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결과 수리부엉이는 달래강 수계 내에서 5쌍밖에 확인되지 않는 희소종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이곳에 둥지를 틀고 생태계의 조절자 역할을 해 온 ‘달래강의 터줏대감’이다.
까막딱따구리 역시 불과 4마리만 발견됐지만 국내 현존 개체수가 워낙 적은 희귀종 중의 희귀종이란 점에서 달래강 수계에서의 발견 자체가 매우 획기적인 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수리부엉이 서식처 5곳 확인
‘달래강의 숨결’ 기획취재팀이 찾아낸 수리부엉이의 서식처는 모두 5곳이다.
탐문조사와 현지답사를 병행한 결과 보은군 산외면 백석리 속리천 절벽과 괴산군 청천면 금평리 압항천 절벽, 후영리 백로담 절벽, 칠성면 사은리 병풍바위 절벽(괴산호 내 산막이 절벽),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싯계부근 절벽 등지에서 둥지와 함께 각 1쌍씩의 수리부엉이가 발견됐다.
주민들이 서식 장소로 알고 있는 청원군 미원면 어암리 쇠바우 절벽과 괴산군 청천면 귀만리 삼인리 절벽, 청천면 거봉리 절벽 등지에서는 실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몸길이 약 60~70cm에 양쪽 날개길이가 무려 1.5m 이상되는 맹금류인 수리부엉이는 최근들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희귀종으로 깊은 산의 암벽과 강가 절벽에 둥지를 틀고 주로 밤에 활동하면서 꿩과 산토끼,집쥐,개구리,뱀,도마뱀 등을 잡아 먹는다. 생태계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밤의 제왕’으로 불린다.
달천의 터줏대감 수리부엉이./자연닷컴 달래강 수계에서 5쌍이 확인된 수리부엉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하는 중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취재에서는 또 수리부엉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올빼미(324-1호)와 솔부엉이(324-3호),쇠부엉이(324-4호),소쩍새(324-6호) 등도 청원군 미원면 옥화리 일대와 괴산군 청천면 귀만리 삼인리 일대,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일대 등지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올빼미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Ⅱ급)이다.
올빼미와 부엉이류는 모두 올빼미과의 야행성 조류이나 올빼미는 머리 위에 뿔처럼 생긴 귀깃이 없는 반면 부엉이류는 귀깃이 있는 것이 다르다. 소쩍새는 귀깃이 있는 소형 부엉이류에 속한다.
이번 취재에서는 올빼미목(올빼미·부엉이류) 외의 다른 맹금류들도 실제 발견되거나 서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됨으로써 달래강 수계가 아직은 ‘비교적 양호한 생태 건강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맹금류도 다른 희귀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갈수록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어 보호대책 마련이 아쉬운 실정이다.
황조롱이./자연닷컴
실물이 확인된 맹금류는 천연기념물인 붉은배새매(323-2호),새매(323-4호),황조롱이(323-8호) 등이며, 주민들의 목격담을 통해 서식 혹은 도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접 확인된 종은 참매(323-1호,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와 검독수리(243-2호,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Ⅰ급) 등이다.
아마추어 생태연구가인 정대수씨(45) 등 목격자들에 의하면 참매와 검독수리는 주로 겨울철 달래강 중류인 괴산호 주변에 나타나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래강 최초 까막딱따구리 발견
이번 취재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무엇보다도 까막딱따구리의 발견이다.
까막딱따구리는 국내 현존 개체수가 극히 적고 발견 사례도 많지 않아 이미 35년 전인 1973년 4월 천연기념물 242호로 지정된 희귀종으로 환경부에서도 최근 멸종위기종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중요 유전자원이다.
