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봉 남쪽 봉우리서 '새 발원지' 찾아내
상환암 위 바위동굴서도 제2 발원샘 발견
삼타수(三陀水) 새롭게 해석해야 할 듯

 

속리산 천왕봉은 동으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금강, 북으로는 남한강 수계를 나누는 삼파수 지역이다.

 

이곳 천왕봉서 물줄기가 세 갈래로 나뉜다는 것은 곧 천왕봉 자락이 낙동강과 금강, 남한강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도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은 이곳 천왕봉 지역의 마루금을 경계로 각기 세 갈래로 흘러내려 낙동강, 금강, 남한강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넓은 의미로 보면 이처럼 물흐름이 시작되는 천왕봉 지역의 각 마루금이 세 강의 발원지인 셈이다.

 

그러나 학술적 개념의 발원지는 '하구 또는 합수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샘물 형태의 시작점'을 의미한다. 따라서 남한강의 한 지류인 달래강은 남한강과 합쳐지는 충주 탄금대 부근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샘물이 진정한 발원지라 할 수 있다.

 

■발원지 탐사

 

그동안 학계서는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 발원지를 속리산 상고암 샘물(약수)로 여겨 왔다. 상고암은 속리산 천왕봉 북쪽 비로봉 아래의 천년고찰로 오래 전부터 극락전 옆 바위틈에서 솟는 석간수 샘물을 식수로 이용해 왔는데 이 샘물이 남한강의 주요 발원지이자 달래강의 발원지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달래강의 숨결' 취재팀이 1월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총 6차례의 탐사결과 달래강의 발원지는 기존 학설과 달리 천왕봉 바로 아래의 봉수대터 샘물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탐사결과 상고암 샘물은 해발 약 940m에 위치한 반면 새로 찾아진 천왕봉 샘물은 해발 약 1,020m에 있어 '하구 또는 합수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샘물 형태의 시작점'이란 발원지 요건을 보다 더 충족시키고 있다.


더욱이 천왕봉 샘물은 과거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전해오는 천왕봉 남쪽 봉우리 아래에 있어 봉수꾼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등 역사성이 있는 데다 거대한 바위틈서 물이 솟기 때문에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각형 모습의 이 샘물은 한 쪽 면의 길이가 1m 이상으로 바위 밑에 있는 샘 치고는 제법 크고 형태도 뚜렷하다. 탐사당시 이 샘물엔 등산객이 갖다놓은 것으로 보이는 낡은 바가지가 놓여있었으나 인근 등산로가 폐쇄된 이후 사용치 않아 샘안에는 낙엽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천왕봉과 새로 찾아낸 달래강 발원지
본보 기획취재팀이 전문가들과 동행 탐사한 결과 달래강의 발원지는 기존 학설과는 달리 천왕봉 바로 아래의 봉수대터 샘물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이 샘물이 남한강 합류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샘물이다. 


취재팀이 상환암과 천왕봉을 잇는 등산로변(비로봉 남쪽사면의 바위굴)에서 찾아낸 굿당터 샘물도 상고암 약수보다 높은 곳(약 960m)에 있고 솟는 물의 양 또한 갈수기인데도 작은 도랑을 이룰 만큼 풍부해 이곳이 제2 발원지로서 중요한 수원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동행 탐사한 박경수씨(71·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는 "그동안 상고암 샘물이 달래강의 제1 발원지로 알려져 온 것은 상고암 자체가 속리산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고찰인 데다 이곳 샘물이 예부터 맛 좋기로 소문난 유명세 때문일 것"이라며 "하지만 해발 고도로 보나 계곡의 거리로 보나 천왕봉 밑의 봉수대터 샘물을 제1 발원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동행탐사자인 김기억씨(향토사학자)는 "그동안 학계가 인정해 온 상고암 약수는 탐사결과 제3 발원지 정도로 봐야 옳을 것 같다"며 "여러 요건으로 보아 천왕봉 봉수대터 샘물을 제1 발원지, 그 다음 상환암 위쪽 굿당터 샘물을 제2 발원지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솟아나는 물의 양으로 보면 상환암 위쪽 굿당터 샘물이 달래강의 주요 수원으로서 가장 뚜렷한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제2 발원지 '굿당터 샘물'
역시 이번에 새롭게 찾아진 상환암 위 굿당터 샘물은 상고암 약수보다 높은 곳에 있고 솟는 물 또한 풍부해 제2 발원지로서 중요한 수원 역할을 하고 있다. 탐사 당시 4월 중순인 데도 동굴내에 얼음이 남아 있다.

