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생태...발원지에서 하구까지.pdf



금강 1천리(401km)에 대한 생태를 종합적으로 요약한 글이다.


필자가 직접 2년 여(1995~6년)에 걸쳐 전문가들과 함께 현지 답사를 통해 취재 및 기록한 내용을 요약한 글로서 어류와 조류, 식물 등 각 분야가 포함돼 있다.


이 글은 특히 필자가 근무하던 충청일보를 통해 1년 여간 '금강의 생태…발원지에서 하구까지'란 타이틀로 연재함으로써 한국기자협회로부터 제29회 한국기자상(지역기획보도부문. 1997년)을 수상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내용이다.     


한국기자상 수상 직후 옛 충청일보가 직장폐쇄란 극한의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당시 회사 자료실에서 정성껏 스크랩 해 왔던 자료집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일까지 생겨 두고두고 한이 되고 있다.


첨부한 파일은 이런 와중에 가까스로 만들어낸 요약본이다.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긴 '낡은 자료'이긴 하나 당시의 금강 생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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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리와 붕어

 

지구상 우리나라에만 사는 민물고기 쉬리. 이 물고기가 학계에 처음 알려진 해는 일제 강점기인 1935년으로, 당시 한반도에 건너와 조선땅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신종 물고기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눈이 벌겄던 모리 타메조라는 일인 학자에 의해서였다. 모리는 남한강 수계에서 '처음 보는 특별한 조선 물고기' 쉬리를 채집해 'Coreoleuciscus splendidus Mori'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했다.
모리가 찾아낸 물고기는 체형이 날씬하고 몸색깔과 모습이 아름다워 예부터 기생피리, 여울각시, 연애각시 등으로 불러온 그야말로 조선토종 물고기였다. 모리가 처음 잡았을 때 얼마나 감탄했으면 종소명을 'splendidus'라 했겠는가. splendidus의 splendid는 매우 인상적이거나 아름다울 때 쓰는 말이다.
그로부터 72년 뒤인 2007년 모리가 살아 있더라면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사실이 국내 젊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다름 아닌 '쉬리가 1종이 아니라 2종'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순천향대 방인철교수팀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충청타임즈 2007년 6월 25일자 최초 보도> "국내에 서식하는 쉬리를 형태 분석과 함께 유전다양성 및 분자계통학적 분석을 병행한 결과 한강과 금강에 사는 쉬리(일명 북방계)가 낙동강과 섬진강에 사는 쉬리(일명 남방계)와 뚜렷이 구분됐다. 특히 남방계 쉬리는 모리가 신종으로 발표했던 기존의 쉬리(북방계)와는 다른 신종으로서 앞으로 보강 연구를 더 실시해 정식으로 신종 발표할 계획이다."
신종 발표가 이뤄질 경우 한국산 쉬리는 1종에서 2종으로 늘어나게 된다. 방교수가 밝힌 북방계 쉬리와 남방계 쉬리는 외형상 체색과 지느러미 반점, 뺨부위 암점 등 여러 면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분자 계통학적으로도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변이에서 온 것이건 분포지리학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건 분명한 것은 쉬리가 보다 다양한 유전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20여년 전 고 최기철박사(전 서울대 명예교수)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은 바 있다. 대청호에서 발견한 '한국 최초의 민물해파리'를 들고 찾아간 필자에게 대뜸 "우리나라에 토종 붕어가 몇 종류 사는지 아느냐"고 묻기에 "글쎄요, 저수지에 사는 일반 토종 붕어와 강에 사는 점박이 붕어(일명 돌붕어), 그리고 …"하면서 머뭇거렸더니 "적어도 대여섯 종류, 많게 보면 8종류는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를 학문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된다"고 덧붙였다.
당시에는 물고기 분류가 주로 형태형질 분석에 의존하던 때여서 최박사도 그것을 기준으로 잠정 분류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 분자계통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한 번쯤 곱씹어봐야 할 한 원로학자의 학문적 고백이 아닌가 싶다.
어느 물고기 한 종이 형태적으로 다양한 형질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적으로도 다양한 인자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유전 다양성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유전 다양성은 그 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유전 다양성이 풍부하면 그만큼 자연계에서 살아 남을 확률이 높은 반면 유전 다양성이 낮으면 환경 변화에 민감해지고 적응력이 떨어져 종 자체가 사라지기 쉽다.
오늘날 미호종개나 어름치 같은 고유종들이 백척간두에 서있게 된 것은 다음 아닌 유전 다양성이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같은 물줄기에 살든 다른 물줄기에 살든 모두가 '한 혈통 같은 핏줄'이니 조그만 환경변화에도 순식간에 멸종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유전 다양성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민물해파리 '한반도 과거'와 연결돼 있다

 

지난 10월 11일 대청호에서 또다시 민물해파리가 발견됐다. 15년 전인 1994년 8월 국내 최초 발견된 이래 두번째다. 대청댐 건설(1980년) 이후로 치면 14년만에 처음 나타났다가 29년만에 다시 출현했다. 민물해파리 자체도 생소하지만 대체 이 동물의 생활사가 어떻기에 29년만에 단 두번, 그것도 15년이란 공백기를 두고 나타났는지 큰 관심사다.