까막딱따구리가 발견된 곳은 괴산호 주변인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뒤편 천장봉으로, 이 산의 중간 골짜기인 천장골과 남쪽 능선의 2개 둥지서 각각 1쌍씩 모두 4마리가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까막딱따구리가 충북지역서 발견된 것은 1990년 국립공원 속리산서 첫 발견된 이래 18년 동안 4차례에 불과하나 한꺼번에 4마리의 성조(成鳥)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까막딱따구리가 국립공원이 아닌 지역서 발견된 것은 전국적으로도 극히 드문 일로서 학계는 ‘큰 경사’라며 서둘러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까막딱따구리가 발견된 괴산호 주변은 최근 괴산군이 옛길 정비사업과 산악자전거 전용도로(MTB장) 개설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어서 환경단체와 학계의 거센 반발을 낳고 있다. 본보 기획취재팀도 까막딱따구리를 비롯한 괴산호내 희귀동식물의 보호를 위해 그동안 20여회에 걸쳐 심층 보도를 해오고 있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래강의 진객’ 까막딱따구리.자연닷컴 ‘달래강의 숨결’ 기획 취재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결과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까막딱따구리의 발견을 들 수 있다. 취재팀은 특히 달래강 중류인 괴산호 주변서 한꺼번에 무려 4마리의 어미 까막딱따구리를 발견함으로써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진 왼쪽이 암컷, 오른쪽이 수컷.
■달래강은 ‘원앙 천국’
달래강을 대표하는 또 다른 조류는 ‘원앙(천연기념물 327호)’이다. 특히 원앙은 달래강 수계 어느 곳을 가든지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다수종으로서 달래강 조류생태계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달래강 수계, 특히 괴산호로부터 최상류에 이르는 구간은 가히 ‘원앙 천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서식 둥지와 개체수가 유난히 많이 발견되고 있다. 원앙의 번식지(둥지)가 발견된 곳은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 일대와 청원군 미원면 옥화·어암리,괴산군 청천면 도원·화양(화양계곡)·후영리 등 10여 곳으로 주로 하천변의 오래된 나무구멍을 이용해 번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달래강 수계에서는 오색딱따구리,청딱따구리,쇠딱따구리 등의 딱따구리류와 청둥오리,흰뺨검둥오리,꼬마물떼새,쇠물닭,논병아리 등의 물새류와 함께 까치·까마귀류,때까치류,할미새류,박새류,꾀꼬리,파랑새 등의 각종 텃새 및 철새가 서식하고 있으며 고니(백조,천연기념물 201호,멸종위야생동식물 Ⅱ급)와 말똥가리(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도 겨울철 괴산호에 날아와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원대학교가 인공번식에 성공해 2년째 캠퍼스 내에서 번식하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오른쪽)' 어미. 왼쪽의 작은 개체는 검은머리갈매기의 갓 부화된 새끼.(사진제공=한국교원대학교)>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한국교원대학교(총장 류희찬) 캠퍼스가 야생조류의 천국으로 변했다.
지난 2001년쯤부터 캠퍼스에 농약 살포를 금지한 결과 15년 전에 73종이었던 야생조류가 지난해 126종이 발견되는 등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18일 한국교원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 받은 이래 황새(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천연기념물 제199호)를 비롯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의 인공번식도 성공해 올해로 2년째 번식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돼 황새 복원사업을 공식 추진한 시점인 지난 2001년을 전후 해 캠퍼스 내에 농약 살포를 금하고 각종 생물의 서식환경을 개선한 결과 곤충이 다시 살아났으며 이들 곤충을 먹이로 하는 조류들의 종수와 개체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교원대학교 캠퍼스에서 발견되고 있는 각종 야생조류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꾀꼬리, 호랑지빠귀, 콩새, 상모솔새.(사진제공=윤무부 박사)
현재 이 대학 캠퍼스에서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솔부엉이(천연기념물 제324호)와 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6호)가 번식하고 있으며 그 밖에 꾀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아무르쇠딱따구리가 여름철이면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와 번식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밀화부리, 상모솔새, 콩새, 황여새 등 겨울철새들도 이 대학 캠퍼스를 찾아와 겨울을 나고 다시 봄에 남쪽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대학의 청람황새공원의 주변에는 지난 2013년부터 해마다 150여개의 박새류 인공둥지가 설치되고 있으며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참여하는 박새류의 반포식 행동도 연구 중이다.
이미 이 대학의 캠퍼스에서만 이뤄진 연구가 국제학술지(SCI)에 여러 편 실린 바 있다.
한국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은 최근의 생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청람황새공원 주변의 논 12만m2를 임대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습지로 조성해 나가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논 임대료는 이 달로 출범하는 황새클럽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습지가 조성 되면 현재 청람황새공원의 부지와 임대한 논 면적 약 24만m2에 내년 7월 충북에서는 최초로 황새 새끼 2~3마리와 함께 한 쌍을 이곳에 풀어놓게 된다.
