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어종에 관한 국내 최초의 종합·체계적 정리"
18개월에 걸친 '미호종개 추적' 대단원
'어두운 앞날' 밝히는 것은 지역의 과제

 

■기획에서 보도까지


'한국의 자존심 익수키미아 초이' 기획시리즈가 이번 회를 끝으로 8개월간의 보도일정(첫 보도 2007년 4월 12일)을 모두 마치게 됐다. 2006년 6월부터 시작된 사전취재 기간까지 합하면 총 18개월에 걸친 '미호종개 추적'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간의 취재여정을 되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기획물의 제목을 놓고 고심하던 일이다.

 

미호종개가 한반도 동·식물 종을 통틀어 그리 흔치 않은 천연기념물겸 멸종위기의 고유종이란 점에서 우리나라 보호 생물종을 대표할 만하기에 '한국의 자존심'이란 수식어를 붙이기로 했으나, 정작 취재대상의 명칭을 무엇으로 쓸 것인가가 큰 고민거리였다. 왜냐면 미호종개란 한국명 자체도 일반인들에겐 생소할 텐데 라틴어의 학명(Iksookimia choii)을 한글로 표현해 사용하자니 더욱더 낯설어 하고 거리감마저 갖지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호종개로 하여금 우리나라 생물학자, 특히 한국 어류분류학계의 자존심이 뒤늦게나마 지켜지게 된 속내가 바로 '익수키미아 초이'란 학명에 내재돼 있고 또 그 학명 때문에 더욱더 유명해진 물고기이기에 다소 무리인 줄 알면서도 '익수키미아 초이'란 명칭을 사용키로 했던 것이다.(미호종개의 학명은 제자와 스승의 이름으로만 지어진 세계 유일의 물고기 학명으로서, 학계에서는 제자들이 찾아내 스승께 바친 '보은의 물고기'로 알려져 있음)


다행히도 그 덕분에 미호종개의 첫 발견에서부터 신종발표까지의 숨겨진 비화와 작명(作名) 과정, 외국학자에 의해 지금의 학명으로 개칭된 이유와 그것이 갖는 학술적 의의, 종 특성 등을 보다 상세히 소개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미호종개에 대한 국민적 관심 제고와 자긍심 고취는 물론 소중한 생물자원으로서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자평해 본다.


또 하나 잊히지 않는 것은 미호종개란 민물고기 한 종을 가지고 매주 1회씩 신문 한 면 분량으로 총 35회를 보도할 계획이라고 했을 때 관련 학자 대부분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놀라움반 걱정반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내심 '멋쩍은 하룻강아지 꼴'이 되어 의기소침했던 일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도횟수가 늘어나면서 학자들의 우려는 차츰 격려로 바뀌어 갔고, 결국은 받아들이기 벅찬 과찬으로 이어져 그때마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커다란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일 어종에 관해 종합·체계적으로 정리한 국내 최초의 사례"라는 손영목박사(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장)의 평에 이어  "미호종개에 관한 바이블이 될 것"이라는 홍영표박사(국립중앙과학관)의 평과 "학자들도 해내지 못한 큰 일을 지방지 전문기자가 해냈다"는 방인철박사(순천향대교수)의 평은, 격려를 넘어선 과찬 중의 과찬으로서 되레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그간의 졸고(拙稿)에 대한 자책의 매가 되어왔다. 이들 세 박사를 비롯해 이번 기획시리즈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적극 도움을 준 전북대 김익수교수와 국립중앙과학관 이상명박사, 국립수산과학원 이완옥박사, BLS테크 이순재 생태담당이사, 다큐코리아 윤순태대표 등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이번 기획시리즈는 미호종개가 처한 오늘의 상황을 보다 상세히 밝혀내고, 나아가 이 종이 다른 미꾸리과 어종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형태형질 분석과 분자계통학적 분석을 통해 재조명하고 멸종위기 Ⅰ급어류로서의 미호종개와 천연기념물 454호로서의 미호종개가 갖는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종 자체가 지닌 학술적·문화재적 가치를 찾아내고, 아울러 개체수 감소 요인 및 멸종위기에 처한 오늘의 상황 규명을 통해 생물종 다양성 보전 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주요 보도내용으로는 한반도 민물고기의 유래와 금강에 분포하는 미꾸리과 어류의 특징, '익수키미아 초이’의 탄생과정, 미호종개의 형태적 특징, 미호종개의 유전 다양성 및 분자계통학적 특징, 서식 현황과 환경, 생식특성과 먹이특성, 미호종개가 사라지는 원인, 보호 및 복원 노력과 과제 등이 다뤄졌다. 또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미호종개의 생활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도됐고 전문가 지상 토론을 통한 합리적 보호·복원 방안 제시도 이뤄졌다.