민물해파리목 작은히드라과의 자포동물인 이 민물해파리는 학명이 Craspedacusta sowerbyi이지만 보통 '히드라 메두사(Hydra medusa)'라 불린다. 히드라 메두사란 메두사 형태의 히드라를 뜻하며 우리말로는 민물해파리의 성체를 일컫는다. 민물해파리는 생활사가 독특하다. 일생 동안 폴립(polyp)형과 메두사형 등 두 가지 형태로 세대교번 하는데 폴립형은 바위 같은 곳에 붙어 고착 생활하는 반면 메두사형은 물속을 헤엄치면서 생활한다. 따라서 대청호에 출현한 민물해파리는 보통 때는 작은 폴립형태로 존재하다가 조건이 맞으면 세대교번을 통해 메두사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메두사형은 흔히 알려진 바다해파리 모습과 흡사하다.


그러나 민물해파리와 바다해파리는 별개 동물이다. 분류학상 민물해파리는 히드라충강(綱)이고 바다해파리는 해파리강(綱)이다. 혈통상 멀어도 한참 먼 관계다. 두 종은 자포동물이란 점만 같다. 일반적으로 해파리라 부르는 동물은 해파리강에 속하는 바다동물이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민물해파리는 명칭만 해파리다.
민물해파리는 크기가 매우 작다. 우산형태의 몸체(외산) 지름이 1.5~2mm밖에 안된다. 백원짜리 동전보다 작다. 하지만 모습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투명하고 앙증맞은 몸체와 200여개의 촉수를 움직여 헤엄칠 땐 가히 환상적이다.


대청호를 포함한 국내 수역(1994년 대청호서 처음 발견된 것을 계기로 그후 소양호 등 몇몇 수역에서도 발견됨)에서의 민물해파리 출현은 의미가 자못 크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희귀종인 민물해파리가 우리나라에서도 서식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증거다. 그런 면에서 최초 발견 장소인 대청호는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 종이 일본에 서식하고 있는 진수(眞水)해파리와 동일종이란 점에서 지질사학 또는 자연사학적으로도 소중한 단서가 되고 있다. 왜냐면 양국의 민물수계에 같은 종이 분포하고 있는다는 것은 과거 어느 때인가 양국의 땅이 하나의 민물수계에 속해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고황하(古黃河)다. 일본 열도가 대륙에서 분리되기 전 한반도와 이어주던 커다란 물줄기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기후환경은 어떠했을까. 이에 대한 답 또한 민물해파리가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국내서 민물해파리가 출현하는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저절로 답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동안 대청호를 비롯한 국내 수계서 출현한 민물해파리는 모두가 긴 가뭄과 무더위 끝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4년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 이는 결과적으로 수온이 높을 때만 출현한다는 얘기다. 1994년 당시 대청호에선 수온 섭씨 28~30도, 기온 30도 이상일때 출현했다. 올해 역시 눈에 띈 건 10월이지만 첫 발생은 이미 수온이 높았던 여름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종합하건대 화제의 민물해파리는 한반도와 일본열도가 하나의 대륙으로 이어져 있던 시기에 생겨났으며, 그 시기에는 지금보다 기온이 훨씬 더 높았음을 추론케 해준다. 대청호 주변의 두루봉동굴 유적서 코끼리,사자,원숭이,쌍코뿔이 등 아열대 혹은 열대성 동물의 뼈화석이 출토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물해파리 출현을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민물해파리를 연구하는 국내학자는 하나도 없다. 이게 현실이다.

이 글은 '언론의 언론'이라 불리는 '미디어 오늘'지에 실린 기사의 내용입니다.(2008년 3월 13일자)

서호납줄갱이의 한(恨)
[만화로 만난 언론계 사람들, 시즌2]세번째 이야기-충청타임즈 김성식 환경전문기자
2008 년 03 월 13 일 목16:09:27 이용호 연재작가
   
   
 

천연기념물 제454호 미호종개. 충북 음성군에서 발원하여 금강으로 흐르는 미호천에서만 서식한다는 미꾸리과 어류다. 폐수오염, 골재채취로 인한 수량 감소 등으로 하천 생물들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멸종만은 허락할 수 없었다. 미호천으로 출근하기 일쑤였고, 산란장면을 찍기 위해 밤새는 건 일상이 됐다.