현재 이곳에는 10m의 인공 황새 둥지가 조성돼 있다.
황새복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박시룡 교수는 “한국교원대처럼 캠퍼스를 생태연구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대학은 국내에선 거의 드물지만 유럽에선 수백 년 된 종합대학 캠퍼스가 생물 종 연구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그리 생소한 게 아니다”며 “대표적으로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들은 생물 종 연구를 수백 년 동안 대학 내에 조성된 생물서식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랑새처럼 남의 둥지를 빼앗아 새끼를 치는 종도 있고 뻐꾸기처럼 아예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둥지 주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새끼를 기르도록 하는 종도 있지만, 많은 새들은 집짓기의 타고난 선수들이다. 송곳 같이 뾰족한 부리로 나무와 흙을 쪼아 기다란 구멍을 뜷고 그 속에 둥지를 마련하는 딱따구리와 물총새류를 보면 목수들도 가히 놀랄 만큼 기막힌 기술력을 보인다. 그들의 둥지 안을 들여다 보면 드릴로 파낸 듯 대패로 밀어낸 듯 깔끔하게 다듬어져 있다. 뾰족한 부리로 만들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흔히 볼 수 있는 까치집도 그냥 지어진 게 아니다. 한 마디로 철옹성 같다. 무려 1천600여 개나 되는 나뭇가지를 이리 얽고 저리 얽어 매우 견고하게 짓는다. 바닥에는 진흙을 깐다. 공학의 개념을 배운 것도 아닌데 바람 부는 방향과 세기 등 주변 여건까지 고려해 둥지를 튼다. 그러니 비가 와도 잘 새지 않고 태풍이 불어도 까딱없다. 설령 나무가 뿌리째 넘어가 땅바닥에 내동갱이 쳐져도 겉만 약간 부서질 뿐 벽체와 바닥은 멀쩡하다.
꾀꼬리와 때까치, 밀화부리는 물론 붉은머리오목눈이(일명 뱁새)와 개개비처럼 덩치 작은 새들도 정교하게 집을 짓는다. 자기들만의 명당자리를 찾아 풀잎과 뿌리, 나뭇가지, 심지어 폐비닐 같은 각종 재료들을 물어다 적재적소에 꼼꼼히 이용한다. 사람의 손기술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다.
집짓는 기술만 뛰어난 게 아니다. 둥지의 위치에 따른 안전성도 고려한다. 천적으로부터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고 아울러 안정적인 먹이 공급을 위한 본능이자 진화의 결과이다. 앞에서 말한 '명당자리'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요즘 들어 딱새와 할미새, 박새류처럼 인가 근처 혹은 인가내 구조물에 둥지를 트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속내는 안전성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천적에 비해 안전하고 인가 주변이 다른 곳에 비해 먹이 구하기가 쉽다고 믿는 것이다.
앞날의 일기를 내다보고 둥지 위치를 정하는 새들도 있다. 천연기념물 어류인 어름치가 그해 강수량을 예견해 산란탑 위치를 수심이 깊거나 얕은 곳으로 정하듯, 쇠물닭이나 깝작도요 같은 일부 물가새들도 나름대로의 일기전망에 따라 둥지 위치를 정한다. 예를 들어 번식기간 중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둥지를 평소보다 높은 곳에 짓고 그와 반대면 낮은 곳에 짓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새들의 이같은 지혜로움도 때론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올해 같은 경우다. 얼마나 날씨가 극성스러우면 새들의 본능으로도 예측하지 못하는 이변 아닌 이변이 일어나겠는가. 사정은 이렇다. 달래강(달천)에서의 번식 생태를 기록하기 위해 약 20일 전부터 관찰해 오던 쇠물닭 둥지와 깝작도요 둥지가 있었는데, 이번에 내린 장맛비로 하나는 둥지 전체가 떠내려가고 또 하나는 알이 몽땅 물에 잠겨 곯는 사태가 벌어진 것. 쇠물닭은 쇠물닭대로, 깝작도요는 깝작도요대로 이른바 안전 수위를 정해 둥지를 틀었건만 예기치 못한 악천후로 인해 한 해 새끼 농사를 모두 망치는 뼈아픈 시련을 겪어야 했다.