 

■맺는말


기획취재를 마치면서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 당초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가졌던 미호종개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이 오히려 무게를 더한 채 여전히 가슴 속에 응어리 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미호종개란 물고기를 알면 알수록, 또한 그들이 처한 오늘의 상황을 깊이 취재하면 할수록 그들의 앞날이 매우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편견 아닌 편견이 마음 한편에 자리잡게 된 때문이다.


1980년대 말 미호종개를 처음 알게 된 이후부터 줄곧 마음속 숙제로 품어온 기획취재에 대한 '20년의 한'을 이제 막 풀게 된 시점에서 전혀 엉뚱하게도 본의 아닌 편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편견은 다름 아닌 오늘의 극한 상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번 취재기간 동안 미호천을 비롯한 금강 수계내 현존 서식지를 집중 취재한 결과 갈수록 빠져드는 깊은 수렁처럼 미호종개의 운명은 극히 절망적일 뿐이었다. 그 곱던 모래 백사장은 골재채취 등으로 거의 없어진 채 자갈과 각종 오염원이 뒤덮은 하상으로 남겨져 있고 그 위를 흐르는 물은 생물의 치사량을 운운할 정도로 날로 악화하고 있으니 현재 남아있는 미호종개들은 말 그대로 기로에 선 벼랑 끝 삶이요 환경변화에 따라 언제 사라질 지 모르는 한시적 생명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한때 학계를 흥분시켰던 진천 백곡천의 집단 서식지가 인근 공사장으로부터 유입된 흙탕물로 인해 한순간에 폐허의 하천으로 돌변했던 사례는 바로 이같은 상황을 뒷받침해 준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다.


오늘의 이 상황, 올 데까지 다 오고 갈 데까지 다 간 지금의 이 극한 상황을 다시금 되돌릴 혁신적인 비책은 과연 없는 것인가. 한국의 자존심이자 금강유역을 대표하는 소중한 자연유산 미호종개를 이 시대의 희생양으로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금강에 뿌리를 둔 지역민과 지자체가 갖고 있다. 이번 기획시리즈를 통해 한 가지 기대했던 작은 희망은 미호종개란 자그마한 생명체와 뿌리를 함께 해 온 이 지역 주민과 지자체만이라도 미호종개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보호·보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생물자원의 가치는 그것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지켜나갈 때 비로소 진정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생명공동체'로부터 인식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한 인식과 깨달음이 없는 한 환경부가 차세대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복원사업인들 제대로 '약발'이 들을 수 있을 지 의문이며, "미호종개를 제발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는 어린 지킴이들의 애절한 외침이 제 아무리 금강변에 울려퍼져도 되돌아오는 자연의 메아리는 마냥 골골대는 신음소리일 뿐이란 생각이다. 한번 죽어간 자연은 어느 한쪽만 나선다고 곧바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자연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공동체 성격을 띠고 있다.