 

■발원지와 삼타수(三陀水)의 관계


취재팀은 발원지를 탐사하는 동안 속리산내 주민들로부터 "속리산에는 예부터 삼타(三陀) 약수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이는 옛 문헌에 나오는 속리산 삼타수가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다는 최초의 귀중한 정보다. 다만 삼타 약수가 정확히 어떤 약수를 지칭하는 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우원명 속리산관광협의회장(61)은 "예전 어른들로부터 천왕봉 남쪽 봉우리의 샘물(취재팀이 찾아낸 샘물과 동일)을 상탕(上湯), 팔각정 위쪽 돼지바위 부근의 샘물을 중탕(中湯), 남산 정상부의 샘물을 하탕(下湯)이라 하여 삼타 약수로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반해 박경수씨(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는 "소천왕봉 약수와 경업대 약수, 남산 약수를 속리산 3대 약수 혹은 삼타 약수로 부른다"고 말했다.


어쨋거나 이들 증언은 용재총화의 속리산 삼타수를 정확히 이해하는데 귀중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즉, 조선 중종때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 권3에 '기우자 이행이란 사람이 물맛을 잘 구별할 줄 알았는데 그는 충주의 달천수를 제일로 삼고 한강의 우중수(牛重水)를 두번째로,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를 세번째로 꼽았다"는 대목이 보이는데, 과연 이것이 오늘날 학계의 해석처럼 '물길을 세 갈래로 나눈다'는 뜻의 삼파수(三波水·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준다.


왜냐면 그렇게 풀이할 경우 삼타수의 범주에 속리산서 각기 갈라져 내리는 달래강물과 낙동강물, 금강물이 모두 포함돼 그 중 어느 물을 지칭하는지가 더욱 불분명해질 뿐 아니라, 기우자 이행이 과연 이들 세 강물을 구분하지 않고 한 물줄기로 보아 다른 강과 물맛을 비교했을까도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리산 삼타수는 주민들의 증언처럼 속리산 내의 세 곳 약수를 지칭하든지, 아니면 세 강의 발원이 되는 샘물 중 어느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행이 비교한 세 곳의 물이 모두 '한강수계'란 점을 감안하면 남한강 지류인 달래강의 발원지내 샘물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또한 삼타수의 타(陀) 자가 흔히 불교서 사용하는 용어란 점에서 옛날 속리산에 있던 어느 세 곳 사찰의 약수를 지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달래강 발원지로 알려져 온 상고암 약수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물맛 좋기로 이름난 데다 샘물 왼쪽 바위에 팔공덕수(八功德水)란 글귀가 새겨있어 이것이 중국의 차(茶) 고전인 서역기의 '팔덕(八德-좋은 물의 기준인 여덟가지 덕, 즉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맛있고 냄새없고 마시기에 알맞고 탈이 없어야 한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아가 삼타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해서도 전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기존 발원지 상고암 약수
달래강 발원지로서 그동안 학계가 인정해 온 상고암 약수는 바위에 새겨진 '팔공덕수' 글귀처럼 특유의 단맛과 부드러운 맛을 지니고 있어 중국 문헌의 팔덕(八德) 및 용재총화의 삼타수(三陀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고암 주지 성중스님이 약수의 유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조난 위기에서 멧돼지 길을 만나다

 

지난 2월 속리산에 붉은박쥐(천연기념물 452호, 일명 황금박쥐) 서식지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자연동굴인데 수십 마리가 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붉은박쥐가 어떤 동물인가. 암수 비율이 1:10~1:40밖에 안 되는 멸종위기Ⅰ급 동물로서 최근엔 자연동굴이 아닌 폐광에서만 발견되는 희귀종이다.