졸지에 피붙이를 잃고 허공을 헤매는 생명체가 어디 이들 새 뿐이겠냐마는, 그동안 온갖 정성 들여 알을 품던 쇠물닭과 깝작도요 어미들, 또 불빛을 비추면 알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어엿한 생명력을 느끼게 했던 어린 새끼들, 그 가엾은 존재들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편하질 않다.
자연이 자연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시대'. 그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
지난 2일엔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하는 진기한 광경을, 그것도 야외 사진촬영 현장에서 생생히 목격했다. 생태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그날 아침 카메라 가방을 챙기면서 오늘은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다 문득 며칠전 꾀꼬리 소리가 들렸던 괴산의 한 밤나무숲이 떠올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현장에 도착하니 꾀꼬리 한쌍이 날카롭게 경계음을 냈다. 낯선 방문객이 침범했다는 자기들만의 신호였지만, 새 울음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기에 오히려 “우리 둥지 이 근처에 있소” 라는 고백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무위를 살핀 지 3분도 안돼 나뭇가지에 매달린 둥지가 눈에 들어왔다. 둥지 한구석으론 불그스레한 새끼 주둥이까지 보였다. 몸집이 어느 정도 자라 있다는 증거다. 직감은 적중했다. 부화한 지 열흘 이상 지난 새끼 4마리였다.
위장텐트를 치고 곧바로 사진촬영에 들어갔다. 꾀꼬리의 먹이장면은 이미 몇 년 전 촬영한 바 있으나 그 땐 필름카메라였다. 해서 올핸 기필코 디지털카메라로 다시 찍기로 마음먹어 오던 터였다. 망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길 3시간여. 말이 3시간여지 불과 1㎡도 안 되는 좁은 텐트안에서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꼼짝 않고 갇혀 있기란 여간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무릎에 쥐가 나고 허리가 저려도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조건 참고 기다려야 했다. 한데 그 놈(?)의 꾀꼬리 어미들은 왜 그리 의심이 많은지. 웬 낯선 사람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이상한 물체속에 들어가는 것을 본 어미들은 계속 경계음만 낼 뿐 먹이를 물어다 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2개의 배터리 중 하나는 이미 소진한 상태여서 조바심까지 생겼다.
그래도 오기가 있지, 너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해보자고 막 다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모니터에 이상한 장면이 나타났다. 둥지안에 있던 새끼 한 마리가 돌연 공중으로 떠오르는 게 아닌가.
눈을 의심했지만 우선 셔터부터 눌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날개가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 새끼가 공중부양하듯 허공으로 떠올라 날개를 푸드득 거리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을 확대해 보았다. 아뿔사! 뱀이었다. 1m쯤 되는 커다란 누룩뱀 하나가 나무에 기어올라 새끼를 낚아챈 것이다. 잡힌 새끼는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 쳤지만 소용 없었다.
이미 날카로운 이빨에 머리를 물려 입안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였다. 놀란 건 어미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끼가 뱀에게 잡혀먹히는 것을 본 어미들은 피를 토하듯 울부짖었다. 캬~아 캬~아! 최악의 비상사태를 알리는 어미들의 다급한 콜음(CAll音)이 일순간 숲속을 뒤덮었다. 평소 낯선 사람이 둥지 근처만 지나가도 잽싸게 공격하는 꾀꼬리지만 그날따라 속수무책이었다.
손에 땀이 났다. 더위도 잊혀졌다.
아프리카 밀림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야생의 먹이사슬 현장을 생비디오로 보며 사진촬영하는 행운이 나에게도 오다니,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기회를 놓칠 세라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동영상을 합쳐 2백컷을 찍었다.