지구상에서 단 한 마리의 표본만,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땅에, '전설 속 박제'처럼 남아있는 수원 서호의 서호납줄갱이를 생각하면서 미호종개가 제2의 서호납줄갱이가 되지 않고 대표적인 이 땅의 깃대종으로 살아남길 진정 기대한다. 그래서 취재중 갖게 된 미호종개에 대한 편견이 말 그대로 하나의 편견, 하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의 자존심 '익수키미아 초이' 파이팅! <끝> 

■'한국의 민물고기'로 탄생

 

미호종개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84년도의 일이다. 김익수(전북대 생물학과 교수)·손영목박사(전 서원대교수,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장)가 한국동물학회지 27권 1호에 「한국산 기름종개속 어류의 1 신종 Cobitis choii, 한국명 미호종개」로 첫 기재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한국의 민물고기 목록'에 오르게 된 것이다.

 

미호천에서 대내림을 시작한 지 수십만 년 만의 일이요, 손박사가 5㎜×5㎜짜리 촘촘한 족대로 미호천 모래바닥을 훑어 미호종개의 단서가 된 시료를 처음으로 채집한 지 1년여, 김박사와 신종이란 확신을 가지고 재조사를 실시한 지 6개월여 만의 일이다.(학회에 논문이 접수된 1983년 11월 12일 기준)

 

미호천을 젖줄로 살아온 인근 주민들에게는 그저 '기름챙이' 혹은 '기름쟁이'로만 알려져 왔고, 학자들에게도 일반적인 '참종개류'인 줄로만 알려져 왔던 물고기(그래서 손박사도 1982년 채집당시 참종개로 분류했음)가 이를 계기로 당당히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당시의 논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83년 5월 금강 지류인 미호천(충북 청원군 오창면 팔결교 부근)에서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은 Cobitis속 어류 1종을 발견하여 이를 신종 Cobitis choii라 기록하고, 한국명으로는 미호종개로 제창한다.

 

본 신종은 미호천에서 함께 출현하는 참종개 또는 점줄종개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몸 측면의 반문이 둥글고 수컷의 가슴지느러미 기부에 있는 골질반(뼈처럼 생긴 판)에는 거치(鋸齒: 톱니)가 있으며 비늘의 크기는 아주 작고 꼬리쪽의 미병부가 가늘게 되어 있는 등 그 모양이 그동안 알려진 Cobitis속의 여러 종과도 현저하게 다르다."

 

<사진1> 미호종개의 신종 발표 논문

 

<사진2> 기름종개속과 참종개속의 특징

 

 <그림설명> 미호종개는 신종 발표 당시 기름종개속(코비티스속)으로 분류됐으나 10년 후 루마니아의 낼반트박사에 의해 참종개속(익수키미아속)으로 전입됐다. 기름종개속과 참종개속은 그림에서와 같이 몸 옆면의 무늬(반문)와 수컷 가슴지느러미의 형태가 현저히 다르다.<그림=김익수박사 제공>

 

'코비티스 초이'에서 '익수키미아 초이'

 

두 학자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미호종개는 훗날 학명이 바뀌게 되는데, 이 과정 또한 국내 학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신종 발표 당시 미꾸리과 어류 중에서 기름종개속에 속하는 새로운 종이었으므로 Cobitis란 속명(屬名)과 choii란 종소명(種小名)이 붙여져 'Cobitis choii Kim and Son'으로 기재 발표됐던 학명이 신종 발표후 10년 만인 1993년에 이르러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으로 변경된 것이다.

 

학명을 바꾼 사람은 다름 아닌 기름종개속 어류의 세계적 권위자인 루마니아의 테오도르 낼반트(Theodor Nalbant) 박사로, 그는 처음으로 Iksookimia속을 신설하면서 김박사와 손박사가 기재 발표한 미호종개 'Cobitis choii'를 그 속에 포함시켰다.