지난해 12월, 끝내 35편에 이르는 기획취재 <미호종개 시리즈>를 완결하고 만다. 사전 취재기간을 합쳐 꼬박 18개월이 걸린 작업이었다. 학계에선 난리가 났다. 첫 연재가 시작되자 우려 반 기대 반이었던 것이 연재가 계속 되자 격려로, 결국엔 ‘과분한’ 찬사로 이어졌다고.

단일 어종에 관한 연구로는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미 ‘바이블’로 통한다. 어떤 교수가 “등골이 오싹할 만한 자책의 매”라고 표현할 만큼 <미호종개 시리즈>는 학자들의 반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80년대 말 처음 라틴학명인 ‘익수키미아 초이(Iksookimia choi)’로 알게 된 후, 늘 밀린 숙제와 같은 존재였던 미호종개 연구. 20년 만에 그 한을 풀었단다.

김성식 기자.
검은 머리카락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백발의 중년이다. 중 2때부터 염색약을 발랐다고. 어느덧 충청도에서만 기자생활 20년이다. 안 가본 곳이 없다. 늘 환경전문기자였다.  

‘새 박사’ 윤무부 교수를 존경했고, 조류학자가 되고 싶었다. 행정학과를 졸업했고, 기자가 됐지만, 그가 걷는 길은 어릴 적 꿈꿨던 그 길과 다르지 않다. 사진기자에게 접사사진을 부탁했지만 “현장 찍는 것도 바쁜데~”라는 대답만 돌아 올 뿐. 결국 직접 접사카메라를 들었다. 그 사진이 수만 장에 이른다. 방대해서 정리할 엄두도 안 난다. 지역기자의 출장비로는 필름값 감당도 힘들었다고.

남편이 집안 일 말고 다른 일에 ‘미치면’ 아내는 괴롭다. 그의 아내 역시 그랬다. 그렇다고 고집을 꺾을 순 없는 노릇. 게다가 일도 여럿 벌였다. 청주 시내에 사업자등록을 하고 생태교실을 열었다. 참가회원들을 인솔하고 들로 산으로 바다로 생태체험을 다녔다. 급기야는  증평군 청천면에 양어장까지 차렸다.

“이놈들이 어떻게 알을 낳고 살아가는지, 자연 상태에 가장 가까운 양식방법은 뭔지. 그런 고민들 하는 곳이죠.”
그런 고민 끝에 특허도 냈다. <인공여울을 이용한 쏘가리 양식 방법>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방법”이라며 돈 되는 특허는 결코 아니란다.

“1990년 인가요? 제가 3년차 기자였을 때니까. 낙동강 상류에서 한강이북에 서식하는 북방종개가 발견됐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1주일 간 역학조사를 벌였죠. 조사 결과 한강, 금강, 낙동강이 한줄기였고, 소백산맥이 솟아 3갈래로 갈라 놨다는 학설을 유추했죠. 생물 한 종에 대한 연구가 지질학적 수수께끼를 푼 셈이죠.”

생물 한 종이 갖는 환경적, 과학적, 역사적 의미가 그에겐 사명이다. 대운하에 대한 소견을 그의 블로그(http://blog.daum.net/koomlin)에서 인용해본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 남쪽으로 서로 갈라져 흐르는 우리나의 강 수계는 이른바 서한 아지역과 동북한 아지역, 남한 아지역이라는 세 개의 독특한 민물고기 분포구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어류상이 양양 남대천과 다르고 낙동강과 다른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중 필요한 물줄기를 이어 운하로 이용한다 하니 한반도 생태계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7년도 <금강의 생태>라는 기획보도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3년간 매일 썼던 환경칼럼을 3권의 책으로 엮었고, <전문기자의 환경이야기>, <금강 1천리>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서호납줄갱이의 한(恨)을 공감하고 싶어 하는 자연인’이라 부르고 있다.
서호납줄갱이. 환경파괴와 인간들의 무관심속에 지금은 멸종된 토종 물고기다. 표본마저 미국 땅엘 가야 볼 수 있는 기구한 운명의 물고기. 그 슬픔을 알기에 더더욱 그가 지금의 길을 고집하지 않나 싶다.

“그깟 고기 살려서 뭐하냐?”는 핀잔도 들었을 법 하지만, 그의 ‘인간과 자연, 그리고 생태계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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