곧바로 소문을 추적했다. 그 결과 다행히 최초 발견자가 찾아져 날씨가 풀리는 4월초께 같이 답사하자는 약속을 얻어냈다.
그로부터 1개월여 뒤인 지난 9일 드디어 답삿길에 올랐다. 동행자는 최초 발견자 A씨와 '속리산 산사나이'로 통하는 박경수씨(한국자연공원협회 이사).

오전 10시에 금강골 입구서 만난 일행은 곧바로 목적지를 향했다. 그런데 얼마 안가 문제가 생겼다. 발견자 A씨가 바쁜 일 때문에 도중에 내려간단다. 난감했지만 그곳까지 올라와서 대략적인 동굴 위치와 가는 길을 알려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해서 일행은 만난지 30분만에 둘이 됐고 답삿길도 졸지에 탐삿길로 변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A씨와 헤어진 뒤로 길이 사라진 것이다. 집채만한 바위를 지나면 수십길 낭떠러지가 나타나고, 가까스로 바위지대를 벗어나면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빽빽한 조릿대숲이 막아섰다. 수백번 속리산을 올랐다는 박씨도 이런 길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죽을 힘을 다해 오르고 또 오르길 2시간여. 거대한 암벽 봉우리를 돌자 A씨가 말한 얼음폭포가 나타났다. 4월 중순 가까운 시기에 얼음폭포를 만나니 그나마 신기한 생각에 잠시 앉아 땀방울을 훔칠 수 있었다. 게다가 더 반가웠던 것은 얼음폭포 뒤로 동굴처럼 생긴 어두운 공간이 보였다. 갑자기 힘이 솟았다.

그러나 웬걸, 다가가 보니 바닥은 온통 얼음이요 10미터 남짓한 굴 안쪽으로는 햇빛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허탕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굴내 환경으로 보아 황금박쥐 아니라 다른 박쥐도 살 것 같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샅샅이 살펴봤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맥 풀린 몸을 추스려 일대를 더 뒤졌지만 동굴도 붉은박쥐도 찾지 못했다.
아쉬움 속에 이젠 내려갈 길이 막막했다. 올라온 길을 되밟자니 엄두가 안났고 능선으로 올라가 등산로를 만나자니 앞이 캄캄했다. 박씨도 올라온 길이 징글징글했던지 일단 올라가자는 표정이었다. 결국 위쪽을 향해 천근만근 같은 발걸음은 다시 시작됐는데, 아뿔싸 그 길이 위험으로 이어질 줄이야.

가깝게 보이는 비로봉을 향해 온몸으로 기다시피 해 올라선 곳이 하필 수십길 낭떠러지 위였다. 오금이 얼어붙었다. 멧돼지 보금자리가 곳곳에 널려있고 그들이 떼지어 금방 지나간 흔적도 역력한, 그런 위험천만한 지대를 천신만고 끝에 벗어난 곳이 천애의 벼랑끝이라니. 기가 막혔다.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위기감에 휩싸였다.

조난사고가 이래서 나는구나 하는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벼랑끝이라도 길은 있겠지. 한발짝 한발짝 똥끝 타는 암벽등반을 했다.

 

그러길 1시간여, 간신히 벼랑을 벗어나는 순간 자그마한 짐승 길이 나타났다. 멧돼지 길이었다. 반들반들한 것으로 보아 '살아있는 길'이었다. 그 길을 따라가면 등산로로 이어질 것 같았다.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지옥에서 빠져나온 기분이 이 같으랴.

상고암에 들러 물한모금 마시니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보며 내려오는 등산로가 마치 고속도로 같았다. 자연앞에 인간은 한낱 미물임을 온몸으로 절감한 하루였다.

 

생명길을 터놔준 멧돼지들아 고맙다. 아울러 노구에도 불구하고  동행해 준 박경수씨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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