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 스스로 절종 막는 일 앞장서야"

미호종개 바라보는 시각변화 시급
생물종 다양성 보전차원 대책마련

글 사진 김성식 생태 환경전문기자


   
 
     
 

미호종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물고기다. 다른 물고기들도 종 특유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미호종개는 특히 많은 것을 일깨우고 되돌아보게 하는 물고기다.

한반도가 대륙에서 분리되고 한 때 붙어있던 한강과 금강이 각기 떨어져 나가 독립된 수계를 형성한 이후 생겨난 '유일한 금강 고유종'이란 점에서 멀게는 고황하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지질 변천사와 하천 형성과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물고기요, 가깝게는 이 물고기의 존재가 알려진 최근 20여년간의 자연환경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인 증표이기 때문이다.

미호종개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자들 사이에선 참종개로 알려져 왔을 뿐만 아니라 서식지 주변 사람들에겐 그저 기름챙이의 한 종류로만 인식됐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1984년 '한국산 기름종개속 어류의 1신종 코비티스 초이(Cobitis choii)'로 한국동물학회지에 발표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21년 뒤인 2005년 2월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급으로 지정한 데 이어 그해 3월엔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454호로 지정하면서 그 존재와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코비티스 초이'는 훗날 '익수키미아 초이'로 개명됨)

하나의 민물고기가 멸종위기종이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는 금강수계의 미호종개와 낙동강 수계의 꼬치동자개 두 종뿐이다. 그만큼 생물자원 혹은 문화재적 가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물고기이며, 학술적으로도 그 어느 물고기보다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바로 이 물고기가 갖는 고유성과 희소성이다. 다시 말해 전세계에서 한반도, 그것도 남한의 금강수계 중 극히 제한된 수역에만 사는 '한국 특산종'이란 점에서 그 고유성이 높게 인정되고 있으며, 서식·분포지가 현재 5∼6곳밖에 되지 않고 개체수도 2만마리를 넘지않는다는 점에서 높은 희소성까지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미호종개는 현재 벼랑끝에 내몰린 '지극히 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미호종개가 처음 채집된 미호천 팔결교 지점의 경우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족대질 한 번에 6∼7마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은 전문가들이 며칠 훑고 다녀도 '얼굴'보기가 여간 어려워진게 아니다. 취재팀은 이번 취재기간 동안(사전 취재기간까지 포함해 총 18개월간)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팔결교 지점을 이잡듯 뒤졌지만 겨우 한 마리의 미호종개만 확인했을 뿐이다.

다른 서식지에서는 개체수만 더 확인됐을 뿐 절종으로 치닫는 '위기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취재팀은 매번 현지 조사에 나설 때마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개체수가 확인되겠지" 하면서 실낱같은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허탈했다. 아니 허탈했다기 보다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사실 이러한 극한 상황은 10여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미호종개의 첫 발견자이자 신종 발표자의 한 사람인 손영목 박사(전 서원대교수,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회장)는 1990년대 초 인터뷰를 통해 "이대로 가다간 얼마안가 절종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오늘, '너무도 정확히' 미호종개는 칠흑같은 어둠속을 헤매면서 절종 직전에 와 있다. "설마" 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가는 곳마다 그 곱던 모래사장은 골재채취로 인해 다 없어지고, 흐르는 물은 치사량을 운운할 정도로 날로 악화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이 같은 결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앞날이다. 미호종개를 절종의 늪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세계는 이미 생물 종을 확보하기 위한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생물 종 다양성 보전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된 지 오래이며, 생물 종 자체가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그런 만큼 미호종개를 바라보는 눈도 이젠 시대흐름을 따라 바뀌어야 하며 또 그것을 지켜내는 일도 생물 종 다양성 보전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그 첫 걸음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감과 의무감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절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으며, 그것을 지켜내야할 의무 또한 우리에게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한국의 자존심 익수키미아 초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한 가지 가슴에 담았던 작은 희망은, 미호종개란 작은 생명과 뿌리를 함께 해 온 이 지역 주민들만이라도 미호종개가 처한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보호·보전하는 일에 조그만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바람은 시리즈를 마무리한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다.

생물자원의 진정한 가치와 소중함을 생명공동체인 지역민 스스로 인식하고 보호·보전하는 일에 동참할 때 그것을 지키는 일은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지자체 역시 같은 인식이 필요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역민과 지자체의 관심과 노력이다.

