힐 경우 ‘송면 연리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지금까지 함구해 오고 있다고 한다. 놀랍고도 슬픈 일이다.
옥(玉)이 수 십 말 있으면 뭘 하겠는가. 그것이 있다고 마냥 떠들어 댈 줄만 알 뿐 그것을 실에 잘 꿰어 보배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없었기에 스스로 빚은 결과다.
만일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슬기롭게 대처하고 지혜로움을 발휘했더라면, 그 가치와 존재들이 떳떳하게 널리 알려져 아마도 괴산은 지금쯤 전 세계서 가장 유명한 ‘연리지의 고장’이 돼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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