덕분에 소중한 경험과 자료를 얻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사흘을 더 그곳을 찾고도 어미가 먹이주는 장면은 찍지 못한 것이다. 첫날의 끔찍함 때문인지 그날 이후 나만 나타나면 처절한 CALL음을 내며 도무지 촬영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를 보면 누룩뱀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결국 연민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우리 생태계가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누룩뱀의 포식장면, 그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자연 생태계에는 새끼에 대한 사랑이 유난히 강한 동물이 있다. 예를 들어 꼬마물떼새를 비롯한 물떼새류와 원앙이, 꿩, 쏙독새 등은 알을 낳아 둔 둥지 근처나 어린 새끼가 있는 곳에 낯선 침입자가 나타나면 어미새는 마치 부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몸이나 날개를 갑자기 늘어뜨려 금방 잡힐 것처럼 보이거나 한쪽 날개가 부러진 것처럼 옆으로 누워 날개를 푸드덕거리기도 하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넘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 침입자는 그 행동에 현혹돼 잡으려고 달려들게 마련인데 어미새는 그때마다 잡힐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며 침입자를 먼곳으로 유인한다. 어미새의 목숨을 담보로 알과 새끼를 보호하는 강한 모성애를 엿볼 수 있다.
또 꾀꼬리와 때까치, 파랑새는 둥지 가까이에 천적이 다가가면 큰 경계음을 내며 잽싸게 공격한다. 행여 둥지를 건들라치면 마치 사생결단을 한 것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어서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얼굴과 머리를 마구 공격하는데 특히 어린이와 여자는 어떻게 용케 알고 더욱더 악()을 써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이 역시 목숨을 건 강한 새끼사랑이다.
새 가운데에는 또 새끼가 어미를 도와 동생들을 기르거나 둥지를 트는 등 '가족애'가 유난히 두터운 새도 있다. 앞서 말한 꾀꼬리가 그 주인공인데 지난해 태어난 1년생 새끼 꾀꼬리는 이듬해 어미가 둥지 틀 때 함께 재료를 물어다 틀고 또 동생들이 태어나면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줌으로써 어미에게 은혜를 갚는다. 또한 둥지에 침입자가 나타나면 어미보다 더 맹렬히 공격해 동생들을 지켜낸다. 이경우 1년생 새끼를 조류학에서는 '헬퍼(Helper)'라 부르는데 이 헬퍼의 행동은 실제로는 어미가 되기 위한 학습과정이나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한 효조(孝鳥)가 없고 더한 가족애도 없을성 싶다.
곤충도 강한 자식사랑을 보이는 게 있다. 수서곤충인 물자라는 암컷이 수컷 등에 알을 낳으면 수컷은 부화할 때까지 업고 다니며 애지중지 보호한다. 또 에사키뿔노린재는 자신의 알을 몸으로 감싼채 꼼짝 않고 부화할 때까지 보호한다.
물고기도 자식사랑이 유난히 강한 게 있다.
우리나라에 사는 열동가리돔과 줄도화돔은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입으로 받아 부화할 때까지 넣고 다니며 보호한다. 수컷의 입이 부화장인 셈이다. 자신은 먹을 것도 못 먹어가면서 오로지 새끼만 보호하는 참으로 기특하고 영특한 부성애다.
또 해마라는 물고기는 수컷 배에 육낭(育囊)이 있어 암컷이 낳은 알을 받아 부화할 때까지 살신보란(殺身保卵)한다. 열거하자면 끝없는 이러한 동물들의 자식사랑은 그 내면을 알면 알수록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경외감마저 든다. 자연은 인간의 어머니라 했던가. 사유(思惟)가 없는 이들 동물도 자식과 부모, 가족을 사랑하는 지고지순의 본능을 갖고 종족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게 대자연의 이치다.
하물며 인간사는 어떤가. 걸핏하면 어린 핏덩이를 남의 집앞이나 화장실에 내다버리고 자식들은 어버이를 돈 없고 늙었다는 이유로 마구 학대하거나 홀로 살게하는 현대판 고려장이 난무한다.
이유도 모른채 가족들과 헤어져 험한 세상을 방황하는 미아들이 부지기수고 알량한 돈 몇푼과 성적 욕구 때문에 남의집 귀한 자식 유괴해 목숨 끊는 비정한 사건이 연일 터진다. 우리가 미물이라 깔보는 동물들은 자식사랑 부모사랑 가족사랑이 변치않는데 사람들은 그 반의 반도 못 따라 가는 이들이 허다하다. 허니 누가 미물이고 누가 영물인가. 자식과 부모,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5월 가정의 달이다.