지구상에서 단 한 마리의 표본만, 그것도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 땅에, '전설 속 박제'처럼 남아있는 수원 서호의 서호납줄갱이를 생각하면서 미호종개가 제2의 서호납줄갱이가 되지 않고 대표적인 충청인의 깃대종으로 살아남길 진정으로 기대한다. 충청인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미호종개는 곧 한국인의 자존심을 나타내는 중요 생물종이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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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언론의 언론'이라 불리는 '미디어 오늘'지에 실린 기사의 내용입니다.(2008년 3월 13일자)

서호납줄갱이의 한(恨)
[만화로 만난 언론계 사람들, 시즌2]세번째 이야기-충청타임즈 김성식 환경전문기자
2008 년 03 월 13 일 목16:09:27 이용호 연재작가
   
   
 

천연기념물 제454호 미호종개. 충북 음성군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흐르는 미호천에서만 서식한다는 미꾸리과 어류다. 폐수오염, 골재채취로 인한 수량 감소 등으로 하천 생물들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멸종만은 허락할 수 없었다. 미호천으로 출근하기 일쑤였고, 산란장면을 찍기 위해 밤새는 건 일상이 됐다.

지난해 12월, 끝내 35편에 이르는 기획취재 <미호종개 시리즈>를 완결하고 만다. 사전 취재기간을 합쳐 꼬박 18개월이 걸린 작업이었다. 학계에선 난리가 났다. 첫 연재가 시작되자 우려 반 기대 반이었던 것이 연재가 계속 되자 격려로, 결국엔 ‘과분한’ 찬사로 이어졌다고.

단일 어종에 관한 연구로는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바이블’로 통한다. 어떤 교수가 “등골이 오싹할 만한 자책의 매”라고 표현할 만큼 <미호종개 시리즈>는 학자들의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80년대 말 처음 라틴학명인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로 알게 된 후, 늘 밀린 숙제와 같은 존재였던 미호종개 연구. 20년 만에 그 한을 풀었단다.

김성식 기자.
검은 머리카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백발의 중년이다. 중 2때부터 염색약을 발랐다고. 어느덧 충청도에서만 기자생활 20년이다. 안 가본 곳이 없다. 늘 환경전문기자였다.  

‘새 박사’ 윤무부 교수를 존경했고,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기자가 됐지만, 그가 걷는 길은 어릴 적 꿈꿨던 그 길과 다르지 않다. 사진기자에게 접사사진을 부탁했지만 “현장 찍는 것도 바쁜데~”라는 대답만 돌아 올 뿐. 결국 직접 접사카메라를 들었다. 그 사진이 수만 장에 이른다. 방대해서 정리할 엄두도 안 난다. 지역기자의 출장비로는 필름값 감당도 힘들었다고.

남편이 집안 일 말고 다른 일에 ‘미치면’ 아내는 괴롭다. 그의 아내 역시 그랬다. 그렇다고 고집을 꺾을 순 없는 노릇. 게다가 일도 여럿 벌였다. 청주 시내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생태교실을 열었다. 참가회원들을 인솔하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생태체험을 다녔다. 급기야는  증평군 청천면에 양어장까지 차렸다.

“이놈들이 어떻게 알을 낳고 살아가는지,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까운 양식방법은 뭔지. 그런 고민들 하는 곳이죠.”
그런 고민 끝에 특허도 냈다. <인공여울을 이용한 쏘가리 양식 방법>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방법”이라며 돈 되는 특허는 결코 아니란다.

“1990년 인가요? 제가 3년차 기자였을 때니까. 낙동강 상류에서 한강이북에 서식하는 북방종개가 발견됐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1주일 간 역학조사를 벌였죠. 조사 결과 한강, 금강, 낙동강이 한줄기였고, 소백산맥이 솟아 3갈래로 갈라 놨다는 학설을 유추했죠. 생물 한 종에 대한 연구가 지질학적 수수께끼를 푼 셈이죠.”

생물 한 종이 갖는 환경적, 과학적, 역사적 의미가 그에겐 사명이다. 대운하에 대한 소견을 그의 블로그(http://blog.daum.net/koomlin)에서 인용해본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으로 서로 갈라져 흐르는 우리나의 강 수계는 이른바 서한 아지역과 동북한 아지역, 남한 아지역이라는 세 개의 독특한 민물고기 분포구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어류상이 양양 남대천과 다르고 낙동강과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필요한 물줄기를 이어 운하로 이용한다 하니 한반도 생태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7년도 <금강의 생태>라는 기획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3년간 매일 썼던 환경칼럼을 3권의 책으로 엮었고, <전문기자의 환경이야기>, <금강 1천리>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서호납줄갱이의 한(恨)을 공감하고 싶어 하는 자연인’이라 부르고 있다.
서호납줄갱이. 환경파괴와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지금은 멸종된 토종 물고기다. 표본마저 미국 땅엘 가야 볼 수 있는 기구한 운명의 물고기. 그 슬픔을 알기에 더더욱 그가 지금의 길을 고집하지 않나 싶다.

“그깟 고기 살려서 뭐하냐?”는 핀잔도 들었을 법 하지만, 그의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태계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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