 

낼반트박사가 Cobitis속을 대체할 새로운 속명을 지으면서 'Iksookimia'란 명칭을 붙이게 된 이유는 'Iksookim(익수김)'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김익수박사의 공적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까지 김익수박사가 관여해 신종으로 직접 발표했거나 영향을 끼친 5종의 어류(당시에는 Cobitis속이었던 종들)를 묶어 새로운 속으로 설정하면서 김박사의 업적을 기려 속명을 Iksookimia로 한 것이다.

 

낼반트박사가 Iksookimia속에 포함시킨 5종은 김박사가 직접 자신의 명의로 신종 발표한 참종개(75년) 왕종개(공동 명명자 최기철, 76년) 미호종개(공동 명명자 손영목, 84년) 부안종개(공동 명명자 이완옥, 87년) 등 4종과 낼반트박사 자신의 이름으로 신종 발표한 남방종개 등이다.

 

오늘날 Iksookimia속의 국내산 민물고기는 총 6종인데 이는 김박사가 1993년 이후 신종 발표한 동방종개(공동 명명자 박종영, 97년)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산 민물고기로는 러시아 아무르강의 엘라부가에서 채집된 lebedevi와 몽골 Kherlin강에서 채집된 lebedevi가 최근 Iksookimia속에 포함된 사례가 있다.(1999년 Nalbant, 2004년 Kottelat)  

 

■의의

 

낼반트박사가 1993년 Cobitis속 어류의 일부를 떼어내 Iksookimia속으로 전출시킨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직접 명명한 남방종개와 김익수박사가 신종 발표한 4종의 어류 사이에서 새로운 속을 만들 만큼의 '뚜렷한 공통점'을 발견한 데 있다.

 

그는 그 공통점으로 첫째, 이들 어류의 몸 옆면 반문이 Cobitis속의 특징인 감베타(Gambetta) 반문과 다르게 나타나고 둘째, 수컷 가슴지느러미의 두번째 기조 말단이 매우 뾰족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사진3> 미호종개와 참종개

미호종개(위)와 참종개(아래)는 몸에 나있는 무늬와 반점에서도 비교가 된다. /자연닷컴 

 

 

 

 

 

 <사진4> 꼬리자루(미병부)의 차이

미호종개(위)는 가늘고 긴 미병부를 갖고 있는 반면 참종개의 꼬리자루는 그보다 굵은 느낌을 준다./자연닷컴

 

결국 이러한 과정을 종합해 볼 때 국내 학자, 특히 김익수박사의 업적과 노력이 국제 학계로 하여금 하나의 새로운 어류속(屬)을 신설케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데서 커다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훗날 Iksookimia속에 전입된 국내산 미꾸리과 어종들이 갖는 형태 및 생태·생리적인 특징이 다른 미꾸리과 어종들과 차이가 있음을 남보다 앞서 문제 제기했던 김익수박사의 '분류학적 혜안'이 국제학계로부터 공인된 셈인 것이다.

 

아울러 낼반트박사의 Iksookimia속 신설로 인해 학명이 'Cobitis choii Kim and Son'에서 Iksookimia choii (Kim and Son)'으로 바뀐 미호종개는 이로써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스승과 제자의 이름으로만 지어진 기념비적인 학명'을 갖게 됐다. (학명이 Iksookimia choii로 바뀌면서 최초 명명자가 괄호로 표기된 것은 최근에 다른 명명자가 있음을 밝히는 국제학계의 관례에 따른 것임)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일인가. 1872년 서양학자 헤르첸슈타인(Herzenstein)이 '돌고기'란 우리나라 물고기에 자신의 이름으로 학명을 붙여 국제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처음으로 한국산 민물고기가 외국에 알려진 지 120여 년 만에 이뤄진 국내 학자들의 쾌거 아닌가.

 

헤르첸슈타인 보다도 30여년 앞서 돌고기를 <전어지>에 소개하고도 학명 하나 붙이지 못했던 '서유구'의 한과 당시 우리나라의 학문적 후진성을 반감시켜 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글 사진 김성식 생태환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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