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자연-임용묵의 다큐파일②

(2016년 4월11일자 아시아뉴스통신 보도기사. 원문보기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1000099)

 

생명의 계절 봄이 오면서 온 산야가 꿈틀대고 있다. 산과 들, 하천 그 어느 곳에서나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뉴스통신에서는 생태·자연분야 블로거이자 생태사진을 주로 앵글에 담고 있는 임용묵 생태사진가를 일주일에 한 두 차례씩 지면으로 초대해 그의 시각으로 본 우리 자연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독자에게 전하려 한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자연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도시민들에게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청량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주>

 

 

전래동화 도깨비방망이 이야기에 나오는 개암나무의 암꽃(왼쪽)과 수꽃. 한 나무에서 같은 시기에 피는데 암꽃은 매우 작아 관심있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으름덩굴의 앙증맞고 귀여운 꽃. 열매가 바나나와 비슷하게 생겨 한국바나나라고도 불린다. 또한 벌어진 열매의 묘한 모습에서 임하부인(林下婦人)이란 별칭도 얻었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개나리가 아닙니다. 개나리와 같은 과(물푸레나뭇과)이지만 줄기와 꽃, 이파리가 분류학적으로 서로 다르다. 산개나리는 특히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종이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붉은대극은 숲속 바위지대에 자라면서 이른 봄이 되면 가녀린 줄기들을 수줍게 올리며 봄소식을 전한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황매화.자생지가 한국이다 일본이다란 논란이 있으며 죽도화라고도 불린다. 야생은 드물고 한약재로 이용되고 있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예전에 담뱃불을 붙일 때 이용했다 해서 부싯깃나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잎에 흰섬유가 많이 나 있다. 오죽하면 이불솜을 뒤집어쓴 듯하다 해서 솜나물로 불린다.(사진제공=임용묵 생태사진가)

 

김연아의 눈빛, 영원히 잊지못할 아름다운 눈빛이리라

 

첫인상은 중요하다. 누구를 반하게 하기도 하고 괜한 반감을 사기도 한다.

비록 짧은 시간에 느껴지는 첫인상이지만 그 여파는 의외로 오래 간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훗날 엉뚱한 짓을 해도 "그럴 수 있지" 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첫눈에 벗어난 사람은 "그럼 그렇지"란 삐딱한 수식어와 함께 용납이 잘 되지 않는 불이익을 받기 일쑤다.

첫인상이 전부가 아님에도 '전부를 가리는 콩깍지'가 되곤 한다.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첫눈에 비친 눈빛이다.

물론 전반적인 풍모를 통해 첫인상이 가늠되지만 그 포인트는 역시 눈빛이다. 눈빛이 곱상한 사람은 곱상하게 각인되고 눈빛이 흐리멍덩한 사람은 흐리멍덩한 사람으로, 눈빛이 예리한 사람은 예리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나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본디 식물의 근본인 '첫잎의 상태' 에 따라 그 식물의 일생이 좌우된다는 관용 표현이다. 여기서 말하는 첫잎의 상태가 다름아닌 첫인상이요 그 식물에 대한 콩깍지다.

떡잎이 시원찮고 싹수가 노랗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으레 부정적으로 본다. 식물 입장에선 억울한 콩깍지다.
동물의 눈과 눈빛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고 나왔다 해서 완전한 탄생이 아니다. 눈을 떠야 비로소 완전한 병아리다.

강아지도 같다. 눈을 떴느냐 안 떴느냐에 따라 인식이 다르다. 눈도 안 뜬 강아지와 눈 뜬 강아지는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눈을 뜨고 난 뒤에도 그들이 지닌 눈빛은 앞으로의 가능성과 미래의 모습을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를 고를 때 눈빛부터 본다.
사람이나 동식물에 있어 눈빛이 중요한 건 그 안에 생명력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눈빛을 말하는데 식물을 포함시킨 것은 눈(目) 못지않은 눈(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도 빛이 있고 생명력이 존재한다. 또한 식물들은 그 눈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동물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생태사진을 찍다보면 눈빛이 곧 생명력임을 실감한다. 눈빛이 살아있는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은 천지차이다.
얼마전 일이다. 타지역서 환경운동하는 지인이 "나는 왜 생태사진을 찍으면 마치 죽은 사진 같다"며 이상하단다. 해서 그가 보여준 사진들을 살펴보니 그의 말처럼 생명감이 없었다. 동물사진의 경우 몸뚱이만 있지 눈빛이 없었다.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서다. 그러니 자연 사체사진 같을 수밖에.


최근 눈자위를 희게 만드는 눈미백 수술이 유행하면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이 잇따르는 등 안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눈미백 수술은 혈관이 분포한 눈의 결막을 걷어내 눈자위가 희게 보이도록 하는 시술이다. 피부미백이나 치아미백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이들이 자기 눈에 자기가 원해 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안전성 검증이 안된 시술을 마치 마이더스 시술인 양 광고하거나 믿는 건 문제다.
눈은 지극히 예민한 부위다. 한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렵다.

아름다운 눈과 건강한 눈을 동시에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다고 아름다운 눈을 가지려다 건강을 잃는다면 아예 안하니만 못할 것이다.

자연스러움 속에 생명력이 있듯 눈빛도 자연스러운 게 아름답지 않을까.

밴쿠버 하늘 아래서 보여준 김연아의 눈빛, 그 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봤지 않은가. 에너지, 전세계인을 감동시킨 무한의 힘이 그의 눈빛에 고스란히 배어 있지 않았던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자신감 있는,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비친 그의 눈빛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눈빛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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